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31화 (31/196)

뭔가 잘못됐다.31회

비스트 마스터

“교관님 왼쪽!! 어르신 오른쪽!!”

내가 주연인 시나리오에는 빈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플랜B와 플랜C까지 생각했다.

그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헌데 등장한 악역이라는 놈이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악당이 되어 나타났다.

나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신지수와 첸의 동태를 살폈다.

신지수는 덤비는 동물을 족족 단검의 손잡이로 내리쳐 기절을 시키고 있었고, 첸은 물 흐르듯이 회피를 하고 있었다.

“예끼! 정신차리거라 이놈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내게 달려드는 돼지를 걷어차며 정면을 쳐다봤다.

비스트 마스터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관전하고 있었다.

녀석의 주변으로 수많은 뱀들이 똬리를 틀고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다가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정시아의 능력이 있었기에 뱀에 대한 면역력이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서진아!!”

신지수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이유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산에서 굴러들어 온 녀석들만 상대하고 있었는데, 첸의 집 안에 있는 동물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눈이 빨갛게 변한 채로.

“가..가지마!!”

세리나가 억지로 잡아 끌었지만 동물들은 막무가내였다.

때 아닌 동물원이 개장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동물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 말은 점점 비스트 마스터에게 접근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첸이 레이드를 하는 것처럼 대규모의 동물들을 끌고 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첸에 비해 나나 신지수는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교관님!!”

“왜!!”

“사랑의 불주사 좀 놔주세요!!”

“안 돼!!”

“빨리요!”

나는 내게 날아오는 새 떼에 메두사를 시전하며 신지수에게 달려갔다.

“너무 위험성이 크다고!!”

신지수에게 오른팔을 내 밀었다.

“동물 밥 되고 싶어요?!”

“아오!! 진짜!!”

신지수가 품 안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주사기를 꺼냈다.

“믿는다!!”

내 팔에 주사를 놓는 신지수.

“으으..”

뜨거운 액체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신지수의 능력 중 하나인 ‘사랑의 불주사’는 5분 동안 신체 능력 대폭 상승이라는 버프 능력이었다.

문제는 5분이 지나면 신체 능력 대폭 하락이라는 디버프가 1시간 동안 걸렸다.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확실히 비스트 마스터는 내가 아는 녀석과는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똑같은 게 있었다.

‘거만하고 의기양양한 태도.’

녀석은 지금 방심하고 있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이 수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했다.

“교관님 칼 잠시만요.”

신지수가 내게 단검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단검을 내 복부에 찔렀다.

“너..너 지금 뭐하는..”

“크흡.. 한 번의 기회인데.. 잘 살려야죠.”

신지수가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곧바로 치료해주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거절했다.

“안돼..요. 그러면 능력 효과 떨어진단 말이에요. 으윽...”

고통이 점점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금석의 ‘고통의 희열’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고통이 순간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의 불주사’와 ‘고통의 희열’ 합작으로 지금 내 스텟은 아마도 B등급이 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관님 저 새끼 있는 길목에다가 ‘강제 수면’ 좀 써주세요.”

“너 내 능력을 왜 그렇게 잘 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돼지 밥 되게 생겼는데. 근데 방금 써 봤는데 금방 풀리던데?”

“잠시면 되요.”

“알았어.”

신지수가 ‘강제 수면’을 사용하는 타이밍에 나는 잠깐 시선을 돌려 세리나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마루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애..애들아 싸우지마!!”

동물들은 지금 단체로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다 보니 1차 목표로 우리를 공격하다가 순간적으로 목표가 안 보이면 자기네들끼리 물어뜯고 죽이고 있었다.

“세리나!! 집 안에 들어가 있어!!”

동물들이 이성을 잃었음에도 아직까지 세리나는 공격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세리나가 품고 있는 능력의 씨앗이 강력하다는 뜻이었지만, 슬금슬금 몇 마리가 세리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내 말에 고개를 흔드는 세리나.

“서진아 지금!!”

세리나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정면을 쳐다보자 비스트 마스터에게로 향하는 길목이 열려 있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강제 수면에 빠진 동물들을 발판 삼아 달렸다.

‘어째서. 어째서!!’

라는 물음에 계속해서 머리를 강타했다.

대처가 안일했다고 하기에는 마치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알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누군가 언질이라도 해 준 것처럼.

나는 머릿속에 떠 오른 상념을 빠른 속도로 지웠다.

이미 시나리오는 틀어졌고, 최대한 시나리오를 바로 잡는 수밖에.

내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비스트 마스터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녀석을 보호하듯이 진을 치고 있던 뱀들이 점프를 하듯이 몸을 일직선으로 세웠다.

삭.

단검으로 일순간 뱀의 몸통을 전부 갈랐다.

“뱀 좋아하나본데.”

정시아의 능력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시전 했다.

이 능력이 비스트 마스터를 순간 무장해제 시킬 게 분명..

“뭐하냐.”

귀를 파는 비스트 마스터.

바로 내 복부를 걷어찼다.

울컥하고 내가 고통의 희열을 시전 하기 위해 자해를 했던 배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이어이. 뭐하냐고.”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은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되고 있었다.

“메두사!”

하지만 이번에도 효력이 없었다.

녀석의 주먹이 내게 날아왔다.

나는 상체를 옆으로 재끼며 피했다.

“감히 내게 동물의 능력을 쓴다고? 이것 참~ 황송한데?”

“....”

아무래도 동물 능력에 대한 면역력과 내성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조금 더 수월하게 잡기 위해 사용했을 뿐.

지금 내 스텟은 비스트 마스터 보다 앞서는 게 분명할 터.

나는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이쿠. 위험하네, 위험해.”

비스트 마스터의 몸에 상처를 계속해서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치명타를 입힐 수가 없었다.

미꾸라지처럼 몸을 움직이며 피하는데 급급한 비스트 마스터.

허나, 얼굴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이 새끼. 내가 제한 시간이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인데?’

녀석과 반대로 나는 점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치명타를 입혀야 한다는 압박감에 동작이 커지기 시작했다.

“허점 발견!”

비스트 마스터가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가격했다.

“크윽..”

통증이 작지만 확실히 느껴졌다.

‘시간이 없다.’

“크하하하!!!”

내 표정을 읽은 비스트 마스터가 허리를 뒤로 젖히며 박장대소 했다.

“신의 은총을 받은 이 몸에게 감히 대적하려 들다니. 크하하!! 가소롭구나!!”

‘신의 은총?’

원래 저런 대사가 있었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뒤를 쳐다보니 신지수가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게 보였다.

신지수는 별 다른 공격 능력이 없었다.

순수한 힐러였고, 그녀에게 이 이상 도움을 바라는 건 힘들어 보였다.

‘첸 어르신은..’

지붕과 지상을 넘나들며 여전히 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그 역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져 있었다.

조합이 너무도 안 좋았다.

2힐러에 어중간한 능력자인 나.

‘정시아나 금석. 한설휘 중에 한 명만 있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계속해서 결과론적인 생각만 들었다.

점점 ‘사랑의 불주사’와 ‘고통의 희열’ 버프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히 버프가 해제 될 때까지 비스트 마스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내 움직임이 눈에 익었는지 아니면 내가 둔해진 건지, 표정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 여유로워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녀석이 날 때리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크하하!!”

급기야 공수가 바뀌었다.

퍽. 퍽.

비스트 마스터의 주먹이 묵직하게 내게 꽂혔다.

가드를 하고 있었지만 점점 가드가 풀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게 남은 수는 하나였다.

‘달빛 능력.’

처음 사용했을 때와 현재의 나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사용하면 처음처럼 몸이 터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완전히 머릿속에서 배제 했었다.

그래서인지 능력치 버프를 받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순간에 ‘달빛 능력’에 대한 선택지가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그 순간에 사용했으면 몸이 버텨냈을 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지금 사용 하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사실 소를 잃을 줄 몰랐다.

버프 된 능력으로 비스트 마스터를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소를 잃었다.

‘신지수와 첸이 있으니..’

신지수는 분명 내게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이번에도 만약 운이 좋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판단 미스로 목숨을 건 도박밖에 남은 패가 없었다.

판돈을 다 걸었는데 전부 잃었다.

이제 내가 걸 건 손목이나 귀가 아닌 목숨.

단검으로 달빛 능력시 사용 가능한지는 몰랐지만 시도를 해보려고 했다.

비스트 마스터가 내 목을 움켜쥐기 전까지는.

“커억..”

“잡았다. 크크.”

비스트 마스터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나는 최대한 발버둥 쳤다.

그러면 그럴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몸에 힘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퍽. 퍽.

비스트 마스터가 주먹으로 내 복부를 가격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재밌는 구경을 시켜주도록 하지.”

비스트 마스터가 내 몸을 돌려 뒷목을 움켜잡았다.

마당은 도살장 보다 더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동물들이 서로 서로 잡아먹고 있었다.

그 중간에 서 있는 한 여자.

“세..세리나. 쿨럭.”

세리나가 동물들의 피를 진탕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 세리나를 신지수와 첸이 구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자기들 앞가림하기도 바빠 보였다.

“크흐흐. 이건 어떨까?”

비스트 마스터가 나를 움켜진 반대 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퍼엉-!

그러자 세리나 근처에 있던 동물들이 일순간 터졌다.

동물들의 피와 내장, 살점이 고스란히 세리나에게 향했다.

“저 년은 먹을 가치도 없는가보군. 크하하!!”

세리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뭐라고 중얼 중얼거렸다.

“그만..그만..이제 그만해!!”

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슬퍼보였다.

그리고 두렵고, 무서워보였다.

그녀가 떨고 있는 떨림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데리고 오지 말 걸.’

괜히 데리고 왔다.

내가 안 데리고 왔으면 지금 쯤 집에서 동화책이나 읽고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꺄악!!”

신지수가 새 떼에 쪼이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이..이놈!!”

첸이 기력을 다해 제 자리에서 동물들에게 치이고 있었다.

나 때문에.

‘나란 새끼 존나 무능력 하네 진짜.’

모든 능력이 풀렸다.

신지수의 ‘사랑의 불주사’도.

금석의 ‘고통의 희열’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신음할 힘도 거의 없었다.

몸이 점점 축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크르릉!!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단념할 무렵 검은 덩어리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왔다.

검은 덩어리는 곧바로 비스트 마스터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호오. 이 녀석 봐라.”

비스트 마스터가 파리 쳐 내듯이 손을 휘 저었다.

내 눈에 비친 검은 덩어리.

“새끼..늑대..”

마치 떠날 것처럼 나가더니 간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게 복종해라.”

비스트 마스터가 간결하게 말했다.

새끼 늑대가 바닥에 네 발을 굳건히 딛고 선 채, 으르렁거렸다.

“호오. 감히 내게 반항을 해? 다시 한 번 말한다. 내게 복종해라. 복.종.”

새끼 늑대의 몸이 경련이 일어나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새끼 늑대.

크르르릉!!!!

저항 하듯이 울부짖었다.

“뭐? 내 손에 있는 인간을 놓아주라고? 크하하하!!! 좋다.”

비스트 마스터가 나를 새끼 늑대 쪽으로 던졌다.

내가 두세 배는 몸집이 큰데 내가 행여나 다칠세라 자신의 몸을 쿠션 역할로 깔았다.

끼이잉...

새끼 늑대와 같이 5m 정도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너..의리 있는 놈이었구나..쿨럭.”

새끼 늑대가 절뚝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와서 내 얼굴을 핥았다.

“그래.. 고맙긴 한데.. 빨리 도망쳐.”

내 말에 보란 듯이 내 옆을 지키듯이 서는 새끼 늑대.

“야.. 이럴 때는 의리 같은 거.. 져버려도 돼.”

새끼 늑대가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닥치라는 뜻인가?’

비스트 마스터가 뚜벅뚜벅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쌍으로 저승길로 보내주도록 하지!!”

나는 비스트 마스터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네가 저승을 아냐고.

“내가 임마.. 쿨럭.. 저승 짬밥 40년..이라고.”

이게 내 마지막 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스트 마스터가 손을 들었다.

“서진아!!”

“얘야!!!”

신지수와 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두라고 했잖아!!!!”

그리고 세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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