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75화 (75/196)

여러분들 코로나 조심하세요!75회

만물상

보물찾기가 모두 끝이 났다.

A등급 1개.

B등급 1개.

C등급 2개.

D등급 3개.

E등급 6개.

나머지 두 장은 ‘방 바꾸기’와 ‘온천 이용권’이었다.

내가 15개로 1등이었고,

한설휘와 정시아가 내 뒤를 이었다.

원래라면 금석이 1등이었다.

금석은 30개의 쪽지를 찾았다.

하지만 귀신이 보이는 족족 두들겨 패다가 30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쪽지를 전원 몰수를 당했다.

“온천 이용권을 획득한 학생은 10분 뒤 리조트 앞으로 모이도록 해라. 가기 싫으면 안 가도 상관없다. 친구에게 양보해도 좋다.”

쪽지의 개수 중 온천 이용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인지 반 이상의 학생이 온천 이용권을 가지고 있었다.

반 이상에 포함되지 못한 금석이 분하다는 얼굴로 땅을 박차고 있었다.

그 때 신지수가 박아름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귀신 잡는 싸나이~”

금석을 보며 놀리듯이 말하는 신지수.

콧김을 뿜어내며 그녀를 쳐다보는 금석.

“아름이가 온천 이용권을 획득 했는데 가기 싫다지 뭐야. 그래서 친한 사람한테 주라고 했더니 너를 빤히 쳐다보는 거 있지?”

“....”

콧김을 멈추며 박아름을 쳐다보는 금석.

“동정이냐?”

금석의 말에 눈을 깜빡는 박아름.

고개를 미세하게 옆으로 흔들었다.

“그럼 갑자기 그걸 왜 나한테 왜 주는 건데!!”

금석은 지금 상당히 뿔이 나 있었다.

“야. 너 호의를 베푸는 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신지수가 금석에게 한 소리를 하려고 했다.

그 때 아무 말 없이 금석의 손을 잡는 박아름.

두툼하고 거친 금석의 손 위에 ‘온천 이용권’이라고 적혀 있는 쪽지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아니..”

당황한 금석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런 저항 없이 쪽지를 받아든 금석.

“서진아.”

금석의 옆에 서 있던 나를 부르는 신지수.

“이 상황. 뭔 거 같니?”

“음..”

제일관에서 다 같이 밥 먹을 때 박아름을 보는 금석의 눈빛이 다른 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반응도 없던 박아름이 움직였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멍멍이.”

박아름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멍멍이 같아.”

다시 한 번 움직이는 박아름의 입.

“....”

“....”

급기야 금석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는 박아름.

박아름의 손길에 금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거나,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

“야! 교관님이 1분 안에 안 오면 나두고 간대!”

학생 한 명이 아직까지 리조트 뒤에 남아 있는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올라가서 아름이랑 맥주나 마셔야겠다~”

신지수가 금석의 머리 위에 있는 박아름의 손을 내렸다.

“멍멍이랑 온천 잘 즐기다 오시게~”

박아름과 함께 걸어가는 신지수.

나는 금석을 쳐다봤다.

얼굴이 이렇게 빨갛게 변한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바늘로 톡 찌르면 바로 피의 향연이 일어날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자. 멍멍아.”

“어..엉.”

멍멍이가 내 뒤를 따라왔다.

+ + +

리조트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온천.

40명 정도 되는 남자 인원이 수영장에 온 것처럼 장난치며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뻥 뚫린 하늘에 보이는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온했다.

몸도.

[달빛력이 5 상승 합니다.]

마음도.

내일 되면 다시금 바빠지겠지만,

현재의 편안함을 만끽 할 생각이었다.

일본에 등장하는 갓파처럼 금석의 몸이 눈만 제외하고 모두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다.

온천에 오자마자 저 상태였다.

얼굴이 눈만 보여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금석답지 않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버려뒀다.

아마도 아까 일을 생각하는 중 같은데.

“얌전히 안 있으면 밖으로 던져버리겠다.”

한 쪽 편에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박태산이 학생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말을 하고 다시 눈을 감는 박태산.

온천과 물아일체를 경험하는 중인 듯,

표정이 온천물에 녹아버릴 것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옷을 입고 있어도 박태산의 육체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탄탄했고, 거대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육체는 무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이 아닌, 딱딱해 보였다.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도 가뿐하게 우승을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로,

성난 근육이 꿈틀 꿈틀거렸다.

‘성한 데가 없네.’

박태산의 몸은 크고 작은 상처 투성이였다.

박태산의 훈장 표식이나 다름없었다.

‘아..’

남자 몸을 이렇게나 오래 보고 있자니,

뭔가 정체성에 혼란이 올 것 같아서 시선을 치웠다.

“아, 하지마!!”

“왜에!! 이리와 봐!!”

“꺄하하!! 간지러워!!”

그 목소리를 들은 남정네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들의 시선이 천천히 옆에 보이는 나무 벽으로 향했다.

벽 너머에는 여자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

“....”

남자 애들이 슬금슬금 헤엄치는 척 벽 쪽으로 이동했다.

“와.. 설휘 봐봐. 피부 너무 뽀얗다.”

“몸매는 또 어떻고.”

“이거 반칙 아니야? 어떻게 저 몸매에 가슴도 있을 수가 있어?”

“부끄럽게 왜들 그래.”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응?”

“한 번만.”

“아, 하지마. 하지마아~ 간지러워.”

여기저기서 들리는 마른 침 삼키는 소리.

시끄러울 때는 몰랐는데, 남자 애들이 조용해지자 여탕의 목소리가 더 적나라하게 들렸다.

“원 위치 해라.”

박태산이 한 쪽 눈을 뜨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나무 벽으로 민족 이동을 하던 애들이 멈칫 했다.

“어? 지수 쌤!!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여학생의 목소리.

“아 그게 말이지. 그냥 쉬려고 했는데 씻기는 해야 하니까. 씻을 겸 온천도 즐기면 좋잖아~”

“야. 야. 지수 쌤 가슴 봐봐.”

“지수 쌤 가슴 몇 컵이에요?”

“어허. 이것들이. 쌤의 가슴은 인간계에서 잴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니라~ 음하하!!”

신지수의 가슴 사이즈는 박태산의 육체처럼 옷을 입고도 자기주장이 강하긴 했다.

“저.. 교관님.”

아쉬운 얼굴로 나무 벽에서 조금씩 떨어지고 있던 남학생 한 명이 박태산을 불렀다.

“교관님도 남자셨군요!!”

남학생의 말에 남학생들의 시선이 박태산을 향했다.

박태산의 모양새가 누구를 마중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무 벽을 향해 있었다.

“크흠!”

자세를 바로하며 헛기침을 세게 하는 박태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길을 비켜라!!”

여탕에서 들리는 정시아의 목소리.

“우..우와..”

“와..”

진짜가 나타났다.

+ + +

온천욕을 끝낸 후, 온천 앞에 있는 벤치에서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일찍 나온 편이었다.

그래서 조금 대기를 해야 했다.

“몸이 아주 불어 터지겠네.”

나는 바나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하품을 했다.

시간도 시간이고, 온천욕을 해서인지 몸이고 정신이고 전부 나른나른했다.

진하게 하품을 연달아서 하고 있을 때,

머리카락에 물기가 남아 있는 채린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저도 방금 나왔어요.”

온천에 가면서 채린에게 미리 귀띔했다.

할 얘기가 있으니 조금 일찍 온천에서 나와 줄 수 있냐고.

딱 제 때 나왔다.

“오늘 귀신 역 멋졌어요.”

나는 무릎에 올리고 있던 새 바나나 우유를 채린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바나나 우유를 받아들며,

내 옆에 앉는 채린.

“얼마만의 여유인지 모르겠어요.”

말을 하는 채린의 민낯이 뽀송뽀송하게 달빛 아래에서 빛이 났다.

그녀의 몸에서 향기로운 향기가 풍겼다.

민낯이 이렇게 예쁠 수 있다니.

한설휘와 정시아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예쁨을 자아냈다.

성숙한 여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랄까?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너무 빤히 쳐다봤나 보다.

“아니요. 그냥 예뻐서요.”

“..네?”

“예쁘다는 말 처음 들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바나나 우유를 만지작거리는 채린.

갑자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 말 앞으로 하지 마요.”

“왜요?”

“저 철컹철컹 하기 싫거든요. 그리고 서진씨 임자도 있잖아요.”

“..하하.”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할 말이라는 게 뭐예요? 설마..”

레볼루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할 말만 있다고 하면 끝에 ‘설마’라는 단어를 붙였다.

맞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 할 생각이 없었다.

“내일 만물상 만나러 가시잖아요.”

일본으로 오는 길에 채린에게 들은 정보였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채린.

“네. 오는 길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만물상의 아이템 박람회가 열리는 날짜는 이틀 후, 수요일부터였다.

내일은 화요일.

개인적으로 만물상과 친분이 있는 채린이 개인 스케줄로 만나러 가는 거였다.

보물찾기에 보물로 만물상의 아이템 교환권을 걸 수 있었던 건,

채린의 공덕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만물상은 수집한 아이템을 함부로 팔거나 교환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거나, 수입만 했다.

그래서 만물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워낙 가진 아이템이 많아서.

“저도 데리고 가주시면 안 돼요?”

“안 될 거야 없지만.. 왜요?”

“도쿄에서 사야 할 물건이 있는데, 일정상 살 시간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만물상을 미리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부탁드려요, 채린씨.”

수학여행 일정대로 움직이면 지숙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별 행동을 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핑계가 필요했다.

채린이라면 내게 훌륭한 핑계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부탁을 거절 못 할게 분명하고.

잠깐 고민을 하던 채린.

“저는 괜찮은데 태산이나 다른 교관님들이 허락을 하실까요?”

“그래서 채린씨에게 말하는 거잖아요.”

“아..음.. 제가 한 번 태산이나 지수한테 잘 말해 볼게요.”

“고마워요, 채린씨.”

“서진씨의 부탁인데요, 뭘.”

이런 훌륭한 유대 관계 같으니라고.

“근데요, 채린씨.”

“네?”

바나나 우유를 마시던 채린이 나를 쳐다봤다.

“전부터 지금까지 쭉 느끼고 있는 건데, 언제 저한테 반말 하실 거예요?”

“..불편해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채린씨가 불편하실까 봐요. 태산 교관님이나 지수 교관님은 저한테 반말하잖아요.”

“저도 딱히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그.. 전에 레드랑 같이 식사 했을 때 잠깐 남매처럼 연기 했던 적 있잖아요.”

“네.”

“그 때 서진씨가 저한테 누나라고 하는데 뭐랄까.. 쫌 소름이..”

“..왜죠?”

“아니..그냥.. 서진씨는 보고 있으면 저 보다 어른 같다고 느낄 때가 한 번씩 있거든요. 어.. 그러니까 제 말은 싫었다는 게 아니라..”

“마셔요. 바나나 우유. 아, 참. 빨대 꽂아줄게요. 목욕 후에는 빨대로 마시는 게 국룰이거든요.”

“넵..”

빨대로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채린.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정시아. 금석. 한설휘.

다음 훈수 리스트에 이름 올릴 사람을 물색 중이었다.

아마도 이 셋을 제외하면 가장 신뢰도도 높고, 훈수 포인트도 조금씩 쌓아온 채린이 가장 유력했다.

“저기 뭐죠?”

나는 말을 하며 멀리 보이는 불빛을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여러 대의 버스 차량이었다.

불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이런 시골에.

이 시간에.

버스가 여러 대라니.

“아 저거 아마 그걸 걸요?”

“그거요?”

“일본 헌터 학교 학생들이요. 지수 말로는 쟤네들이 원래 여기 우선예약 했는데, 저희가 장소를 갑자기 일본으로 바꾸는 바람에 일정이 겹치게 됐다고 그러던데. 다행히 숙소가 저희 숙소 말고 한 군데 더 있어서 마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일본 헌터 학교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는 온천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주차를 했다.

그 말은 우리가 있는 리조트 보다 더 멀다는 뜻이었다.

이 세계에서 한 일 관계는 내가 살았던 세상과 비슷했다.

굳이 마주쳐봤자 좋을 게 없었다.

혈기왕성한 나이 때는 특히 더.

“학교 이름 알아요?”

“들었는데. 스..스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온천을 끝낸 학생들과 교관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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