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되세오~33회
박태산의 하드 트레이닝
일상으로 복귀 했다.
화요일 이른 새벽 나는 기숙사에서 눈을 떴다.
어제 저녁 늦게 기숙사에 도착하는 바람에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전투 교관 박태산이 한 말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잠이 들기 직전 박태산에게 문자가 왔다.
-하드 트레이닝을 시켜주겠다. 원한다면 내일 아침 6시에 훈련장으로.
박태산의 하드 트레이닝.
갑자기 왜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구미가 당겼다.
박태산은 자신이 마음에든 제자가 아니면 이런 제안을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나를 왜..’
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나는 이불을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여태까지는 아침 운동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입원하고 난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 딱 박태산이 시기적절하게 제안을 했다.
트레이닝 복을 간단하게 걸치고 방문을 열었다.
“....”
냉장고 문이 열려 있었다.
어제 분명 기숙사로 오는 길에 먹을 걸 꽤 사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검은 짐승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냉장고를 털고 있었다.
“아침부터 참 부지런도 하지.”
내 말에 세 마리의 고개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우걱우걱.
냠냠.
한 마리만 먹던 걸 중지하고 내 옆으로 걸어왔다.
“레이.”
크릉.
레이가 고개를 치켜 들었다.
“너 어제 오자마자 뚜뚜랑 대 판 싸우지 않았어?”
어제 저녁.
기 싸움인지 서열 싸움인지 뚜뚜와 레이가 기숙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싸워댔다.
근데 지금은 나란히 앉아서 냉장고를 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능이 높긴 해도 짐승은 짐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르르!!
레이가 뚜뚜를 향해 갑자기 적개심을 드러내려고 했다.
나는 가볍게 레이의 이마를 톡 쳤다.
“늦었어. 가서 같이 먹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운동 갔다 온다. 늦게 오면 먼저 학교로 가.”
금석과 뚜뚜가 고개를 들었다.
입에 잔뜩 음식물의 흔적을 묻히고서.
“우걱..나도..나도 뚜뚜 산책 시키러 가야 하는.. 우걱..우걱.”
나는 피식 웃으며 레이를 금석 옆에 나두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금석은 식탐이 많고 대식가였다.
하지만 저 정도로 누가 쫓아오는 것 마냥 허겁지겁 먹진 않았다.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니.’
괜스레 마음 한 편이 짠해졌다.
+ + +
2시간만 있으면 등교 시간이라 그런지 학교 단지는 고요했다.
고요함을 뚫고 훈련장으로 들어서자 아침 운동을 나온 학생들이 그래도 제법 있었다.
“대부분.. 아니 전부 2학년인 것 같은데?”
성적이 최상위권 학생들은 나처럼 단독주택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고, 기숙사에 훈련실이 따로 있어서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최상위권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중상위권. 혹은 상위권 정도.
나는 훈련장의 2층을 쳐다봤다.
2층은 ‘개인 훈련실’이었다.
선착순대로 사용 할 수 있었다.
개인 훈련실의 문이 다 닫혀 있었다.
정원이 다 찼다는 뜻이었다.
“교관님은 어디에..”
시간을 확인하니 6시 되기 5분 전이었다.
띵동.
문자가 왔다.
-2층으로 올라와라.
박태산이었다.
2층의 개인 훈련실 문 하나가 열렸다.
박태산이 도전자를 기다리는 챔피언 같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표정이 뭐 저래 비장해?’
나는 호주머니에서 웅담을 꺼내 씹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 + +
개인 훈련실은 규모가 15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벽면에 설치 된 프로그램 설정 컨트롤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컨디션은 괜찮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첸 선생님을 만났다고 들었다.”
“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예?”
“네가 첸 선생님과 지수를 살렸다고 들었다.”
“....”
신지수가 분명 박태산에게 주말에 있었던 일은 얘기한 모양인데.
세리나 건을 떼어놓고 얘기 하려다가 내 얘기를 조금 과장해서 한 모양이었다.
나는 별다른 부정을 하지 않은 채, 박태산을 쳐다봤다.
박태산. 신지수. 채린.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헌터 학교 동기이자 첸의 제자들이었다.
첸은 한 때 헌터 학교에서 교관 일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 시기를 사람들은 ‘황금 세대’라고 평가했다.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을 제외하고도 꽤 유망한 능력자들이 탄생한 해였으니까.
“나는 너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 한다.”
박태산이 프로그램 설정 컨트롤러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런 너의 잠재력에 카피 능력자라면.”
박태산이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 한다.”
박태산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박태산의 헌터 학교 동기 중 ‘카피 능력자’가 있었고 동기의 발전을 직접 옆에서 봐 온 존재가 바로 박태산이었으니까.
삑. 삑.
박태산이 프로그램 설정 컨트롤러 버튼을 조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헬스 기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박태산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눈빛 참 부담스럽네.’
“내 하드 트레이닝은 혹독하다. 그래도 하겠나?”
박태산의 하드 트레이닝은 그의 말대로 혹독하고 힘든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오죽하면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도 나 돌았다.
‘지옥행 열차 탑승.’
우스갯소리였지만 나는 실제로 지옥행 열차 탑승 하는 기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는 선에서 성장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는 몸이었다.
“옙!!”
“좋다. 목소리에서 패기가 느껴지는군.”
박태산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첫 날이니 쉬엄쉬엄 하겠다. 우선 몸을 풀어야 겠지.”
“옙!”
“팔굽혀펴기 300개. 윗몸일으키기 500개. 스쿼트 1000개.”
“..예?”
“실시.”
“....”
어떤 미친놈이 몸을 그딴 식으로 풀어?
나는 반항의 눈빛으로 박태산을 쳐다봤지만 박태산은 확고한 얼굴로 나를 팔짱끼고 쳐다봤다.
“너의 스텟과 현재 네가 카피한 능력이 금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틀린가?”
“....”
나는 말없이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했다.
+ + +
“고생했다.”
“크아아..흐아아아...”
“내일도 6시에 나오도록.”
박태산이 개인 훈련실을 빠져 나갔다.
“크허허악...흐어으읍...”
후회한다. 아주 후회한다.
아주 많이 절실하게 후회한다.
“흐어어으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끄으윽..”
박태산에게 문자가 오는 순간 핸드폰을 불 질러 태워버렸을 텐데.
나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호흡 곤란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박태산이 말한 세 종목의 도합 1800개의 횟수를 정확히 1시간 40분 만에 소화해 낸 결과였다.
개인 훈련실을 나가는 박태산의 표정을 보니 시간적 여유가 충분 했다면 훈련을 더 시켰을 게 분명했다.
‘그건 분명 아쉬운 표정이었어.’
등교 시간이 날 살렸다.
“후우..크후..”
나는 벌러덩 누워서 호흡을 계속해서 진정시켰다.
“이게 몸 풀기라고? 허허..”
뇌에 산소가 공급되기 시작하자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지옥에 만약 ‘운동 지옥’이라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지옥을 맛보고 온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할만 했다.
그런데 점점 팔 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내게는 금석의 ‘자기 치유’ 능력이 있었고, 피로도나 근육의 찢어짐이 바로바로 치유 됐다.
근데 문제는 점점 ‘자기 치유’가 못 따라갈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박태산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를 내 밀며 말했다.
‘1분간 휴식.’
박태산도 사람이긴 한지, 진짜 죽을 것 같으면 휴식 시간을 줬다.
1시간 40분 동안 운동을 했을 뿐인데 지혜 스텟을 제외하고 모두 10 스텟 정도가 올랐다.
지혜 스텟도 운동 하는 내내 ‘시발 어떻게 도망치지.’ 라는 잔머리를 미친 듯이 굴려서인지 5정도가 올랐다.
시간 대비 아주 놀라운 성과였다.
웅담을 먹은 탓도 있겠지만 놀라운 성과인 점은 변함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치면 무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고강도 고수입 아르바이트를 한 기분이었다.
짧고 굵게 탈수기를 돌린 것만 같았다.
나는 삐거덕거리는 육체를 일으켰다.
“학교..가야지..”
벌써부터 내일 아침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 +
“박태산 교관님의 하드 트레이닝이라고? 와.. 나 선배한테 얘기 들었는데 진짜 살인 욕구 치솟는다던데?”
점심시간.
정시아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그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니.
“몸은 괜찮은 거야?”
한설휘가 금석 식판에 고기를 덜며 물었다.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없는 동안 세 사람이서 계속 붙어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자연스레 한 무리가 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근은 주지 마라!”
“닥치고 먹어.”
“으..”
금석이 당근을 도로 한설휘에게 주려다가 그녀의 말에 깨갱거리며 당근을 입에 넣었다.
나는 금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거렸다.
‘이래서 힘들었구나.’
“근데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정시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마주 웃으면서 그녀 얼굴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웠다.
“머리카락도 먹을라.”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그동안 훈수 포인트를 못 쌓았으니 이제라도 열심히 쌓아야지.
“너 내가 준 필기 노트는 봤어?”
“응. 정리 잘 해놨더라. 너 입에 뭐 묻었어.”
“입에?”
“내가 떼 줄게.”
나는 상체를 숙여 한설휘의 입을 스윽 문댔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뭐야 뭐야. 식당에서 이래도 돼?”
정시아가 놀리는 투로 말했다.
신성한 훈수 포인트를 올리려는 건데 뭐라는 거야.
나는 다음 타겟인 금석을 쳐다봤다.
“곧 있으면 중간고사라 놀지도 못할 텐데 우리 주말에 놀러나갈까?”
금석을 집중 타겟으로 훈수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있을 때 정시아가 말했다.
“어때?”
정시아가 한설휘를 쳐다봤다.
“나 외국어 과외 받아야 하는데..”
한설휘가 나를 슬쩍 쳐다봤다.
“음 뭐.. 하루쯤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오케이. 황금 돌대가리는 무조건 가고.”
“머라는..”
“고기 먹는데?”
“오오!!”
1초만에 금석을 포섭한 정시아.
안타깝지만 나는 안 된다.
“나 주말에 약속 있어.”
“무슨 약속?”
“웅담 사러 가야 돼.”
“같이 가자!”
“판매업자가 부끄러움이 많거든.”
“아..그래? 부끄러움이 많은데 판매업자를 할 수도 있구나. 근데 그 웅담 진짜 효과 좋더라. 나 스텟 정체기였는데 그거 먹고 훈련하면 스텟이 조금씩이지만 오른다?”
“나도 그래.”
정시아와 한설휘가 동시에 쳐다봤다.
“판매업자 우리한테도 알려주면 안 돼?”
기대에 찬 눈망울들.
때론 모르는 게 약인 법도 있는 법.
“내가 사서 나눠줄게.”
“에이~ 치사해.”
“얼만데? 비쌀 것 같은데. 나도 돈 보탤게.”
“어? 나도 그럼 돈 보탤게!”
나는 두 여자를 진정시키는 손짓을 하며 밥이나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오늘? 오늘 어때? 오늘 놀까?”
“오늘 약속 있어.”
“아니 너 저번 주에 일어난 주제에 무슨 약속이 벌써 그렇게 많아!!”
정시아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 길드 대장이 할 얘기가 있다는데. 취소할까?”
“우리 길드 대장? 채린..언니?”
“응.”
“아..그래? 혹시 레볼..아니.. 음. 그 쪽 얘기야?”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
그냥 상의 드릴 말이 있다는 문자만 받았을 뿐.
“어쩔 수 없네, 뭐.”
아쉬운 표정의 정시아.
“중간고사 끝나면 좋은 데로 놀러가자.”
“좋아!”
내 말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근데 상의 드릴 말이 뭐지?’
가 보면 알겠지.
나는 남은 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 + +
학교 앞에 위치한 제일관.
“며칠 전에 아이템 수집가의 비서라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를 시작으로 채린의 말이 시작 됐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 쯤 격식 있는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등장했다.
한설휘만큼 피부가 하얀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남자.
오늘 이 자리의 손님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몸의 털이 서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