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32화 (32/196)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32회

비스트 마스터

섬광이 터지듯 시야가 번쩍했다.

순간의 반짝임이 영원의 안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빛.

많은 등장인물들이 한 인물의 능력을 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모니터로 볼 때는 몰랐다.

빛이 밝은 것도 아니고 전구처럼 뜨거운 것도 따스하다고?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야 이해했다.

광여제의 ‘빛의 심판’이 비스트 마스터에게 내리 꽂혔다.

그 순간 비스트 마스터는 아무런 저항도, 고통도 없이 몸이 가루로 변했다.

절대 악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빛의 심판.

“어..째서.. 지금..?”

나는 세리나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흰자를 드러내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하늘을 향해 있었다.

겉모습을 보니 각성한 건 아니었다.

각성을 하면 세리나는 키가 20cm 넘게 자라고 외형이 전체적으로 아이의 모습에서 성인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털썩.

세리나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크르릉.

새끼 늑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내 생각도 그래. 상황 종료인 것 같은데?”

비스트 마스터가 죽자 동물들이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서진아아!!!”

신지수가 세리나를 들쳐 업고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 + +

신지수는 하루 학교에 병가를 냈다.

그러면서 나와 세리나는 덤으로 결석을 하게 됐다.

“걱정하지마. 너희들도 아파서 결석 처리 한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그 덕분에 지금 내 핸드폰이 불이 나는 중이었다.

-뭐야? 너무 수상하잖아. 첸 선생님 만나러 간 셋이서 나란히 결석이라니?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정시아였다.

-깨어 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많이 다쳤어? 괜찮아?

한설휘였다.

-..나..힘들다....

금석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

채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지수한테 얘기 들었어요. 고생하셨어요, 서진씨. 부산 내려오면 한 번 만나요. 상의드릴 게 있거든요.

우리가 결석과 결근을 하게 된 이유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비스트 마스터가 휩쓸고 간 챈의 마당과 우리의 상태는 그야말로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우선 다친 사람 치료를 먼저 했다.

그 다음은 다친 동물들 치료.

그 다음은 동물들의 사체를 땅에 묻는 일을 했다.

이제 슬슬 막바지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나는 땅에 다람쥐 가족을 묻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제. 오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한 가지 말이 유독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승의 소녀가 내게 했던 말.

‘재밌게 해줄게.’

비스트 마스터가 전생과 다른 패턴. 그리고 전생 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승의 소녀가 무슨 짓을 한 것 같았다.

신의 유흥과 유희에 놀아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놀아나는 중일 테고.

“....”

그런 생각을 하자 장기판의 말이 된 것 같았다.

“마음대로 해보시던지!!”

나는 삽으로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내가 어제와 같은 경우를 또 당하나 봐라!! 후우..”

소리를 지르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승의 소녀는 물 흐르듯이 내가 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물 흐르듯이 내가 세계를 구할 거란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어제처럼 장애물 같은 특이점을 섞은 모양인데.

최종 승자는 나였다.

동물들이 많이 죽기는 했지만 첸은 결국 살아남았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앞으로 더 철저히 대비를 해야겠어.’

변수가 발생해도 어제처럼 막다른 길 끝에까지 몰리지 않게.

변수를 제어할 수는 없어도 변수가 발생 했을 때 통제는 가능해야 했다.

혼자 하늘을 보며 보이지 않는 저승의 소녀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새끼 늑대가 다가왔다.

크르릉.

내 옆에 주저앉았다.

“너 어제 꽤 멋있었다?”

새끼 늑대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짜식. 쑥스러워 하기는.”

나는 쪼그려 앉아서 새끼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 다른 저항이 없었다.

“너 이름이나 지어줄까?”

크르릉?

“이름. 이름 있어?”

새끼 늑대가 앞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X-

“와..너 진짜 사람 말 알아 듣는 구나?”

아우우울~

새끼 늑대가 목청껏 울었다.

“검은 늑대니까.. 블랙 울프?”

녀석이 내 다리를 앞발로 걷어찼다.

“그러면.. 검늑? 아, 이건 아니다. 그냥 뚜뚜처럼 간단하게 또또..는 아닌 것 같고. 레이. 레이 어때? 뭔가 샤프하고 느낌 있지 않아? 슝슝 달릴 것 같고.”

크르릉.

새끼 늑대가 고개를 홱 돌리고 첸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녀석의 꼬리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가보네. 짜식.”

나는 다시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죽은 동물의 종만 30여종이 넘었고 죽은 동물의 숫자는 100여 마리가 넘었다.

동물에게 있어서는 대 참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첸은 담담했다.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나 역시 첸의 말대로 그런 생각을 했다.

몸소 저승이라는 곳이 있는 걸 체험한 장본인이었으니까.

“몸은 쫌 괜찮아?”

신지수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교관님과 첸 어르신 덕분에요.”

“다행이네.”

“교관님은요?”

“응?”

“괜찮으세요?”

“뭐가?”

“그냥.. 이것저것?”

“나야, 뭐..”

신지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현장에 나가는 헌터들은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이니까, 뭐.. 솔직히 조금 쫄긴 했어. 헤헤. 근데 너는 진짜 애가 겁이 하나도 없더라? 아주 강심장이야 강심장.”

지옥 앞에서는 누구나 강심장이 되지 않을까?

신지수가 내가 묻어 놓은 다람쥐 무덤 위에 벌러덩 누웠다.

“교관님 거기..”

“알아. 이놈들도 추울 거 아니야. 아직 날씨 쌀쌀한데.”

그녀의 말에 나 역시 신지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리나는 어때요?”

“똑같아. 계속 쿨쿨거리며 자. 아주 잘 자.”

“....”

세리나는 어제 쓰러진 후 지금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첸의 말로는 내가 달빛 초식을 썼을 때와는 반대로 ‘마나 기근’ 현상이라고 했다.

마나가 거의 없는 체질인데 거의 없는 마나를 모두 소진한 상태.

육체로 비유하자면 탈진 상태랄까?

다행히 나처럼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잠을 계속 자는 건 소진 된 마나를 보충하기 위한 현상이라고 첸이 그랬다.

어제 분명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세리나가 사용한 능력에 대해서.

나는 그녀가 어제 각성하기도 전에 능력을 사용한 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잠재 된 능력을 사용 했다.’

가끔 사람들은 특별한 상황이 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너 알고 있었지?”

신지수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리나가 빛 능력자라는 거.”

“....”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곧 긍정인 법이었다.

“세상에. 빛 능력자라니.”

신지수가 손을 들어 햇빛을 손으로 잡는 시늉을 했다.

“아마 기자들이 알면 이런 제목이지 않을까? 30년 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 빛의 여왕. 그녀의 딸로 추정되는 아이가 발견 되다!! 두둥!! 아니 잠시만. 진짜 딸 아니야?”

신지수가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몰라요. 저도.”

“에이~ 거짓말.”

맞다. 거짓말이긴 한데 비밀이다.

“진짜로 몰라요.”

“치.”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신지수가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교관님. 세리나가 빛 능력자라는 거..”

“알아 나도. 비밀로 해달라고 말하려는 거지?”

“..네.”

“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네요, 이 사람아. 아직 완전히 능력 개화도 안 한 것 같은데 빛 능력자인거 사람들이 알아봐. 좋은 건 못 가져서 안달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

나는 엄지를 들어보였다.

“역시 생각도 외모만큼이나 멋지고 예쁘십니다.”

“훗. 근데 서진아.”

“넵.”

“나는 진짜 모르겠다.”

“뭐를요?”

“너.”

“네?”

“너를 진짜 모르겠어.”

“....”

“네가 뭐하는 애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진짜 모르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려면 뭐가 미스테리한 게 하나씩 툭. 툭. 갑자기 몸이 툭 하고 터지질 않나, 갑자기 빛 능력자가 나타났는데 아무렇지 않아 하질 않나.”

신지수가 기지개를 켰다.

“근데 나쁜 놈 같지는 않아. 너 나쁜 놈이야?”

“아뇨.”

“그럼 착한 놈이야?”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면 착한 놈 쪽이 아닐까요?”

“그래, 그럼. 착한 놈 해. 나는 머리 쓰는 게 딱 질색이거든. 그럼 나는 앞으로 네가 착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배신하기만 해.”

신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너무 늦지 않게 출발 해야지. 그래야지 내일 학교 가는 데 지장 없지 않겠어?”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기회 봐서 채린과 아이들이 타고 있는 한 배에 신지수도 태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러 한 명 있으면 나쁘지 않지.’

파티원이 한 명 추가 된 기분이 들었다.

+ + +

-이름: 서진

나이: 17세.

체력: DD(10)

근력: DDD(82)

지혜: DDD(98)

민첩: DD(25)

먼저 식사를 끝내고 첸과 신지수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무료함을 달랠 겸 현재 내 상태를 점검했다.

스텟은 처음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입원한 3주라는 공백이 꽤 크게 작용했다.

본래 이 맘 때쯤에 모두 D 하나로 통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꾸준한 훈련과 웅담 효과로 인해 그렇게까지 나쁜 성과는 아니었다.

금석과 신뢰도 수치는 83점에서 2점 오른 85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흉내. 모방. 복제 중 중간 단계인 ‘모방’이 가능한 상태였다.

아마도 신뢰도 수치가 90점을 넘어가면 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을 하고 있었다.

금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총 네 개였고, 네 개 모두 오픈이 돼 있는 상태였다.

정시아와의 신뢰도 점수는 83점이었다.

금석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모방까지 가능한 점수였다.

정시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총 5개였다.

그런데 현재까지 4개만 오픈 된 상태였다.

마지막 남은 한 개가 꽤 유니크한 능력이라 오픈하기 위해서는 신뢰도 점수가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현재까지는 훈수 리스트의 전부였다.

다음 타겟으로 나는 여러 명을 노리고 있었다.

한설휘가 1순위 타겟이었고, 그 다음은 채린. 혹은 신지수.

그리고 아직 능력을 개화하진 않았지만 세리나도 훈수 리스트의 후보였다.

‘응? 왜 훈수 포인트가 1500 포인트나 있지?’

분명 마지막으로 확인 했을 때가 1000 포인트 정도였는데.

‘아..’

내가 입원 했을 때 금석이 ‘야수의 본능’ 능력을 터득했다.

그게 ‘강수’로 정산이 된 모양이었다.

‘슬슬 하리부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네.’

벌써 한 달이 다 돼가고 있었다.

하리부에게 줄 꿀을 산다고 치면 내게 남는 포인트는 300 포인트였다.

‘학교 가면 진짜 훈수 열심히 두고 다녀야겠네.’

하루에 300 포인트 적립이 가능할까나.

그렇게 한 달을 모으면 대략 9000 포인트였다.

이래저래 뺄 거 빼면 7000포인트가 남는다고 치고.

7000 포인트면 한 달에 한 번 씩 쓸 만한 아이템이나 능력을 구매할 수가 있었다.

‘좋은데?’

내가 황금빛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첸과 신지수가 대화를 나눴다.

“이모 손에서 자랐다고?”

“응. 태산이한테 확인 해 봤어. 태산이가 쟤 담임이거든. 근데 이모네가 진짜 말이 안통한대. 태산이가 진짜 남 욕이나 뒤에서 말 안하는데 세리나 이모네는 진짜 놀부네 가족 같대.”

“..그렇군.”

“왜, 할배?”

신지수의 물음에 첸의 시선이 반찬과 반찬 사이 허공을 맴돌았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지수야.”

“앙?”

“너희 학교 교칙에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꼭 학생이 기숙사 사용을 안 해도 된다는 조향이 있지 않느냐?”

“어..그렇긴 한데. 할배가 그걸 어떻게 알아?”

“껄껄. 녀석. 할배가 모르는 것도 있더냐? 껄껄!”

“할배 표정 지금 되게 수상해. 무슨 꿍꿍이야?”

“어허. 하늘같은 스승님을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다니!!”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꼭 할아버지와 손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르륵.

“우웅...배고파요..”

잠에서 깬 세리나가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내 옆에 앉은 세리나.

“잠시만. 밥 가져 올게.”

신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물끄러미 세리나를 쳐다봤다.

“왜..왜에?”

“아니 그냥.”

너무 평온한데.

마치 집에서 자다가 물 마시러 나온 것처럼.

어제 그런 일을 저질로 놓고.

“근데 할아버지.”

“오오. 그래. 왜 그러느냐.”

“밖에 강아지 어디 갔어요? 안 보이던데. 다른 아이들도요.”

“어..그게 말이다..”

첸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어제 다 죽었..아야.”

밥을 퍼 온 신지수의 종아리를 부채로 때리는 첸.

“어제 다..?”

고개를 갸웃하는 세리나.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어제 일 혹시 기억 안나?”

“어제..일?”

“응.”

“어제..할아버지 집에 왔잖아.”

그 순간 나와 첸. 그리고 신지수가 동시에 눈빛을 교환했다.

세리나.

어제 있었던 일요일의 기억이 증발해 있었다.

+ + +

“할배, 진짜 같이 안 가?”

“아직 돌 봐야 할 녀석들이 태산인데 어딜 가느냐.”

“그래, 그럼.”

신지수가 쿨하게 차에 탑승했다.

“녀석. 잘 가거라. 몸조심하고. 할애비가 한 조언 잊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탑승했다.

“나중에 보자꾸나. 리나야.”

“네. 나중에 또 놀러 올게요. 꼭!”

“그래, 그래.”

나중에 보자고 말하는 첸의 얼굴이 슬퍼 보이기도 했고, 기뻐 보이기도 했다.

입은 웃고 있었는데 눈은 울고 있었다.

크르르!!

세리나가 문을 닫기 직전 검은 짐승 한 마리가 날렵하게 문틈으로 뛰어 들었다.

“레이?”

크릉. 크릉!

내 무릎에 안착을 한 레이가 살포시 몸을 웅크렸다.

“버려. 털 날려.”

크르릉!!

“어쭈. 어디 어른한테 이빨을 보여!! 확 그냥!!”

신지수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걔 데리고 갈 거야?”

나는 레이의 털을 만지면서 살짝 고민했다.

나도 뚜뚜 같은 동물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음..’

“예.”

내 대답에 신지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도 만져 봐도 돼?”

세리나가 손을 내밀어서 레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얌전히 세리나의 손길을 느끼는 레이.

차가 출발 했다.

[작품후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