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들의 추리력 만점~49회
중간 고사
"사과한다.“
박태산이 양반다리를 하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밥 먹다 말고 갑자기 그러시면 저 체해요.”
내 말에 박태산이 상체를 바로 했다.
“너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의 동의도. 학교 측의 동의도 없는 내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
박태산의 표정이 무척이나 비장했다.
오늘 일은 물론 당황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저 정도로 비장하게 책임을 질 일은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는.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중화요리도 맛보고, 조금 있다 오늘 일에 대해 추궁 대신 부탁 하나를 할 예정인데.
‘계속 저렇게 나오면 부탁하기 괜히 미안해지는데.’
“괜찮다니까요. 일단 밥이나 먹어요, 교관님.”
“이번 일로 헌터 교육청에 고발을 해도 나는 할 말이..”
“교관님.”
내 말에 박태산이 여전히 비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뒷수습을 하는 건 좋은데.
‘너무 얼굴이 비장하다니까?’
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마음 편히 밥을 먹기 위해서는 박태산의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해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천천히 꺼낼 부탁을 지금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미안하시면 부탁 하나면 들어주세요.”
“부탁?”
“예.”
“..내 선에서 가능한 일이면 무슨 일이든 들어주겠다.”
가능하지.
가능하고말고.
분명 내키지 않아할 게 분명하지만.
“철권(鐵拳), 박진 선생님.”
내 말에 어떤 일에도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박태산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이 스쳐지나갔다.
“바..박진 선생님 왜..”
말까지 더듬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박태산.
철권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박진이라는 남자는 첸과 마찬가지로 박태산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첸이 박태산이 학교를 다닐 시절 ‘간호 교관’이었다면 박진은 현재의 박태산과 마찬가지로 ‘전투 교관’이었다.
현재는 첸과 마찬가지로 1선에서 물러나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긴 했지만.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박태산을 쳐다봤다.
쉬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주위가 산만해져 있었다.
박태산의 인생에서 지옥 같던 시기를 꼽자면 바로 박진의 제자로 있던 시기였다.
박진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혹독하고 앞뒤가 꽉 막힌 정파의 장로 같은 느낌이었다.
박태산은 그런 박진의 유일한 수제자였다.
아침 마다 하는 하드 트레이닝도 박태산이 박진에게 물려받은 거였다.
“연락하고 지내시죠?”
“..안부 인사는 가끔 드리고 있다.”
박태산이 침착성을 되찾으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테이블에 올리고 있는 손가락을 여전히 건반을 치듯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교관님은 금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말에 박태산이 완전히 침착성을 되찾았다.
오전에 한 두 시간 트레이닝을 하는 나와는 달리 금석은 방과 후나 주말에도 박태산과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거의 반 강제로.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박태산도 금석이 자신과 공통분모가 많다는 걸 느끼고 있구나. 라고.
박진에게 박태산이라는 수제자가 있었다면,
훗날 박태산에게는 금석이라는 수제자가 있었다는 말이 나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이 많이 필요 한 녀석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석은 아직 가공이 안 된 석(石).
녀석을 자신의 이름처럼 금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박태산과 훈련을 한다고 해서 금석이라는 돌이 다이아몬드나 황금이 되진 않았다.
광택이 나는 정도가 한계였다.
딱 전생의 금석이 그 정도였다.
광택이 나는 정도.
그 정도만 해도 전투력 점수가 92점은 되니,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하기로 한 이상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안 된다.
앞으로 만날 상대들을 생각하면 최소 전투력 점수가 96점.
즉 S랭크는 돼야 했다.
“그래서 말인 데요 교관님. 이번 여름 방학 때 석이를 박진 선생님께 데리고 가주실 수 있나요?”
“....”
내 말에 박태산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입을 떼는 박태산.
“나도 그 생각을 해보긴 했다. 그런데 네가 박진 선생님을 어떻게 아는 것이지?”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하긴. 그 분의 명성을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분명 금석을 박진 선생님께 데리고 가면 금석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녀석이 과연 순순히 가려고 할지 의문이군.”
“제 눈에는 교관님이 가기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요?”
움찔.
“흠.. 부탁은 그게 다냐?”
“예.”
“좋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마.”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짓는 것 같은데.
우리는 식사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 + +
실기시험 2일 째.
첫째 날과는 달리 능력을 사용한 개인의 역량 평가 날이었다.
그래서 시험을 치루는 인원이 전 날에 비해 10명 정도가 줄어 있었다.
아직 능력 각성을 못한 학생들이 제외 된 결과였다.
[성향 확인이 끝났습니다.]
기계음이 들려왔고,
동시에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 시험은 어제와 같이 ‘프로그램 훈련장’에서 치러졌다.
나는 능력 측정기에서 손을 뗐다.
어제는 다 같은 주제, ‘미로 탈출’로 개인 능력을 평가 했다면, 오늘은 각자 가진 능력에 따라 주제와 환경이 달랐다.
공격. 방어. 보조.
큰 카테고리로 보면 능력은 총 세 종류였다.
세분화를 하면 끝도 없었지만.
능력 측정기가 하는 역할은 단순했다.
능력이 가진 성향 측정.
아직까지 대상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측정하고 알 수 있는 기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이 가진 성향까지는 체내 마나 감응을 통해 측정을 할 수가 있었다.
성향에 따라 앞서 말한 카테고리로 타입을 분류했다.
나는 완전히 변한 주변 풍경을 쳐다봤다.
“....”
내 성향은 아무래도 공격 성향으로 분류된 모양인데.
크르르..
크라라..
레이의 미래 모습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 마리의 성인 늑대가 침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뒤로는 어제 봤던 오크와 비슷하게 생긴 오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의 뒤로는 어제 나와 혈전을 펼쳤던 오우거 세 마리가 서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공격 성향이 조금 강하게 측정 되면 지금처럼 다수의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헌데 문제는.
몬스터들의 뒤에 있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땅을 한 번 때렸다.
그러자 몬스터들의 눈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버서커.‘
남자의 말에 풀리던 눈에 드러난 흰자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내 공격 성향이 조금 강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강하다 못해 미쳐 있는 정도로 측정이 된 모양인데.
“저건 또 뭐야?”
나는 황당한 얼굴로 왼 편을 쳐다봤다.
갑자기 땅에서 골렘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히 방어 성향이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등장하는 몬스터였다.
골렘의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30m정도 덩치가 커졌을 때야 크기가 멈춘 골렘.
‘저 크기는 박태산 정도의 방어 능력이 있어야 나올 법한 놈인데?’
오른 편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서 버프를 줘!!”
“빨리!!”
중세 시대에 나올 법한 전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닦달하고 있었다.
‘쟤들은 분명 보조 능력이 있어야 하는..’
나는 정면. 그리고 왼 편과 오른 편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종종 나처럼 한 가지 성향이 두드러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강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두 극상으로 표현 되지는 않았다.
공격 성향 극상.
방어 성향 극상.
보조 성향 극상.
‘쩝..’
이게 다 달빛 능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달빛 능력은 앞에 말한 세 가지 성향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공격 성향 쪽으로 프로그램이 설정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아..이러면.”
사방에 등장한 녀석들은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차피 프로그램이라 전혀 목숨에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문제는 내가 카피 능력자라고만 알고 있는,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박태산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해석할까?’
“아, 모르겠다~”
일단 상황은 일어났고, 나는 밖에 알려진 능력인 정시아와 금석의 능력으로 이 상황을 대처하기로 했다.
열심히 하면 점수는 잘 주겠지.
+ + +
박쥐는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쳐다봤다.
한 명은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말랐고,
한 명은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뚱뚱했고,
한 명은 그냥.. 주근깨가 많았다.
세 사람은 각자 홀쭉이. 돼지. 주근깨라고 소개했다.
“대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대장!!”
“대장님!!”
박쥐는 눈을 깜빡였다.
“대..장?”
“예!!”
“서진님이 레드님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레드 행세를 하고 있는 박쥐는 눈을 깜빡이다가 눈을 감았다.
‘대장..이라고?’
평생 들을 수 없는 말일 줄 알았다.
근데 대장이라니.
‘좋은데?’
“그래. 크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쥐.
“대장!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주근깨가 의욕적으로 물었다.
“음..”
머리를 긁적이는 박쥐.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
박쥐는 오늘 자신의 업무를 떠 올렸다.
요즘 서진이 지시한 일을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하지만 새로 생긴 부하들에게 업무를 분담하자니, 그건 불가능했다.
아이템 수집가.
레드가 가지고 있던 명성과 명함이 필요했다.
고로 본인이 직접 업무를 전부 소화해야 했다.
오늘도 음지에서 활동하는 아이템 수집가 한 명을 만나기로 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아이템 수집가는 골방에 박힌 음침한 사람처럼 낯가림이 심했다.
그래서 직접 만나는 게 아니면 좀처럼 만나주질 않았다.
오늘 약속도 상당히 어렵게 잡은 약속이었다.
‘파초선을 가지고 있는 놈이어야 할 텐데.’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서진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파초선은 찾았느니, 누구한테 있을 것 같다느니.
그런데 아직까지 파초선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 수집가를 찾지 못했다.
‘끙..’
박쥐는 어떻게 해서든 서진이 지시한 임무를 완수하고 싶었다.
서진이라는 배에 탑승한 이상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대장?”
박쥐를 쳐다보는 세 명의 시선.
“날 경호하도록 해라.”
다른 아이템 수집가들은 항상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그래서 내심 부러웠는데.
그리고 혹시나 레볼루션 관계자들을 만날까 마음을 조리기도 했었다.
‘아직 마땅히 이 녀석들을 써먹을 데도 없고.’
박쥐는 삼인방을 데리고 아이템 수집가를 만나러 향했다.
+ + +
“오늘 시험 치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니 끝까지 힘낼 수 있도록.”
박태산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다행히도 이상하게 생각은 하지만 크게 이상하게 생각은 안하는 것 같았다.
카피 능력자라, 여러 가지 능력이 짬뽕 돼 있어서 발생한 현상.
이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뭐야? 왜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
그렇긴 해도 모든 성향이 극상으로 나온 건 쫌 설명이 필요했고, 내가 먼저 박태산에게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프로그램 오류가 아닙니까요?’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별 말 없이 넘어갔다.
사람의 오류 보다는 프로그램 오류라는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박태산이 훈련장에서 나갔다.
“진짜 너희 둘은 대단하다.”
박태산이 훈련장에서 나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서 쉬고 있을 때, 정시아와 한설휘가 다가왔다.
“뭐가?”
옆에 있던 금석은 아예 대자로 누웠다.
“아니 어떻게 어제랑 똑같이. 아니 더 몰골이 피폐해질 수가 있냐. 누가 보면 진짜 실전에서 싸우다 온 줄 알겠어.”
정시아의 말에 나는 금석을 쳐다봤다.
옷이 걸레짝이 돼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가 내 상황을 안 겪어봐서 그래.’
말을 하는 대신 나는 금석처럼 대자로 누웠다.
‘진짜 존나게 힘들었다.’
버서커로 변한 몬스터 상대하랴,
골렘의 주먹을 피하랴,
옆에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이 자꾸 버프를 달라고 하는 징징거림에 귀 막으랴.
진짜 금석과 정시아의 능력을 미친 듯이 사용하고 활용했다.
눈물의 똥꼬 쇼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결국에는 골렘의 주먹에 맞고 사망 판정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싸우고 버텼다.
띠링.
금석의 팔을 억지로 내 쪽으로 끌어오며 베개로 만들려고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단체 문자인 듯 학생들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내일 팀전 명단?”
내일 있을 팀전의 명단이 발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