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대에 올린 건 다시 한 번 연재 시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껄껄.30회
비스트 마스터
“으음..”
차갑고 끈적거리는 뭔가가 얼굴에 닿았다.
나는 몸을 뒤척였다.
조금 더 자고 싶었다.
“음..”
뭔가가 내 몸에 올라타는 게 느껴졌다.
무겁진 않았지만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유발했다.
나는 눈가를 비비며 어렵게 눈을 떴다.
“너는..”
검을 털이 유별난 새끼 늑대가 내 상체에 엎드려서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졌나보네. 짜식.”
나는 손을 올려 새끼 늑대를 품에 안으며 다시 눈을 감으려고 했다.
기숙사에 있을 때 뚜뚜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 녀석이 옆으로 폴짝 뛰어가는 게 아닌가.
“왜에?”
크르릉.
“응?”
크릉. 크르릉.
나는 상체를 일으켜서 새끼 늑대를 쳐다봤다.
문지방 쪽으로 걸어가는 녀석.
아우울~
내게는 교감 능력이 있었지만 녀석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는 행동이나 울음소리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어제는 고마웠고, 난 간다.’
“쿨하네. 어린 친구. 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크릉?
새끼 늑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감 능력 덕분인지 아니면 이 녀석의 지능이 높은 것인지 사람 말을 퍽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너 혹시..”
내 눈에 걸리는 새끼 늑대의 검은 털.
‘아예 종이 다른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은빛 늑대라고 알아?”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리고 머리로 문을 열고 가버리는 새끼 늑대.
“모르면 모르는 거지.. 그렇게 가 버리냐. 정 없게. 어휴 모르겠다~”
나는 도로 누웠다.
“은빛 늑대를 도대체 어디서 찾지.”
나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은빛 늑대는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늑대 종족이었다.
하지만 현 시대에 실존하는 게 틀림없었다.
서진이 전생에 은빛 늑대를 찾으러 나섰다가 도중에 죽지만 않았어도 은빛 늑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텐데.
서진이 도중에 죽는 바람에 은빛 늑대에 대한 힌트를 몇 가지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옛 고서에는 은빛 늑대를 이렇게 서술 해 놨다.
‘달빛 수호자.’
“근데..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천장을 멀뚱멀뚱 보고 있을 때, 새끼 늑대가 열어놓고 간 문 너머로 신지수가 쿵쿵거리는 발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5분 뒤에 부산으로 갈 거니까, 준비해.”
그러곤 퇴장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지수를 따라갔다.
+ + +
“나 오늘 선 보러 가야 해.”
신지수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그런데 벌써 선이라니.
“미뤄요.”
“안 돼.”
“왜요?”
“엄청 잘생긴 훈남에 재벌이란 말이야.”
“교관님한테 그런 남자 줄 섰잖아요.”
“그건 맞지만. 어쨌든 안 돼. 오늘 꼭 선 봐야 해.”
신지수가 똥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오늘 있을 일에 대해 설명했다.
예언 능력을 사용해보니 곧 이 곳에 게이트 하나가 열린다.
그러니 대비를 하자.
이런 식으로.
그런데도 신지수는 막무가내였다.
“첸 할배가 의술 말고도 도술이 얼마나 기가 막힌데. 그리고 요즘은 전화 한 통이면 헌터 경찰들이 바로 출동한다고.”
나 역시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어떤 게이트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교관님이 첸 어르신 전화 다 부셨잖아요.”
“그건 걱정 하지마.”
신지수가 첸을 째려봤다.
“오늘 아침에 나 몰래 핸드폰으로 전화하다가 들켰으니까. 그건 양심상 안 뿌셨거든.”
“....”
핸드폰 장사를 하는 거야 뭐야.
왜 이렇게 핸드폰이 많은 거야.
“아~ 아무튼. 안 되요. 게이트 막고 부산 가요.”
“왜 그래 진짜!!”
“다 알아요.”
“뭘?”
“박태산 교관님 질투심 유발하려고 오늘 선 보려는 거.”
“..네..네가 그걸 어떻게....설마 채린 이 계집애가.. 아무튼! 나 혼자라도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신지수가 자리를 박 차고 자리를 이탈했다.
나는 신지수를 따라갔다.
일부러 게이트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말을 안했는데, 신지수에게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교관님 잠시만요.”
나는 신지수를 불러 세웠다.
+ + +
앞으로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
‘비스트 마스터.’
녀석은 이곳에 있는 동물들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 첸을 공격하고, 첸은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가 죽었다.
아무리 비스트 마스터에게 조종당한다고는 해도 첸은 동물들을 절대 공격하지 않았다.
비스트 마스터는 동물을 치료하고 살리는 첸에게는 상성이 너무나도 안 좋은 극 카운터였다.
마치 신이 첸의 운명이 오늘까지라고 설계한 듯한 시나리오 느낌이었다.
이 사실을 일부러 말하고 싶진 않았다.
만약 첸이 이 사실을 미리 안다면 백프로 동물들을 데리고 도망갈 게 분명했다.
아니면 동물들을 대피시키고 맞서는 계획을 세우거나.
두 계획은 모두 X였다.
도망은 임시방편일 뿐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또한 동물들을 대피시켜봤자 비스트 마스터는 ‘소환술’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첸을 홀로 내버려두고 떠나면 첸은 죽을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신지수의 말처럼 헌터 경찰을 부르는 방법도 있었지만, 신지수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첸을 구하러 출동 할 헌터 경찰은 없다.‘
경찰 상부 명령이었다.
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가감 없이 신지수에게 전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빚을 갚고 싶어요.”
나는 이렇게 말의 마침표를 찍었다.
“진짜 너무하지 않니?”
신지수가 하늘을 쳐다봤다.
“뭐가요?”
내 대꾸에 신지수가 슬픈 눈을 하며 말했다.
“하늘도 참 무심해. 첸 할배를 못 잡아가서 안달 난 것 같아. 우리 할배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 했다고.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평생 후회 할 일 하나 만들 뻔 했네. 나도 아직 첸 할배한테 빚 다 못 갚았는데.”
한참을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세상에는 이상한 법칙이 하나 있었다.
선한 사람은 단명하고, 악한 사람은 오래오래 장수하는.
‘첸 할배 정도면 단명까지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지수가 씨익 웃으며 날 쳐다봤다.
“근데 너 대단하다. 예언 능력 사기 아니야?”
애써 밝은 척 하기는.
“가요.”
“그래.”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비스트 마스터를 맞이할 시간이었다.
+ + +
비스트 마스터는 사용 능력을 제외하면 육체적인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스텟이 C급 정도라고나 할까?
신지수와 나.
이렇게 둘이면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았다.
동물을 벌레 잡듯이 죽일 수 있는 마음만 먹는다면 비스트 마스터는 꽤나 쉬운 상대였다.
비스트 마스터가 등장하는 곳이 쥬라기 월드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세리나.”
“으..응.”
잔뜩 긴장한 얼굴로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내가 읽으라고 한 소설들 보면 그런 장면들 나오잖아.”
“어떤..장면?”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는. 뭐, 그런?”
“....”
“나도 죽이고 싶진 않아.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 그리고 여기 있는 동물들이 죽을 거야.”
세리나는 겁이 많고 순수하고 평화주의자에 박애주의자였다.
하지만 지능이 결코 낮은 건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을 충분히 알아 들었으리라 믿었다.
“지키고자 하면 죽여야 돼.”
나는 턱으로 동물들이 대피해 있는 집 안을 가리켰다.
“겁내고 망설이는 순간 더 많은 희생이 따를 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세리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성과 감정이 심하게 충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 안에 가서 동물들 좀 지켜줄래?”
나는 세리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세리나는 전력 외 인원이었다.
아직 각성하기 전이라 애초에 전력에 포함 시킬 수도 없었다.
“나..나도 싸울래.”
‘호오.’
그간 꾸준한 세뇌 교육이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괜히 옆에 있다가 짐만 될 뿐이었다.
“저기 애들 불안에 떨고 있잖아. 안 가 봐도 괜찮겠어?”
나는 말을 하며 세리나의 등을 부드럽게 집 쪽으로 밀었다.
“나..나도..”
그러면서 별 다른 저항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나와 신지수.
그리고 첸이 남았다.
“껄껄. 오랜만에 힘 좀 쓰겠구나!”
첸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할배. 젊은이들이 알아서 할 테니 가서 밥이나 앉혀. 무리하다가 뼈 부러져.”
“내가 이래봬도. 읏쌰!”
주먹을 뻗으며 기합 소리를 내는 첸.
“왕년에 읏차. 도술로 이름 꽤나 날렸지. 흐핫!”
신지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으으.
게이트가 열리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첸의 집 바로 상공이 수증기에 덮인 것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허공이 점점 균열이 생기듯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나오는 몬스터가 한 마리라 그런지 균열이 크진 않았다.
나는 신지수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번 전략은 비스트 마스터 맞춤 전력인 ‘속전속결’이었다.
녀석이 동물을 제 손가락처럼 부리기 전에 사전에 제압하는 게 손 안대고 코 푸는 방법이었다.
즉, 녀석이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교관님!!”
“죽어도 책임 안 진다!!”
신지수가 있는 힘껏 내 복부를 주먹으로 후렸다.
“커헉..”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호흡 곤란이 올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능력을 시전 했다.
“고통..의 희열.”
받은 데미지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나는 한 가지 능력을 더 시전 했다.
“뱀의 움직임.”
내가 낼 수 있는 추진력의 최대치였다.
나는 곧장 첸의 집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게이트에서 비스트 마스터의 하반신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2초.’
2초 후면 비스트 마스터가 완전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을 발판 삼아 공중으로 도약했다.
시전 한 2가지 능력 효과로 나는 단숨에 게이트 앞까지 다다랐다.
허리춤에서 신지수에게 받은 호신용 단검을 꺼내들었다.
호신용 이긴 했지만 신지수는 꽤 고급 단검을 들고 다녔다.
적어도 C급은 되는 단검이었고, 비스트 마스터에게 정타로 꽂으면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이트에서 비스트 마스터가 완전히 빠져 나왔다.
녀석의 머리가 보이자마자 나는 단검을 내리 찍었다.
“컥..”
아니 찍으려고 했다.
“환영 인사인가? 크하하하!!”
내가 알기로 게이트 너머의 세상과 이 세상은 분리 된 공간이었다.
게이트를 나오기 전에는 내가 앞에 있다는 걸 전혀 몰랐을 텐데.
마치 내가 앞에 있다는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야수의 본능’으로도 전혀 반응 못 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뭐지?’
뭔가 착오가 생겼다.
나는 발버둥 치며 어떻게 해서든 단검을 내려찍으려고 했다.
“뭐냐. 이 장난감은.”
단검을 뺏어, 허공에 던지는 비스트 마스터.
“메..메두사.”
비스트 마스터는 금석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지혜가 다른 스텟이 비해 현저히 낮았고, 순간적으로 녀석의 몸이 경직 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손을 들어 비스트 마스터의 얼굴을 할퀴며 녀석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부웅.
빠져 나오자마자 그대로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읏차!”
첸이 가볍게 내 몸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신지수가 달려왔다.
“야! 괜찮아?”
“..예.”
그것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슬슬 비스트 마스터의 비행 버프가 끝날 시간이었다.
역시나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독을 묻혔습니다.”
비스트 마스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정시아의 능력인 ‘맹독’을 사용했다.
정시아의 맹독은 손끝에서 독이 생성이 되는 원리였다.
‘분명히 얼굴에 네 손가락으로 묻혔다.’
살이 파고드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다.
비록 내가 지혜 스텟이 낮아 맹독의 독이 강하지는 않을지라도 비스트 마스터 정도는 감염시킬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이 비스트 마스터의 신체 능력은 C급 수준이었다.
우리와 2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착지를 한 비스트 마스터.
“휘이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숲 속에 있던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뱀을 잡고 그대로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는 비스트 마스터.
뱀이 거머리처럼 내가 독을 묻힌 뺨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크게 웃는 비스트 마스터.
“....”
녀석은 내가 아는 비스트 마스터가 아니었다.
‘몇 단계는 진화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