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27화 (27/196)

아마도 이 편에 22:00시부터 퀴즈가 노출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27회

의술사 '첸'

학교 앞에 위치한 ‘제일관’.

제일관은 학교 근처에서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중국집이었다.

맛뿐만 아니라 가격도 다른 중국집에 비해 훨씬 비싼 편에 속했다.

중국집에도 급이 있다면 제일관은 학생들 사이에서 S급으로 분류 될 중국집이었다.

금요일 저녁.

제일관이 일주일 중 가장 바쁜 시간대였다.

그 시간대에 출몰한 음식 빌런(?) 때문에 가뜩이나 바쁜데 직원들은 더 죽을 맛이었다.

“여기 깐풍기 하나 추가요!”

5분에 한 번씩 벨을 눌렀다.

“여기 라조육 추가요!”

5분에 한 번씩 꾸준하게.

“여기 깐풍기 하나 더요!”

지치지도 않았다.

직원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방에는 어떤 식충이 같은 손님들이 있냐고.

+ + +

우걱우걱.

쩝쩝.

나는 쉴 새 없이 입에 튀긴 고기를 집어넣었다.

중국집 특유의 기름 향과 불 맛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입에 음식이 비기가 무섭게 다음 음식을 집어넣었다.

우걱우걱.

옆에서 나와 같은 속도로 음식을 탐하던 금석이 나를 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탁.

금석이 젓가락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입에 음식을 쑤셔 넣었다.

3주 동안 누워 있어서 그런지 허기짐이 가시질 않았다.

“여기 깐풍기 하나 추가..”

말을 하다가 멈칫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너무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주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금석을 포함한 한설휘, 정시아.

그리고 오늘의 물주 신지수가 나를 질린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마음껏 시키라고 했다지만 이건 쫌 너무한 것 같지 않니?”

신지수가 어금니를 물며 말했다.

테이블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접시들.

저것도 한 번 직원이 치워서 저 정도였다.

“교관 월급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거니? 응?”

신지수의 말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들어.”“..예?”

“시킨 건 다 먹어야지. 남길 거야?”

“아..넵.”

나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보기는 좋네. 너 진짜 큰 일 날 뻔 했어.”

신지수가 턱을 괴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정시아가 말했다.

“필기 노트 네 것까지 정리 해놨으니까, 나중에 가져 가.”

한설휘가 말했다.

금석은 말없이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나 없는 동안 훈련은 열심히 했어?”

탕수육을 입어 넣으며 애들을 쳐다봤다.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뭐야. 훈련 안 했어?”

식당으로 오는 길에 확인해 보니까 금석에게 ‘야수의 본능’ 능력이 생긴 걸 확인했다.

그렇다는 건 꽤나 나 없는 동안 열심히 훈련한 것 같은데.

‘표정이 다들 왜 이러실까.’

“했지. 했는데.”

정시아가 나를 보며 눈웃음을 작게 지었다.

누가 봐도 억지웃음이었다.

“누구 때문에 마음이 영~~ 불편하더라고.”

“....”

“아니 그렇잖아. 너 죽었으면 우리한테 훈련하라고 시킨 게 유언이었잖아. 안 그래?”

정시아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살아서 망정이지 진짜 너는 뚜뚜 아니었으면.. 너 뚜뚜가 너 살린 건 알아?”

안다.

저승의 소녀에게 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되 물었다.

“진짜?”

“그래. 그 작고 어린 아이가 훈련실에 와서 어찌나 절박하고 구슬프게 우리 옷을 물어뜯던지. 너는 진짜 뚜뚜 업고 절이라도 해야 해.”

“진짜..”

옆에서 한설휘가 한 마디 보태려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눈가를 닦는 걸 보니, 그 때 그 상황이 떠 오른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상상했다.

몸이 터져 누워 있는 나를 발견 했을 때 아이들은 어땠을까.

‘미안하네.’

“크흠.”

신지수가 헛기침을 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뚜뚜는 서진을 ‘발견’ 한 거고. 서진을 살린 건 나지. 에헴.”

신지수가 어깨를 들썩들썩 거렸다.

“말은 바로 해야지, 언니. 언니는 ‘응급조치’를 한 거고 서진이를 살린 건 첸 선생님이시잖아.”

“첸 선생님을 부른 게 누구야? 바로 나야. 왜 그 생각을 안 하니?”

정시아와 신지수가 투닥거렸다.

‘신지수가 응급조치 밖에 못 할 정도면..’

신지수는 치료 능력자 중 국내에서 탑 10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중상 입은 사람도 그녀 손을 거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일상생활을 할 정도였다.

진짜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까지 갔던 모양이었다.

“언니 기사는 봤어?”

“무슨 기사?”

정시아가 신지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서진. 드디어 깨어나다! 두둥!”

기사 제목인 것 같았다.

기사를 읽던 신지수.

갑자기 테이블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 엿 같은 새끼들!!”

핸드폰을 내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탁.

손을 뻗어 벽으로 날아가는 핸드폰을 낚아챘다.

“첸 선생님 이름만 쏙 뺏네.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신지수를 정시아와 한설휘가 말렸다.

나는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 내용은 대체로 내가 왜 다쳤는지에 대한 추측과 내가 드디어 깨어났다는 식의 내용이 전부였다.

기사의 중간에 신지수가 발끈한 내용을 찾았다.

‘서진을 치료한 건 이순신 헌터 학교의 간호 교관, 신지수다. 그녀는 어쩌구 저쩌구..’

신지수가 말 한 첸 선생님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우리 스승님이 어떤 분인데 이..이...”

나는 정시아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신지수를 쳐다봤다.

그녀가 왜 흥분하는지 알고 있었다.

첸.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의술과 치료 능력이 뛰어난 남자.

허나 헌터계나 정계에 아무런 욕심도, 탐욕도 없는 남자.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남자.

여기까지가 그에 대한 간단한 평가였다.

그야말로 위인(偉人)이라고 칭할 만한 사람이었다.

허나 으레 그렇듯 너무 능력이 출중하면 세상이 질투하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첸은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환자를 위해서만 사용했다.

환자를 따로 구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많은 의사들과 치료 능력자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됐고, 모함의 공통된 표적이 됐다.

그는 많은 명문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으레 그렇듯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특별대우’를 받기를 원하는데, 첸은 오로지 아픈 환자에게만 ‘특별대우’를 했다.

내가 서진에게 빙의 전, 살아왔던 세계에서 첸과 유사했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이국종 교수.

첸은 퍽 이국종 교수와 닮은꼴이었다.

“후우..”

냉수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킨 신지수.

“말 안 해줄 거야?”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그녀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왜 그렇게 됐는지.”

“....”

“야심한 시간에 학교 뒷산에서 도대체 뭘 했길래 몸이 그렇게 폭탄 터지듯이 터져? 진짜 처음에 너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나마 다행히 장기 쪽은 무사해서 어찌어찌 치료가 돼서 망정이지.”

신지수의 말에 사부작거리던 애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시선이 모두 내 쪽으로 향했다.

“빌런의 습격이나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줄 알았어. 근데 조사해 보니까 주변에 그런 흔적이 전혀 없더라고. 첸 선생님이 그러더라.”

“....”

“이건 내부에서 마나 과부하가 심하게 일어나면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감당하지 못 할 마나를 억지로 사용하려고 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무슨 짓 한 거야?”

이걸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나는 집고 있던 탕수육을 내려놓았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잠깐 생각하긴 했었다.

이런 류의 질문이 나올 걸 예상했으니까.

근데 마땅히 대답할 핑계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니 아직 말 할 시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숨기자니 말 할 핑계가 없고.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능력 하나를 실험해 봤어요.”

“아니 무슨 대단한 능력이길래 몸이 그렇게 퍼엉! 하냐고.”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중에 완성 되면 말씀드릴게요.”

“뭐야, 그 말? 또 그 지랄하겠다는 거로 들리는데?”

“아뇨. 제가 바보도 아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어요? 하하!”

다행히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 세계에서는 능력이나 스텟을 비밀로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일부러 능력 한 두 개 정도는 오픈을 안 한 채 꼭꼭 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장의 무기’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다시 탕수육을 집어들려고 했다.

“해운대 바다가 잠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던데. 서진이 언덕에 올라 간 타이밍에.”

정시아가 나처럼 별 일 아닌 것처럼 라조육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분산 됐던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쏠렸다.

“아.. 진짜? 무슨 재해 징조 아니야?”

대수롭지 않게 그녀의 말을 흘렸다.

정시아가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 나를 보며 억지로 웃었다.

“아..저 화장실 좀.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 + +

“너 근데 못 본 사이에 얼굴이 조금 수척해진 것 같다?”

“....”

나와 같이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금석이 화장실로 따라왔다.

내 말에 순간적으로 금석이 굉장히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렸던 바지를 올리며 금석이 짧게 한 마디 했다.

“힘들었다..”

그 한 마디가 전하는 진심을 알 것도 같았다.

금석이 내가 의식불명일 때 습득한 ‘야수의 본능’은 단기간에 습득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 능력이었다.

금석은 아무리 짐승처럼 군다고 해도 본질은 인간이었으니까.

그런데 3주 만에 금석은 ‘야수의 본능’을 습득했다.

‘얼마나 한설휘랑 정시아가 혹독하게 다구리 쳤으면..’

금석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야수의 본능’을 습득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웅담도 잘 챙겨 먹었어?”

“..그래.”

기특하네.

“너 이번 달에 새로 들어온 포인트. 벌써 고기 다 산 건 아니지?”

매 달 1일이 되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화폐 대신 사용하라고 ‘10만p’씩 충전을 해줬다.

오늘이 4월 3일이니까.

금석이라면 충분히 10만p로 고기를 다 주문 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

금석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뺏겼다..”

“뺏겨? 누구한테?”

“마귀랑 할멈한테..”

마귀랑 할멈이라면.

딱 떠오르는 여자가 두 사람 있었다.

“왜?”

“네가 누워 있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라고 하면서..후..”

금석이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말없이 금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우리는 화장실을 나갔다.

“석아 뭔가 비우니까 또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난 오늘 먹고 죽을 거다. 우리 뚜뚜를.. 잘 부탁한다.”

아무 쓸 데 없는 대화를 비장하게 주고받으며 일행이 있는 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 때 바로 옆에 있는 방이 직원이 서빙 하느라 문이 열려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쳐다봤다.

“..어?”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지만 특유의 붉은 빛이 머리카락에 감돌았다.

그리고 길게 뻗은 목선하며.

“다 먹은 그릇은 치워주시겠어요?”

목소리를 듣고 확신했다.

‘채린.’

그녀도 이곳에 밥을 먹으로 온 모양이었다.

‘상대방은 누구지?’

채린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말끔한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멀끔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특이한 건 귀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큰 편이라고나 할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의 모습이 왠지 낯이 익으면서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 내 친구 중에 그 쪽 닮은 사람 있어요.’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내 친구가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 뜬 구름 같은 기분.

‘흔하게 생긴 얼굴인가보지.“

“뭐하냐?”

“어..? 아니 그냥.”

금석이 가다가 뒤를 돌아서 채근했다.

마침 서빙을 마치고 직원이 문을 닫았다.

‘데이트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