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물어보지마세요. 모릅니다 저도^^73회
보물 찾기
일본 남서부 남단에 위치한 미야자키 현.
학생들을 실은 버스 5대가 꼬리잡기를 하듯,
도로를 질주했다.
꼬리잡기는 다소 허름해 보이는 리조트 앞에서 끝이 났다.
“버스에서 공지 했듯이, 배정 된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대기해라. 추후 일정은 방송으로 공지하겠다.”
학생들이 전부 버스에서 내리자,
햇살이 따갑지도 않은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박태산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되게 낡아 보이는데?”
“동감.”
“난 또 일본 간다길래 어디 좋은데 가나 싶었는데.”
“그래도 여기 관광지로 유명하다던데?”
“지랄~ 오는 길에 못 봤냐? 논. 밭. 논. 논. 우리 할머니댁 온 줄 알았다. 리얼.”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출발 할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그래서인지 캐리어 끄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난 개인적으로 만족했다.
괜히 도쿄나 오사카 같은 번화가를 가서 ‘이순신 헌터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왔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리조트는 총 3층으로 높지 않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옆으로 되게 넓고 길었다.
1층은 남자.
2층은 여자.
3층은 교관 및 사신 길드.
이렇게 방이 배정 됐고,
나는 110호실의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방 마다 많게는 6인실.
적게는 3인실이었는데, 110호실은 6인실이었다.
“....”
오타쿠를 비하하는 게 전혀 아니다.
그런데 딱 보면 오타쿠처럼 생긴 얼굴이 있었다.
뭔가 입을 열면 ‘야레 야레~’ 라던지.
혹은 ‘오소이!’ 라던지.
이런 말을 할 것 같은 얼굴.
그런 얼굴 다섯 개가 총 열 개의 눈으로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하..이?”
내 인사에 녀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검지로 끼고 있는 안경의 중앙부분을 손으로 올렸다.
“반갑다. 사스케군.”
그나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바가지 머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사륜안 치고는 눈에 특색이 없군.”
“....”
아무도.
단 한 명도.
아니.
전부.
한 명도 빠짐없이.
바가지 머리의 말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오타쿠 소굴에 들어온 듯하다.
+ + +
이 세계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내가 죽기 전 살았던 세상과 비교 했을 때 인기나 흥행 측면에서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더 관심도가 높은 수준이었다.
내가 기존 살았던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판타지라 인기가 많았다면,
이 세상에서는 반대로 이룰 수 있는 판타지라 인기가 많았다.
이 세상에서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편도 아니었다.
오타쿠에 대한 색안경을 쓴 사람이 조금 적은 정도랄까.
“오오오!!”
“개 멋있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오타쿠들.
나는 현재 그들에게 무용담을 풀듯이, 빌런의 습격 때 거인 악마를 처치한 상황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녀석들이 원했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내야 하는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을 하고 있기는 했다.
“얼굴 좀 치워.”
이 녀석들.
얼굴을 너무 부담스럽게 들이대고 있었다.
내 말에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을 실제로 영접한 것처럼 또랑또랑 한 눈 유지하며 진형을 살짝 뒤로 물렸다.
“아쿠마가 등장 하다니.”
“점점 세상이 흥미진진하게 변해가는군.”“후후.”
내 얘기가 끝나자 자기네들끼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타쿠의 속박에서 풀린 나는 그제야 방을 둘러봤다.
6인실이라 그런지 넓고 방도 4개였다.
외관과는 다르게 호텔처럼 깔끔한 인테리어에 있을 게 다 있어 보였다.
‘나쁘진 않네.’
“나 어느 방 쓰면 돼?”
내 말에 자기네들끼리 악마에 대해 토론회를 펼치던 타쿠들.
“저기 1인실 하나 있더라. 저기 너 써.”
“히어로는 고독한 법이지.”
독방이라니.
이 녀석들.
배려심이 넘치는데?
라고 생각하려다가 표정을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딴 소리 할까봐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아무래도 아무도 1인실을 원하지 않아 해서 남은 방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유야 상관없긴 했다.
‘1인실이면 나야 좋지.’
나는 캐리어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1인실이지만 화장실도 딸려 있었고, 나쁘지 않은 방이었다.
[다들 편한 복장으로 환복 후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한다.]
천장 구석에 설치 돼 있는 스피커에서 박태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따로 환복 할 필요가 없어서,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 + +
“자유롭게 배식해서 식사를 한 후, 7시에 리조트 뒤편에 있는 공터에 모일 수 있도록 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 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교에서 형성 된 무리끼리 자연스럽게 뭉치기 시작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를 시작으로 한설휘, 금석, 정시아가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앉았다.
“방 바꾸고 싶다.”
정시아가 계란말이를 깨작이며 말했다.
“왜?”
한설휘가 물었다.
“우리 방 애들 너무 조용해. 노잼이야.”
“우리 방 애들은 너무 시끄러운데.”
“방 바꿀래?”
“그래도 돼?”
“음..”
다른 애들도 대화의 화제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방 배정과 배정 된 구성원에 대한 내용을 반찬 삼아 떠들었다.
“황금 돌대가리. 너는 어때? 방 마음에 들어?”
머리카락에 하얀 털이 가닥가닥 붙어 있는 금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근데 머리카락에 뭐가 잔뜩 붙어 있는데?”
금석의 머리에서 하얀 털을 떼는 정시아.
나를 쳐다봤다.
“너는?”
그녀의 물음에 우리의 타쿠들을 떠 올렸다.
“나쁘진 않아.”
말이 많아서 그렇지 나쁜 녀석들 같아 보이진 않았다.
“좋겠다. 아~ 방 바꾸는 찬스 뭐 그런 거 없나.”
수학여행 온 학생이 으레 하는 생각이자 고민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고 싶으니까.
“근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나 본데?”
한설휘가 물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7시에 집합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냥 내일 일정에 대해 말해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런가. 아, 설휘야.”
“응?”
“여기 온천 유명하다는데? 식당으로 오는 길에 직원 분한테 물어보니까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온천 있대.”
“진짜?”
“응응.”
“나 온천 진짜 좋아하는데.”
“나도 나도.”
나도 좋아하는데 온천.
그런데 일정에 포함 돼 있는지가 미지수였다.
일본으로 오는 길에 채린에게 은근슬쩍 일정에 대해 물으니 자세히 아는 게 없었다.
단 한 가지.
우리가 아이템 박람회를 가는 날만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3일차.
지숙이 아이템 박람회를 터는 시기가 4일차니,
다행히 겹치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잠시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7시가 됐다.
+ + +
리조트의 뒤 편.
100여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공터가 있었고,
그 곳에 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식사들 맛있게 했나?”
“예.”
“예!!”
실제로 밥이 맛있었다.
반찬도 다양하고 신선하기도 하고.
박태산은 해가 거의 졌음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여전히 착용하고 있었다.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는 박태산.
“첫 날이니 만큼, 가벼운 게임 하나를 하고 취침 시간을 가질까 한다. 이의 있는 학생 있나?”
게임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환호소리.
“없습니다!!”
“전혀요!!”
“보물찾기.”
“네?”
“보물찾기를 할 예정이다.”
“....”
“....”
환호소리가 작아졌다.
“에이.. 그게 뭐예요, 교관님.”“애들이나 하는 거잖아요.”
“맞아.”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학생들을 무표정으로 쳐다보는 박태산.
“우선 룰 설명에 앞서 상품 설명을 먼저 하겠다.”
‘상품’이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수학여행 일정에 만물상의 아이템 박람회를 구경하는 일정이 있다. 만물상의 아이템을 구경하는 게 아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들에게 주고자 한다.”
“오오오?”
“오오!!”
“A등급에서 E등급까지, 등급이 적혀 있는 쪽지를 곳곳에 숨겨 놨다. 쪽지를 획득하면 쪽지로 아이템 박람회에서 등급에 맞는 아이템과 교환 할 수가 있다.”
“와!!”
“개 지리네!!”
이로써, 아이들의 동기부여는 확실하게 된 듯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온천 이용권이라던지 방 바꾸기라던지. 다용한 쪽지 역시 숨겨져 있으니까 잘 찾아볼 수 있도록.”
온천이라는 말에 여자 애들 쪽에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교관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말해라.”
“A등급 쪽지 몇 장 숨겨져 있어요?”
“비밀이다.”
“우우~”
“우우우.”
학생들의 야유소리.
개의치 않고 룰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박태산.
“룰은 간단하다. 내 뒤에 산이 보일 거다. 이동경로대로 이동하며 보물을 찾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면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야산.
올라가는 입구 양 쪽에 팻말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A팀-
-B팀-
“두 팀씩 동시 진행 할 예정이다. 제한 시간은 30분이다. 30분이 지나도록 산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쪽지를 여러 장 가졌다고 해도 전부 몰수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정해진 루트 외에는 쪽지가 없으니 괜히 딴 길로 갈 생각들 하지 말아라.”
“교관님! 두 팀씩 진행하면 먼저 하는 팀이 쪽지 다 가져가면 어떡해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된다. 팀을 발표하겠다.”
아이들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박태산의 입을 향했다.
참 이럴 때는 대동단결을 잘 하는 학생들이었다.
“A팀 1조. 101호실. 2조, 102호실. 3조, 103호실... 10조, 110호실. 이어서 B팀 1조. 201호실.”
“....”
방대로 그냥 팀이었다.
거기에 더해 A조는 남자 방.
B조는 여자 방이었고.
팀 발표에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진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애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아무래도 전교 석차가 높은 학생들이 속해 있는 방이 ‘희’ 쪽이었고,
전교 석차가 낮은 학생들이 속해 있는 방은 ‘비’쪽이었다.
“아, 그리고. 능력 사용은 일체 금한다.”
그렇게 말은 해도 전교 석차가 높을수록 신체 스텟이 높았으니.
희비가 바뀌진 않았다.
“기대 하지마.”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순히 신체 스텟만 놓고 보면 나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타쿠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팀전이기는 해도 개인전이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입장만 같이 할 뿐,
보물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였다.
굳이 협력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각 1조 팀은 앞에 보이는 팻말 앞에 서라.”
박태산의 말에 101호실 남자 애들과,
201호실 여자 애들이 팻말 앞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양 팀이 교차로에서 한 번 만나게 돼 있는데, 거기서 서로의 쪽지를 뺏으려고 싸우기만 해라. 그랬다가는 이번 수학여행 내내 혼자 수련회로 만들어주겠다.”
박태산의 말에 A팀 팻말 앞에 선 101호실 남자 애들이 피식 웃었다.
“에이 교관님. 여자 애들과 싸울 리가 있겠습니까? 쟤들이 쪽지 좀 달라고 저희한테 사정하는 거면 몰라도.”
발끈한 여자애들.
“우리가 왜 사정 해!! 사정은 너희들이 하는 짓이잖아!!”
‘..출발해라.“
박태산의 말에 출발하는 양 팀 1조들.
“나머지 인원은 자리에서 이탈하지 말고 앉아서 대기해라. 화장실이 급한 인원은 따로 말하고 다녀오도록 하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나를 따라 앉는 오타쿠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교관들은 심심찮게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런데 사신 길드원들이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분명히 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한 번씩 보였는데.
채린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채린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급하다면 급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고.
나는 채린이 눈에 보일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5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꺄아아악!!!”
“꺄아아아!!!”
여자 애들이 들어간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이 시바알!!”
“꺼져 이 시바아아!!”
남자 애들이 들어간 곳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많은 학생들은 직감했다.
단순한 보물찾기가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