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69회
블랙 카드
서진에게 빙의한 첫 날.
그리고 오늘.
두 번째로 본가에 방문 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나는 본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마당의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피로연 장소에 온 줄 알았다.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등하며, 레스토랑처럼 고급스러운 야외 테이블까지.
뿐만 아니라 전문 쉐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외에 설치 된 간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빵빠레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악사나 뮤지션은 안 보였다.
“아들!!”
쉐프 옆에서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던 어머니가 내게 달려왔다.
“어머니. 이게 다 뭐..죠?”
“뭐긴~”
어머니가 다정하게 내 팔짱을 꼈다.
“우리 장남 전교 1등 했잖아?”
내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는 어머니.
표정이 기특해서 죽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을 아끼고 나를 테이블 쪽으로 데리고 가는 어머니.
“앉아 있어. 아버지랑 시우는 금방 나올 거야. 두 사람, 지금 집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할 말 있다고 이 어미만 쏙 빼놓는 거 있지?”
“..네.”
나는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샐러드 류의 찬 음식이 세팅 돼 있었다.
‘아버지랑 시우가 무슨 얘기 중일까?’
시우가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나라는 대체자.
아니, 나라는 진짜 달빛 계승자로 인해 아버지의 충격은 크긴 했겠지만, 낙심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더 좋아하지 않을까?
‘모르겠네.’
의자를 까딱까딱 거리고 있을 때, 쉐프들에게 갔던 어머니가 다급하게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 맞다, 아들. 들어가서 옷 좀 갈아입어.”
“옷이요?”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쳐다봤다.
무난한 청바지에 검정색 티를 입고 있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데 여기서 더 꾸밀 필요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머니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단아하고 치마 길이가 긴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화장도 신경 써서 한 흔적이 보였다.
“응. 안에 네가 입을 옷 준비해놨어.”
“....”
도대체 분위기를 어디까지 낼 셈 인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싫다고 투정 부릴 이유가 없었다.
귀찮긴 하지만 순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련님. 이 쪽으로 오시지요.”
주차장을 통해 들어왔는지,
이실장이 드레스룸으로 안내했다.
“이실장.”
“예.”
“이건 쫌 과한 것 같지 않아?”
드레스룸에는 여러 벌의 턱시도가 준비 돼 있었다.
“사모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도련님, 이 색깔 어떠십니까?”
이실장이 검은색 턱시도를 들어 내 앞에 가져다 댔다.
“..그래. 이걸로 하자.”
“아니면 이 색깔은..”
다른 턱시도를 집으려는 이실장의 손을 잡았다.
“이실장. 이실장도 그러면 나 너무 피곤해져.”
“..알겠습니다. 갈아입으실 때 동안 나가있겠습니다.”
“그래.”
내 생에 턱시도를 입어 볼 날이 올 줄이야.
나는 턱시도를 입기 시작했다.
+ + +
나비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드레스룸을 나섰다.
“도련님. 잠시만요.”
나를 데리고 다시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이실장.
손에 왁스를 바르고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됐습니다.”
거울로 비치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이실장.
나는 거울을 쳐다봤다.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잘생긴 청년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초반에 비해 살이 쪄서인지, 말랐다는 느낌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한 명의 귀공자가 따로 없었다.
서진의 능력 중 얼굴도 능력이라면 하나의 능력인데 너무 막 쓰고 다니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여자들을 홀리고 다닐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꾸미는 건 아마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왜? 같이 저녁 먹지.”
“회사에 아직 처리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식사 자리인데 제가 끼면 쓰나요. 하하.”
“....”
빙의 전 서진은 가족들보다도 이실장을 더 가족이라 생각했다.
빙의 후 나 역시 아버지나 어머니 보다는 이실장이 더 정감이 가는 편이었다.
부모님 보다 접촉한 시간이 많기도 했고,
여러모로 확실한 나만의 조력자였다.
이실장은.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가는 뒷문으로 걸어가는 이실장.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정문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곧바로 코를 찔러왔다.
“....”
코를 킁킁거리며 야외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아버지. 어머니. 서시우.
세 사람이 한 쪽에 착석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한설휘와 한태문이 착석해 있었다.
“아들!!”
어머니가 손을 들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단순히 분위기를 내려고 턱시도를 입으라고 한 줄 알았더니.
나는 걸어가면서 한설휘를 쳐다봤다.
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묶고,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희미하지만 화장도 한 것 같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한설휘.
학교에서는 워낙 실기 수업이 많다보니 츄리닝이나 간단한 복장을 고수하던 한설휘였다.
하지만 이렇게 풀 세팅을 한 한설휘를 보니, 역시.
‘존나게 이쁘네.’
나는 서시우와 어머니 사이, 빈자리에 앉으며 어머니를 쳐다봤다.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잖아요.”
“응? 아..그게..”
어머니가 미소를 짓다가 내 눈치를 봤다.
서진은 원래 이렇게 다 같이 하는 식사 자리를 혐오했다.
그래서 내 말에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눈치 보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본 거였다.
나는 추가로 몇 마디를 덧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한태문이 더 빨랐다.
“설휘한테 다 같이 식사해도 괜찮다고 했다면서? 욘석아, 그리고 할애비를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안녕하세요.”
한설휘한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있긴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태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자자, 음식 다 식겠네. 설휘야 많이 먹어.”
“네.”
어머니의 말에 설휘가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앞에 놓여있는 스테이크를 썰어서 한 입 먹었다.
입 안에 가득 풍기는 풍미와 고기의 육즙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입에는 좀 맞으신지요?”
“훌륭하구나.”
식사 자리의 대화는 어머니와 한태문이 이끌었고, 가끔 아버지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에 반해 나나, 시우, 설휘는 조용히 식사를 했다.
지잉.
샐러드를 먹고 있을 때 안 쪽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한설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나야.’
“....”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확인했다.
-미안. 많이 불편해?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아니, 전혀. 스테이크 맛있어.(함박웃음 이모티콘)
내 답장을 확인 한 한설휘.
내가 보낸 이모티콘처럼 웃으며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형. 나 샐러드 좀.”
“엉.”
서시우의 접시를 받아들어, 내 앞에 있는 샐러드를 푸고 있을 때 어른들의 시선이 나와 시우에게 동시에 꽂혔다.
“화해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안 그래요, 여보?”
“크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시우에게 샐러드 접시를 건넸다.
나처럼 어색하게 웃고 있는 서시우.
나는 어른들이 원하는 연출을 조금 더 해주기로 했다.
세상 다정한 얼굴로 서시우에게 말했다.
“동생아. 꼭꼭 씹어 먹으렴.”
“어..응.”
어색하게 화답하는 서시우.
우리의 관계는 회복 된 게 분명했다.
다만 남처럼 지낸 시간이 길어, 어색함을 회복하는 데 추가적으로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내 말에 토마토를 오물오물 씹는 서시우.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드디어 서시우에게도 훈수를 둘 수 있게 됐다.
“아 참. 너희 수학여행은 어떻게 됐어?”
어머니의 말에 한설휘와 나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본래 중간고사. 그리고 최강자 선발전.
모든 게 끝이나면 휴식 차원에서 수학여행이 예정 돼 있었다.
바로 다음주에.
하지만 빌런의 습격 여파로 이 시국에 가야하냐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아직 미정이었다.
이번 주 주말까지 가게 되면 학생들에게 문자로 공지를 한다고 하니.
“주말 돼 봐야 해요.”
“왜?”
“학부모들이 학교에서도 그런 일 터졌는데, 수학여행 가서 또 터지지 말라는 법이 있냐. 라는 말들이 많더라고요.”
“음..나는 갔으면 하는데.”
어머니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전생의 사례를 떠 올렸다.
전생에서는 빌런의 습격 때 피해자가 많았다.
사망자도 많았고.
그래서 무기한 연기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해가 전생에 비해서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중상자 10명에 사망자 1명.
나만 전생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비교였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혹시나 수학여행을 예정대로 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가는 편이 여러모로 내게는 이득이었다.
세계적인 랭커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얼추 식사가 전부 끝이 나자,
어머니가 차를 내왔다.
식사의 메인은 끝났지만,
대화의 메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처음에 설휘가 서진이 변한 것 같다고 했을 때는 긴가민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정말로 변한 것 같구나.”
한태문의 말에 어머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설휘랑 연애 사업은 잘 되가느냐?”
“할아버지!!”
“허허.”
한설휘가 발끈하자 한태문이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설휘한테 듣기로는 대놓고 널 내 여자로 만들겠다고 선포..”
한설휘 겉으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한태문이 입을 다물었다.
“예. 제 여자로 만들 생각입니다.”
“허허!!”
“어머, 얘가.”
내 화끈한 대답에 어른들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붉은 아지랑이가 사라지며, 대신 얼굴이 붉게 물든 한설휘.
“네 아버지 닮아서 걱정했더니. 호호.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의 말에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힐끔 쳐다봤다.
그 후로 한동안 잔잔한 대화가 오고갔다.
그러다가 한태문이 메인 주제의 포문을 열었다.
“선발전 영상을 봤다.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더구나.”
“그러니까요. 저도 그거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요.”
“고생이 많았다, 서진아. 뿐만 아니라 시우랑 설휘도.”
나는 잠자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달빛 능력은 언제 개화한 것이냐?”
한태문이 돌직구를 날렸다.
달빛 능력은 따로 개화가 필요한 능력이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능력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인지하는데 오래 걸릴 뿐이지.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구구절절 말하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대답했다.
“얼마 안 됐습니다. 입학 후에 개화 했습니다.”
“흐음..그렇구나. 아무래도 능력 개화한 게, 네 성격이나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친 게로구나.”
“..예.”
“듣기로는 카피 능력도 있다고 들었는데.”
“..달빛 능력 중 하나입니다.”
“호오. 그것 참 신통방통한 능력일세.”
다행히 잘 넘어간 듯싶었다.
한태문의 다음 타겟은 서시우인 듯, 서시우를 쳐다보는 한태문.
“그간 얼마나 혼자서 힘들었을 꼬. 괜찮은 게냐?”
“예.”
“녀석. 자네는 좋겠네.”
한태문이 아버지를 쳐다봤다.
“한 시대에 달빛 능력자와 어둠 능력자가 동시에 탄생하다니. 그것도 한 집안에서. 겹경사가 아닌가?”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 선조의 말씀 중 그런 말씀도 있지 않은가. 두 능력자가 만나게 되면 천지가 개벽 할 거라고. 모르는가?”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
“그래? 허허.”
나는 슬쩍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았어.’
이대로 분위기가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카드를 요구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아버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내 부름에 뒤를 돌아 본 아버지.
표정이 아까와는 달리 무표정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해라.”
“저 카드 좀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
“아니면 용돈이라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아버지.
“허튼 데 쓰면 바로 정지시킬 줄 알아라.”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블랙 카드?!’
무한도의 프리미엄 카드.
“아이템은 사도되는 거죠, 아버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혹시 얼마까지..”
“S급 아이템을 사도된다.”
그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