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26화 (26/196)

참고로 전 연휴에도 글을 쓸 예정이니 많이 보러 와주세요!26회

달빛 제 1초식

슥슥.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콤한 음식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꼬르륵.

배에서 허기짐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작은 소녀가 하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모든 사고와 감각이 느껴졌다.

그런데 도통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사고가 활성화 되지 않았다.

나는 소녀가 스테이크를 썰고, 입에 넣고, 씹고.

하는 일련의 반복을 지켜봤다.

딱-!

소녀가 반쯤 먹었을 때 손가락을 튕겼다.

“허어어억!!”

그러자 갑자기 공기가 입 안으로 파고들며 머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지루하지? 가만히 밥 먹는 장면만 보고 있으니까.”

“....”

소녀가 입 안으로 스테이크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나는 저 소녀를 알고 있었다.

나를 모니터 세상으로.

나를 서진의 몸속으로 집어넣은 장본인.

나는 아마도 저 소녀가 ‘신’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었다.

“먹을래?”

소녀가 스테이크 조각을 집어 들었다.

“여긴..”

나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 앞에 소녀가 있다.

그렇다는 말은 나는 죽은 게 아닐까?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아..’

나는 성급히 서진의 능력을 사용했다.

설마 죽을 줄은 몰랐는데.

죽었을 줄이야.

“너 안 죽었어.”

“..예?”

“거의 죽을 뻔 했는데. 네 옆에 있던 강아지가 널 살렸어.”

“그게 무슨..”

“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구조 요청하러 가더라. 참 영리하기도 하지. 그냥 죽게 내버려둬도 됐는데 말이지.”

“....”

살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에..

“사람은 죽음에 근접하면 잠깐, 사후 세계를 엿보게 되지.”

잠시 깜빡했다.

저 소녀는 마음속을 읽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가만히 소녀가 냅킨으로 입을 닦는 걸 지켜봤다.

“조용히 밥 먹는 걸 보고 있으면 보는 이 입장이 어떨거라고 생각해? 방금 경험했잖아.”

“맛있겠다..”

“그런 거 말고. 자, 그러면 가정을 이렇게 해보자. 하루. 일주일. 한 달. 24시간 내내 계속 밥 먹는 거 만 본다고 생각해 봐.”

그건 쫌 곤욕이 아닐까.

빙의 전 현실에서 너튜브로 먹방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먹방을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보는 건 고문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정확해. 고문이지.”

“....”

“넌 날 고문하고 있어.”

“..네?”

“지루하고 재미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시간이 다 됐네.”

소녀가 날 보며 싱긋 웃었다.

“세상을 구하는 건 너의 ‘목적’이야. 그럼 나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니?”

딱-!

소녀가 손가락을 부딪혔다.

그러자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날 재밌게 해 줘. 안 그러면 내가 재밌게 만들어 줄 테니까.”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 + +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음..’

심연에서 정신이 서서히 빠져나오는 느낌이랄까.

정신이 뚜렷해질수록 몸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옭아매고 있는 것 같은데..그것 보다..’

소녀가 한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지루하니, 본인을 재밌게 해달라는 말.

나는 내 경험이 비추어 소녀의 말을 해석했다.

소녀는 내가 저승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니터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근데 보는 맛이 없다. 그러니 좀 더 다이나믹한 장면을 연출해 달라.

‘그런 뜻인가?’

웃음이 나왔다.

그녀 말대로라면 일부러 사지에 발을 내 딛고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야 하는데.

소녀가 보기에는 이 세상이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처럼 위기와 난간. 이런 것들이 난무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꽃밭까지는 아니더라도 순차적으로 별 위기나 난간 없이 헤쳐 나가고 싶었다.

목숨이 여러 개라면 시도를 해보겠지만 난 죽으면 곧바로 죽음.

그리고 지옥인데 위험에 굳이 뛰어들고 싶진 않았다.

‘아 답답하다.’

소녀의 생각은 꿈처럼 금방 잊혀졌다.

나는 몸을 꼼지락거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데 눈이 도통 떠지질 않았다.

‘뚜뚜.’

뚜뚜가 날 살렸다니.

‘녀석. 깨어나면 특식이라도 차려줘야지.’

뚜뚜를 생각하자 자연스레 언덕 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달빛 제 1초식은 서진이 사용 가능한 능력 중 가장 난이도가 낮고 가장 약한 능력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 몸이 아작 나버렸다.

서진은 마치 ‘신의 장난’ 같은 캐릭터였다.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지닌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다.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진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능력치가 B급 이상은 돼야 했다.

‘그래봤자.. 1초식. 혹은 2초식까지 되려나.’

서진이 가능 능력을 모두 100퍼센트 활용할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 S급 이상의 스텟.

그리고 플러스로 여러 가지 아이템이 필요했다.

다소 부정적인 생각 사이로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1km가 넘어 보이는 거리의 바다에 닿을 정도로 우월한 사거리와 파괴력.

만약 이 능력을 근거리에 쓴다면 위력은 몇 배나 더 강해지지 않을까?

‘위력을 조절 할 필요는 있어 보이네.’

나중에 얘기였지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들이미는 격이 될 수도 있으니까.

“밖에서 뭐해? 서진 보러 온 거 아니야?”

“....”

“들어와, 들어와.”

‘정시아 목소리인데.’

“어차피 저거 의식불명이라 너 온지도 몰라. 아 진짜, 남자가 부끄러움이 왜 그렇게 많아? 니네 형제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인사하러 왔으면 인사는 하고 가야지. 빨리 들어가라고오오오!!!”

뭔가 떠밀려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형제간? 설마..’

아니겠지.

서시우가 왔을 리가.

근데 내게 형제는 서시우 밖에 없는데.

“나 나가 있을 테니까 울고 짜던 알아서 해!”

정시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심하고.”

미성이지만 저음인 서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못났군.”

이게 누워 있는 사람에게 할 소리인가.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취 총에 맞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빨리 일어나라.”

“....”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등살을 혼자 감당하기 힘드니까.”

서시우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덤덤했다.

그리고 한 동안 침묵을 했다.

다시금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 건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너는 기억을 못할 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살짝 녀석의 목소리가 그 전보다 격양 돼 있었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될 거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유치하고 보잘 것 없는 어린 아이의 망상이었지.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동경하고 멋있다고 생각 했었다.”

어금니를 물고 있는지 목소리가 둔탁해졌다.

“그런 네가 무너지고 타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시우가 쉼 호흡을 했다.

“나는 달빛 계승자가 될 거다. 서진. 앞으로 내 발목을 잡는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형이라고 할지라도 용서치 않을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문 여는 소리가 안 들렸다.

옆에서 미약하게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가만히 서 있는 모양이었다.

“어릴 때의 넌 꽤 좋은 형이었다.”

“....”

“꽤 멋있었고.”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서시우의 독백 같은 읊조림이 끝이 났다.

녀석이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릴 때, 서진과 서시우는 사이가 무척이나 좋은 형제였다.

하지만 10살이 넘어서고부터 점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진이 삐뚤어지며 서시우를 밀치기 시작했다.

서시우는 능력을 개화했다.

하지만 서진은 능력을 개화하지 못했다.

이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창조 그룹에 대대로 전설로 내려져 오는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

‘달빛 계승자.’

이 능력은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활자로만 기록 된.

헌데 서시우가 달빛 계승자의 능력을 어린 나이에 흉내 내기 시작했다.

서시우는 가문의 기대주로 우뚝 솟았다.

반면 서진은 서시우의 그늘에 가려진 못난 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허나.

톱니바퀴는 잘못 맞물려져 있었다.

서시우를 비롯 사람들은 지금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니었다.

톱니바퀴는 지금 명백하게 불협화음을 내며 삐거덕 거리고 있었다.

진정한 달빛 계승자는..

드르륵.

닫혔던 문이 열렸다.

“들어와, 들어와. 괜찮아. 너 음.. 언제 봤더라. 기억이 안나네? 헤헤. 어쨌든 서진 보러 온 거 맞지?”

“으..응.”

“들어가, 들어가.”

“어..응..”

정시아.

지금 밖에서 호객 행위를 하면서 돈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병상에 누워 있는 서진~ 5분 보는데 만 원!!’ 이런 식으로.

내 옆에 또 다른 손님이 앉았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눈을 뜨기 위해 애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될 듯, 될 듯 하면서 좀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아..안녕. 아.. 아닌가. 어.. 몸은 괜찮아?”

어수룩하고 수줍은 말투.

‘세리나’

잠재력 100의 괴물이 여긴 어쩐 일로 왔을까.

“도서관을 계속 안 오길래.. 무슨 일 있나 했는데.. 어쩌다 이런 거야? 아.. 말을 못하는 구나.”

촌철살인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고 있는 세리나.

“네가 읽으라고 한 소설들. 다 읽어 봤어.”

나는 세리나에게 소설을 몇 권 추천 했었다.

세리나는 동화책을 사랑했다.

그래서 읽을 줄은 몰랐는데, 읽은 모양이었다.

“쫌 잔인하고.. 사람들이 막 죽고.. 쫌..”

잔인하고 사람들이 많이 죽는 소설만 추천해줬으니까 당연한 얘기였다.

또 한 가지 내가 추천한 소설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고.. 죽여야 하는 그런..거 말이야. 근데 사실 잘 모르겠어.. 그냥 다 같이 평화롭게 행복하면 살면 되는데.. 왜 서로 싸우고 죽이려고 하는지..”

사명감. 그리고 애(愛) 정신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들이었다.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빨리 일어나서 도서관에 와. 너 안 오니까 조금 심심해. 어..어..”

“....”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지금 세리나의 얼굴을 빨개졌다.

“미안. 근데..있잖아. 서진아.”

세리나의 말과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서, 행동 예측하기가 너무도 쉬웠다.

‘지금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겠지.’

“있잖아..”

내 귀에 얼굴을 갖다 댔는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너..진짜.. 설휘라는 애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막 뽀뽀도 하고 그런..”

속삭여서 그런지 귀가 간지러웠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쫌 떨어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들이댔으면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간지러웠다.

“진짜야.. 진짜 궁금해서.. 진짜 진짜.”

다행히 내 속 마음을 읽었는지 다시 자리에 착석을 하는 세리나.

“3주 동안 누워있으면 되게 심심했겠다. 내가 책 가져와서 책이라도 읽어줄까?”

3주.

세리나는 지금 3주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이 3월 달이 아니라 4월 달이라는 소리인데.

‘아..’

내가 자초한 일이라 어디에다가 화풀이나 하소연 할 수도 없고.

‘곧 중간고사 기간이겠네. 아!!’

굉장히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사건 하나가 터졌다.

그 사건을 막으러 가야 했다.

내가 모니터 세상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건 중 하나였다.

그 사건을 막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미래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아니 시발 왜 이렇게 눈이 안 떠지는 거야.’

정신은 이제 완전히 멀쩡히 돌아왔다.

근데 눈이 안 떠졌다.

몸도 안 움직이고.

세리나가 옆에서 혼자 조곤조곤 계속 떠들었다.

체감 상 10분 쯤 지났을까?

밖에서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내가 간호실 앞에서 돗자리 깔고 있지 말라고 했지!! 다 꺼져!! 당장 꺼져!!”

간호 교관, 신지수의 목소리였다.

드르륵.

“어휴. 서진이 무슨 상전이야, 상전. 3주 동안 지겹지도.. 넌 누구니?”

“아..저..”

“됐고. 너도 나가.”

“..네?”

“저기 누워 있는 상전, 붕대 갈 시간이니까 나가. 나가라고!!”

“아..네!!”

세리나가 후다닥거리며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으로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신지수.

“아니!! 1년 동안 받을 스트레스를 3주 만에 몰아서 받는 게 말이 되냐고. 어? 서진아. 말 좀 해 봐.”

“....”

“스승님 모셔 와서 너를 얼마나 극진히 치료하고 보살펴줬는데. 왜 내가 널 그렇게 만든 것처럼 따지고 물어보냐, 이 말이야!! 니네 어머니는 어?! 나를 아주 그냥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뭐? 서진이가 못 깨어나면 내 책임이라고? 허. 참. 어이가..”

신지수가 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무언 갈 풀기 시작했다.

“..없..진 않네?”

“....”

신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아.. 붕대 때문에 안 보이는 거였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방금 한 말 농담인 거 알지?”

신지수가 날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나 역시 어색하게 웃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떡국 많이 드세오~~

조아라에서 뭔가 해서 뭔가 작성을 햇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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