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가 틀린 것 같기도 하고.53회
파초선
파초선.
용도는 단순했다.
‘거대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게 파초선이 가진 아이템 효과였다.
그래서 아이템 등급도 B~C등급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함 때문에 아이템 가치가 A등급 아이템에 준비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박쥐에게 파초선을 찾아서 구입할 것을 지시했다.
내가 알기로 파초선은 고가이긴 하지만 아이템 수집가들 사이에서 자주 거래 되는 아이템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사람 손에 있다가 저 사람 손에 있다가.
가지고 있자니 딱히 사용할 데는 없고.
애매한 아이템 효과 때문 탓이었다.
그래서 박쥐에게 맡겼었다.
내 바람대로 박쥐는 파초선의 위치를 찾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제가 사겠습니다.”
그 다음 일은 내가 처리해야 했다.
내 말에 대머리 신사가 자신의 머리를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쓰다듬었다.
이빨뿐만 아니라 온 몸에 금을 두르고 있는 남자였다.
내 손에 있는 속성 반지가 무색해질 만큼 금 장신구가 삐까뻔쩍 했다.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대머리 신사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능구렁이처럼 웃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 아직 세상살이를 잘 모르시나본데.”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는 대머리 신사.
“제가 안 판다면 안 파는 겁니다. 여기서는 제 말이 법이거든요. 크흐..크하핫!!”
“....”
아무리 이곳이 범죄 도시라고는 해도, 나름의 질서와 위아래가 존재했다.
대머리 신사는 이곳에서 포식자 계층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었다.
최상위 포식자는 따로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 뒤편에 서 있는 박쥐와 바보 3인방을 슬쩍 쳐다봤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반면 대머리 신사 뒤편에 있는 남자들은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이곳은 밀림이었고,
우리는 상당히 기세에서 밀리고 있었다.
“표정 좀 험악하게 해. 전달해.”
나는 박쥐에게 속삭였다.
내 말에 있는 힘껏 인상을 구기기 시작하는 박쥐와 바보 3인방.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어휴.’
글러먹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대머리 신사였고, 분위기까지 완전히 대머리 신사 쪽으로 넘어갔다.
대머리 신사가 유유자적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가 어두운 실내에 스멀스멀 퍼졌다.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해도, 파초선을 못 구하는 건 아니었다.
박쥐에게 들은 정보대로라면 귀찮기는 해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이란.
“오늘 저녁이라고 들었는데. 진돗개 토너먼트. 맞습니까?”
대머리 신사가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돗개 토너먼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곳만의 격투기 시합이었다.
룰도 없고, 반칙도 없는.
심지어 상대를 죽여도 됐다.
시합이라고 하기에는 포식자들의 유흥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진돗개 토너먼트에는 포식자들이 번갈아가며 우승 상품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대머리 신사가 상품을 걸 차례였다.
이번 우승 상품으로 대머리 신사는 ‘파초선’을 걸었다.
그래서 내게 팔 수 없다는 거였다.
뭐 돈을 어마어마하게 부르면 팔겠지만,
이런 놈에게 돈을 그렇게까지 지불하고 싶진 않았다.
내 수중에 돈도 없고.
적당한 가격이면 서진의 친구인 김도진이나, 이실장.
혹은 채린의 힘을 빌리려고 했는데.
아예 돈을 제시를 안 하니.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긴 한데. 이미 참가 접수가 마감 됐습니다. 크크.”
어디서 수작이실까.
진돗개 토너먼트는 경기 시작 바로 직전까지 선수를 받는 걸로 아는데.
나는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 보다 대머리 신사가 더 빨랐다.
“하지만 제가 소개장을 써주면 참가할 수 있죠. 크큭.”
“....”
개소리였다.
하지만 대머리 신사가 이번 토너먼트에 상품을 건 만큼 입김이 센 건 맞았다.
무시하고 그냥 참가를 하자니, 뒤에서 수작질을 부릴 것 같아서 일단 물어나 봤다.
“얼마입니까?”
“역시!! 말이 잘 통하는 군요. 제가 특별히 창조 그룹의 도련님이니.”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는 대머리 신사.
“만 원?”
뒤에서 돼지가 중얼거렸다.
“아니지 바보야. 십만 원이겠지.”
홀쭉이가 돼지의 말을 정정했다.
나는 백만 원 정도를 예상했다.
아무리 양아치라고는 해도 저들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천만 원.”
“....”
“천만 원이면 소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선 같은 건 개나 줘버렸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대머리 신사 뒤에 있는 남자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손을 들어 만류하는 대머리 신사.
“저런 저런. 말이 잘 통하는 줄 알았는데. 이것 참 안타깝군요.”
“네가 그러니까 대머리인 거야.”
“..뭐..뭐?”
“가자.”
나는 박쥐와 바보 3인방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노발대발하는 대머리 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가 창조 그룹의 장남인 걸 알고 있는 이상 섣부르게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양아치네.”
“서진님 가서 대머리에 불 붙이고 올까요?”
“바보야. 머리카락이 없는데 어떻게 불이 붙냐?”
바보 3인방이 나오자마자 조잘조잘 떠들었다.
“죄송합니다.”
박쥐가 고개를 숙였다.
“제 선에서 해결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박쥐의 어깨를 두드렸다.
파초선이 영도에 있는 이상 박쥐가 해결 할 범주를 벗어났다.
나도 당장 어찌하지 못하는데, 박쥐라고 별 수가 있었을까.
“괜찮아. 너희들 배고프지?”
“예에에엣!!!”
내 말에 돼지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애들을 이끌고 영도에서 가장 큰 식당인,
‘마천루’로 향했다.
+ + +
마천루는 영도에서 가장 큰 건물이자 식당이었다.
총 50층 건물로, 피라미드형 건물이었다.
마천루에 들어서자 넓은 실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500석은 넘을 정도로 넓은 실내.
최소 400석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장 바닥도 이 보다는 조용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찬 물을 부은 것처럼 실내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고정 돼 있었다.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들이었다.
반면 우리는 말끔한 차림이었다.
상반 되는 모습에 그들이 신기해서 우리를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
‘표적’
그들은 우리가 외부인인 걸 알아차렸을 테고,
우리를 먹잇감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천루라는 식당은 건물 모양처럼 손님도 피라미드 형태로 받았다.
1층은 가장 값이 저렴하고 산 음식.
2층은 1층 보다 조금 더 비싼 음식.
30층부터는 VIP 손님만 받았고,
40층부터는 VVIP 손님만 받았다.
즉.
1층은 이 곳에서 가장 최하층민이자, 가장 돈 없는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저..여기서 먹는 건가요, 서진님?”
주근깨가 돼지의 뒤로 숨으며 말했다.
식탐이 많은 돼지도 순간 수 백의 눈동자가 꽂히자 입맛을 다시기만 할 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서진님. 여기서 먹었다가는..”
박쥐가 우려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1층에서 외부인이 밥을 먹은 전례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나 역시 오늘 그런 전례를 깰 생각이 없었다.
“밥 먹다가 체하기 딱 좋겠네.”
나는 입구 옆 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는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일반 엘리베이터.
하나는 금칠을 하고 사자 문양이 그려져 있는 엘리베이터.
각각 운행하는 층수가 달랐다.
일반 엘리베이터는 29층까지 운행했고,
사자 문양 엘리베이터는 30층부터 49층까지 운행했다.
나는 당연히 사자 문양이 있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내 뒤로 비엔나소시지처럼 박쥐와 바보 3인방이 쫓아왔다.
사자 문양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성.
“안녕하십니까.”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기에 손을 올려주시겠습니까?”
태블릿 pc 같은 걸 내게 내미는 여성.
나는 거리낌 없이 손을 올렸다.
지문 인식 센서였다.
손을 때자 화면에 나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나왔다.
“서진님,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서진님은 38층까지 입장 가능하십니다. 뒤에 분들은 일행이십니까?”
“네.”
“뒤에 분들도 신원 확인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신원 미확인 시, 서진님이 일행 분들과 입장하실 수 있는 층수는 33층까지입니다. 입장 하시겠습니까?”
“....”
혼자는 38층.
같이는 33층.
다 내가 원하는 층수가 아니었다.
“49층.”
“..네?”
“49층에 갈 생각입니다.”
“....”
49층은 손님으로서 갈 수 있는 최상층이었다.
50층은 오로지 마천루의 주인과 그의 가족들만 식사를 즐기는 장소였다.
내 말에 여성이 나를 순간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금방 표정을 고치고 싱긋 웃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말을 하며 오른 손을 슬쩍 뒤로 가져가는 여성.
내가 허튼 수작이라도 하면 바로 경비를 부를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수고를 끼칠 생각이 없었다.
“아름이랑 약속을 잡았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여성.
“아름..이라면..”
동공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아름 아가씨 말씀 하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죄..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헌데 아가씨께서는 아무런 언질이 없으셨는데..”
당연하지.
약속을 잡은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피며 말했다.
“까먹었나보네요. 3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곧 올 겁니다.”
“아..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여성.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계속 세워둘 겁니까?”
“아..어.. 그게 그러니까.. 잠시만요.”
여성이 뒤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가려고 했다.
49층은 VVIP실 중에서도 가장 VVIP실.
영도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아름이랑 약속이 있다고는 했지만 바로 들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여성의 앞길을 막아섰다.
‘안 되지. 뻥인데 벌써 확인하러 가면.’
“제 일행들이 배가 많이 고파서, 일단 49층으로 안내부터 해주시죠.”
“그..그래도 우선 보고를..”
“보고요?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지. 아름이를 의심하시는 거군요.”
“아..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여성의 표정이 울상이 됐다.
“저는 두 번 말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합니다.”
나는 여성의 앞에서 비켜섰다.
낙장불입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일단 배 째라는 식으로 49층에 입성을 할 생각이었다.
49층에 들어가서 아름이가 오면 성공이었고,
만약 경비가 온다면 실패였다.
도박이긴 했지만 상당히 성공 가능성이 높은 도박이었다.
내가 으름장을 놓자 여성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무실과 엘리베이터를 번갈아서 쳐다봤다.
갈팡질팡하던 여성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는 여성.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사자 입이 양 옆으로 찢어졌다.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49층으로 향했다.
+ + +
49층에는 따로 메뉴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식당을 가면 ‘오마카세’라는 메뉴가 있었다.
일종의 오마카세를 맡긴 것처럼 음식이 알아서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최상품의 재료로 만든 최상급의 요리들이.
“와..진짜 맛있다.”
“야!! 돼지!! 천천히 먹어!!”
“홀쭉이. 말 할 시간에 어서 먹어. 돼지가 언제 음식 앞에서 브레이크 잡는 거 봤어?”
바보 3인방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에 음식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래. 많이 먹어둬라.’
바보 3인방과는 반대로 음식을 깨작깨작 먹고 있는 박쥐.
“왜, 입에 안 맞아?”
내 말에 티슈로 입을 닦는 박쥐.
“그냥..조금..걱정이 돼서요.”
박쥐는 눈치가 빠른 만큼 눈치를 상당히 많이 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49층에 무혈입성을 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계속 느끼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괜찮으니까 먹어.”
나는 말을 하며 입에 연어 회를 한 입 먹었다.
‘사르르 녹네.’
이것저것 집어 먹고 있을 때, 룸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무표정한 박아름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