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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71화 (71/196)

죄송합니다 ㅠㅠ71회

서이란의 노트

가느다란 불빛이 전부인 어두운 공간.

그곳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볼루션의 간부인 지숙. 라이언.

그리고 레드까지.

“어이어이!”

다짜고짜 레드에게 걸어가서 어깨를 건드는 시늉을 하는 라이언.

하지만 홀로그램이라, 실제로 레드의 어깨를 터치할 수는 없었다.

움찔.

하지만 몸을 살짝 틀며 반응하는 레드.

그 모습에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러운 손 치워라.”

레드의 말에 갸웃거리던 고개를 멈추고 씨익 웃는 라이언.

“난 또. 고귀하신 레드님이 쫄아버린 줄 알았잖아. 크흐흐.”

“....”

레드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이. 고귀하신 양반. 우리 할 얘기가 있잖아. 안 그래? 감히 내 오른팔을 죽여? 어엉?!”

그 대사에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레드의 눈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싸..싸우지 마세요.”

지숙이 레드와 라이언 사이에 끼어들었다.

“숙아. 넌 빠져 있어라. 어이 모기. 어디 한 번 말이라도 해보시지.”

빠르게 눈을 깜빡이던 레드.

가볍게 쉼 호흡과 함께 눈에 힘을 주며 라이언을 쳐다봤다.

“천박한 주둥이 좀 닫아라. 입 냄새 나니까.”

“..뭐?”

“아가리 닫으라고.”

“하..이 새끼. 점점 날이 갈수록 말 하는 게 다이나믹해지네?”

“....”

“이 참에 서열 확실하게 정해볼까? 엉?”

“천한 것.”

“이 새끼가!!”

레드와 라이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지숙.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여..여러분.. 싸우지 마요..”

지숙의 말은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

“오늘 바로 네가 있는 한국에 친히 이 몸이 행차할 테니까, 딱 기다리고..”

“라이언.”

어두운 공간에 등장하며 나긋한 말투로 라이언을 부르는 남자.

검은 천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제로였다.

그의 등장에 세 사람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아..아버지시여.”

“아버지.”

“아버지.”

한 명, 한 명씩 인자한 눈길로 바라본 제로.

“아버지시여.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무엇을 말이냐?”

라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에 가서 레드와 서열정리를 하고 싶습니다.”

“형제끼리 서열을 정해서 무엇 하느냐.”

“그..그건 그렇지만 레드의 태도가 너무도..”

“라이언.”

“예, 아버지시여.”

“네가 레드보다 탄생일이 더 빠르지 않느냐.”

“..예.”

“형으로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도록 하려무나.”

“예, 알겠습니다.”

제로의 말이 라이언에게는 ‘네가 더 서열이 높아’로 들렸는지,

라이언의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렸다.

“다들 건강해보여서 다행이구나.”

“예, 아버지시여.”

“예, 아버지.”

“예, 아버지.”

고개를 끄덕이는 제로.

“다들 하고 있는 일은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불렀다. 라이언부터 말해주겠느냐?”

제로의 호명에 가슴을 쫙 피는 라이언.

“예, 아버지시여! 능력자 100여명 정도를 내일 쯤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 라이언. 막내가 좋아하겠구나. 능력자의 질은 당연히 상급이겠지?”

“예. 최소 B급 이상의 능력자들도 엄선 했습니다.”

“좋다. 레드, 한국에서의 일은 잘 되고 있느냐?”

고개를 드는 레드.

“예, 아버지. 뿐만 아니라 막내에게 줄 아이템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

“역시 레드밖에 없구나. 근데, 레드야.”

“예, 아버지.”

레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제로.

“목에 못 보던 흉터가 생겼구나.”

“....”

레드는 봄이었지만 목까지 오는 니트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을 매만지는 레드.

“그..그것이..”

“내가 너의 몸으로는 실험을 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거라.”

“예.”

제로의 시선이 지숙에게 향했다.

고개를 숙이는 레드.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떨림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숙은 어제 하던 일을 마무리 했지 않느냐.”

“예. 아버지.”

“그래. 마음 같아서는 휴식 시간을 주고 싶지만, 곧바로 일본을 다녀 올 수 있겠느냐?”

“일..본?”

“조만간 일본에서 만물상의 아이템 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란다.”

“아..”

“만물상은 S급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지.”

거기까지 들은 지숙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구나.”

제로의 한 마디에 얼굴 표정이 행복사 하기 직전으로 변하는 지숙.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보여 줄 영상이 있단다.”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벽면에 있는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불이 들어온 화면에는 누군가의 전투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을 본 레드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거인 악마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남자의 모습.

그가 사용하는 기술은 찬란했고, 그가 행하는 행동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영상이 모두 끝나고.

“새로운 달빛 계승자가 등장한 것 같구나.”

제로가 영상을 끄며, 말했다.

“그럼 달빛 계승자가 두 명인 겁니까?”

라이언이 물었다.

“그건 아닌 것 같더구나. 레드.”

“예, 아버지.”

“한국에 머물고 있으니, 저 달빛 계승자를 유심히 관찰하도록 하거라.”

“..예.”

“아버지시여.”

“말 하거라, 라이언.”

“방금 화면상의 위력을 보니, 충분히 성장한 놈인 것 같은데. 데리고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녀석을 막내에게 먹일 수만 있다면..”

“라이언.”

“예.”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저 아이가 더 여물 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다. 잘 여문 과일이 맛이 더 좋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구나. 이만 해산하도록 하거라.”

제로의 해산 명령에 하나 둘씩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어두운 공간에서 벗어나, 평범한 거실에 모습을 드러낸 레드.

곧바로 바닥에 철푸덕 쓰려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옆으로 ‘특제 청심환’이라고 적혀 있는 약병이 여러 개 널브러져 있었다.

“대장!!”

바보 3인방이 주방에서 밥을 먹다가 레드에게.

아니, 박쥐에게 달려왔다.

“해..핸드폰.”

“예?”

“핸드폰 좀..”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덜덜 떨며, 주근깨에게 핸드폰을 받아 든 박쥐.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와. 책 진짜 많네요.”

“노인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란다. 끌끌.”

나는 현재 도서관이 아닌, 헌터 협회 건물의 최상층.

협회장실에 와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렴. 부디 네가 찾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협회장의 말이 없어도,

이미 그러는 중이었다.

한 쪽 벽면에 위치한 책장.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전부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도서나 고서로 가득했다.

“이렇게 학교의 영웅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구나.”

나는 뒤를 돌아 손자를 보듯, 흐뭇하게 나를 보고 있는 협회장을 쳐다봤다.

“영웅..까지야..”

“네 능력이 아니었다면 피해가 확산 됐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네가 훌륭하게 진압을 했지.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느냐?”

“....”

왜 이럴까.

노인네가 쑥스럽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서 책장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표창장이라도 수여하고 싶은데, 워낙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말이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지, 뭐냐. 끌끌.”

“우연.. 맞죠?”

“그럼, 우연이지~”

협회장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회장님.”

테이블에 차를 올린 비서가 협회장을 불렀다.

“응?”

“도서관은 왜 갑자기 뛰어가신 겁니까?”

“..끌끌.”

나는 피식 웃으며 책장의 제일 위에 칸부터 살폈다.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서이란’. 그리고 ‘달’.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뒤에서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능력에는 강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걸 알고 있느냐?”

안다.

누가보다 더.

그래서 세상을 구하려고 하고 있으니.

“뿐만 아니라, 강한 능력에는 이래저래 날 파리들이 꼬이기 마련이지.”

딱히 내 대답을 강요하지 않아, 나는 계속해서 책장을 훑으며 귀를 열었다.

“조심하거라. 그리고 자만하지 말거라. 두 가지만 유의하며, 앞으로 정진 하다보면 분명 큰 그릇이 되어 있을 게야.”

협회장의 말투는 친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

띠리리~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내 전화였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박쥐-

“저 잠시 전화 좀..”

“다녀 오거라.”

나는 협회장실을 나서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접니다. 박쥐.

“응.”

나는 박쥐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입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말을 쏟아내는 박쥐.

다 예상했던 일들이었다.

이 시기에 지숙이라는 레볼루션 간부가 일본에 파견 되는 것도.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제로의 눈에 띄었을 거라는 사실도.

하지만 바로 나를 어찌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하물며 나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레드였다.

“땡큐~”

전화를 끊었다.

별 일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제로는 나를 키워서 먹는 쪽을 택했다.

그 편이 ‘막내’에게 훨씬 득이 되니까.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으니까.

나는 협회장실로 들어갔다.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는 협회장.

“둘러보고 찾는 책이 있으면 마음대로 꺼내서 빌려가거라. 노인네는 휴식 시간이 끝나서 가 봐야겠구나.”

“네. 감사합니다.”

“끌끌. 혹시나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거든, 찾아 오거라.”

그 말을 남기고 협회장실을 나가는 협회장.

나는 책상 위에 있는 협회장의 명패를 쳐다봤다.

-이무신 협회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뽑자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협회장을 뽑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인물을 뽑으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협회장을 뽑을 것 같았다.

백발에 주름이 자글자글 했지만,

그의 전투력 수치는 100을 넘겼다.

100이라는 수치상의 최대치를 뛰어넘는 인물이 바로 협회장이었다.

세계 랭킹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니,

강함에 있어서는 말해봤자 입만 아픈 인물이었다.

레볼루션 간부와 1:1로 붙어도 안 밀리는 몇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협회장이었으니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안면을 틀 줄은 몰랐는데.‘

나는 홀로 남은 협회장실에서 마저 책장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오옷!!”

책 한 권을 빼내들었다.

-능력자의 탄생-

내가 관찰일지를 작성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책이었다.

나는 도로 집어넣었다.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독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책장의 거의 끝까지 훑었을 때, 낡고 낡은 서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표지도, 제목도.

하물며 저자의 이름도.

아무것도 없는 책이었다.

첫 장을 펼쳤다.

손으로 쓴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건 책이 아니다. 이건 나의 노트다.

다음 장을 펼쳤다.

-그래도 보고 싶으면 보던지.

다음 장을 펼쳤다.

-진짜 보려고?

“....”

말장난을 좋아하는 인간이 작성한 노트 같은데.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장을 펼쳤다.

-좋다. 보고 있는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 노트를 보는 값은 저승에서 받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이걸 네가 본다는 시점부터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겠다.

그 다음 문장을 확인 한 나는 유레카를 외치려다가 말았다.

-나는 달빛을 유랑하는 나그네. 서이란이라고 한다.

서이란.

드디어 찾았다.

나는 노트를 전체적으로 빠르게 훑었다.

장난기 넘치던 앞 장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글자 수가 빼곡했다.

내가 앞전에 읽은 ‘달이 뜨는 밤’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흡사했다.

일상적인 얘기를 담은 일기.

달이 뜨는 밤과 다른 점을 꼽자면 일상의 많은 부분이 생략 돼 있었고,

대신 그 자리를 훈련하는 과정에 대한 얘기들로 채우고 있었다.

“이건..”

내게 있어서 비법 노트나 다를 바 없는 노트였다.

나는 마지막 장에 적혀 있는 문장을 쳐다봤다.

-이 노트가 후대의 달빛 계승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암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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