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드캡터체리 좋아했는데. 그냥 그렇다구요.40회
달빛력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쏠려있다.”
박태산이 내 어깨를 잡고 왼쪽으로 미세하게 조정을 했다.
“금석.”
다음 타겟인 금석에게 걸어가는 박태산.
“침 흘리지 마라.”
“크으으..”
금석과 나는 현재 기마 자세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30분 째. FM자세로.
나는 박태산의 트레이닝을 먼저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괜히 반항하려 하면 트레이닝 강도가 강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금석은 첫 날이라 반항기가 가득한 얼굴로 박태산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가 정확하면 할수록 스텟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커진다.”
박태산이 말을 하며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금석. 자세가 앞으로 쏠렸다.”
박태산의 말에 금석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펴며 소리 질렀다.
“안 해!!!”
“서진이 말 안 하던가?”
박태산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온 건 너희의 선택이었지만, 이곳에 온 이상.”
금석 앞으로 걸어가는 박태산.
“너희의 선택권은 없다.”
박태산이 이름 그대로 태산 같은 손길로 금석의 상체를 눌렀다.
그러자 금석의 하체가 자연스레 굽어졌다.
“이..이.. 시바알!!”
금석은 금기어를 말하고야 말았다.
박태산의 이마에 힘줄이 한 가닥 돋아나는 걸 보고 나는 시선을 돌렸다.
“지금 시발이라고 했나, 금석?”
바닥에 있는 10kg 아령을 집어드는 박태산.
“시발. 교관도 참 좋아하는 단어지.”
“....”
금석의 양 손에 살포시 아령을 쥐어주는 박태산.
“시발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제대로 훈련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 그런 의미에서 금석. 너는 교관이 학교에서도 특별지도를 해주도록하지.”
나는 혹여 내게 불똥이 튈 새라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팔 올리고, 다리 더 내려.”
금석의 수난시대가 시작 됐다.
+ + +
중간고사까지 남은 시간은 2주일.
학교 분위기가 학기 초에 비해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자, 붕대는 이런 식으로 감으면 되고.”
지금은 신지수 교관의 간호 수업 시간이었다.
간호 교관 수업은 다른 수업에 비해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잡담을 하는 애들이 많았다.
잡담을 해도 신지수 교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안 듣는 너희 손해.’
라는 마인드였기 때문에.
“너희 괜찮은 거 맞아?”
정시아가 나와 금석의 팔을 들었다.
그러자 팔이 힘없이 털썩 무릎에 안착했다.
“이 정도면 문제 있는 거 아니야? 하드 트레이닝이 아니라 혹사 같은데.”
정시아의 말 대로였다.
오늘은 트레이닝을 넘어서 혹사당한 것 같긴 했다.
금석의 발언 한 마디에 기어코 내게도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스텟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었기에 보람은 넘쳐났다.
“아프다.”
금석의 몸을 손가락으로 찌르던 정시아가 금석의 한 마디에 손을 내렸다.
“우와. 너 아프다는 말도 할 줄 알아?”
“..네가 한 번..”
말을 하다가 아침 훈련 시간이 떠올랐는지 금석이 치가 떨리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신지수 교관의 수업을 경청하고 있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우리와 무리를 형성하긴 했지만, 그녀는 수업 시간이 되면 항상 맨 앞자리를 유지했다.
웅담 때문에 전생 보다 성장이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슬슬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부딪히는 시기일 텐데.
나중에 기회 봐서 조언을..
“어이. 거기.”
신지수가 내 쪽을 쳐다봤다.
“사랑하는 여인의 뒷통수를 열렬히 쳐다보고 있는 조교는 앞으로 나오도록 한다. 실시!”
“....”
처음에는 내 얘기하는지 몰랐다.
근데 서서히 나를 향하는 시선이 많아지자, 깨달았다.
“응. 너 맞아.”
신지수가 확인 사살을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설휘야. 뭐해?”
“네?”
“낭군님이 나왔잖아.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와야 하지 않겠어?”
“오오오~~”
“꺄아!!”
“이야~~”
신지수의 말에 조용하던 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난 한설휘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얼굴이 시뻘겠다.
이전 박태산 교관 수업에서 진행 됐던 ‘인명 구조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 전교에서 소문이 퍼졌다.
한설휘와 내가 입을 맞췄던 일.
그 일은 과장과 와전의 과정을 거쳐 한설휘와 나는 1학년 공식 1호 커플이 된 분위기였다.
사실은 내가 까였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교관님.”
한설휘가 부정했다.
“근데 얼굴은 왜 빨개져?”
“그냥.. 시선이 집중 되니까..”
“그래?”
“네.”
“서진이 말로는 너랑 사귄다던데?”
신지수의 말에 한설휘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야!! 너 설마..웁..”
나는 황급히 한설휘의 입을 틀어막았다.
“교관님. 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요.”
“아 참참. 내가 다른 애들이랑 착각을 했나보다. 쏴리~”
내 말에 신지수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한설휘의 입에서 손을 뗐다.
신지수에게 낚인 걸 알고 얼굴이 더 달아올라, 완전히 터질 것 같았다.
“교관님.”
“응?”
이렇게 혼자만 당할 순 없지.
“박태산 교관님이랑 사귄..”
신지수가 치료 능력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 복부에 니킥을 꼽았다.
“크흡..”
“자. 복부에 고통을 겪는 환자가 발생했다고 치면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야 할까.”
신지수가 나를 강제로 눕혔다.
“일단 고통의 정도에 따라 호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 해. 그 다음은..”
나를 쳐다보는 신지수.
입술을 움직여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자식 얘기 꺼내기만 해.”
그리고 싱긋 웃는 신지수.
나 역시 입술을 움직였다.
“박태산 교관님 주말에 소개팅 하신데요. 저 예언 능력 있는 거 아시죠.”
“뭐..뭐라고?!!”
신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뻥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이자식이..”
신지수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누워.”
“..예?”
“누우라고. 심폐소생술 수업 진행 하려고 나오라고 했어.”
‘근데 왜 어금니를 물고 말하는 건데?’
나는 바닥에 도로 누웠다.
신지수가 학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응급조치 중에 가장 많이 활용 되는 걸 꼽자면 단연 심폐소생술이 1등이다. 그런데 막상 배웠다고 해도 실제로 사용 할 상황이 닥치면 흉부를 너무 세게 압박한다던지. 아니면 응급조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다던지. 그런 사례가 많다. 하지만 너희들은 헌터 학교의 학생들이니 만큼 한 번 알려주면 안 까먹으리라고 믿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본 중의 기본.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하겠다. 우선 조교들의 시범을 보도록 하자.”
나는 손을 들었다.
“배운 적 없는 없는데요.”
“넌 환자 역할이니까 누워 있기만 해. 설휘가 알아서 할 거야. 설휘. 심폐소생술 할 줄 알지?”
“네.”
“실시.”
한설휘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확한 순서대로 심폐소생술 절차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기도를 확보 후,
흉부를 압박하고,
내 입술에 인공호흡을..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고개를 탁 잡고 내 코를 틀어막는 한설휘.
“하는 시늉만 하면..웁..”
그녀의 폐에서 흘러나온 공기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입술을 뗀 한설휘.
“이건 수업이야. 제대로 해야 해.”
다시 내게 입술을 들이미는 한설휘.
표정이 한 없이 진지한 걸로 봐서는 나만 혼자 음흉한 생각을 하는 중인 것 같은데.
‘근데 왜 날 잡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는 것 같지?’
+ + +
“아이 새끼야!! 너 내가 점심 먹고 양치질 하라고 했어, 안 했어!!”
금석과 한 조가 된 정시아가 소리를 질렀다.
“했다.”
“근데 왜 입에서 돈까스 냄새가 그렇게 나냐고!!”
“매점에서 피카츄 돈까스 사 먹었다.”
“그럼 또 했어야지!!”
“했다.”
“근데 왜 나냐고!!”
“..부모님이 날 이렇게 낳아주셨다.”
“..야..그렇게 말하면..”
“부모님을 대신해서 내가 사과하도록 하겠다. 미안하다.”
“아니.. 야..”
돈까스 무한 츠쿠요미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학교 수업이 모두 끝이 났다.
금석은 아침 훈련에서 박태산의 콧털을 건드린 덕분에 방과후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박태산에게 끌려갔다.
그 때 금석의 표정이란..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정시아와 한설휘는 중간고사 전까지 각자 훈련에 매진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고사 전까지 개인플레이를 하게 됐고, 나 역시 환영하는 바였다.
“레이~ 뚜뚜~”
기숙사에 도착하자 우리의 귀여운 짐승 두 마리가 마중나왔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뚜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주인은 오늘 늦게 들어 올 거야.”
멍멍?
“오면 많이 위로해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웅담을 챙겼다.
“나랑 같이 산책 갈까, 애들아?”
멍멍!!
크르릉!!
뚜뚜와 레이를 데리고 기숙사를 나섰다.
+ + +
한 번 오른 적이 있는 뒷산을 등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다.
‘밤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훈련해라.’
라는 첸의 말.
단순히 서적에서 본 말이라고는 했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밤하늘.
그리고 달빛.
그 아래에서 훈련을 하면 달빛 능력자인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첸의 집에서 돌아온 후 며칠 훈련을 해 봤는데.
그냥 산이라서 공기가 좋고.
꽤 쌀쌀하고.
야경이 예쁘고.
이 정도의 장점만 있었다.
크르릉!!
믕망멍!!
레이와 뚜뚜가 제 집처럼 산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절대 내 시야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레이와 뚜뚜가 내 옆으로 뛰어왔다.
크릉크릉.
망망망.
“왜 그래?”
녀석들이 하나 된 얼굴로 옆에 보이는 수풀을 가리켰다.
“저기 뭐 있어?”
크르릉.
멍뭉.
나는 아이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조금 걸어가자 수풀 너머로 작은 공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공터에는 한 남자가 웃통을 까고 자리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서..시우?’
명상 중인 것 같았다.
나는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서시우는 종종 지금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훈련을 하곤 했다.
오늘이 종종 있는 날의 하루인 것 같은데.
‘이런데서 마주치면 안 그래도 안 좋은 관계가 더 틀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뒤로 돌아 가던 길을 마저 가려고 했다.
그런데 검은 짐승들은 그게 아닌 모양인지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서시우에게 달려갔다.
멍멍!!
크르릉!!
‘이런 사교성 좋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기어코 명상 중인 서시우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강아지..인가.”
덤덤하게 말을 하며 뚜뚜와 레이에게 손을 가져가는 서시우.
지금까지 본 얼굴 중 가장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들을 쓰다듬었다.
멍멍!!
크릉!!
뚜뚜와 레이가 내 쪽을 쳐다봤다.
자연스레 서시우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형제가 눈이 마주쳤다.
형님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고,
동생은 미소를 입에서 지웠다.
나는 서시우에게 걸어갔다.
“방해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가던 길에..”
턱 끝으로 뚜뚜와 레이를 가리켰다.
“녀석들이 이곳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하던 거 계속 해. 뚜뚜. 레이.”
내 부름에 뚜뚜와 레이가 서시우의 손길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뛰어왔다.
순간 서시우의 눈빛에서 아쉬워하는 기색이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가려고 했다.
“몸은.. 괜찮은가 보군.”
근데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서시우를 쳐다봤다.
별 일 아닌 것처럼 스트레칭을 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어어.. 그래. 병문안 왔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리고 네가 내 옆에 앉아서 하는 소리도 들었지.
“고맙다.”
진짜 가려고 했다.
근데 녀석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한 오지랖이 발동 했다.
“서시우.”
서시우가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억지로 무리 할 필요 없어. 순리대로 살아.”
내 말에 서시우의 눈썹 한 쪽이 꿈틀댔다.
“무슨 뜻이지?”
“그냥. 그런 것 같아서. 네가 날 싫어하는 건 괜찮은데.”
“....”
“혹시나 네가 네 자신을 싫어하게 될 까봐. 걱정이..”
“걱정?”
“그래. 걱정.”
“네가 언제부터 내 걱정을 했다고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거지?”
“어.. 꽤 됐어. 나 너 걱정 되게 많이 해.”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앞으로 학교에서 너 마주치면 인사한다? 너랑 나랑 쌩~ 하니까 주변에서 말이 많더라고. 그리고 너 내 친구랑 되게 친해졌다며.”
“..귀찮게 굴어서 몇 번 혼내준 것뿐이다.”
츤데레 같으니라고.
서시우는 아무나와 대련을 안 하기로 유명 했다.
하지만 금석의 대련 신청은 꼬박꼬박 받아주고 있었다.
답은 하나.
나 때문에.
금석이 내 친구이기 때문에.
‘신경 안 쓰는 척 은근히 신경을 써 준단 말이지.’
“나 간다~”
“....”
나는 뚜뚜와 레이를 데리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나도 훈련을 해보실까.”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목검을 꺼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휘두르고 있을 때, 귀에 메시지가 울렸다.
-달빛력이 스텟 창에 추가 되셨습니다.
“얼래? 달빛력?”
전생에 서진이 이련 스텟이 있었던가.
나는 스텟 창을 열었다.
[작품후기]
뭔가 이 소설을 쓰면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간단하게 일상물을 하나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다른 작가 분들 보니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가볍게 하나씩 더 쓰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