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67화 (67/196)

중급 거인의 발이 나를 덮쳤다.67회

D-day

근거는 몇 가지가 있었다.

버프로 상승한 스텟.

그로인해 몸빵이 좋아졌다는 것.

금석의 ‘자기 치유’ 능력.

그로인해 설사 죽을 고비를 맞을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마지막으로 내게는 속성 반지가 있었다.

‘암흑 속성’에 대한 저항력 30%.

중급 거인 악마의 단순한 물리적 공격이라 할지라도 암흑 데미지가 추가로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내성이 30%가 있는 셈이었다.

이런저런 근거로 서시우를 대신해,

거인 악마의 공격을 받으려고 한 건데.

“크으윽..서..서진. 빨리 빠져나가라!!”

“....”

박태산이 끼어들었다.

강철로 변한 몸으로 거인 악마의 발을 지탱하고 있는 박태산.

그 모습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를 연상케 했다.

아틀라스가 지구를 받치듯, 박태산은 거인 악마의 발을 양 손과 양 어깨로 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딛고 있는 바닥이 늪 지대였고,

박태산의 몸은 점점 늪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내 몸 역시.

“서진!!”

아무리 그렇게 나를 다급하게 불러도 소용이 없는 걸 어떡한담.

“교관님. 제 발 좀 보세요.”

내 말에 내 발 부근을 쳐다보는 박태산.

“으아아!!”

지금 괜히 구하러 왔다는 후회하는 중인 것 같은데.

이미 후회해도 늦었다.

“교관님과 함께 라서 외롭지는 않네요.”

“으아아아!!!”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내 뱉는 박태산.

말은 장난스럽게 내 뱉었어도, 나는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빠르게 찾으려고 애 쓰고 있었다.

“서진씨!!”

하반신이 거의 늪에 빨려 들어갔을 때,

채린이 거인 악마의 그늘 밖에서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쳐다봤다.

“이거 잡으세요!!”

내게 하얀 실을 던지는 채린.

채린은 거미 능력자였고, 그녀가 던진 건 거미줄이었다.

거미줄을 잡자마자 거미줄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요!!”

나를 고치로 만든 거미줄.

“당겨!!”

채린의 한 마디에 내 몸이 늪에서 쑥 빠졌다.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거미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채린과 사신 길드의 간부들.

“괜찮아요?”

고치를 풀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 채린.

그녀 덕분에 나는 괜찮고, 무사했다.

하지만 박태산은 여전히 거인 악마의 발아래에 놓여 있었다.

내 표정을 읽은 채린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을 거예요. 탱킹력으로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놈이니까. 그보다 서진씨.”

채린이 거인 악마를 올려다봤다.

거인 악마는 타겟을 잃은 채, 박태산과 힘겨루기에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다.

점점 인간 시절의 기억을 잃고 있는 탓에,

목적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저 녀석도 예언에 등장했었나요?”

“....”

그럴 리가.

그랬다면 미리 채린에게 사제를 배치해 달라고 언질을 했을 터였다.

“아닌가 보군요..”

“예.”

“지수한테 사제를 불러달라고 부탁 했으니까 조금 있으면 사제들이 도착할 거예요.”

나도 얼른 사제들이 와서 얼른 저 악마를 눈앞에서 치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시선이 박태산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천천히 서시우가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서시우는 나한테 맞은 복부를 움켜잡고 박수향과 함께 경기장 구석에 있었다.

서시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거인 악마.

박태산을 짓누르던 발을 치우며 서시우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직까지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 같았다.

“서시우!!”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서시우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서시우는 굳이 내가 부르지 않아도 박수향과 함께 움직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새벽의 연화.”

박수향이 능력을 사용했다.

꽃잎이 허공에 흩날렸다.

흩날리던 꽃잎은 곧바로 박수향과 서시우의 몸을 감쌌다.

저건 서시우와의 경기에서 사용했던 박수향의 이동 기술이었다.

거인 악마가 서시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육중한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두 사람을 감싼 꽃잎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박수향.. 박수향!!”

나는 서시우가 아닌 박수향의 이름을 외쳤다.

박수향의 ‘새벽의 연화’는 한 번에 한 명밖에 이동시킬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꼼짝없이 거인 악마의 손에 노출이 된다는 뜻인데.

박수향의 선택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채린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 꽃잎.

그곳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서시우.

박수향은 여전히 제 자리였다.

그녀는 거인 악마의 손을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직감했는지,

멋쩍은 미소로 나를 쳐다봤다.

“임무 완수 했습니다!! 아주버님!!”

내가 언제 대신 죽으라고 했다고.

대신 죽을 생각을 하는 것인지.

“서시우!! 녹턴을 사용해라!! 빨리!!”

나는 다급하게 외치며 거인 악마의 눈 쪽으로 한설휘의 능력을 사용했다.

“소각!! 장작 태우기!!”

화염포가 거인 악마의 눈에 적중했다.

녀석이 잠깐 주춤거렸다.

하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서시우!!”

늦는다.

이대로는 박수향을 구할 수가 없었다.

서시우는 강한 녀석이었다.

그만큼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무력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누구 보다 강한 서시우였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 크게 다가온 듯 했다.

압도적인 강함이 녀석에게 도리어 압도적인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서는.

“달빛 제 2초식. 월광쇄도(月光殺到)”

나는 지면을 박찼다.

슬슬 신지수의 버프가 풀리고 있었고,

달의 축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재 달빛 초식을 더 이상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시나리오에는 박수향의 죽음이 포함 돼 있지 않았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박수향 앞에 당도했고,

그녀를 안고 곧바로 거인 악마의 주먹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아주..버님?”

“크윽..”

나는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를 누가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다 죽여 버리겠다!!]

몇 번이고 타겟을 놓친 거인 악마.

광포하게 애꿎은 지면을 밟아댔다.

“서시우!!”

나는 재차 서시우를 부르며 녀석을 쳐다봤다.

점점 표정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지만,

아직 무력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녹턴을 사용해라!!”

내 말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서시우.

“네가..어떻게.. 녹턴을 아는 것이지..?”

나는 박수향을 쳐다봤다.

“나 좀 서시우 옆으로 데려다 줘.”

내 말에 나를 번쩍 안아 서시우 앞으로 뛰어가는 박수향.

서시우 앞에 당도하자마자 서시우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 갈겼다.

“지금 그게 중요해?”

“....”

“너 대신 박수향이 죽으려고 했어. 근데도 그딴 표정이 나오냐? 정신 안 차려? 녹턴 시전 해. 빨리. 시간 없으니까.”

나는 박수향 품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자세가 무너지려고 했다.

나를 부축하는 박수향.

의미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는 서시우.

“녹턴(nocturne)”

화창한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밤이 찾아온 것처럼.

그와 동시에 내 몸에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다리의 고통이 점차 완화되기 시작했다.

달이 가장 환하게 빛날 수 있는 시간.

밤이 찾아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시우의 검을 고쳐 잡았다.

“서시우. 잘 봐둬라.”

우리가 있는 쪽을 향해 양 주먹을 뻗는 거인 악마.

“달빛 제 6초식. 달빛 소나기.”

나는 거인 악마에게 뛰어들었다.

악마에게 강한 속성은 ‘빛’ ‘신성력’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앞선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달빛’ 속성.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거인 악마의 머리 위로 한설휘의 불 소나기처럼 달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달빛은 ‘치이익~’이라는 소리를 내며 거인 악마의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검을 한 번 더 휘둘렀다.

검에 닿은 거인 악마의 팔이 잘려나갔다.

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거인 악마의 몸이 두부 잘리듯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주..죽인다!!]

마지막으로 반 쯤 녹아버린 거인 악마의 머리통을 날렸다.

푸슉-!

끝났다.

임무를 완수한 서시우의 검이 조각이 났다.

서시우의 검은 좋은 검이었지만 달빛 초식을 감당하기도,

악마를 벨 수 있는 능력치도 없는 검이었다.

검에 이어 내 몸이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다행히 처음 달빛 초식을 사용 했을 때처럼 부서지진 않을 모양인지 고통스럽긴 했지만 정신이 달아나진 않았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거인의 얼굴이 있던 위치에서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서시우의 ‘녹턴’ 덕분이었다.

내 몸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서시우.

녀석은 달빛 계승자가 아니었다.

서시우.

녀석은 ‘어둠’ 능력자였다.

얼마 전 읽은 ‘달이 뜨는 밤’이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둠에 뜨는 달.

달이 더 빛날지어니.

세상의 모든 이, 달을 우러러보리다.‘

+ + +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헌터 학교를 습격한 빌런.

30년 전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을 한 악마의 등장.

마지막으로 새로운 달빛 계승자의 등장.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고,

나는 현재 편안하게 병실에 누워 있는 중이었다.

“입원 할 정도는 아닌데.”

천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악마를 처치 한 후, 신지수와 채린이 나를 강제로 입원 시켰다.

많이 다치긴 했다.

하지만 신지수의 치료 능력과 자기 치유 능력으로 빠르게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따르릉.

나는 꾸물거리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버지-

“..여보세요”

이 양반이 웬일일까.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몸은 괜찮은 게냐?

“예..뭐.”

그러곤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 몸조리 잘 하고.

전화가 끊겼다.

분명 달빛 계승자에 대해 물어보려고 전화 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간 서로의 관계가 녹록치 않다보니 입이 안 떨어진 모양.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집에 한 번 들릴 참이었다.

“서시우는 괜찮으려나.”

이래저래 멘탈이 많이 상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서시우와의 관계를 먼저 회복한 후에 내가 달빛 계승자라는 사실을 말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했다보니 순서가 바뀌었다.

서시우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철저히 외면을 했을 뿐.

집안의 기대.

사람들의 기대.

그 기대에는 ‘어둠’ 능력은 없었으니까.

서시우가 달빛 능력을 흉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달빛 계승자를 이해하고 보다 확실하게 보좌할 수 있도록 어둠 능력에는 ‘달빛 능력’이 약하지만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시우는 주객전도 된 삶을 살아왔다.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까지 속여 가며.

그런 서시우가 과연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드르륵.

“서시우?”

서시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정신은 조금 들어?”

내 말에 자신의 발만 물끄러미 쳐다보던 서시우.

작게 입을 열었다.

“일단.. 미안하다.”

“....”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악마를 처음 보기도 했고, 살면서 무력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충분히 멘탈이 나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시우는 아직 좌절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하는 건 내성이 빠르게 자라는 신호가 아닐까?

우리 형제는 한동안 침묵을 했다.

때론 백 마디 말 보다 이런 침묵이 많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형이 진짜 달빛 계승자였구나..”

서시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뭔가 후련하면서도 속상하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는 서시우의 목소리는 뭔가 홀가분해 보였다.

고개를 드는 서시우의 표정이 전에는 못 보던 얼굴 표정이었다.

서시우는 늘 언제나 어른스러운 척, 나이에 맞지 않은 얼굴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의 서시우는 16살에 맞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는 말씀드렸어.”

“뭘?”

“나는 달빛 계승자가 아니라고.”

“....”

어린놈이 일 처리 속도 보소.

“너 괜찮냐?”

“모르겠어. 나도, 잘. 근데 뭔가.. 커밍아웃 한 느낌이 이런 느낌인가 싶네. 속은 시원한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말을 하며 귀에 트레이드마크처럼 걸고 있던 상현달과 하현달 모양의 귀걸이를 빼서 내게 건네는 서시우.

“자.”

“왜?”

서시우가 내 손에 억지로 귀걸이를 쥐어줬다.

“우리 집 가보잖아. 그거. 근데 나한테는 너무 무겁더라고.”

“....”

그 말에서 서시우가 그동안 홀로 견뎌왔던 유망주. 기대주라는 무게감이 확 밀려왔다.

“옆에 사이다 좀 줘.”

내 말에 서시우가 책상 위에 있는 사이다를 내밀었다.

“사이다는 갑자기 왜?”

“뭔가 사이다 뚜껑을 따다 만 느낌이라도 사이다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들었달까?”

사이다를 원 샷 했다.

“어라?”

“또 왜?”

나는 서시우에게 받아든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서시우를 쳐다봤다.

“이거 아이템이었어?”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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