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64화 (64/196)

'day6-그렇더라고요'64회

실험 보고서

서시우의 움직임은 간결했다.

그리고 우아했다.

마치 무용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기.”

서시우가 달빛 초식을 사용하자, 사방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달빛 제 2초식. 월광쇄도(月光殺到).”

무대가 절정을 향해 갈수록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하늘높이 치솟았다.

마치 이 자리는 8강전이 아니라 서시우가 능력을 선보이는 쇼케이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시우의 상대가 그래도 나름대로 분전을 했지만 끝내 항복을 선언했다.

“와아!!!”

“와아아아!!!”

치솟다 못해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내 고막을 뚫으려고 했다.

금석도 마찬가지인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세리나 옆에 있던 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멋지네요.”

“껄껄.”

내 말에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는 첸.

“네 능력을 직접 눈으로 봐서 그런지, 서시우의 달빛 능력은 어린아이 장난 같구나. 껄껄.”

“....”

서시우는 분명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가진 힘의 50%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한다 한들, 100%의 힘을 다 낸다고 한들.

서시우는 절대 달빛 계승자의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서시우는 달빛 계승자가 아니었으니까.’

[8강 2차전 경기는 10분 후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 식사나 하러 가시죠.”

더 이상 경기를 관람할 이유와 필요가 없었다.

2학년 중에는 서시우와 서시우를 좋아하는 박수향.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고만고만했다.

고만고만한 경기를 굳이 앉아서 구경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세리나를 데리고 같이 밥 먹으로 가거라.”

“어르신은요?”

“오늘 동창회가 있느니라. 껄껄.”

동창회라 하면.

‘한태문이랑 교장?’

세 사람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별 일이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러려무나. 껄껄.”

“세리나. 금석. 가자.”

우리는 경기장을 나섰다.

+ + +

학교 앞 제일관.

세리나, 금석과 함께 밥을 먹고 있을 때, 세 사람이 들이닥쳤다.

“내가 지갑이야?”

정시아가 들어오자마자 한 소리 했다.

“돈이 없으면 먹지를 말던지!! 아이고~ 많이도 시켰네.”

세리나와 금석. 나. 돈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정시아 찬스를 썼다.

정시아가 나를 째려보며 빈자리에 착석했다.

“내가 살게.”

한설휘가 말을 하며 정시아 옆에 앉았다.

나를 힐끔 쳐다보는 한설휘.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까지 반라 상태의 내 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아름아. 내 옆에 앉아.”

한설휘가 자신의 옆 자리를 톡톡 쳤다.

한설휘 옆으로 걸어가서 앉는 박아름.

“아름이도 같이 왔네?”

“응. 신지수 교관님이 같이 밥 먹으러 가라고 해서.”

내 말에 젓가락을 챙기던 한설휘가 대답했다.

나는 탕수육을 입에 밀어 넣으며 현 구성원들을 쳐다봤다.

금석. 한설휘. 정시아. 세리나. 박아름.

그리고 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기념적인 구성원이었다.

현 17세 이하 능력자 중 가장 강력한 능력자들만 모아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17세 이하 어벤져스라고나 할까.

다만 탱커 역할이 아직 변변치 않아서 완벽한 조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축구 경기로 치면 공격수 네 명에 미드필더 한 명. 서포터 한 명이나 다름없었다.

수비수가 없었다.

나는 금석을 쳐다봤다.

오늘 정시아에게 패배하고 난 후, 계속 분해하더니 지금은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가 먼저 집었잖아.”

“그런 거 없다.”

“소원.”

“..이..이..”

정시아의 말에 패배한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는지 금석이 탕수육을 내려놓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원 아직 9999개 남았어. 알지?”

“....”

조용히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하는 금석.

“꺄하하!!”

금석의 목에 목줄을 채운 게 그렇게도 신이 나는지 정시아가 마녀처럼 웃어댔다.

‘저런 모습 보면 금석이 왜 정시아를 마귀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구면이지?”

한설휘가 세리나에게 말했다.

“으응..”

아까까지만 해도 나름 활발했던 세리나가 여자 애들이 들이닥친 후 급격히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한설휘의 말에 세리나가 활짝 웃었다.

한설휘 역시 활짝 웃었다.

“리나야. 아름이 알아?”

한설휘의 말에 세리나가 박아름을 쳐다봤다.

고개를 흔드는 세리나.

“아름이는?”

세리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흔드는 박아름.

“그럼 서로 초면이겠네?”

한설휘의 말에 박아름을 향해 수줍게 손을 드는 세리나.

“아..안녕?”

“....”

멀뚱히 세리나를 쳐다보는 박아름.

“원래 말 수가 없어서 그래. 아름아. 리나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대. 인사해줘. 무안해하잖아.”

“..안녕.”

나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따로 내가 세리나나 박아름을 안 챙겨도 될 것 같았다.

한설휘라는 훌륭한 보모가 있으니.

“오늘 경기하느라.. 고생 했어. 너 진짜 강하더라.”

“그래?”

세리나의 말에 한설휘가 수줍게 웃었다.

“응응. 진짜 진짜. 완전 멋있고 완전 슈퍼우먼 같았어.”

“헤헤.”

“그럼 결승전은 너랑 시아랑..”

결승전이라는 말에 정시아와 한설휘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아니 그게..”

세리나가 손을 저으며 한설휘와 정시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오늘 금석과 내가 두 여자에게 패배했다.

그 결과로 두 여자는 결승전에서 맞붙게 됐다.

하지만 금기어처럼 당사자들이나 나나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인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같이 결승에 오른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승자와 패자를 정해야 하는 대결이었다.

“호호..”

“후후..”

알 수 없는 긴장감과 팽팽한 기류가 정시아와 한설휘 사이에 흘렀다.

그 사이에서 세리나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금석이 한 마디 툭 던졌다.

“할멈. 마귀를 꼭 혼내다오.”

정시아가 어금니를 물며, 금석을 노려봤다.

“너 젓가락 내려놔.”

“아직 다 안 먹었..”

“소원.”

“..할멈. 꼭 마귀를 처단해다오..”

정시아가 젓가락을 못 놓고 있는 금석의 손을 탁치며, 나를 쳐다봤다.

그녀를 따라 자연스레 한설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너는?”

“응?”

“네 생각은 어때?”

“....”

“누가..이길 것 같아? 설휘랑 나 중에.”

불똥이 내게 튀었다.

두 사람의 대결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진심으로 싸운다는 가정 하에 승자를 예측 해보자면.

아마도..

띠링.

“잠시만.”

나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채린에게서 온 문자였다.

-준비 다 끝났어요.

내일.

드디어 d-day날이었다.

‘빌런의 습격.’

나는 문자를 입력했다.

-고생하셨어요.

띠링.

바로 답장이 왔다.

-고생은요. 내일 부디 아무 사고도 일어나질 않길, 바랄 뿐이에요.

-안 일어날 거예요. 아무런 사고도.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아이들을 쳐다봤다.

정시아와 한설휘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내일..이구나.”

“그러게.. 까먹고 있었다.”

한설휘와 정시아에게는 이미 소정의 임무를 부여한 상태였다.

금석 역시.

나는 아무렇지 않게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한설휘와 정시아를 쳐다봤다.

그녀들은 길드 차원에서 실전 경험을 여러 차례 쌓아온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내일과 같은 대규모 작전은 처음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반면 금석은 아무 생각이 없어보였다.

정시아 몰래 젓가락에 손을 가져가느라 애 쓰고 있었다.

“걱정 하지마.”

나는 덤덤하게 한 마디 했다.

모든 대비는 끝났다.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대비 역시.

+ + +

“술 더 내오너라!!”

토레스가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보는 세 남자.

모두 연륜이 그득하게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첸. 네가 이 자리를 제안 했으니, 네가 영감 마크해라.”

“동감이다.”

한태문과 헌터 학교 교장.

두 사람이 첸을 쳐다봤다.

“껄껄..”

토레스 옆으로 걸어가 빈 술병을 집어 드는 첸.

“여전하시군요.”

“푸헤헤. 그러는 너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하구나!!”

“예.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 싶습니다.”

종업원이 술 몇 병을 들고 왔고, 토레스 술잔에 술을 따르는 첸.

“처음 너희들을 봤을 때는 코찔찔이 버릇없는 애기들이었는데 말이지. 크흐흐.”

토레스가 말을 하며 술잔이 아닌 술병을 잡고 들이켰다.

“옛 생각이 나는구나!!”

코가 고주망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토레스.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은 별 말 없이 자신의 템포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희들 가르칠 때가 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특히 너희 셋이서 세나 좋다고 뽈뽈뽈 따라다닐 때. 어찌나 바보 같던지!! 크하하!!”

“영감. 거, 천천히 좀 드쇼. 혼자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니요?”

“네놈들이 천천히 마시는 거니라!!”

교장의 말에 새 술병을 집어 드는 토레스.

갑자기 텐션이 확 떨어지며 중얼거렸다.

“이 자리에 세나도 함께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의 말을 들은 세 사람.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한 사람이 입을 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한태문의 말에 토레스가 한태문을 향해 술병을 집어던졌다.

“누가 몰라서 그러느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씩씩거리던 토레스의 텐션이 다시금 낮아졌다.

“세나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네 손녀 딸만한 딸이 있을 지언데..”

“세나 얘기는 이제 그만하시죠.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나서 분위기가 이게 뭡니까?”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교장이었지만 딱히 소용이 없었다.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술을 홀짝이던 중 첸이 넌지시 교장과 한태문을 보며 물었다.

“만약 세나의 딸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취했나?”

“그런가보군.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 양반아.”

첸은 그 후로 더 이상 세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레볼루션 프로젝트.”

“....”

“....”

첸의 말에 한태문과 교장의 손이 동시에 멈칫했다.

“다 지나간 얘기를 굳이 왜 꺼내나?”

“진짜 취했나보군. 자네 술이 약한 건 여전하구만, 그래.”

세나를 얘기할 때와는 달리 한태문과 교장의 낯빛이 연탄을 뒤집어 쓴 것처럼 어두워졌다.

“최종 실험 보고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어허. 이 사람이.”

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만류하는 한태문.

눈빛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첸을 쳐다봤다.

“그건 왜 물어보나? 갑자기? 자네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다만.”

한태문을 쳐다보는 첸.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중간에 그만뒀지 않나? 껄껄.”

“확인할 거라는 게..”

“요즘 의술을 하나 개발하고 있는데 말이야.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말이지. 이 의술만 개발하면 국내에 아주 혁신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킬걸세. 껄껄.”

첸의 말에 언제 뻗었는지 바닥에 누워 코를 골고 있는 토레스를 힐끔 쳐다보는 한태문.

“웨스트 월드 외곽 지역에 허름한 술집이 하나 있지. 그곳 지하가 프로젝트의 마지막 실험 장소였다네. 술집 이름이 아마.. ‘마리아’ 였던 걸로 기억하네만.”

한태문의 말에 교장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했다.

“가봤자 소용없어. 실험실, 자료, 실험체. 싸그리다 흔적을 지워버리고 나왔으니까.”

“....”

“근데 말이지. 내 성격 알잖나.”

말을 끊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교장.

지나가는 투로 말을 했다.

“혹시 몰라 백업 해둔 자료가 있지.”

“어디 있나?”

“자네도 알다시피 그 프로젝트는 그곳에 모두 묻고 오기로 돼 있어서, 그곳에 묻어두고 왔다네.”

“웨스트 월드 외곽 말인가?”

“웨스트 월드의 외곽 남쪽. Z실험실.”

“그렇구만..”

“자자, 이제 그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다른 얘기나 좀 합세.”

교장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했다.

첸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웨스트 월드 외곽 남쪽. Z실험실이라..’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며.

[작품후기]

오늘은 한 편입니다.

내일 12시에 연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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