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가 아이템이라고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68회
D-day
빌런의 습격 이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은 뜨거웠다.
다른 사건들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려고 했지만,
한 가지.
악마의 등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느니, 마느니 말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여파로 학교도 당분간 휴교를 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최강자 선발전’은 무기한 연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으로 인해 한설휘와 정시아의 결승전도,
서시우의 결승전도 보질 못하게 됐다.
당사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문제는 토레스에게 아이템을 받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로 자리 잡았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걸로 보아, 그 또한 무기한 연기가 된 것일까?
나는 교실에 앉아서 턱을 괴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곧 수업 시작이었다.
“....”
그런데 창가에 달라붙어 있는 여학생들이 갈 생각을 안했다.
“야!! 니네 반으로 안 꺼지냐!!”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정시아.
“별 꼴이야.”
“그러게.”
자기네들 반으로 가는 여학생들.
나를 째려보는 정시아.
“아주 좋으시겠어요. 인기남씨.”
한 마디 톡 쏘고 자리에 앉았다.
“....”
서시우가 달빛 능력자가 아니라고 커밍아웃한 사실과,
내가 사실은 진짜 달빛 계승자였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로 인해, 내 지지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그렇다고 서시우의 주가가 하락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진중하던 모습에서 탈피 해 아이들과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능력을 이제 대놓고 사용할 수 있으니 능력치 면에서 더 올라갔다고 봐야 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먼저 다가와 내게 인사를 했다.
아주 고무적이다 못해 탄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저승의 소녀가 한 짓은 도리어 내게 독이 아닌 득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성과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초강수(强手)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가 3000 포인트 적립 됩니다.]
며칠 전 메시지가 울렸었다.
이로써, 훈수 포인트는 현재까지 총 8000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당분간은 안 쓰고 모을 생각이었다.
나는 앞을 쳐다봤다.
한설휘가 아까부터 계속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저랬다.
‘왜?’ 라고 물어봐도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더는 안 물어봤다.
저번 주에 분명 한설휘와의 신뢰도 점수는 82점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 88점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그래서 딱히 이상해서 쳐다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남자는 능력인가.’
82점에서 88점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달빛 계승자라고 오픈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몬스터학개론 교관이 교실로 들어섰다.
나는 졸고 있는 금석의 어깨를 쳤다.
비몽사몽한 얼굴로 눈을 뜨는 금석.
이 녀석은 내가 달빛 계승자든 뭐든 딱히 상관이 없어 보였다.
“오늘 수업은 악마에 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오오!!”
“좋아요!!”
악마는 원래 언급만 살짝 하고 넘어가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요즘 뜨거운 감자인 만큼 한 시간 통째로 편성을 한 모양.
“자, 우선 악마라는 종족이 언제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아는 학생 있나?”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40년 전입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언제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지도 알고 있나?”
“예! 그로부터 10년 후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악마는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금석이 다시 졸기 시작했다.
나는 볼펜으로 금석의 어깨를 찔렀다.
보통은 금석이 수업 시간에 졸아도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악마 관련 얘기는 들어주면 좋은 얘기였다.
눈을 비비며 다시 눈을 뜬 금석.
“약 10년. 악마가 이 세상에서 활동한 시기다. 그 시기를 능력자 사회의 ‘암흑기’라고 말하곤 하지. 너무 많은 능력자들이 죽었거든. 그런데 돌연 악마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이유 아는 사람 있나?”
암흑기.
‘레볼루션 프로젝트’가 거행 되는 발단이었다.
교관의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숙였다.
악마들이 모습을 감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 밖에 없었다.
“교관도 모른다.”
“에이~”
극소수에 몬스터학개론 교관은 포함 돼 있지 않았다.
교관의 말에 학생들이 김빠진 소리를 냈다.
손뼉을 한 번 치는 교관.
“하지만 다양한 추측들이 나왔고, 교관은 그 중 가장 가능성 높은 추측은 빛의 여왕이 홀연히 자취를 감춘 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빛의 여왕이 자취를 감춘 시기와 암흑기가 끝난 시기가 겹치거든.”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교관을 쳐다봤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빛의 여왕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질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오오!!”
흥미롭던 생각이 팍 하고 식었다.
교관의 발상은 일리는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랜만에 집에.. 아니지. 두 번째네.’
나는 금방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 + +
“교장실로?”
“응. 너랑 나랑 시아랑. 이렇게 세 명 오라는데?”
수업이 전부 끝이 났다.
내일은 주말이었고, 주말을 맞이하기 전 본가에서의 저녁 식사를 하기로 예정 돼 있었다.
그래서 이실장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려던 찰나, 한설휘가 나를 붙잡았다.
‘교장이 무슨 일로?’
딱히 교장이 우리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석이는?”
“따로 말씀 없던데?”
“음. 석아 같이 가자.”
금석도 같이 가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교실을 나섰다.
교장실로 가던 도중 한설휘가 말했다.
“너 근데 한동안 악세사리 안하는 것 같더니.”
그녀의 말처럼 서진에게 빙의 후 착용하던 악세사리를 전부 뺐다.
그런데 지금은 속성 반지.
그리고 서시우에게 받은 달 귀걸이까지.
제법 악세사리가 많아진 상태였다.
[달빛력이 1 증가합니다.]
때 마침 달 귀걸이의 효과 소리가 울렸다.
창조 그룹의 가보로 내려온 달 귀걸이.
이건 단순한 물건이 아닌, 달빛 계승자를 위한 아이템이었다.
수련을 따로 하지 않아도,
시간이 낮 시간이어도 달빛력이 알아서 조금씩 올랐다.
밤에 수련을 해보니 달이 뜬 밤에는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달빛력이 올랐다.
달빛력 증가에 아주 효과적인 아이템이었다.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전생에서는 서시우가 죽기 전까지 달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달 귀걸이의 효과를 보고 횡재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 속성 관련 아이템은 희귀하다 못해, 내가 알고 있는 것도 5가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로 하나를 얻은 셈이니.
“전부 아이템 아니야?”
정시아가 한 마디 했다.
“응.”
내 대답에 두 여자가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존재했지만, 악세사리류 아이템은 드문 편이었다.
드물기도 드물었지만 성능과 효과가 좋은 아이템은 더 드물었다.
대장장이 관련 능력자는 이 세상에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정밀한 세공을 요하는 세공사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나마 있는 세공사도 능력이 변변찮았다.
똑똑.
우리는 어느새 교장실 앞에 도착했고,
나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
“....”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목소리는 교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토레스 할아버지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정시아의 말에 한설휘가 동의했다.
교장실 문을 열었다.
교장이 앉아 있어야 할 곳에 토레스가 앉아 있었고,
교장은 손님을 응대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서오너라.”
교장이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 놈은 뭐냐!!”
토레스가 금석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화통을 삶아 드셨나!!”
“뭐..뭣이?!”
금석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토레스.
앉으나 서나 키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같이 하교하던 길이라 같이 왔는데.”
“누가 물어 봤느냐!!”
“....”
내 말에 자리에 앉으며 대꾸하는 토레스.
저게 원래 토레스의 말투였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정시아의 눈썹이 꿈틀꿈틀 거렸다.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교장이 우리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다들 차 한 잔씩 내줄까?”
교장의 말에 우리는 군말 없이 자리에 착석 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차를 내 온 교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예.”
나는 짧게 대답을 하며 토레스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 자리로 우리를 소환한 주체가 교장이 아닌 토레스 같았다.
토레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 계승자라는 걸 감쪽같이 숨겼더구나.”
“....”
“네 아비도 모르고 있더구나. 어쨌든 아주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달빛 계승자로서. 널 보고 토레스 영감이 감탄해서 턱을 벌리고..”
“어허.”
토레스가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교장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쓸 데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저희들을 부른 이유가 뭔가요?”
귀족가의 예의 바른 자제처럼 차를 한 모금 마신 한설휘가 교장을 보며 물었다.
한설휘의 시선에 바통 터치 하듯, 토레스를 쳐다보는 교장.
“엣헴!!”
토레스가 헛기침을 세게 한 번 했다.
우리는 토레스를 쳐다봤다.
“모두 4강전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않았느냐. 한 놈 빼고.”
“이..이..”
한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금석의 허벅지를 손으로 눌렀다.
“하지만 선발전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너희들은 이 몸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게 됐지. 암, 그렇고말고.”
“....”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어루만지는 토레스.
시선이 한 명, 한 명을 훑다가 마지막으로 내게 꽂혔다.
“마음에 들었다. 너. 그리고 너. 너도.”
역순으로 삿대질을 하는 토레스.
그 과정에서 금석에게 삿대질을 하려다가 손을 멈칫한 토레스.
“그래, 기분이다. 싸가지 없는 너도. 보니깐, 투지 하나는 인정해줄만 하더구나.”
“크하하!! 영감이 보는 눈이 있으시구만!!”
“..뭣이?”
나는 기분 좋게 웃는 금석의 무릎을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딸꾹질을 멈추듯이 웃음을 멈추는 금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를 들이켰다.
“그 말씀은 저희의 아이템을 만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엇나가려는 화제를 도로 잡아왔다.
내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토레스.
못 마땅한 얼굴로 금석을 보다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원래는 아이템 몇 개 던져주고 말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음에 들었다.”
시선을 내게 고정하는 토레스.
영감의 눈이 나를 뚫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각자 원하는 아이템을 말해 보거라.”
정시아와 한설휘가 입을 벌렸다.
토레스가 만든 아이템을 가질 수 있는 기회.
그것도 토레스가 맞춤 제작을 해준다니.
이건 능력자로서 영광을 넘어선 가문의 영광 수준이었다.
정시아와 한설휘가 각자 원하는 아이템을 말했다.
“음. 그 정도는 하루면 뚝딱하고 만들지.”
토레스의 호언장담에 두 여자가 열렬한 신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름이 금석이라고 했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허허.”
금석의 단출한 대답에 토레스가 할 말을 잃었는지 볼을 긁었다.
“그래. 너는 내가 알아서 만들어주마.”
아이들이 대답을 할 동안 나는 내게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인지 열심히 생각을 했고, 여러 개의 아이템 중 하나를 추렸다.
아무래도 내게 필요한 아이템은..
“너도.”
“네?”
“너도 내가 알아서 만들어주마.”
“....”
기껏 생각했는데.
“기대해도 좋을 거다, 애송이. 내가 달빛 계승자의 아이템을 만드는 날이 올 줄이야. 크하하하!!”
저렇게 말하니 기대가 되긴 한다.
세계에 드워프를 제외하고는 범접할 자가 없다고 평가 되는 대장장이 토레스.
그가 내 전용 아이템을 만들어준다니.
생각을 거듭 해보니.
‘개 좋은데?’
[작품후기]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덕분에 투데이 베스트에 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1위를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