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35화 (35/196)

박쥐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35회

박쥐의 고민

“어떤 사람 같아요?”

“음..”

내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채린.

우리는 제일관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 와 있었다.

“젠틀하고 능력 있는 젊은 CEO 같은 사람?”

레드의 뒷면을 모르는 사람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레드는 레볼루션 간부 중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녀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아이템 수집가였다.

인체 실험 연구실에서 도망 친 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때 레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템 수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

철저한 신분 세탁과 얼굴 성형.

마지막으로 완벽한 연기까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유일하게 활동하는 녀석이니 만큼 다른 간부들에 비해 조심성이 많고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었다.

“레볼루션 간부입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빙글빙글 돌려서 말해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내 말에 채린이 마시던 커피를 들고 그대로 굳었다.

“알아요. 채린씨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사람으로 전혀 안 보였죠?”

채린이 커피를 내리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나 나쁜 놈이다~ 써 놓고 다니는 사람 본 적 있어요?”

고개를 흔드는 채린.

“자, 지금부터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설명해줄게요. 레드는..”

나는 간략하게 레드의 전적을 읊었다.

레드는 그 어떤 간부보다 사람을 해친 횟수가 많은 놈이었다.

세 보진 않았지만 어림잡아 수백은 되지 않을까.

그 중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왜..죠?”

채린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여자의 피가 맛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레드는 뱀파이어입니다.”

“....”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모기 능력과 폭파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능력자입니다.”

채린이 손을 벌벌 떨었다.

“그런 놈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니..”

“또 먹게 될 겁니다.”

“..무슨 뜻이죠?”

“레드를 죽여서는 안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채린씨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제.. 임무요?”

“예. 레드는 지금 채린씨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국내에서 최근 발생한 두 건의 십자가 인장 관련 사건.”

“하..”

채린이 한 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마도 그게 문제가 됐고, 그 문제 때문에 레드가 한국에 온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채린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근데 당장은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레드는 워낙 조심성이 많아서 당장 채린씨를 어찌하진 않을 겁니다.”

“그거 참 위로가 되네요.”

우리는 한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놈 많이 강한..가요?”

채린의 말에 나는 레볼루션 간부들을 머릿속으로 떠 올렸다.

“레볼루션에는 저번에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총 5명의 간부가 있습니다. 5명 중 순수 전투력만 따지면 4~5등 정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의 꼴찌네요.”

“네. 근데 하버드대생 중 꼴지인 셈이죠. 저희는 일반 학교 학생들인 셈이고.”

“우리나라도 좋은 학교 많잖아요.”

“그러면 말을 바꾸겠습니다. 하버드대생 중 전교 4~5등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치.”

“순수 전투력은 그렇지만 두뇌나 치밀함. 조심성. 이런 부분들을 합치면 종합 전투력은 최소 3등 안에는 들 겁니다.”

나는 아이스티의 얼음을 휘저으며 조금 더 채린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우리나라 S급 랭커 5명. 그리고 A급 능력자 10명 정도. 이 정도면 맞설 만 할 겁니다.”

“..너무 많이 가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제압하는 게 아니라 맞서는 정도라고요?”

“예.”

“우리나라 S급 랭커가 몇 명인지는 아시죠?”

“알죠. 30명 남짓인 거.”

“A급 능력자는 300명도 정도라고요. 일부러 과장을..”

“그나마 레드라서 운이 좋은 겁니다.”

“그게 무슨..”

“간부 중에 샤인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자가 만약 왔다면 잡고 싶어도 못 잡습니다. 묶어 둘 수도 없고요. S급 랭커 30명. A급 능력자 300명. 하루면 샤인이 다 죽일 수 있는 전력입니다.”

“장난치지 마요!!”

채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몸에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네.”

나는 잔에서 얼음을 빼서 입에 물었다.

샤인에 대해서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긴 했다.

‘만약 현재 그런 실력이었으면 레볼루션은 당장 지구를 정복 했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샤인은 정말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괴물이 된다.

전생에서 한국을 단신으로 멸망시킨 게 바로 샤인이었다.

나는 손으로 내 뺨을 때렸다.

“일단 앞에 문제부터 집중 하자.”

벌써부터 샤인을 머릿속에 염두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레드를 죽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돌려보내자니 채린이 죽어야 돌아갈 것 같고.

그렇다고 채린을 죽게 둘 순 없고.

그렇다고 레드를 죽이자니 레볼루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고.

“아이고 머리야~ 차라리 라이언이 왔으면 더 편했을 텐데.”

내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채린이 돌아왔다.

“죽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예. 피라미를 몇 마리 죽인 걸로 간부가 왔는데. 간부를 죽였다가는..”

“무슨 뾰족한 수 있어요?”

그걸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 + +

하루. 이틀. 삼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말이 됐고, 나는 예정대로 곰 왕국으로 가는 중이었다.

이실장을 부르자니 이전에 곰 왕국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쉽게 데려다주지 않을 것 같아서 정시아한테 돈을 빌렸다.

‘웅담 값이라 생각해~’

사실 갚을 돈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택시 안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가만히 기숙사에 있어봤자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기숙사에 있으면 분명히 정시아가 놀자고 귀찮게 할 게 분명했다.

띠링.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내일로 약속 잡았어요.

채린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네. 오늘 저녁에 잠깐 만나요.

곧바로 채린의 답장이 왔다.

-네..(우는 이모티콘)

채린에게 당부했다.

레드에게서 무조건 먼저 연락이 올 텐데 최대한 약속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라고.

근데 생각보다 빨리 약속이 잡혔다.

아직 마땅한 계획이 떠오르질 않았는데.

“여기요. 잔돈은 괜찮습니다.”

택시에서 내렸다.

터벅터벅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최선의 수는 역시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채린이라는 패를 버린다.’

이 수가 가장 좋은 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패였고, 어떻게 그녀 면전에다가 ‘죽어주세요.’라고 말하겠는가.

아니다.

좋은 수가 아니라 최선의 수였다.

혹여 채린을 내어준다 해도 레드가 ‘수고~’하고 한국을 뜰지 아니면 남아서 무슨 짓을 할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가라. 형 지금 머리 복잡하니까.”

다가오는 곰에게 정시아의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시전 했다.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는 곰.

“하늘에서 뚝 하고 좋은 수가 안 떨어지..아, 뭐야.”

나는 밑에를 쳐다봤다.

곰 한 마리가 이마에 혹이 난 채로 벌러덩 누워 있었다.

“뭐지?”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볼이 퉁퉁 부어 있는 곰이 누워 있었다.

“....”

나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 곧장 옆에 보이는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딱히 시야에 특이점은 걸리지 않았다.

“누가 있는 거 같은데.”

나무에서 내려왔다.

죽이지 않은 걸 보니.

“정부 쪽 헌터인가? 아니면 관리자 헌터?”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하리부가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한 번씩 점검 개념으로 정부에서 헌터를 파견해 순찰을 돌게 했다.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웅담 가지고 빨리 가야겠어.’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하리부~ 나 왔어!! 하리부우~”

동굴 안으로 진입하며 하리부를 불렀다.

크어엉!!

깊숙한 곳에서 하리부의 응답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 좋은가보네.’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꿀을 꺼내며 코너를 돌았다.

“하리부!”

짜잔 하는 포즈로 하리부의 거처 앞에 등장했다.

하리부가 두 발로 서서 나를 맞이할 준비가 아닌,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누군가를 쳐다봤다.

마침 누군가도 나를 쳐다봤다.

“....”

“....”

우리는 꽤 오랫동안 눈싸움을 했다.

‘어디서 봤는데.’

머릿속을 뒤적거리다가 떠올랐다.

내가 퇴원한 날 제일관에서 채린과 밥을 먹던 남자였다.

채린의 말에 따르면 아이템 수집가의 비서일 텐데.

그렇다는 말은 레드의 비서란 소리인데.

그렇다는 말은.

나는 조용히 손에 들고 있는 꿀을 내려놓았다.

“하리부.”

크오오?

“잡아.”

크오오?

“꿀 훔치러 온 도둑놈이야.”

크오오!!

하리부가 레드의 비서를 끌어안았다.

“놔..놔라 이 곰탱이 새끼야!! 으..으어억!!”

“하리부. 죽이는 건 안 돼.”

그오오.

나는 레드의 비서에게 다가갔다.

레드에게는 비서가 없었다.

레드는 레볼루션의 대장 말고는 아무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너, 뭐냐?”

레볼루션 쪽 사람인 건 확실한데.

나는 말을 하고 곰곰이 레드의 비서 얼굴을 뜯어봤다.

제일관에서도 그랬지만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녀석의 삼장법사 같은 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거 풀어주면 말해주겠다. 너는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알아?”

“....”

레드의 비서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응?!”

기억났다.

하도 얼굴을 바꾸고 다녀서 기억을 떠 올리는데 한참 걸렸다.

“박쥐.”

“뭐..뭣이?!”

“너 박쥐잖아.”

“어..어떻게..”

박쥐가 어버버거렸다.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고. 일단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지 설명해.”

“..말 할 수 없다.”

“하리부. 조금 더 세게 안아 달래.”

“끄..끄어억.. 마..말하겠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박쥐의 생존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박쥐는 전생에서 보잘 것 없는 능력으로도 꽤 후반까지 살아남는 캐릭터였다.

박쥐 능력과 더불어 성격도 박쥐와 똑같은 게 박쥐라는 놈이었다.

믿음과 신뢰.

의리. 동료.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나만 살면 장땡인 놈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동료고 나라고 다 팔아넘길 놈.

옛날로 따지면 을사오적의 뺨을 때리고도 남을 친일파가 됐을 놈.

“하리부. 놔 줘.”

내 말에 하리부가 박쥐를 놓았다.

그 순간 박쥐가 내게 공격하는 게 아닌 동굴을 나가는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럴 줄 알았어. 뱀의 움직임.”

나는 박쥐를 앞질러 가서 곧장 다리로 박쥐의 양 다리를 후려쳤다.

박쥐는 스텟이 C등급이었고 나 보다 높았다.

하지만 녀석은 확실한 상대가 아니면 절대 공격하지 않았다.

‘쫄보라서.’

그래서 센 척을 하면 녀석은 자동반사적으로 움츠렸다.

“아악!!”

박쥐가 다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도망 갈 생각 하지마.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칼흐 마..”

“하..하지마!!”

박쥐가 엉금엉금 기어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죄..죄송합니다. 제가 높으신 분을 몰라 뵙고..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칼흐 마 할.

이 마법의 단어 같으니라고.

“일단 해야 할 게 있으니까 저기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

“예..옙!!”

박쥐가 엉금엉금 구석으로 기어갔다.

나는 앞에 나두고 온 꿀을 챙겨 하리부에게 다가갔다.

“하리부~”

그오오!!

“자.”

나는 하리부 앞에 1200p를 주고 산 꿀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하리부가 뒤로 뛰어가서 웅담을 가지고 왔다.

웅담을 포인트 상점에 넣고 나왔다.

“하리부. 잠깐 있다 가도 괜찮지?”

그오. 그오.

하리부가 꿀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하리부의 허리를 쓰다듬고, 박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앉아 앉아. 편하게 앉아.”

“아..아닙니다!”

“편하게 앉으라고 했잖아.”

“예..옙!!”

박쥐한테는 일부러 강압적으로 굴 필요가 있었다.

내가 너보다 강자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볼까. 아 참참.”

나는 씨익 웃었다.

“라이언은 잘 지내?”

“라..라이언님을 아십니까?”

“에이~ 아는 것뿐이겠어?”

“....”

내 말의 효과는 굉장했다.

‘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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