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출동이요~78회
미야마 무사시
“어디 갔다 왔지?”
“잠깐 장 보러.”
내 말이 짧자, 무사시 옆에 포복하듯이 앉아 있던 타쿠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내 손에 들린 물약을 쳐다보는 무사시.
타쿠야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잘못..”
무사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사의 눈물’ 뚜껑을 따서 아이의 입에 들이 부었다.
물론 한 손으로는 마시기 쉽게 머리를 살짝 받치고 있었다.
“꺽..꺼억..”
가뜩이나 숨 쉬기가 힘든데 목구멍으로 액체가 들어오자 질식할 것만 같은 소리를 내는 무사시의 아들.
그 소리에 무사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이놈!!”
나는 손을 들어 무사시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다. 아들을 살리고 싶지 않나?”
“크으으..”
무사시가 제 자리에 서서 괴로워하는 아들을 쳐다봤다.
고사리 같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무사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렸다.
천사의 눈물은 원래라면 이 세계관에서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아이템이었다.
본래 나중가면 갈수록 아이템의 성능이 좋아지지 않는가.
중후반에 등장하는 아이템 중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는 아이템이 바로 ‘천사의 눈물’이었다.
그만큼 효력 면에서는 검증과 보증이 확실했다.
나는 목을 움켜잡고 있는 무사시의 아들을 쳐다봤다.
“크윽..”
어린 아이가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가슴을 시작으로 서서히 초록색 얼룩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아..하아..”
호흡이 점점 편안해졌다.
목을 감싸던 손을 천천히 내리는 무사시의 아들.
나는 무사시의 아들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병상에 눕혔다.
초록색 얼룩이 거의 사라졌다.
남은 건 손등에 있는 진한 얼룩이었는데, 그 마저도 색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천사의 물결에 남아 있는 몇 방울을 무사시 아들의 손등에 톡톡 털었다.
치이익.
성수를 뿌린 것처럼 얼룩이 혈관을 타고 꿈틀거리더니 깨끗하게 사라졌다.
“끝~”
나는 마술쇼를 끝낸 마술사처럼 무사시와 타쿠야를 보며 양 팔을 들어보였다.
내 행동에 한 걸음에 달려 온 무사시.
자신의 아들 상태를 살폈다.
“아..아니.. 이럴수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무사시.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타쿠야도 눈빛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 그럼, 선생님들. 이제 제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말을 하며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봤다.
‘4시.’
5시에 채린과 만나기로 했으니까.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고.
“선생님들?”
얼이 빠져 있는 무사시와 타쿠야를 재차 불렀다.
+ + +
“마셔라 마셔!!”
“점술사님 만세!!”
“점술사님을 위하여!!”
4시에 거하게 술판이 열렸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안주만 주워 먹고 있었다.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한 잔 따라드려도 되겠습니까?”
타쿠야가 공손히 사케를 내밀었다.
‘아..’
미야마 가문에서 술을 따라준다는 건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더 나아가 신뢰와 믿음을 주고받는 행위였다.
‘이거 안 받을 수도 없고.’
내 외향은 지금 10대가 아닌 40대의 서양 남자였다.
나는 술잔을 내밀었다.
“영광입니다.”
술만 받고 그대로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있던 무사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흥을 주제 못하더니 급기야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점술가 양반!! 나와 한 잔 하지!!”
“....”
내 잔에 잔을 부딪히는 무사시.
원 샷을 하면서 눈은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크하하!! 호탕하구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지.”
무사시가 내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한 잔 더!!”
술이 막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서진에게 빙의하기 전 서진이 워낙 술을 많이 마셨던 터라, 신체가 술에 적응이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용건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술잔을 내리며 무사시를 쳐다봤다.
“왜 그러나? 아차참!! 내 정신 좀 보게! 애들아 우리 점술가 양반을 위해서 여자들 좀..”
“아니 그게 아니라.”
“여자가 아니면. 오호라. 취향이 그 쪽이셨구만. 내가 고지식하지만 이 쪽으로는 또 열려 있는 사람이지. 호스트 바 가서 남자들 좀..”
“아니!!”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축제 분위기가 폭죽이 꺼진 것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감히 무사시님에게 소리를 질러?”
“아무리 우리 가문의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사무라이들의 눈빛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제지를 하는 무사시.
“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드는가?”
무사시는 현재 내게 두껍게 콩깍지가 씌어진 상태였다.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여전히 온화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무사시.
“중요하게 전할 말 있어.”
“아, 그 예지몽 말인가? 그거라면..”
“내 예지몽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어.”
“....”
나를 빤히 쳐다보는 무사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사무라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타쿠야.”
“예.”
“너도 나가 있어라.”
“예.”
모든 사무라이들이 나갔다.
갑자기 공간이 휑해지자 순간의 적막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5시가 다가오고 있었고,
채린에게서 문자가 한 통씩 오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만물상의 호위를 맡았다고 들었어.”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무사시.
“목요일에 빌런 한 명이 박람회를 습격할거야.”
“한 명? 크하하!! 점술가 양반. 거 농이 지나친 거 아니요! 고작 한명이 습격하는데 내가 죽는다고? 미야마 가문의 가주인 나, 미야마 무사시가?”
“류헤이.”
“류헤이라 함은. 설마 야마모토 가문의 류헤이를 말하는 건가?”
“그래.”
야마모토 류헤이.
일본 능력자 랭킹 1등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능력자였다.
그리고.
무사시가 한 번도 1:1 대결에서 이겨본 적이 없는 상대이기도 했다.
“갑자기 류헤이는 왜..”
“류헤이 보다 강하다.”
“....”
“이러면 이해가 되려나?”
육체파에게 알기 쉬운 예시를 들어줘서인지, 무사시의 안색이 빠르게 굳어갔다.
“점술가 양반이 내 아들을 치료해준 건 참으로 놀랍고 고마운 일인 건 틀림없지만.”
술잔을 들이키는 무사시.
“나는 아직까지 류헤이 보다 강한 적수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기에는 개구리가 황소개구리보다 더 컸지만,
무사시 보다 강한 상대는 당장 머릿속에 떠 올려 봐도 꽤 여럿 존재했다.
그렇다고 많은 건 결코 아니었다.
“그럼 이번에 보겠네.”
나 역시 술잔을 들이켰다.
몇 잔을 연거푸 마시던 무사시.
“그래. 점술가 양반 말처럼 류헤이 보다 강한 상대라고 치고. 우리가 훨씬 쪽수가 많은데. 이건 어떻게 설명 할 건가? 설마 미야마 가문의 사내들이 전부 당한다는 그런 싱거운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닐 테고.”
“전부 당하진 않아. 90%정도?”
“어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무사시.
“앉아 봐. 그래서 내가 온 거니까.”
자신과 미야마 가문이 괴멸 직전까지 가는 모습을 상상했는지,
무사시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성거리며 씩씩거렸다.
“시간 없어. 나 곧 가야 돼.”
내 말에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말하는 무사시.
“서서 듣겠다.”
“그래, 그럼.”
나는 지숙에 대한 정보를 무사시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생김새.
능력.
성격.
전투 스타일.
마지막으로 지숙이 아이템 박람회를 터는 날까지.
“흐음..”
내 얘기를 전부 들은 무사시.
털썩 자리에 앉았다.
“물 능력자라니. 흐음..”
예로부터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물과 칼은 상성이 안 맞았다.
하지만 내 말대로만 하면 상성을 뒤 엎을 수가 있었다.
무사시는 능력자 사회에서 잔뼈가 굵다 못해 통뼈가 된 남자였다.
지숙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어느 정도 내가 앞서 한 말에 수긍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듯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의 의문을 모두 풀어주기에는 호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아까부터 진동했다.
“다 말해줬으니까 나는 이제 갈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뭐?”
“어째서지?”
“뭐가?”
“어째서 우리 가문에게 이토록 호의를 베푸는 거지?”
당연히 지숙을 잡아야 하니까.
“하늘의 계시라고나 할까?”
“..그렇군.”
점술가라고 말해서 그런지 하늘의 계시라는 말에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잠시만.”
문으러 걸어가는 나를 불러 세우는 무사시.
찌이익.
자신의 옷소매를 뜯어서 내게 건넸다.
“이걸 가져가라.”
아이템이나 먹을 것도 아니고 옷소매라니.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씨익 웃는 무사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문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걸 보여줘라.”
검을 물고 있는 야차의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가문과 친구라는 증표다.”
“오오.”
그런 깊은 뜻이.
하마터면 가는 길에 내다버릴 뻔 했네.
나는 호주머니에 손바닥만 한 무사시의 옷 조각을 집어넣었다.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서 꼭 지숙을 죽여라.
내 말에 가소롭다는 듯이 웃는 무사시.
나는 방을 나섰다.
+ + +
“가십니까?”
타쿠야가 마중 나왔다.
“응.”
5시 30분이다.
30분이나 지각이었다.
다행히 대문 밖으로 나오는 길에 채린에게 연락해보니,
금방 만물상과 헤어졌다고 했다.
‘아마도 나를 배려한 말이겠지.‘
타쿠야가 허리를 숙였다.
뒤로 질끈 묶고 있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마야마 가문은 점술가님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일심동체도 아니고.
미야마 가문 사람들은 자신을 가문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타쿠야.”
“예.”
허리를 피고 나를 보는 타쿠야.
“네 잘못이 아니야.”
“....”
“그러니까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타쿠야의 시선이 아래로 내리깔렸다.
“자책하며 주저앉아 있다가는 더 많은 사람들을 잃게 될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타쿠야는 알고 있었다.
“..명심 하겠습니다.”
“응. 간다!”
타쿠야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볼 일은 잘 봤어요?”
“네.”
나로 인해 우리는 6시에 도쿄에서 리조트가 있는 미야자키 현으로 출발했다.
채린은 화를 내기는커녕 미소로 나를 반겼다.
참 여자친구로 삼고 싶은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 만물상 오빠 때문에 기분 많이 안 좋으셨죠?”
“아뇨. 딱히?”
“에이~ 살짝 미간 찌푸려지는 거 다 봤는데요?”
이 여자.
칭찬해줄만한 관찰력이었다.
만물상이 자신이 아이템을 산다고 했을 때의 의미를 설명하며 내 손가락을 자른다고 했을 때 살짝 기분이 언짢기는 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요새 일본도로가 뻥 뚫려 있어서 8시 안에는 도착할 것 같아요. 근데 서진씨.”
“네.”
창밖을 보며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채린을 쳐다봤다.
“어디서.. 술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요?”
“.....”
편의점에서 입 냄새 제거제와 탈취제를 사서 나름 지운다고 신경 썼는데.
“밖에서 나는 냄새 아니에요?”
우리는 마침 유흥가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창을 더 열었다.
“음..그런가..”
코를 매만지는 채린.
우리가 타고 있는 차가 시원하게 일본의 도심 한복판을 갈랐다.
+ + +
채린의 말대로 8시 정각에 미야자키 현에 들어섰다.
리조트가 있는 시골로 진입 했을 때.
“저기 뭐죠?”
나는 의아해하며 어제 온천욕을 즐겼던 온천의 입구를 쳐다봤다.
두 무리가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한 쪽은 누가 봐도 우리 학교 학생들과 교관이었고,
한 쪽은 누가 봐도 일본풍의 옷을 입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었다.
“그러게요?”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 번개가 번쩍하고 온천 앞으로 떨어졌다.
“..채린씨. 일본 학교 이름이 뭐라고 했죠?”
“스..스.. 아!! 스즈란!!”
“....”
많고 많은 학교 중에 하필 스즈란이라니.
뇌제(雷帝).
아무래도 저 대척점의 시작은 이 새끼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
쉬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