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닛!!! 연참하려고 했는데 잠깐 낮잠을 잔다는 것이....아아닛....46회
중간 고사
중간고사는 총 5일에 걸쳐 치러졌다.
1~2일은 필기시험.
3~5일은 실기시험.
오늘은 중간고사의 첫 날.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시험장 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헌터의 역사-
라는 과목 이름이 상단에 적혀 있었다.
“부정행위 간주 시, 곧바로 0점 처리 및 퇴실이니까 주의해라.”
감독 교관이 몇 가지 당부사항을 알려줬다.
나는 손을 들었다.
“다 치면 시험지 제출하고 나가도 되나요?”
“그렇다. 이제 작성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시험지를 쳐다봤다.
‘개 쉽네.’
시험지를 빠르게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
5분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문제가 발생하면 조용히 손을 들라고 했을 텐데. 그렇게 마음대로 일어나면 0점 처리인 거..”
“아뇨. 다 작성해서요.”
감독 교관에게 시험지를 내밀었다.
“....”
시험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서 쳐다보는 감독 교관.
“크흠.. 그래. 건물을 나가는 건 안 되니, 조용히 밖에서 다음 과목 공부를 하고 있을 수 있도록 해라.”
“예.”
시험장을 나갔다.
+ + +
2번 째 시험 과목은 ‘몬스터의 종류와 약점’이라는 과목이었다.
이 역시 앞에 과목과 마찬가지로 5분 만에 작성을 완료 했다.
“교관님.”
“어..어. 그래.”
시험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갔다.
+ + +
점심시간.
교관들이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오늘 시험 난이도와 오늘 있었던 특이사항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단 두 사람만 제외하고.
“오늘 오이소박이가 예술인데?”
평소 밥 먹을 때는 먹는 거에만 집중하는 신지수.
그리고.
“그렇군.”
원래 조용한 박태산.
박태산이 신지수 식판에 오이소박이가 동난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식판에서 오이소박이를 집어 신지수의 수저에 올렸다.
“....”
“....”
둘은 눈이 마주쳤다.
“땡큐.”
“어.”
오이소박이를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옆에 있던 교관이 말을 걸어왔다.
“지수.”
“응?”
“시아랑 설휘 너희 반이지?”
“응. 왜?”
“와 진짜.. 걔네 장난 아니더라.”
“뭐가?”
“내가 오늘 1~4교시까지 걔네 시험 감독했는데 진짜 서로 경쟁하듯이 문제를 풀더니, 30분도 안 돼서 다 풀고 나가는 거 있지? 걔네 4과목 푸는데 2시간도 안 걸렸어.”
“새삼스레. 걔네 우리 학교 특급 유망주 애들이잖아.”
“그렇긴 해도 이번에 전체적으로 시험 난이도 어렵게 했잖아.”
“걔네는 2~3학년 시험지 갖다 줘도 척척 풀 걸?”
두 교관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누군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20분.”
모두의 시선이 그 교관을 향했다.
“4과목 푸는데 20분 걸린 애가 있어.”
외국어 교관인 정아영이 교관들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의 말에 몇 몇 교관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 애들 종종 있잖아요. 후다닥 다 찍고 매점 가는 애.”
“맞아. 작년에도 몇 명 있었지, 아마?”
정아영은 수저를 내리며 고개를 조용히 흔들었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정아영의 말에 웃던 교관들의 입꼬리가 멈칫했다.
“오늘 오전 시험 과목 중에 제가 수업한 외국어 과목이 있었던 거 다들 아시죠?”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눈으로 대충 채점을 해봤는데.”
“해봤는데?”
“0점? 아니면 운 좋게 20점정도?”
정아영이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만점인 것 같더라고요. 제가 시험을 너무 쉽게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
교관들은 단체로 동상에 걸린 듯 얼어붙었다.
학교에서 정아영의 시험 출제 난이도는 극상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그런데 5분 만에 만점이라니.
한 교관이 의문을 제기 했다.
“능력 사용 한 거 아닙니까? 5분이면 답을 아무 막힘없이 주르륵 써야 가능한 시간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그의 말에 다른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소박이를 우물우물 씹던 신지수가 한 마디 했다.
“시험장에 능력 감지 센서 설치 돼 있잖아요.”
“그래도 감지 안 되는 능력이..”
“능력 감지 센서 설치한 사람이 누군지 잊으셨나요?”
“....”
의문은 단숨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는 건 진짜 5분 만에..”
정아영이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학생 이름이 뭐에요?”
신지수가 물었다.
정아영이 놓았던 수저를 집으며 말했다.
“서진이요. 서진도 신지수 교관님 반이죠?”
움찔.
“하하..”
신지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자식 예언 능력 사용한 거 아니야?’
방금까지 능력 감지 센서 타령을 한 신지수 머릿속에 그런 의문 부호가 생겨났다.
하지만 어떠한 능력도 능력 감지 센서의 센서 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대왕 양파 같은 놈.’
“다른 과목도 설마 만점은 아니겠죠?”
정아영 교관이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다른 교관들이 ‘에이~ 설마요’하는 반응을 보였다.
“적어도 박태산 교관 시험은 만점을 받기 힘들지 않을까요?”
신지수가 말을 하며 박태산을 힐끔 쳐다봤다.
박태산의 전투 수업 시험은 시험 난이도가 극상 정도가 아니라 극악으로 유명했다.
시험 평균 점수가 50점일 정도니.
“작년에 천하의 서시우도 박태산 교관 시험만 유일하게 80점 받았잖아요.”
“그렇죠. 아직 박태산 교관의 시험에서 만점자가 없기로 유명하잖아요.”
“저도 박태산 교관이 출제한 시험지를 풀면 몇 개는 틀리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문제가 진짜..”
교관들이 혀를 내둘렀다.
오직 박태산만이 평온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소화를 시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근데 이거는 쫌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한 교관이 다 먹은 식판을 수저로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제가 감독한 시험장에서는 한 학생이 시험 시간이 다 끝났는데도 시험지를 제출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출하라고 말하니까 으르렁 거리면서 반항하는 거 있죠?”
“그런 학생이 있어요?”
“네. 학생 이름이.. 금석이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움찔 거렸다.
담임 교관인 신지수와, 금석을 특별지도 하고 있는 박태산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박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저도.”
신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에게 금석은 아픈 손가락처럼 다른 교관에게 얘기를 전해 들으면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근데 시험지 보니까 꽤 잘 친 것 같더라고요.”
부랴부랴 자리를 이탈하려던 신지수와 박태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왜 웃어?”
신지수가 박태산을 쳐다봤다.
“안 웃었다.”
“..뻥 치시네.”
그들은 아무도 몰랐다.
금석은 이번 시험에 목숨을 걸고 임하고 있다는 것을.
+ + +
중간고사 이주 전.
식당에서 밥 먹고 있을 때 금석은 정시아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중간고사 시험, 낙제점으로 받으면 학교 포인트 5만p 삭감 된데.”
“....”
한 달에 10만p 지급 되는데.
절반이 삭감 된다니.
그렇다는 말은 가뜩이나 부족한 고기를 반이나....
“아, 그리고 추가로 박태산 교관님이 낙제생들을 대상으로 주말에 특별 지도를 한다는 소리도 있던데.”
금석은 결심했다.
절대. 절대 절대.
낙제는 하지 않기로.
+ + +
다시 중간고사 첫 날.
오후 시험이 시작 됐다.
오후 첫 과목은 박태산의 ‘전술의 이해’였다.
이번에도 오전처럼 막힘없이 술술 답을 써내려가던 중 마지막 문제에서 멈칫했다.
-아래 ‘보기’의 상황을 보고 ‘나’ 입장에서 팀원들에게 지시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서술하시오.
“....”
상황은 되게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또한 ‘나’와 팀원들의 능력에 대한 묘사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하지만 빌런들의 묘사는 되게 애매모호하게 나와 있었다.
지문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조건 빌런과 싸우는 전개의 서술을 강요하고 있었다.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전술을 짜, 상대를 괴멸하시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S랭크로 구성 된 최강의 조합이었다.
누가 봐도 이건 적들과 싸워야 했다.
문제는 싸우는데 어떻게 싸울 것이냐. 이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적들에 대한 묘사를 살폈다.
능력 묘사가 대충 나와 있긴 했지만 정확하게 나와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빌런은 'A급 헌터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라고만 나와 있었다.
빌런에 대한 데이터가 아군에 대한 데이터 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지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딱 두 자를 적었다.
-도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험 감독관에게 시험지를 제출했다.
+ + +
중간고사 1일차가 저물었다.
박태산은 손에 들어온 ‘전술의 이해’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중간고사가 모두 끝나면 채점하는 게 암묵적인 학교의 룰이었지만 박태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1학년은 총 300명이었고, 시험지도 총 300장이었다.
20점. 30점.
높으면 60점.
200명 정도를 채점 했을 때의 점수였다.
“75점이군.”
박태산은 손에 들고 있는 시험지의 주인을 확인했다.
“한설휘.”
지금까지 가장 고점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중간고사 성적은 신입생 환영회 때 임시로 봤던 시험들의 연장선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 고점을 기록 했던 학생은 중간고사 때도 두각을 나타냈다.
반명 평균 이하인 학생들은 여전히 평균 이하에 머물러 있었다.
가끔가다 돌연변이 같은 학생이 존재 했지만.
박태산은 계속해서 채점을 이어갔다.
“금석..”
시험지를 들고 있는 박태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인다. 부순다. 팬다.’
금석의 시험지에 숱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었다.
박태산은 금석의 시험지를 옆으로 치우며 생각했다.
‘전술 교육도 시켜야 겠군.’
그러던 중 이름 란에 ‘서진’이라고 적혀 있는 시험지를 집어 들었다.
1~20번 문제까지는 수업 시간에 가르친 내용이었다.
하지만 21~25번 문제까지는 ‘너라면 어떡할래?’와 같은 사고와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였다.
1~20번는 전부 정답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70점이었다.
21~24번까지는 각각 5점씩.
25번 문제는 10점이었다.
하지만 21번부터는 서술형이라 웬만하면 박태산은 5점을 주지 않았다.
딱 정해진 정답은 없었지만 최적의 정답은 존재했다.
“흠..”
박태산은 서진의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21~24번 문제까지.
학생이 작성 한 답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마치..
‘현장에서 몇 십 년은 구른 헌터 같군.’
박태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출제 의도를 뛰어넘는 모범 답안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모범 답안 밑에는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 할 근거로 ‘사례’를 몇 가지 들고 있었다.
박태산은 서진의 모범 답안에 도저히 점수를 깎을 부분을 찾지 못했다.
21~24번 문제까지 전부 5점을 주고, 마지막 25번 문제.
10점짜리 문제였다.
“....”
단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박태산은 두 글자를 보자마자 옆에 자신 역시 두 글자를 적었다.
+ + +
이틀에 걸친 필기시험이 모두 끝이 나고 3일 째 아침이 밝았다.
필기시험의 여파 때문인지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야!! 가채점 해봤어?”
“너는?”
“나 망했어. 아..”
“전술의 이해 3번 문제 정답 2번 아니야?”
“뭐래 멍청아!! 3번이지.”
“나는 2번 찍었는데?”
“나도 2번.”
“씨..발...3번 아무도 없냐?”
나는 자리에 앉아서 의자를 뒤로 까딱까딱거리면서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실기시험은 필기시험 보다 널널했다.
한 반씩 실기시험을 보기 때문에 우리 반은 다음 차례였다.
그래서 교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아야. 시험 잘 봤어?”
“그럭저럭?”
“흐음..그래?”
“보나마나 이번에도 네가 1등 아니야?”
“모르겠어. 그랬으면 좋겠다.”
앞에서 정시아와 한설휘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설휘가 은근히 정시아 견제하는 것 같은데.’
반면 정시아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1등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는 애니까.
‘정시아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둘 중에 누가 1등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지수 교관이 교실에 등장했다.
“2반 곧 시험 끝나니까 슬슬 준비들 하고 있어.”
“으라랴차!!”
어제까지 풀이 죽어 있던 금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