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실기 시험 시작이었다.47회
중간 고사
실기 시험은 총 세 단계였다.
첫 날,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의 피지컬 테스트.
둘째 날, 능력을 사용 한 개인의 피지컬 테스트.
셋째 날, 그룹을 형성 해 협력. 포지션. 작전 수행 능력. 등등 그룹 안에서의 역량 평가.
오늘은 실기 시험의 첫 날.
신체 스텟을 이용한 피지컬 테스트 날이었다.
훈련장에 들어서자 입학식 때와 마찬가지로 체력장을 하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둥글게 한 바퀴 돌면서 테스트를 진행하면 된다.”
피지컬 테스트를 담당하고 있는 총 감독 교관, 박태산이 말했다.
“준비 된 학생은 곧바로 테스트를 진행 할 수 있도록 해라.”
입학식 날에는 전부 기권을 했지만 지금은 기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오버 파워를 내면 냈지.
8월 달에 거행 되는 ‘학교 대항전’에 나가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의 점수를 합친 종합 성적이 50위권 안에 들어야 했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팔굽혀펴기 바가 설치 된 곳으로 걸어갔다.
입학식 때는 스텟이 E와 F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전부 C 등급을 찍은 상태.
그리고 아침마다 박태산의 지옥 훈련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 쯤이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가운 바를 잡고 엎드렸다.
-하나
바에 가슴이 닿자 바에 설치 된 센서에서 소리가 났다.
-둘
정 자세로 느긋하게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계음이 따라가지 못 할 정도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놈이 나타났다.
-열다..열일..열..스물..삼십..오..팔십..하나.
“으하하하!!!”
내가 50개 정도를 할 때 녀석은 100개를 가뿐히 돌파했다.
내가 100개를 했을 때 녀석은 300개를 돌파했다.
급기야 박태산이 다가왔다.
“금석. 그만해라. 너는 이미 만점을 넘어섰다.”
“멀었다!! 크하하!!”
물 만난 물고기의 뒷목을 강제로 잡은 박태산.
“너 때문에 다른 애들이 무서워서 못 오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지금 하는 테스트는 오후에 있을 시험을 위한 과정일 뿐이니 너무 힘 빼지 마라.”
“크으..”
금석이 박태산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러 갔다.
나는 딱 정확하게 200개를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가 CCC 등급에 맞는 개수였다.
마음만 먹으면 더 할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괜히 오후 테스트의 난이도만 올라 갈 뿐이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로 적당 선에서 멈췄다.
아침마다 박태산의 지옥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겨우 CCC등급에 맞는 개수를 쳐 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박태산의 하드 트레이닝으로 단련 된 몸.
등급 보다 높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다.
신체 능력이 높아진 게 아니라 이러한 트레이닝 동작에 적응 됐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앵간히 힘들지 않으면 힘든 것 같지도 않았다.
내게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극한의 정신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부 집합해라.”
오전 테스트가 모두 끝이 났다.
+ + +
오후에 치르는 시험이 오늘의 본격적인 시험이나 다름없었다.
오전은 가벼운 워밍업에 불과했다.
“능력을 사용하면 바로 실격이니 명심해라. 1번에서 10번 학생은 위치로.”
박태산의 말에 호명 된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번호에 맞는 문 앞에 섰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제 5훈련장이었다.
5훈련장 이라고도 하고 ‘프로그램 훈련장’이라고도 불렀다.
프로그램으로 모든 걸 조작하고 관리했다.
다양한 지형. 혹은 장애물. 몬스터. 아이템 등등을 프로그램으로 생성 할 수 있었다.
“무기는 검. 창. 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문 앞에 프로그램 조작 센서가 있으니 알아서 선택하도록. 선택한 학생은 바로 문 안으로 입장해라.”
문 안에 뭐가 있는지 학생들은 아무도 몰랐다.
매 년 시험 과제가 바뀌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이나 조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만 공통적으로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클리어만 해도 평타는 친다.’
이 말이 학교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말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클리어 하란 말인가.
이 사실을 모르는 학생들은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오직 나만이 이번 시험의 과제를 알고 있었다.
‘알면 저렇게 못 떠들고 있을 텐데.’
1번에서 10번 학생이 문 안으로 입장했다.
문이 닫혔다.
“앞에 학생이 끝 날 때까지 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도록.”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서진아~”
정시아가 엉금엉금 기어서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왔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정시아를 쳐다봤다.
“너어 알고 있지?”
“뭘?”
“이번 시험 종목.”
“....”
“예언 능력으로 본 거 다 알아~ 공유 해죠.”
정시아가 귀엽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올려 정시아의 혓바닥에 손바닥을 올렸다.
“에퉤퉤. 야!! 뭐하는 짓이야!”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 쪽에 집중 됐다.
정시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아이들의 시선을 다시 분산 시켰다.
“나도 몰라.”
“에이~ 알면서~”
“진짜로.”
“치사해.”
나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다.
잠깐 고민하기는 했다.
내가 믿는 몇 몇에게 시험에 대해 유출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하지만 딱히 시험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도 녀석들은 껌 씹듯이 시험을 최상위권으로 통과할 게 분명했다.
알려준다면 딱 한 사람인데.
나는 옆에 앉아 있는 금석을 쳐다봤다.
오전에 무리를 하고 점심을 먹은 직후라 그런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필기라면 모를까 실기면 이 녀석도 걱정이 없지.’
“진짜 안 알려줄꼬얌?”
정시아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귀여운 척을 계속 했다.
그 때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
연달아서 몇 명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시끌벅적 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1조 실습 끝.]
천장에 있는 스피커에서 여성 교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딜 갔다 온 건지 박태산이 등장해서 2조를 호명했다.
“11번에서 20번까지 위치로.”
2조에 포함 된 정시아가 내 팔뚝을 잡았다.
“얼른!!”
나는 웃으면서 정시아의 팔을 뗐다.
“너어..너어..”
정시아가 콧김을 뿜으며 쿵쿵 거리는 발걸음으로 13번 문 앞에 섰다.
분명히 들어가면 ‘에이 모양~ 별 거 없잖아?’라고 할 게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 + +
“3조는 위치에 서라.”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옆에서 졸고 있는 금석을 깨웠다.
“우리 차례야.”
나는 30번 문 앞에 섰다.
문 중간에 프로그램 조작 센서가 있었고,
세 개의 무기가 빙글빙글 돌며 화면에 표시 돼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검을 클릭했다.
그러자 내 손에 생겨나는 롱 소드.
평소에 목검으로 훈련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창이나 활 보다는 검이 손에 더 잘 맞았다.
“무기를 선택한 학생은..금석. 무기를 고르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한 번 입장하면 입장을 번복할 수 없다. 잘 생각..”
“으랴랴!!”
금석이 맨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피식.
그 모습에 나도 그렇고 나랑 같은 조로 편성 된 애들이 웃었다.
우리가 마지막 조라 더 이상 뒤에 대기조가 남아있질 않았다.
금석 덕분에 다른 애들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나는 금석 다음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쿵.
나무문이 닫혔다.
나는 롱 소드를 쥐고 있는 손목을 돌리며 정면을 쳐다봤다.
넝쿨로 우거진 돌 벽이 입구처럼 양 옆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입구였다.
‘미로 탈출.’
이번 시험의 과제였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오전에 실시한 체력장을 토대로 내 스텟을 추정한 수치가 보였다.
얼추 현재 내 스텟과 비슷하게 나와 있었다.
스텟 밑으로는 몇 가지 설명이 나와 있었다.
-미로의 난이도는 추정 스텟에 비례해 자동 조정 됩니다.
-미로의 난이도는 ‘C’ 등급입니다.
-제한 시간은 ‘30분’입니다.
-제한 시간이 모두 지날 때까지 미로를 탈출 못할 시, 훈련장 밖으로 자동 소환 됩니다.
-단 ‘사망’처리 될 시, 제한 시간 여부와 상관없이 훈련장 밖으로 자동 소환 됩니다.
홀로그램 하단 부에는 주의사항 몇 가지가 적혀 있었다.
-미로를 파괴 하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미로를 뛰어 넘어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존재 했는데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편법 쓰지 말라.’
홀로그램에 나타난 글자가 지워지듯 사라지고,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제한 시간 내에 미로를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홀로그램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오른쪽 머리 앞에 작은 구슬 시계가 나타났다.
-29:59
제한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였다.
나는 천천히 미로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건 단순히 미로를 탈출한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탈출’하는 게 점수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내가 가진 피지컬을 보여주느냐도 큰 점수를 차지했다.
무작정 ‘탈출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장애물이나 난간을 전부 무시하고 돌진만 해서 탈출하면 평균 점수 밖에 받질 못했다.
즉.
속전속결로 탈출을 하되, 중간 중간에 길목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처리를 해야 했다.
나는 전생에서 이 시험의 만점자를 떠 올렸다.
‘한설휘. 정시아.’
그리고 몇 명 더.
미로는 내 수준에 맞게 설계 돼 있기에, 난이도가 그렇게 높진 않았다.
하지만 빠른 탈출과 장애물 극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했다.
나는 걸음에 템포를 더해 뛰기 시작했다.
왼쪽과 오른쪽.
갈림길이 나왔다.
미로는 스텟에 따라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탈출구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미로의 패턴과 등장하는 장애물의 순서는 알고 있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똑같다.’
처음에 나오는 갈림길은 무조건 스텟에 상관없이 둘 다 정답인 길이었다.
단순히 고민을 하게끔 만들어, 시간을 잡아먹게 하려는 장치였다.
사람들은 은근히 첫 단추에 신경을 많이 쓰는 법이었고, 그러한 점을 노린 장치였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했다.
몇 걸음 안 가서 왼쪽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방향을 틀자 정면에 도끼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있는 오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익 취익.”
능력 사용 없이 C 스텟이면 일반 오크 한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게 돌진하는 오크.
전체적으로 동작이 크고 느렸다.
내가 이래보여도 비스트 마스터나 레드 같은 거물급들과 실전 경험을 쌓은 놈이었다.
그런 녀석들과 비교하면 오크쯤은 누워서도 팰 수 있었다.
오크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고,
내가 들고 있는 롱소드는 녀석의 머리를 갈랐다.
단 일격이었다.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막다른 길에는 고블린 3마리가 단검을 들고 서 있었다.
녀석들을 보자마자 제대로 된 길로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블린들은 오크처럼 곧바로 내게 달려들지 않고 경계를 했다.
그래서 내가 달려들었다.
“사..살려줘!!”
“문 열어줄게!!”
“막내야 빨리 문 열어!!”
나는 멈칫했다.
막다른 길이 양 옆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이 완전히 오픈 됐을 때 나는 곧바로 고블린 3마리의 몸에 롱 소드를 쑤셨다.
이 녀석들은 약한 척,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해 내가 등을 보이는 순간 단검을 꽂는 녀석들이었다.
나는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몬스터는 한 마리인가.’
중간 중간 옆에서 화살이 날아오기도 했고, 바닥이 움푹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피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힐끔 시계를 쳐다봤다.
-25:33
5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전생에 가장 빨리 미로를 탈출 한 건 정시아였다.
‘15분.’
이번 생에는 전생보다 내 훈수로 더 강해졌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이 단축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라면 나는 10분 만에 미로를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크. 고블린.
그 다음은 아마도.
‘오크 전사.’
오크 전사는 CCC 스텟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마지막 몬스터는 학생들의 한계치를 알아보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도 큰 페널티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때려잡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오크 전사를 마주했다.
그 때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났다.
-추정 스텟을 다시 계산 중.
“....”
뭔 소리야?
-서진님의 추정 스텟은 A 스텟입니다.
뭐라는 거야 자꾸.
-몬스터가 추정 스텟 A에 맞는 몬스터로 변경 됩니다.
나는 눈앞에 나타나는 오우거를 쳐다봤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