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42회
레인보우 새
포인트 상점.
나는 안고 있던 레이를 내려놓았다.
크릉크릉!!
레이가 하얀 방을 신기하다는 듯이 뛰어다녔다.
“흠.”
물건이나 아이템뿐만 아니라 생명도 이 안에 가지고 올 수 있는 모양이었다.
레이를 안고 있다가, 의식을 못하고 포인트 상점을 열었는데.
레이가 딸려왔다.
“나 저기 갔다 올 테니까 놀고 있어.”
크릉!
나는 일단 ‘능력’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벽면에 ‘스텟’ 방처럼 책이 다다닥 꽂혀 있었다.
최소 수백 권이 넘어 보였다.
“플라이 능력.”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책 한권이 내 손으로 날아왔다.
책을 펼치자 첫 장에 습득 가능한 능력치가 나와 있었다.
-체력 스텟 DDD급 이상.
-지혜 스텟 DDD급 이상.
-민첩 스텟 DD급 이상.
요구하는 능력치는 모두 오케이고.
“가격이..5000p. 거의 딱 돈이네.”
평일에 열심히 벌었다.
“구입.”
내 말에 책이 하얗게 빛이 나더니 하얀 양피지로 바뀌었다.
-‘플라이’ 능력을 구매완료 하셨습니다.
-바로 습득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양도 시, ‘양도권’을 추가로 구매하셔야 합니다.
“....”
양아치가 따로 없네.
근데 다른 사람에게 양도가 된다는 말은.
“오호.”
정시아나 금석.
혹은 한설휘에게 능력을 사서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양도권이 얼만지 물어나 볼까.’
“양도권은 얼마야?”
-C급 능력 이하는 500p. B급은 1000p. A급은 2000p. S급은 5000p입니다.
양아치 맞네.
내가 사서 주는 건데도 포인트를 받아먹으려고 하다니.
그래도 괜찮은 정보를 얻었다.
나중에 포인트 여유가 생기면 한 번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플라이’ 능력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재차 물어왔다.
“습득.”
내 말에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양피지가 하얀 빛을 내며 내 몸에 스며들었다.
-‘플라이’능력을 습득 하셨습니다.
플라이 능력은 다른 능력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활용 범위가 넓긴 했지만 이 세계에서 하늘을 나는 능력은 많이 저평가 돼 있는 능력 중 하나였다.
체력과 근력 스텟이 높으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점프를 높이 할 수도 있었고,
직접적인 플라이 능력이 없더라도 가진 능력을 잘 활용하면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능력자들이 꽤 많았다.
단적인 예로 한설휘도 ‘화염’ 능력을 이용해서 하늘을 단시간 날 수가 있었다.
너무 이렇게 말하니까 ‘플라이’ 능력이 쓰레기 같은데, 어떤 능력이든 없는 것 보다는 있는 편이 훨씬 좋으니까.
나는 능력 방을 나갔다.
내게 남은 포인트는 고작 300p.
내게 다가오는 레이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고 ‘정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딱히 이 방을 활용 할 일이 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방을 활용하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어를 입력했다.
-하늘산 ‘레인보우 새’ 위치.
그러자 곧장 검색에 필요한 포인트가 화면에 나타났다.
-500p
“....”
진짜 여기만큼 물질만능주의가 따로 없었다.
나는 300p를 입력했다.
-300p만큼의 정보를 검색하시겠습니까? 정확한 정보 검색이 안 되거나, 혹은 정보가 누락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예’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고 내가 입력한 검색어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하늘산 꼭대기에 ‘레인보우 새’의 둥지가 있다. ‘레인보우 새’는 보통 둥지가 아닌 하늘산을 떠 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 오면 ‘레인보우 새’는 둥지.. 와 시발 여기서 끊는다고?”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뭐, 드라마나 소설에서 하는 절단신공도 아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레인보우 새’의 둥지 위치를 알았으니 이 정도면 소소한 성과가 있었다.
“레이. 나가자.”
크르릉.
따분하게 하품을 하고 있는 레이를 데리고 포인트 상점을 나갔다.
+ + +
주말의 아침이 밝았다.
하늘산을 가기 위한 간단한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금석이 포경수술을 한 것처럼 내게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나도.. 데려가라..”
“어딜 가는 줄 알고?”
“지옥이라도.. 따라 가겠다.”
어허.
이 녀석이 내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금석이 내게 왜 엉겨 붙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긴 했다.
평일에 박태산의 특별지도를 받던 중 금석이 박태산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교관에게 최초로 대련을 신청한 학생이었다.
박태산은 대련을 받아들였다.
단, 조건으로 금석이 패배시 자신에게 주말지도를 받는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금석이 승리시, 금석은 박태산의 지도에서 탈출이었고.
이건 금석만 빼고 다 아는 승부였고, 결과는 당연히 박태산의 승리였다.
‘이러다 금석이 박태산의 애제자가 되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속으로 웃으며 금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띠링.
금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슬쩍 핸드폰 액정을 보니 박태산의 문자였다.
“으으..서진. 제발..”
문자 내용을 확인 한 금석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나는 금석의 손을 친절히 치우며 말했다.
“그러길래 덤빌 사람을 잘 보고 덤볐어야지. 너는 이참에 불도저처럼 막 들이 받는 성질 좀 고쳐야 돼.”
“박태산 교관의 약점을 알려줘.”
“....”
나는 무시를 하고 레이를 안았다.
“뚜뚜는 네가 데리고 다닐 거지? 레이만 데리고 간다.”
“나..나도 데려가.. 나도.. 제발.. 박태산 교관은 악마다. 악마야. 악마가 틀림없다!!”
쯔쯧.
나는 혀를 차며 기숙사를 나섰다.
+ + +
“도련님 원래 애완동물 싫어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늘산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부산이 아닌 강원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실장을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이실장은 여전했다.
여전히 친절했고, 여전히 내게 관심이 많았다.
나는 무릎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레이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보다 보니까 귀엽더라고.”
내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 이실장.
“진짜 얼마 전에 도련님이 입원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그래?”
“예. 사모님이 신지수 간호 교관 멱살을 잡고 얼마나 흔드셨는데요.”
“....”
몰랐다.
어쩐지 신지수 교관이 욕을 많이 하더라니.
“신지수 간호 교관 말로는 혼자 훈련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하던데..”
이실장이 말끝을 흐렸다.
이 양반 또 분위기 잡네.
또 어떤 낯 간지러운 얘기를 하려고 이러실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크흡..”
이실장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때는 내가 무리한 게 맞긴 한데 이 아저씨는 왜 또 신파극을 찍으려고 하실까.
“도련님은 지금도 충분히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압니다. 저 이태성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크흡..”
환장하네.
나는 고개를 돌려 창가를 쳐다봤다.
강원도로 가는 내내 이실장의 신파극은 계속 됐다.
+ + +
“도련님 그러면 요 앞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 땡큐~”
강원도까지 이왕 온 거 부산으로 복귀 할 때도 이실장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실장이 차를 몰고 숙소를 잡으러 갔다.
이실장은 단순히 내가 바람 쐬러 강원도에 온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하늘산을 쳐다봤다.
하늘산이라는 명칭답게 산 정상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목이 아플 정도로 뒤로 젖혀야 하늘산의 정상이 보였다.
하늘산은 중간지점까지는 등산객도 등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지점부터 정상까지는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졌고, 새 떼가 자주 출몰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일단 중간지점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플라이’능력을 실험해 보니 현재 내가 비행 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10분이 지나면 1시간 정도 마나 회복 시간을 가져야 했다.
플라이를 사용해서 중간 지점에 가서 1시간을 휴식하나,
1시간 걸어서 중간지점까지 가서 플라이를 사용하나 거기서 거기였다.
‘레이도 산책 시킬 겸.’
“레이 가자!”
크르르!!
우리는 하늘산 입구로 뛰어갔다.
+ + +
크르르~ 크르~
매일 뚜뚜랑 같이 있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한 번씩 레이가 강아지라고 착각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산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꽤 야성미가 묻어나오는 한 마리 늑대가 분명했다.
‘아직 새끼라서 귀욤귀욤 하지만.’
하늘산의 중간 지점에 앉아서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레이를 쳐다봤다.
나비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레이는 나비를 따라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이 생각 보다 더 없네.”
하늘산은 등산객이 많이 없는 산으로 유명했다.
등산이라는 게 산 정상을 찍고 산 아래의 정경을 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하늘산은 그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늘산은 관광객은 거의 없었고 동네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락내리락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 쪽을 쳐다봤다.
군사 분계선처럼 철책이 위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있었다.
-민간인 출입 금지-
철책 중간 중간에 설치 된 팻말이 진짜 군사 분계선을 연상케 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이 세계에도 북한과 남한이 존재 했다.
남북관계도 내가 살던 세상이랑 비슷했다.
얼마 안 가, 북한이 대재해로 망하는 탓에 강제로 통일 국가가 되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는 분단국가인 상태였다.
“레이!”
내 부름에 레이가 나비를 쫓다가 방향을 틀어 내게 달려왔다.
크르릉.
녀석.
꼬리가 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굉장히 신이 난 모양이었다.
“레이. 너 고소공포증 있어?”
크르릉?
“이리와 봐.”
나는 레이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라이.”
내 몸이 하늘로 붕 뜨기 시작했다.
꽤 몸이 하늘에 떴을 때 나한테 안긴 레이가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아우울..
상태를 보아하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날아보겠어? 안 그래?”
나는 하늘산 정상에 좌표를 찍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레이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더 처량해지기 시작했다.
반 정도 올랐을까?
새가 한 마리, 한 마리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새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손으로 새 떼를 쫓으며 주변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잇는지 살폈다.
절벽에 한 칸 남짓한 홈이 있었고, 나는 그리로 날아갔다.
“레이, 괜찮아?”
내 품에 안겨서 새 떼를 향해 계속해서 으르렁 거리던 레이.
얼굴에 새에게 쪼여 작은 상처가 여러 개 나 있었다.
크르릉..
“역시 이실장에게 맡길 껄 그랬나.”
나는 레이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계에 존재하는 새라는 새는 모두 모아 놓은 것처럼 많은 종의 새들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까맣게 덮고 있었다.
저 새들은 정상으로 가는 길목을 막는 일종의 경비병. 혹은 문지기들이었다.
헌데 저승에서 모니터로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새 떼가 출몰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네.’
시간이 지나면 녀석들이 경계 태세를 풀고 흩어질까 기대를 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레이.”
하늘을 향해 으르렁거리던 레이가 나를 쳐다봤다.
“지상에 내려다 줄게.”
일단 레이를 지상에다가..
크르릉.
레이가 앞발을 내 무릎 위에 올리며 고개 세차게 옆으로 흔들었다.
“같이 가자고?”
크릉!!
“음..”
충성심 하나는 기가 막히긴 한데.
나는 살짝 고민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렇게 새 떼가 많이 출몰할지 몰랐다.
알았다면 레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텐데.
레이를 데리고 온 이유는 평일에 자주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새 떼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하늘 관광이나 시켜주면서 유유자적 하게 목표 아이템을 수거 할 계획이었다.
이곳은 난이도가 낮은 곳이었으니까.
근데 난이도가 조정 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적인 틀과 시나리오는 같으니까.
새 떼를 뚫고 지나가기만 하면 모니터로 봤던 흐름대로 진행이 될 것 같은데.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해 생각을 했고, 결단을 내렸다.
“오케이. 같이 가자.”
레이의 충성심에 보답을 해주기로 했다.
아우울~
레이가 목청껏 울었다.
나는 레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음?”
플라이를 시전하려고 할 때 갑자기 새 떼로 인해 어둑어둑 하던 하늘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하늘을 쳐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