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24화 (24/196)

자정 12시 조금 넘어서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24회

인명 구조 수업

“인명 구조 수업 결과를 발표하겠다.”

인명 구조 수업이 끝났다.

“1등은 3조다.”

“야호!!”

“아싸!!”

3조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2등은 4조다.”

4조 역시 환호성을 질렀다.

“3등은 밑으로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인질이 죽거나, 인질을 지키지 못하거나. 동료가 사망하거나.”

박태산 교관이 못마땅한 얼굴로 학생들을 쳐다봤다.

“5조. 개별 행동에 1명이 사망하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5조가 3등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조는 우리 조였고, 사망은 나였다.

한설휘에게 뽀뽀를 한 대가로 한설휘가 나를 4층 밖으로 집어 던졌다.

다행히 진짜 사망할 뻔했지만, 밑에서 대기하던 간호반으로 인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자세한 피드백은 다음 시간에 하겠다. 부상자는 지금 즉시 간호반을 따라 간호실로 갈 수 있도록.”

생사를 오락가락 했던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

+ + +

“아~ 그런 명장면을 놓치다니. 아~~~~ 참으로 안타까워라~”

간호실이 북적북적 거렸다.

인명 구조 수업의 여파였다.

내 옆에 앉아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시아가 계속 입술을 내밀며 놀렸다.

“우우움. 쭙. 쭙.”

“....”

허공에다가 뽀뽀하는 정시아.

“적당히 해. 너 때문에 진짜 죽을 뻔 했으니까.”

“뭐어?!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정시아가 일부로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애들이 전부 우리 쪽을 쳐다봤다.

남자 애들의 시선에 날이 서 있었다.

한설휘를 남 몰래 흠모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트럭이었다.

난 오늘 그 트럭의 공공의 적이 된 셈이었다.

‘조금 잠잠해졌는데, 또 남자 애들 대련하자고 난리치겠네.’

정시아와 같이 다니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한설휘의 입술까지 뺏었으니.

“아야.”

예고도 없이 간호 교관, 신지수가 빨간 약을 내 이마에 발랐다.

“설휘랑 뽀뽀 했다며? 어머머.”

“....”

“둘이 오늘부터 1일?”

대꾸를 말자.

나는 먼 산을 쳐다봤다.

그러자 빨간 약을 일부러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교관님. 거기는 안 다쳤는데요.”

“아~ 실수.”

눈을 깜빡이며 태연하게 웃는 신지수.

‘실수한 인간의 얼굴이 전혀 아닌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가요?”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는 신지수.

“한설휘가 가만히 있겠어? 그리고..”

턱으로 옆을 가리켰다.

남자들이 단체로 먹이를 뺏긴 짐승의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쟤들은 어떻고.”

신지수의 말이 맞았다.

가만히 있다가는 한설휘든 저 놈들이든 누군가가 뒤에서 무슨 짓을 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한 것도 아닌데.

한설휘와 뽀뽀를 하는 순간 나는 답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걸 순간적으로 깨닫긴 했다.

“언니. 나도 요기 아파용.”

정시아가 콧소리를 냈다.

“학교에서는 교관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신지수가 옆으로 옮겨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해? 아직 치료 다 안했어.”

“괜찮아요. 멀쩡해졌어요.”

금석이 훈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신뢰도 점수가 높아서 그런지 금석의 스킬 전부가 오픈 됐고, 흉내가 아닌 ‘모방’이 가능했다.

금석에게는 ‘자가 치유’라는 신체 재생력을 높이는 능력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빠르게 회복했고, 지금은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아니.. 그래도.”

신지수가 만류하려고 했지만 나는 무작정 간호실을 나갔다.

“느낌이 꼭 한설휘한테 가는 것 같지?”

“제 생각도 그래요. 언니.”

“또. 또.”

“입에 붙어서 그런 걸 어떡해요, 언니. 언니. 제가 한 번 따라 가볼까요?”

“아서라, 아서. 걸리면 진짜 병원에 입원해야 할지도 몰라. 혹시 모르지. 입원으로 안 끝날지도.”

정시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 + +

“나는 너랑 할 얘기 없어.”

우리 반은 대규모 인원이 부상자였다.

그래서 교실에 남아 있는 건 몇 사람 없었다.

애꿎은 책상을 펜으로 벅벅 긁던 한설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있어. 잠깐 나가자.”

“아직 전투 수업 시간 안 끝났어.”

그녀 말 대로였다.

박태산 교관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아직 수업 시간이 예정대로 끝나려면 30분이 남아 있었다.

박태산 교관은 치료 시간을 수업 시간 안에 포함시켰다.

“나랑 얘기 안 할 거야?”

“할 얘기가 없는데 무슨 얘길 해.”

“할 얘기가 왜 없어? 아까 훈련할 때 너랑 나랑 뽀뽀..읍..”

한설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입을 틀어막았다.

“죽일 거야. 한 마디만 더 하면.”

나는 한설휘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가서 얘기 좀 하자고.”

“여기서 해.”

“..뽀뽀..읍..”

“..따라 와.”

나는 한설휘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 + +

지금은 자유롭게 간호반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지만, 엄연히 수업 시간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학교를 활보하고 다닐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옥상에 조성 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이곳은 안전지대였다.

툭. 툭.

한설휘가 땅을 보며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 한설휘를 마주 했을 때는 정혼을 깨는 걸로 정리가 끝났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끝냈다고 해서 끝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한설휘랑 엮이거나 마찰이 생기는 거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한설휘의 잠재력 수치는 95였고, 나는 그녀 혼자 충분히 그 수치를 달성하리라고 생각 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전생보다 더 빨리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 했다.

그런데 한두 번 한설휘와 마찰을 빚으면서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오늘이 결정적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달콤해서는 아니었다.

아니 조금 사심이 포함 돼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한설휘 인생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한다면. 어쩌면 전생보다 잠재력 수치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잠재력 수치가 95가 아니라 96,97,98. 혹은 더 높이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실제로 한설휘가 어떻게 하면 95라는 전생의 벽을 넘을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나랑 사귀자.”

고백하기로.

한설휘가 미친놈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괜찮았다.

예상한 반응이었으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수밖에 없었다.

한설휘를 본격적으로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 반응을 보아하니 한설휘는 정시아에게 질투를 느꼈다.

왜? 나 때문에.

그렇다는 말은 관계 정리를 하지 않은 채, 두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가능 할 것 같기도 하고 불가능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절대 한설휘와 정시아는 친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설휘 때문에.

아마도 한설휘는 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한설휘와 사귄다. 였다.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로 한 이상 서로 목숨을 내어주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사귀지 않으면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사귀면 또 뽀뽀를..’

아니, 이건 아니고.

‘뽀뽀 말고 키스도 할 수 있을..’

아니다. 이런 생각 조금은 하지만 어쨌든 아니다.

사귀게 되면 또 한 가지 이점이 있었다.

한설휘와 나 사이에 퍼지는 소문과 루머로부터 내가 방패막이가 돼 줄 수 있었다.

문제는 날 좋아하지만 탱탱볼처럼 아닌 척 하는 한설휘를 어떻게 꼬시냐. 이건데.

“알잖아. 오래전부터 내가 너 좋아해 왔다는 거.”

“....”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너한테 좋아한다는 말은 했어도, 사귀자는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안 그래?”

실제로 서진은 한설휘에게 좋아한다는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꼬마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못되게 구는 것처럼 서진은 한설휘를 쫓아다니며 못되게 굴었다.

내 말에 진정성을 느꼈는지 한설휘가 말없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알아. 나도. 네가 날 어떻게 생각 하는지. 그동안 내가 망나니처럼 굴고 싸가지 없어서 날 싫어했잖아.”

“싫어하진 않았어.”

“크흠. 어쨌든.”

‘오호라~~’

한설휘의 반응에 나는 조금씩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내가 카페에서 그랬잖아. 스스로의 힘으로 널 쟁취해 보겠다고.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겠지.

그 날 내가 했던 말을 상기하라고 일부로 물어봤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휘.

“근데 있잖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더라.”

나는 일부러 얼굴을 감싸며 자책하는 척을 했다.

“내가 뭐라고. 망나니 같은 내가 감히 너를 쟁취한다니..하..”

“야.. 왜 그래..”

아직 대사 더 남았어.

기다려.

“네 말대로 난 너무 유치하게 살아왔어. 근데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 진짜야. 다.. 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말썽도 안 피우고.. 소란도 안 피우고..크흑..”

한설휘 몰래 손가락으로 눈을 찔렀다.

생각보다 깊게 찔러서 눈물이 곧바로 흐르기 시작했다.

“야아..”

한설휘의 마음이 약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니쉬 간다.

“천천히 다가가려고 했어.. 혹시나 네가 싫어하지 않을까.. 네가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 너도 알다시피 내가 너무 병신처럼 살아 왔잖아.. 어떤 여자가 나 같은 놈을 좋아 하겠어.”

“아..아니야. 너 그렇게까지 병신은 아니야.”

“근데 어떡해.”

나는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네가 너무 예쁜데.”

한설휘가 머리를 만지며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네가 너무 예뻐서, 미치겠는데 나 보고 어쩌라고. 어제는 예뻤고, 오늘은 예쁘고, 내일은 예쁠 예정인데 나 보고 어쩌라고. 아침 점심 저녁 다 예쁜데!! 나 보고 어쩌라고!!”

말하는 나도 부끄러운데 듣는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한설휘가 다리를 꼼지락거렸다.

“나도 알아. 성급한 거. 근데 아까 너랑 뽀뽀하니까 도저히.. 인내심이 바닥났어. 미안.”

나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근데 이거는 다른 얘기인데, 네가 정시아 보다 5000배는 더 예뻐.”

아니다. 한..1.5배 정도 더 예뻤다.

“뭐..그렇다고.”

나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는 뜸을 들이며 한설휘의 대답을 기다릴 차례였다.

솔직히 거절할 것 같았다.

아무리 한설휘와 서진이 어릴 때부터 지지고 볶던 사이라지만 고백하는 타이밍이 나이스하지 않았다.

한설휘가 가지고 있는 서진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도 바꾸지 못했다.

“어디가..예쁜데?”

“..응?”

“나 어디가 예쁘냐고. 너 나한테 예쁘다고 한 적 처음인 거 알아?”

“그..그랬나?”

“맨날 못생겼다고 그래놓구. 나 어디가 예쁜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나는 엉덩이를 들어 한설휘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걸 꼭 말로 해야 돼?”

나는 얼굴을 한설휘 쪽으로 살짝 들이밀었다.

“일단 눈.”

나는 손을 들어 가볍게 한설휘의 눈을 쓸었다.

“보석 박아놓은 줄 알았잖아. 그리고 코.”

나는 가볍게 한설휘의 코를 쓸었다.

“아이코..”

손을 떼며 아픈 시늉을 했다.

“왜 이렇게 오똑해? 베일 뻔 했잖아.”

내 말에 베시시 웃는 한설휘.

“더 해?”

“응.”

“입술.”

나는 한설휘의 입술을 지그시 노려봤다.

“매일 뽀뽀하고 싶을 정도로..예뻐.”

만약 멜로 드라마였다면 이 타이밍이 뽀뽀를 할 타이밍이겠지.

‘하지만 그런 장르가 아닌 걸.’

뽀뽀 했다가는 큰 저항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뭐야. 왜 눈 감는 건데?‘

나는 당황 했다.

지금 상태창이라도 켜서 장르의 혼동을 막아야 하나 생각 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의 멜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누구를 설득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한설휘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 입술을 맞췄다.

그녀의 입술은 너무나도....

+ + +

학교 수업이 전부 끝났다.

오늘부터 특훈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나서기 전, 담임 교관인 신지수에게 허락을 맡았다.

‘방과 후에 저녁 늦게까지 훈련해도 될까요?’

기숙사는 통금 시간이 있었고, 야간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담임 교관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신지수는 흔쾌히 허락을 했다.

“가자.”

내 말에 금석과 정시아가 따라왔고.

그리고 제일 뒤에 멋쩍은 표정의 한설휘가 따라왔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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