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52화 (52/196)

라고.52회

파초선

중간고사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완전히 풀어질 시기는 아니었다.

일주일의 짧은 휴식 후,

‘학교 최강자 선발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최강자 선발전은 학교 성적과는 전혀 무관한 번외 경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참가 여부는 자유였다.

비참가 학생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없었다.

반면 참가하는 학생들은 중간고사의 연장선 같은 느낌을 받을 테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학교 최강자 선발전에 참가를 할 생각이었다.

최강자로 선발이 되면 받게 될 혜택을 생각하면 참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꼭 최강자가 안 되더라도, 4강안에만 들면 혜택이 두둑한 편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련 랭킹을 보고 있는데.

‘160위.’

학기 초반에 막 대련 랭킹이 발표 됐을 시점에는 내게 달려드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3주 동안 내가 입원을 한 후에는 그 빈도수가 확 줄었다.

그래서인지 순위권이 중간 보다 살짝 아래였다.

10위권 안에 들어야지 본선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혜택이 있었기에,

사실상 11위부터 꼴찌까지는 별 차이가 없긴 했다.

나는 순위표를 위로 올렸다.

-한설휘 1위.

-정시아 2위.

-금석 3위.

한설휘는 대련 랭킹이 발표 된 시점부터 랭킹 1위였다.

현재도 부동의 1위였고.

정시아는 5위에서 2위로 뛰어 올랐고, 금석은 13위에서 3위로 뛰어 올랐다.

금석이야 워낙 여기저기 치고 박고 다녀서 그렇다 치지만 정시아는 이렇다 할 대련을 한 적이 없었다.

근데 3계단이나 올라 있었다.

‘패왕색 패기라도 풍기고 다니나.’

뭔가 대련 랭킹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괜히 씁쓸해졌다.

나 혼자만 100위권 밖에 있자니, 괜히 쭉정이가 된 기분이랄까.

“너희 학교 최강자 선발전에 출전할거지?”

내 말에 미동도 없이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세 사람.

“저기요?”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 쪽을 향했다.

한설휘와 정시아는 마치 귀신을 보는 것처럼 날 보고 있었고,

금석은 미친놈처럼 입가에 웃음을 장전하고 있었다.

“나 낙제 아니다!! 크하하하!!!”

금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벌써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나?’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두 여자가 날 보는 시선을 거둘 생각을 안 했다.

“왜?”

“너 뭐하는 놈이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뭐라는 거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학교 어플에 들어갔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와 있었다.

‘어디 보자.’

금석은 필기시험 평균 60점에 실기시험은 평균 92점이었다.

종합 전교 80등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세리나는 110등이네.’

필기시험 점수는 최상위권이었지만, 실기 시험 점수가 낮았다.

세리나는 비능력자라서 실기시험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 학교라는 특성상 비능력자는 전부 100위권 밖이었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부터 자퇴생이 슬슬 한 명씩 나오는 시기였다.

1학기가 끝나면 거의 100명 정도가 자퇴를 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마지노선이었다.

그 때까지 능력을 개화하지 못하면 자퇴를 하고 다음 년에 재입학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게 헌터 학교의 정설이었다.

1학기를 말아먹고 뒤 늦게 능력을 개화해서 2학기 때 만회한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 했다.

나는 스크롤을 올렸다.

50위 안으로 진입을 하자 임시 성적에서는 못 보던 이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 임시로 친 시험을 대충 본 녀석들이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순위가 정확한 알짜배기 순위였다.

그렇다고 속빈 강정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50위권에서 11위까지는 뉴 페이스가 많이 늘어나 있었지만 10권 안으로는 임시 성적과 거의 순위가 비슷하거나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었다.

-정시아 3위.

필기시험 점수 87점.

실기시험 점수 93점.

도합 평균 90점.

흠 잡을 데가 없는 성적이었다.

원래라면 6~10등 사이의 순위를 의도적으로 연출을 하는 정시아였지만, 무리가 정해지고 나서 딱히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 모양이었다.

-한설휘 2위.

‘엥? 한설휘가 2등이라고?’

필기시험 점수 96점.

실기시험 점수 96점.

도합 평균 96점.

그런데 2등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1등이라는 것인가.

한설휘보다 더한 괴물이 있다니.

나는 한설휘 위에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서진 1위.

“....”

나다.

필기시험 점수 만점.

실기시험 점수 94점.

근소한 차이로 한설휘를 제치고 1등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두 여자.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1등 할 줄은 몰랐는데.’

전교 1등이라니.

이것 참 황송하구만.

+ + +

한 주가 벌써 끝나가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주라 그런지,

아니면 다음 주에 있을 학교 최강자 선발전 때문인지 수업이 널널하게 진행 됐다.

오늘 금요일.

학교 최강자 선발전 접수가 마감 되는 날이었다.

나.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녀석들은 전부 신청을 했다.

세 사람은 전부 곧바로 본선 행이었지만, 나 혼자만 예선을 뚫고 올라가야 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턱을 괴고 정면을 쳐다봤다.

금요일 오후.

이 주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 되고 있었다.

‘아이템’ 수업 시간.

교관과 학생들이 거의 잡담 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들 많이 하잖아.”

교탁에 앉아 있는 아이템 수업 교관의 말에 몇 몇 애들이 그를 쳐다봤다.

“A급 능력에 F급 스텟이 낫냐, 아니면 A급 스텟에 F급 능력이 낫냐.”

저런 얘기는 박태산이 잘 하는 말이었다.

워낙 밸런스에 신경 쓰는 교관이라서.

“근데 다 필요 없어. 능력이는 스텟이든. 아이템 좋은 놈이 짱이야.”

역시 아이템 교관.

아이템 예찬론을 펼쳤다.

“템빨이 얼마나 지리는지 모르지?”

교관의 말투라고 하기에는 조금 저렴했다.

“진짜 아이템만 좋으면 A급 스텟이든 A급 능력이든 카운터 칠 수 있다니까?”

“에이~~”“그래도 스텟이나 능력이 우선이잖아요.”

아이들의 말에 가슴을 치는 아이템 교관.

교탁에서 내려왔다.

“그러니까 템이 좋으면 그런 우선시 되는 것들을 카운터 칠 수 있다니까? 너희들 세계 랭커 중에 ‘만물상’이라는 랭커 몰라?”

‘아, 언제 한 번 만물상도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템 교관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작자가 랭커 25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템빨이 지렸기 때문이지!! 그 양반 템 빼면 시체야 시체.”

“만물상은 얘기가 다르죠!! 능력이 애초에 아이템 관련 능력이잖아요!!”

“흠..”

논쟁에서 밀리는지 아이템 교관이 턱을 쓰다듬었다.

“내 말에 요점은 다음 주에 있을 학교 최강자 선발전에서 파이팅 하라 이거야. 혹시 알아? 토레스 영감이 마음에 들어서 아이템 뚝딱 제작해서 줄지?”

“무조건 4강안에 들어야지 아이템 제작 해주시잖아요.”

“그렇긴 한데.. 가끔 한 번씩 기분 좋은 날에는 16강안에만 들어도 아이템을 제작해 주더라고.”

“16강..너무 커트라인이 높아요!!”

삐리뽕~

학교 종소리가 울렸다.

아이템 교관이 퇴장하고 담임 교관인 신지수가 등장했다.

“우리 반에서는 10명이 최강자 선발전에 나가네. 나가는 선수들은 주말 동안 준비랑 휴식 잘 하고. 안 나가는 애들은 다음 주에 팝콘 두둑하게 챙겨 와. 알았지?

“예!!”

“예엡!!”

신지수가 퇴장하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오이오이~ 전교 1등~”

정시아가 다가왔다.

성적이 발표 되고 나서부터 계속 저렇게 나를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정시아의 볼을 잡아 당겼다.

“아아.. 왜에?”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홍길동이야 뭐야.”

“....”

나는 손을 놓으며 교실을 빠져 나가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 된 후, 상당히 시무룩해져 있는 한설휘였다.

티를 안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내 눈에는 잘 보였다.

“나도 간다~”

정시아 마저 교실을 나갔다.

남은 건 나와 금석.

둘이었다.

“너 안 가고 뭐해?”

“....”

내 말에 의기소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금석.

[금석 학생은 30분 후 1훈련장으로 올 수 있도록 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박태산 교관의 목소리.

중간고사 성적이 낙제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아니 그 전보다 더 애틋하게 박태산의 총애를 받고 있는 금석이었다.

“후우..사는 게 이런 거냐.”

금석이 한 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탈한 얼굴로 교실을 나가려는 금석.

“석아.”

“살려줘.”

“....”

살려달라는 말이 무조건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건 뭐지?

“아니..”

“살려줘.”

“주말에 나 어디 가니까 레이 좀 부탁해.”

“살려줘.”

나는 금석의 어깨를 치며 한 마디 했다.

“죽진 않을 거야.”

“....”

+ + +

아침에는 박태산의 하드 트레이닝.

오후에는 학교 수업.

방과 후에는 도서관.

저녁에는 뒷산에서 훈련.

이게 내 고정 테크였다.

하지만 오늘은 내일이 주말이니 만큼 도서관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할 생각이었다.

‘내일 갈 데가 있으니.’

읽을 책이 있나 둘러보고 학교 앞에 위치한 오피스텔에 갈 생각이었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동그란 안경을 쓴 여학생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그래? 헤헤.”

세리나가 내 말에 수줍게 웃었다.

“첸 어르신이랑은 잘 지내고 있어?”

세리나가 기숙사를 나가 첸과 함께 지내는 바람에 방과 후에 도서관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내 말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세리나.

“응응. 첸 할아버지는 천사야. 맛있는 거도 잘 사주고 모르는 것도 잘 알려주고. 첸 할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다니까!!”

나는 손을 들어 세리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오구오구. 그래써?”

“응응!”

작고 아담해서 그런지 꼭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도서관에 어쩐 일이야? 책 빌려서 가려고?”

“..응..너도 보고..”

수줍게 고개를 푹 숙이는 세리나.

원래라면 저런 멘트를 못 치는 성격인데 첸과 있으면서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특하네.’

고개를 드는 세리나.

계속 표정이 싱글벙글 했다.

“너 전교 1등 했더라?”

“응. 운이 좋았어.”

“축하해!!”

세리나가 내 손을 양 손으로 꼬옥 잡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110등..인데..”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드는 세리나.

“그래도 괜찮아!! 할아버지가 잘한 거랬어!!”

맞다.

비능력자로 110등은 엄청난 성과였다.

비능력자 중에서는 1등 성적이었고,

능력자들도 20~30명 제친 성적이었다.

띠링.

“잠시만.”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인: 박쥐

박쥐에게서 온 짧은 문자였다.

-찾았습니다.

띠링.

연이어 한 통이 더 왔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문제?’

띠링.

-돈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문제가 뭔지 시원하게 말해주면 될 것을.

‘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감질 맛나게 하네.’

나는 핸드폰을 도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내일 박쥐에게 갈 예정이었다.

박쥐에게 지시해서 구하라고 한 아이템은 다음 주까지 꼭 구해야 하고,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안 좋은 일이야?”

세리나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응? 아니, 별로? 나중에 너희 집에 놀러가도 되지? 집들이겸.”

“우리..집에?”

세리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응. 첸 어르신이랑 같이 밥이나 먹자.”

“나..나는 좋아! 첸 할아버지도 아마 허락하실 거야!!”

“그래.”

나는 손을 들어 세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박쥐에게서 온 문자 내용을 곱씹었다.

+ + +

세상을 이분법으로 구분 짓자면 양지와 음지.

이렇게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부산에 위치한 영도구.

그곳은 불법과 범죄라는 단어가 일상이라는 단어와 동급인 곳이었다.

경찰도 헌터도 모두 포기한 범죄 도시.

사람들은 영도를 이렇게도 불렀다.

‘쓰레기장’

그렇다고는 해도 발을 딛는 순간 칼을 맞는다던지, 총을 맞는다던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곧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앞에서 금니가 반짝 거리는 대머리 신사를 쳐다봤다.

대머리 신사 뒤로는 대놓고 총을 손에 들고 있는 남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보시죠.”

대머리 신사가 넉살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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