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한 이 시대의 멋쟁이십니다.70회
그저 편-안.
"진도는 좀 나가고 있어?“
“감은 잡혀.”
역시 재능충이라는 건가.
식사 자리가 끝나고, 어른들은 집 안에 들어갔다.
남은 건 나와 서시우. 그리고 한설휘였다.
우리는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서시우를 쳐다봤다.
벌써 감이 잡힌다니.
서시우는 ‘어둠’ 능력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아온 만큼 능력에 대한 숙련도가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조언 몇 가지를 했는데 진척이 상당히 빠른 모양이었다.
“너희 이렇게 투 샷 오랜만에 본다.”
한설휘가 흐뭇하게 나와 서시우를 쳐다봤다.
“이렇게 세 명이서 있으니까 어릴 때 생각난다. 그치?”
“어릴 때 네가 우리 중에 대장이었잖아.”
“대장은 무슨.”
내 말에 기분 좋게 웃는 한설휘.
“나 가볼게.”
서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붙잡는 한설휘.
“훈련하러.”
“주말인데 조금 쉬어도 괜찮잖아. 안 그래, 서진아?”
나도 그러라고 하고 싶은데, 서시우의 표정이 꼭 쉬 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서시우는 커밍아웃 후, 홀가분해진 대신 조금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둠 능력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치가 낮기 때문에.
그리고.
“형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잖아.”
서시우는 자신의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 인지를 아주 잘 하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간다. 누나, 형. 나중에 봐.”
서시우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한테 인사를 하고 갈 모양이었다.
“여전히 시우는 단호하네. 조금 더 같이 추억 팔이 좀 하고 싶었는데.”
“나랑 하면 되지.”
원래라면 나도 훈련을 하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달 귀걸이를 습득 후.
[달빛력이 3 증가합니다.]
기분 좋은 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달빛력을 모두 소진했는데,
현재 달빛력은 어느새 250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리고 한설휘와의 신뢰도 점수가 88점이기도 하고.
‘90점.’
90점만 되면 한설휘의 능력을 모방이 아닌 복제를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오늘은 훈련을 쉴 생각이었다.
“너 아까 우리 할아버지한테 한 대사 쫌 많이 쪽팔렸어. 알아?”
“무슨 대사?”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는 한설휘.
최대한 남자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제 여자로 만들 생각입니다. 기필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엣헴.”
“뒤에 대사는 안 했던 것 같은데?”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는데?”
“....”
한설휘가 웃었다.
나 역시 웃었다.
“너 까먹은 거 아니지?”
“응?”
“중간고사랑 선발전 끝나면 나 도와주기로 했잖아.”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휘는 현재 성장 정체기였고, 내가 도움을 주기로 했었다.
“다음 주에 수학여행 안가면 다음 주에 바로 도와줄게.”
“아싸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한설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한설휘의 입술로 시선이 갔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뽀뽀를 한 전적이 있다 보니,
자연의 섭리처럼 시선이 움직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입술에 침을 바르는 한설휘.
“뭐하는 짓이야?”
“뭐가?”
“갑자기 입술에 침은 왜 발라?”
“혹시 모르잖아.”
“뭔 소리야?”
“촉촉하면 좋잖아.”
“아니 그러니까..아..”
나는 피식 웃었다.
“너 근데 왜 4강전에서 달빛 능력 사용 안 했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건데.
“봐 준 거야? 네 여자로 만들어야 하니까?”
“....”
뭔 소리 하는 건지 자꾸.
“너 자꾸 그런 소리하면 저항 받을 거야.”
“누구한테?”
“있어. 아무튼 저항 받는다고. 말 가려서 해.”
“..흥.”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생각 해 보니까 기숙사에 동물 세 마리를 방치하고 왔더라고.”
“아..그래도 똥오줌은 가리잖아.”
“그렇긴 한데, 개인 훈련도 할 겸 가보려고.”
더 있으려고 했더니 음란마귀가 계속 내 머릿속을 두드렸다.
서진의 나이는 신체 나이 중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였고,
생각을 안 해도 신체적으로 반응이 왔다.
“그럼 나도 가야겠다. 혼자서 할 것도 없고.”
우리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 + +
“안 바래다 줘도 되는데.”
“어차피 가는 길이잖아.”
우리는 걸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학교에서는 못했던,
학교와는 관련이 없는.
우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는 최대한 서진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거리를 걸으니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꽤. 많이 좋았다.
“다 왔다.”
한설휘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한설휘의 집은 우리 집 못지않게 대저택이었다.
“다음주에 보자.”
나는 인사를 하고 그대로 가려고 했다.
“서진아.”
나를 불러 세우는 한설휘.
끝내 이런 전개로 흘러가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전개가 흘러가면 나도 더 이상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응?”
“너 달빛 능력 사용하는 거 되게 멋있더라. 그리고..”
“그리고?”
“오늘도 되게.. 멋있어. 꺄!! 몰라 몰라!!”
한설휘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그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하는 전개가 아니구나.”
나는 아쉬움을 떨치며, 기숙사로 향했다.
+ + +
짧게 훈련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레이가 내 품에서 새근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금방 잠에 빠져 들었다.
+ + +
“음..여긴?”
어디선가 본 듯한 장소였다.
“아.”
기억났다.
내가 40년 동안 관찰일지를 작성 했던 모니터실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모니터실을 둘러봤다.
전혀 변한 게 없었다.
가만.
난 분명 본가에 갔다가 훈련을 마친 후 잠들었는데.
“꿈?”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입원 했을 때, 저승의 소녀가 나타났던 때처럼.
‘저승의 소녀가 날 소환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테이블에 있는 관찰 일지에 손을 뻗었다.
그 많던 관찰일지는 다 어디가고 한 권밖에 없었다.
‘2020-3~5.’
내가 서진에 빙의 한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을 작성한 관찰 일지였다.
나는 추억 속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관찰 일지를 들여다봤다.
-2020년 4월 12일.
첸의 집에 감사 인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
비스트 마스터가 출현 한 날이기도 했고.
관찰 일지를 보던 내 입이 점점 벌어졌다.
나는 빠르게 관찰 일지를 넘겼다.
-2020년 5월 6일.
학교 최강자 선발전 4강전이 있던 날이었다.
빌런의 습격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 날의 기록을 빠르게 훑었다.
“..하..하..”
관찰일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관찰일지를 작성한 년도는 2000년에서 2040년까지였다.
2010년도부터로 기억을 했다.
그 때부터 나는 그 당시 모니터로 보이는 인물들이나 상황에 대해 훈수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훈수의 열기는 과열 돼, 전체적인 판의 흐름에 대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혼자만의 훈수였고, 나 혼자만의 주저리였다.
그래서 관찰일지에 전지전능한 신에 빙의한 것처럼 적은 말들이 꽤나 많았다.
4월 12일.
비스트 마스터가 등장한 날.
그 날 나는 모니터로 보며, 세리나가 첸과 엮이는 시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관찰 일지에 적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적었다.
-아무리 생일 때 각성 한다지만, 영화 보면 조금 이른 타이밍에 잘만 각성하던데. 위기의 순간에 각성 할 수도 있는 거 아님? 그럼 개 꿀이잖슴.
5월 6일.
빌런의 습격이 있던 날.
-아니 진짜 답답하네. 서진은 언제까지 저렇게 무능력한 양아치로 냅둘거임? 나라면 처음부터 서진을 키워서 저 때 서시우랑 엮을 것 같은데. 동생을 구하는 멋진 형!! 그림 좋잖아. 레볼루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강해지는데, 대항마로 서씨 형제 키우면 될 것 같은데. 저대로 내버려두면 둘 사이는 더 멀어지고 영영 바이바이임. 아~ 진짜 내가 서진에 빙의하고 싶네. 진짜로. 개 답답한 양아치 새끼.
그리고 이런 말도 적었다.
-아 그냥 답도 없는 거 빌런이라도 강하게 해서 다 엎는 게 나을 듯. 음.. 예를 들어서 진, 반, 곤. 저 빌런들한테 악마의 열매를 주는 거지. 아.. 이건 쫌 개연성 없으려나. 아무튼 강한 자극이 강한 성장을 부른다. 이런 거지.
“시발..”
“또 욕하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저승의 소녀가 테이블 위에 나타나서,
철푸덕 주저앉았다.
“네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있는데. 왜 자꾸 욕해?”
“....”
“너 때문에 나만 욕 엄청나게 먹잖아. 서럽게, 진짜. 욕먹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너.”
나는 허탈한 얼굴로 소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너 그리고 왜 자꾸 하늘 보면서 욕해? 내가 안 듣는 줄 알지? 다 들어 다~ 욕 하면 다 듣는다고 내가!! 아 쏘리. 조금 흥분 했네.”
그간 일어난 변수가 소녀가 내게 선사한 빅 엿이 아니라,
내가 초래한 결과였다니.
“빅 여엇? 아무튼 지금 딱 정해.”
“뭐를..요?”
“계속 네가 적은 훈수처럼 해줄까, 아니면 내버려 둬줄까.”
당연히.
“내버려 둬 주시면..”
“그래~그럼.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감사합니다.”
“너 이거 가지고 또 나중에 하늘 보고 욕하기만 해, 진짜. 그 땐 바로 지옥이야, 지옥. 알겠어?”
“옙.”
모니터 세상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잘 입력이 돼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훈수를 뒀는지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질 않았다.
워낙 헛소리를 많이 했어야지.
그런 의미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변수가 확 사라졌다.
막힌 장이 뚫린 느낌이 들었다.
“네가 바꾼 현재로 인해 미래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로 인한 변수는 내가 어찌 못해주니까, 너 알아서 하고.”
“네.”
“뭐해?”
“네?”
“안 꺼지고.”
시야가 갑자기 어둡게 변했다.
+ + +
“허어억!!”
나는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크르릉!!
내 품에 안겨있던 레이가 눈을 번쩍 뜨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숨을 안정시키며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좋은 꿈을 꿔서 그래.”
크르릉.
레이가 눈을 비비며 다시 내 품에 파고들었다.
“아..”
소녀가 말한 것처럼 내가 바꾼 현재로 인해 파생되는 변수는 내가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비스트 마스터나 빌런의 습격처럼 전혀 예상 변수가 불쑥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편-안.
그 자체.
나는 도로 누웠다.
오늘은 꿀잠이다.
+ + +
일어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레이와 뚜뚜.
그리고 금석을 산책시켰다.
“거기 서라!!”
산책 시간은 거의 술래잡기나 다름없었다.
레이와 뚜뚜가 도망가고 금석이 잡으러 다녔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마음이 편해도 되는 것인지.
“야!! 석아!!”
멀어져가는 금석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금석.
“애들 산책 시키고 들어가!! 나 헌터 도서관 좀 갔다 올게!!”
“오키!!”
오랜만에 편안한 여유를 만끽할 장소로 출발 했다.
+ + +
헌터 도서관은 헌터 협회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헌터 도서관.
전국에 있는 도서관 중 가장 큰 도서관 규모를 자랑했다.
헌터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도 많은 탓에 휴일이 되면 가장 붐비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총 10층 건물이었고, 나는 헌터 관련 서적이 있는 5층부터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달이 뜨는 밤의 저자.
‘서이란.’
그가 펴낸 책을 찾는 게 목적이었다.
그가 적은 말들이나 ‘달이 뜨는 밤’의 마무리를 봤을 때는 달이 뜨는 밤과 비슷한 내용이 몇 권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층.
검색대 앞에 섰다.
작가 이름에 ‘서이란’이라고 치고 검색했다.
-0개가 검색 됐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이번에는 작품 제목으로 변경해 ‘달’이라고 쳤다.
-검색 결과 1400권의 책이 검색 됐습니다.-
1400권의 책 제목을 일일이 훑었다.
뭔가 달빛 계승자와 관련 돼 있는 제목만 뽑으니 100권 정도로 추려졌다.
사실 훈수 포인트 상점의 ‘정보’ 방에서 검색을 해보려고 했다.
헌데 요구 포인트가 무려.
5000 포인트.
그래서 일단 노가다를 우선 해보기로 했다.
차근차근 한 권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권을 모조리 훑었을 때, 나는 실망했다.
서이란이라는 저자가 쓴 책이 한 권도 없었고,
달빛 계승자와 관련 된 책도 없었다.
‘어쩔 수 없나.’
포인트가 아깝긴 하지만 5000 포인트나 요구한다는 건 그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100권 째 책을 덮으며 원위치에 꽂아 넣었다.
포인트 상점을 열기 위해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책 참 재밌구만 그래. 끌끌.”
“....”
나이 지긋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책 한 권을 들고 웃고 있었다.
근데 얼굴이..
‘낯이 익은데?’
“한 번 자네도 봐 볼 텐가?”
책을 내리며 말을 하는 할아버지.
어린 아이도, 외국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 할아버지였다.
‘헌터 협회장이 여긴 왜..’
나는 눈을 깜빡이며 협회장을 쳐다봤다.
[작품후기]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도 투데이 베스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다보니,
댓글 역시 어제 오늘 연이어 많이 달리고 있습니다.
글에 관련한 지적이나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권리이자,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니까요.
하지만 글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악의적인 댓글이나,
제가 보고 심하다고 생각 되는 댓글은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멘탈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