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79회
한일전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일본 랭커 1위인 류헤이가 수장으로 있는 야마모토 가문.
야마모토 가문의 기대주이자, 류헤이의 하나뿐인 외동아들.
야마모토 류진.
이 녀석이 대척점의 중앙에 서서 금석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류진이 번개 마크가 박혀 있는 장갑 낀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피 떡으로 만들어주마!!”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맨 주먹을 들어 올리는 금석.
그런 그들을 옆에서 만류하는 각 학교의 교관들.
하지만 으르렁 거리는 짐승 새끼들 마냥 류진과 금석의 으르렁거림은 더 심해졌다.
그 때.
쿠쿵!!
하늘에서 번 개 한 가닥이 금석을 향해 내리쳤다.
류진의 능력이었다.
우산으로 비를 막듯, 손을 들어 금석의 머리를 보호하는 박태산.
번개는 강철로 변한 박태산의 팔을 맞고 곧바로 소멸했다.
박태산의 눈썹이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금석. 물러나 있어라.”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박태산.
그에 맞춰, 류진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일본 학교 교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차에서 먼저 내려 후미열에 있는 학생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저녁 자유 시간에 농가를 산책하던 도중 일본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런데 하필 시비를 붙은 게 금석과 류진이었다.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이 둘이 붙었으면 판이 커질 수밖에.
‘둘 다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댔겠지.’
“패 죽여주마!!”
“이마 스구 코로시데 야루!!(당장 죽여주마!!)”
나는 호주머니에 있는 번역 인이어를 귀에 다시 꼽았다.
교관 뒤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들 기세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금석과 류진.
담임 교관들이 뒤를 돌아 딱 밤을 한 대씩 쥐어박았다.
효과는 굉장했다.
씩씩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일본은 아무 때나 능력을 사용해도 되나 봅니다?”
“하하. 때에 따라서는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령 야생 동물이 출현 했다던지.”
“..지금 저희 학생에게 야생 동물이라고 하신 겁니까? 코코로 교.관.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학생에게 야생 동물이라니요. 저런저런~ 그런데. 찔리는 부분은 있으신가봅니다? 하하!!”
“....”
박태산 교관과 코코로 교관의 눈빛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잘 다녀왔어?”
후미에서 이 사태를 관망하던 중 한설휘와 정시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한설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뭐 했어?”
“그냥 유적지랑 박물관 몇 개 갔다 왔어.”
“그래?”
“응.”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시아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쟤들 때문에 다 망쳤어.”
“뭘?”
내가 되 묻자 어깨를 으쓱하는 정시아.
“아름이가 황금돌대가리 산책 시키고 있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데이트라고나 할까?”
“....”
데이트라고?
나는 조금 더 추가 설명을 요하는 얼굴로 정시아를 쳐다봤다.
“저녁 먹고 지수 언니가 아름이랑 같이 있어달라고 했거든. 근데 뭔가.. 둘 사이에 짜릿짜릿한 게 느껴지는 거 있지? 그래서 둘이서 산책 좀 하고 오라고 했지. 근데 이 사달이 났지 뭐람~ 설휘랑 같이 미행하면서 꿀잼각 나오나 싶었는데. 노잼각 떠버렸네. 그치, 설휘야?”
“응. 분위기 좋았는데.”
이런 스캔들 조작단을 봤나.
나는 앞쪽을 쳐다봤다.
여전히 박태산 교관과 코코로 교관은 신경전 중이었다.
교관들의 뒤로 금석과 류진 역시 서로를 향해 눈빛을 쏘아내는 중이었다.
“오오!!”
뭘 하다 왔는지 신지수 교관이 호주머니에 지폐 다발을 꽂고 등장했다.
지폐 다발 사이에 화투 패가 한 장 껴 있었다.
박태산 교관과 코코로 교관이 있는 쪽으로 직행하는 신지수 교관.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뭐 하는 짓들이야!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 몰라?!”
“....”
“....”
신지수 교관을 쳐다보는 두 교관.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련이나 해보는 게 어때? 양국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있고, 애들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때 어때?”
신지수 교관의 호주머니에 꽂혀 있는 지폐가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딱 대련 한 번 하고! 오늘의 앙금을 모두 날려버리자 이거야~”
박태산 교관과 코코로 교관의 어깨를 손으로 때리는 신지수 교관.
“이대로 헤어지면 서로 학교에 대한 이미지만 안 좋아질 게 분명하잖아. 안 그래? 거 참 남자들이 결단력이 이래 궁핍해서야. 어이 우리 꼬맹이들~”
신지수 교관이 우리 쪽을 쳐다봤다.
“일본 헌터 학교 애들 수준 궁금하지!!”
“예!!”
“네!!”
일본 헌터 학교 학생들을 쳐다보는 신지수.
“어이~ 민나~ 파이트. 오케이? 우리랑 한 번 붙어보자. 오케이~?”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
영어인지.
3개 국어를 용케도 알아들은 일본 학생들.
“죽여주마!!”
“덤벼라!!”
기세등등한 얼굴로 살벌한 멘트를 날려댔다.
짝.
손뼉을 한 번 치는 신지수 교관.
“자.”
두 남자 교관을 쳐다보는 신지수 교관.
“판은 다 깔린 것 같은데.”
먼저 입을 연 건 박태산 교관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내일 아이템 박람회 일정 때문에 학생들을 일찍 취침 시켜야 한다.”
그의 말을 받는 코코로 교관.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의 실력이 어느 정도 저희에 비해 떨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내일 일정이 빠듯하군요. 하하.”
코코로 교관의 말은 전혀 교묘하지 않았다.
대놓고 한국이 일본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입을 열려다가 한 번 참는 박태산 교관.
더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종결되나 싶었다.
“교관님.”
금석이 조용히 박태산 교관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금석을 쳐다보는 박태산 교관.
“저 자식이랑 한 번 붙어보고 싶습니다.”
금석답지 않은 정중하고 예의를 차린 멘트였다.
그래서인지 금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박태산 교관.
“저 자식이라 함은.”
“저 번개 머리.”
금석이 손으로 류진을 가리켰다.
“이기겠습니다. 기회를 주세요.”
“....”
뒤에서 금석의 멘트를 듣고 있는 나도 놀랄 지언데, 박태산 교관은 오죽할까.
내 옆에 있는 정시아와 한설휘는 난리가 났다.
“황금돌대가리 왜 저래? 왜 정상인 코스프레 하고 난리야?”
“저렇게 멀쩡하게 말하니까 사람이 달라 보이는데?”
애제자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박태산 교관.
금석에게 한 마디 했다.
“이길 수 있겠냐?”
“예.”
고개를 끄덕인 박태산 교관.
고개를 돌려 코코로 교관을 쳐다봤다.
“생각을 해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속전속결로 이길 테니까요. 한 번 저희 학교 학생들과 대련하시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박태산의 태세전환에 당황한 눈치였다.
“쫄리시면 안하셔도 됩니다.”
박태산 교관이 묵직하게 한 방 던졌다.
“그럼 쫄려서 안 하는 걸로 알고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쐐기를 박는 박태산 교관.
본래 박태산 교관은 ‘쫄리다’와 같은 단어 선택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가끔 하기도 하는 그였다.
박태산 교관이 뒤를 돌아, 코코로 교관을 등졌다.
“잠시만요.”
박태산 교관을 불러 세우는 코코로 교관.
“언제 저희가 쫄린다고 했습니까?”
“....”
“하죠. 합시다. 됐습니까?”
한일 간의 대결이 성사가 됐다.
성사가 되자마자 얌전하게 있던 금석의 씰룩거리던 입가가 벌어졌다.
“패 죽여주마!! 번개 머리!!”
금석.
그는 정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처세술이 늘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 + +
대결 방식은 속전속결로 정해졌다.
5판 3선승제.
개인전.
그로 인해 각 학교마다 5명의 인원이 차출 됐다.
“아..”
나는 한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갔다.
피곤해서 끼고 싶지 않았는데,
5명 안에 포함이 돼버렸다.
다 신지수 교관 때문이었다.
“아니 이런 큰 판에 우리 학교의 에이스가 빠지면 쓰나!!”
분명히 신지수 교관은 ‘큰 판’이라고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을 쳐다보니 양국 교관들이 있는 곳에서 뭔가 비밀스럽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승자 내기를 하는 모양인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기를 하는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나와 같이 앞으로 나온 한설휘와 정시아를 쳐다봤다.
그녀들도 내심 귀찮아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기대가 되는군. 후후.”
내 옆에 선 빛 능력자 안경잽이.
“너 요새 자주 등장 한다?”
“내 계산에 따르면..”
“닥쳐.”
“..계산에 없던 말이군. 후후..”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이 사건의 원흉이자, 가장 투지로 불타고 있는 금석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나는 금석 옆으로 걸어갔다.
“석아.”
“우오!! 우오오!!”
“원시인 소리 그만내고 나 좀 봐봐.”
나를 쳐다보는 금석.
나는 간단하게 류진의 약점을 몇 가지 알려줬다.
그러자.
“묵사발로 만들어주마!!”
더 투지에 불타는 금석.
나는 일본 진영을 쳐다봤다.
우리처럼 5명의 일본 학생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류진.
그리고 꽤나 얼굴이 낯이 익은 얼굴들.
전부 일본의 유망주들이었다.
어지간히 지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설치 다 됐습니다.”
농가의 구석에 위치한 넓은 공터.
그 곳에 능력 방어 결계를 설치한 채린과 사신 길드원들.
그로인해 공터 안에서는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덤으로 공중에 조명 아이템까지 터트려 놨다.
경호 업무와 더불어 이런 부수적인 일까지 책임지다니.
역시 사신 길드는 다른 길드와는 결이 달랐다.
“대결 순서를 말해주겠다.”
우리 앞으로 걸어온 박태산.
“첫 대결은 안경잽이. 네가 맡아라.”
“내 계산대로라면 4순위일 확률이 84.2%라는..”
안경잽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설휘를 쳐다보는 박태산.
“설휘. 네가 2번 타자다.”
금석을 쳐다보는 박태산.
손을 들어 금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3번 타자다. 코코로 교관과 합의를 했다. 번개 머리도 3번째에 나올 거다.”
“으랴랴!!”
기합을 발사하는 금석.
“시아는 4번. 서진은 5번 타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5판 3선승제는 3판 먼저 이긴 쪽이 승리하는 룰이니까,
나까지 순서가 안 올 수도 있었다.
“안경잽이를 빼고 나머지 인원은 뒤로 빠져 있어라.”
박태산의 말에 우리는 능력 방어 결계 밖으로 나갔다.
방어 결계로 들어오는 일본 학생 한 명.
안경잽이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샤프하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준비됐으면 시작해라.”
곧바로 경기 시작이었다.
안경잽이의 스타일은 데이터 분석 후, 상대방을 공략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일본 학생에 대한 정보가 0인 상태.
안경잽이는 잽을 날리듯,
빛의 화살을 날리며 탐색전을 펼치려고 했다.
상대방 역시 안경잽이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공격을 하며 탐색하는 시간에 응했다.
일본 학생은 바람계열 능력자인 듯, 몸놀림이 상당히 가벼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장풍을 쏘아댔다.
5분. 10분. 15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탐색전이 끝날 생각을 안 했다.
급기야 경기장에 난입을 하는 양측 교관.
“서로 공격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면 무승부 처리를 하겠다.”
“5분 안에 승부를 결정지어라.”
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탐색전은 계속 이어졌다.
구경하던 학생들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탐색은 모두 끝났다!!”
안경잽이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나 역시!!”
일본 학생도 소리쳤다.
하는 짓이나 말하는 폼이 비슷한 과인 것 같았다.
“어린 양을 주님의 품 안에!! 빛의 속박!!”
“바람의 결계!!”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움 양상이 탐색전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지루했다.
투닥투닥.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승자는 쿠로다.”
일본 측 학생이 이겼다.
간발의 차이였다.
경기가 워낙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몇 명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할 뿐, 호응이 크지 않았다.
“한설휘.”
박태산이 한설휘를 호명했다.
“타카시.”
코코로 교관 역시 일본 학생 한 명을 호명 했다.
제 2경기.
“화염의 인도자.”
한 마디로 경기가 끝났다.
한설휘의 가뿐한 승리.
제 3경기.
드디어 메인이벤트 시작이었다.
금석 대 류진.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