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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54화 (54/196)

내 도박은 성공했다.54회

파초선

학교 간호실에 가면 신지수 옆에 단짝처럼 붙어 있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박아름’

치유 능력은 희귀 능력 중 하나였고, 1학년 중에는 박아름이 유일했다.

박태산의 수제자가 금석이라면 신지수의 수제자는 바로 박아름이었다.

간호실에 들락날락 할 때마다 몇 번 인사를 건넸는데 모두 무시당했다.

무시라기보다는 그녀 성격이 워낙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

그녀의 잠재력 점수는 조금 측정하기가 애매했다.

학교에서 전교 4등이나 할 만큼 공부도 잘하고 뛰어난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지표가 없었다.

모니터로 이 세상을 관찰 할 때 박아름은 뚜렷한 활약이나 임펙트가 전혀 없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간 인생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녀의 포텐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추측을 해본다면 잠재력 점수가 90점은 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유 능력이 있는 얌전한 여학생.’

이 정도가 학교에 알려져 있는 박아름에 대한 정보였다.

그녀의 사수인 신지수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겠지만.

박아름.

그녀는 범죄 도시 영도의 대부호이자 마천루의 주인인 박대식의 하나 뿐인 외동딸이었다.

그야말로 쓰레기장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이라고나 할까?

쓰레기장에서 피어나,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새장 안에 갇힌 새가 되어버린 박아름.

그녀는 내가 서진에게 빙의 후 영입 대상 리스트에 포함 돼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새장 안에서 그녀를 꺼내는 게, 정시아를 포섭하는 것처럼 힘들다고 판단했다.

정시아야 레볼루션 때문에 운 좋게 한 편이 됐지만, 박아름은 정시아와 달랐다.

마음으로 밀당을 하는 정시아와는 달리 박아름은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신지수를 한 배에 태운 순간 박아름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힐러가 많으면 좋지만 박아름의 포텐도 정확하지 않고 그녀를 새장에서 꺼내는 건 단시간으로 해결 할 문제가 아니었다.

세리나처럼 포텐이 확실하다면야, 노력해보겠지만.

“왔어?”

그냥 오늘은 그녀가 거절 못하는 성격을 조금 이용하고 말 생각이었다.

내 말에 내 쪽으로 걸어오는 박아름.

“약속을.. 잡았었나, 우리가?”

“아니. 그냥 볼 일 있어서 온 김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네 얼굴도 보고 하려고.”

“..그래?”

“응.”

능청스럽게 말을 하며 옆에 있는 의자를 뒤로 뺐다.

“쫌 앉아. 우리 이렇게 대화 하는 것도 처음이지?”

“..응.”

박쥐와 바보 3인방을 쳐다보는 박아름.

“음식 부족하면 매니저한테 말해. 먹고 가.”

안 되지.

음식 먹으러 온 게 아닌데.

나는 나가려는 박아름을 불렀다.

“아름아.”

뒤돌아 나를 쳐다보는 박아름.

표정이 참 생기도 없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꼭 인형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

내가 생각해도 참 염치도 없고,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박아름이라면 들어줄 걸 알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었다.

“오늘 진돗개 토너먼트 참가 좀 하고 싶은데.”

박아름이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가서 참가하겠다고 말하면 돼. 참가 조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그게 조금 문제가 생겨서. 소개장 같은 거 하나만 써 주면 안 될까?”

“....”

대머리 신사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고 나왔기 때문에 입구 컷 당할 소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박아름의 입김이 있다면 바로 프리패스였다.

솔직히 소개장 말고 파초선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무리였다.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박아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참가 할 건데?”

하지만 거절을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박아름의 말에 나는 먹는 척을 하며 귀를 쫑긋하고 있는 이들을 쳐다봤다.

“여기 네 명.”

“케헥..”

“커억..”

박쥐와 바보 3인방.

이들이라면 충분히 진돗개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고도 남을 전력이었다.

“많이 먹어. 저녁에 힘쓰려면.”

나는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 + +

진돗개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인원들은 대체로 비능력자가 많았다.

능력자가 있다고 해도 그 능력이 D급 이하 였다.

그래서 충분히 박쥐와 바보 3인방이라면 우승을 하고도 남았다.

원래는 바보 3인방만 출전시키려고 했는데, 혹시 모를 변수가 발생할지도 몰라 박쥐까지 출전 시킬 생각이었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내 예상이 맞았다.

진돗개 토너먼트장 입구.

양 옆에 서 있던 가드가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저었다.

나는 품에서 박아름에게 받은 소개장을 꺼냈다.

“이래도?”

소개장을 힐끔 쳐다보는 가드.

내용을 훑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옆에 있는 동료 가드를 쳐다봤다.

“이..이런 말은 없었는데.”

“들어가도 되지?”

나는 일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진돗개 토너먼트장은 UFC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이랑 비슷했다.

중간에 옥타곤이 있고 주변으로 관객석이 들어차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은 관객석이 계단식으로 돼 있다는 점이었다.

이 또한 마천루와 같이 관객의 급을 나누기 위한 설계였다.

또한 2층이 있었다.

마천루에서 30층 이상이 VIP석 이었다면 이곳은 2층이 VIP석이었다.

2층에서는 옥타곤 뿐만 아니라 관객석까지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옥타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경기 시작할 시간이라 남는 표가 별로 없었다.

박쥐와 바보3인방은 곧바로 선수 대기실로 갔다.

나는 하품을 하며 느긋하게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박쥐가 계속 약한 소리를 했다.

‘저는 싸우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저는 싸움을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라이언한테 갈래?’

그랬더니 곧바로 투지를 불태웠다.

경기 시작하기 10분 전.

관객석이 점점 관객으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5분 전.

관객석이 거의 만석이 됐다.

1분 전.

비어있던 2층이 VIP들로 한 자리 한 자리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대머리 신사도 있었다.

내가 입장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1층 관객석을 눈을 부릅뜨고 훑었다.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대머리 신사.

부들부들 대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박아름의 소개장을 들고 온 사람이었다.

아무리 대머리 신사라고는 해도 박아름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얌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박아름 배후에 있는 박대식을 의식하는 거겠지만.

박아름의 아버지 박대식은 대부호인 동시에 영도에서 최상위 포식자이자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영도의 주인이었다.

포식자를 잡아먹는 포식자.

장내 아나운서가 옥타곤 안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성였다.

힐끔힐끔 입구 쪽을 쳐다보면서.

그러다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는 장내 아나운서.

“왕께서 입장하십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층에 있는 VIP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이라면. 박대식?’

입구에서 풍채가 곰 같은 사내가 양 옆에 젊은 여자 두 명을 끼고 들어왔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박대식이었다.

‘저 새끼가 왜?’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웠다.

음주가무와 여자에 미쳐 있어서 진돗개 토너먼트장에는 출근 도장을 안 찍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등장했다.

박대식의 뒤로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했다.

‘박아름.’

부녀가 단체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을까.

2층으로 올라가는 부녀.

제일 상석인 중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대식이 앉자, 하나 둘 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모두 착석을 하자 장내 아나운서가 박대식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물었다.

“왕이시여. 경기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여기가 중세 시대나 조선 시대도 아니고.

‘호칭 되게 거슬리네.’

영도에서 박대식을 사람들이 ‘왕’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듣자 굉장히 듣기 거북했다.

소꿉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오히려 진짜 왕을 보는 것처럼 박대식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작하도록 하라.”

박대식이 말을 하며 양 옆에 끼고 있는 여자들의 가슴을 조물딱 거렸다.

바로 옆에 자기 딸이 앉아 있는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박대식을 빤히 보고 있다가 옆에 앉아 있는 박아름과 눈이 마주쳤다.

입모양으로 내게 뭐라고 말을 하는 박아름.

“도..망쳐?”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도망치라니.

나는 박대식을 쳐다봤다.

옆에 있는 여자가 먹여주는 술을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파초선을 구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변수가 발생했고, 앞으로의 변수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대처가 충분히 가능했다.

대상이 레볼루션이라면 얘기가 달랐지만 여기는 피라미 천국에 몇 명의 조금 강한 능력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박대식은 쫌 강하긴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날렸다.

+ + +

진돗개 토너먼트는 그냥 개싸움이나 다름없었다.

32강부터 시작을 했고, 현재는 8강이었다.

8강까지 오는 동안 돼지와 홀쭉이가 탈락을 했다.

중간에 주근깨와 박쥐를 만난 탓에 기권을 했다.

그걸 제외하면 무난했다.

나는 하품을 했다.

“승자는 블루 코너 입니다!!”

방금 8강이 끝이 났다.

주근깨와 박쥐는 예상대로 한 대도 안 맞고 4강에 진출했다.

다른 사람들 실력을 보니 결승까지 주근깨와 박쥐의 낙승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힐끔 박대식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박대식이나 대머리 신사.

둘 다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쯤 되자, 내가 박아름의 입모양을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나는 틈틈이 2층의 동태를 살폈다.

진돗개 토너먼트의 또 한 가지 특이점은 휴식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32강부터 경상이든 중상이든 이기면, 기권을 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경기를 해야 했다.

8강이 끝나고 곧바로 4강이 시작 됐다.

옥타곤에 올라서는 주근깨.

그리고 그녀의 상대로 보이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남자가 옥타곤에 올라왔다.

남자는 딱히 신체 스텟은 형편없어 보였는데, D급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4강까지 올라왔다.

이번에도 주근깨의 낙승을 예상했다.

“두 선수 준비 되셨습니까?”

경기가 시작하려고 했다.

그 때 변수가 발생했다.

“체급이 안 맞잖아. 체급이.”

박대식의 말에 장내 아나운서가 식은땀을 흘리며 박대식을 쳐다봤다.

“아..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어.. 그러면..”

“여자한테 배려심이 그렇게 부족해서야. 쯔쯧. 어이 도끼야. 가서 체급 좀 맞춰드려라.”

박대식의 뒤에 어둠에 가려져 있던 곳에서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가볍게 2층 난간에서 뛰어 내려 옥타곤에 착지를 하는 남자.

“....”

박대식의 오른팔이었다.

신체 스텟이 B~C 정도에 가진 능력도 C급 정도는 되는 남자였다.

정확한 능력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주근깨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남자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옥타곤 앞으로 걸어갔다.

“주근깨.”

내 말에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주근깨가 나를 쳐다봤다.

“서진님..”

“기권해.”

“그래도 돼요?”

“응.”

내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주근깨.

곧바로 장내 아나운서에게 걸어갔다.

기권한다고 말하려고 할 때 도끼라고 불린 남자가 다짜고짜 주근깨의 복부를 걷어찼다.

“웁..”

복부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주근깨.

멈추지 않고 다리를 치켜 올리는 도끼.

나는 ‘뱀의 움직임’을 시전하며 곧바로 옥타곤에 난입해, 도끼의 다리를 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내 말에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하는 도끼.

‘이 새끼가 도랏나.’

나는 다리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 주근깨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근깨, 괜찮아?”

“예..쿨럭.”

피를 살짝 토하는 주근깨.

“얼마나 세게 쳐 때렸으면 애가 피를 토 하냐? 어?”

나는 정시아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대식.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따~ 네가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내미 친구인가보네. 아주 정의감이 넘쳐브러!! 브라보!!”

“....”

브라보 같은 소리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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