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20화 (20/196)

난 곰한테 영업 성공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20회

곰 왕 '하리부'

그오오!!

“쫌만 더!! 할 수 있어!!”

살면서 누군가 똥 싸는 걸 응원하게 될 줄이야.

하물며 누군가가 곰이라니.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하리부를 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했다.

그오!! 그오!!

내 응원에 기합을 넣는 하리부.

마치 출산 직전의 마누라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크으으오!!!

녀석의 마지막 기합이었다.

그 기합을 마지막으로 하리부는 앞으로 벌러덩 자빠졌다.

“오오!! 하리부!!”

사향 고양이에게서 배설물을 채취해 루왁 커피를 만드는 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뭔가 찝찝한데 기분이 좋단 말이지.’

다른 배설물 없이 딱 웅담만 바닥에 있었다.

몽둥이 같기도 하고, 풍선 같기도 한 웅담을 집어 들었다.

하리부의 덩치가 커서 그런지 웅담의 크기고 내 상반신만 했다.

‘이 정도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겠는데?’

나는 웅담을 포인트 상점에 집어넣고, 하리부에게 걸어갔다.

“고생 했어. 하리부.”

웅담을 집어넣으며 꺼내온 마지막 남은 꿀을 하리부 앞에 나뒀다.

그오오..

하리부가 낮게 울었다.

진이 다 빠진 모양.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꿀 가지고 올게.”

그오오.

“혹시 다른 사람이 웅담 달라고 해도 주면 안 돼. 알겠지?”

그오.

나는 손을 들어 하리부의 머리를 빗질 하듯이 가볍게 쓸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칠게 쓰다듬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물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차마 그러진 못했다.

“잘 지내고 있어. 간다!”

하리부와 독점 계약까지 맺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이것들은 내가 치워줄게.”

나는 하리부가 죽인 레볼루션 피라미 둘을 양 손에 쥐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오오~

하리부의 울음소리가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 + +

“엥? 뭐야?”

동굴을 빠져나오자 딱 봐도 헌터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나는 양 손에 끌고 나온 레볼루션 피라미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야!!”

“서진씨!!”

두 사람이 내게 달려왔다.

한 명은 정시아였고.

한 명은,

‘채린?’

“안 다쳤어?”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씨는 여기 어떻게..?”

“치타 건을 조사하다가 ‘곰 왕국’으로 숨어 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요. 그래서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는데 시아를 만났지 뭐예요. 시아 말로는 하리부가 깨어났다고 들었는데 설마 하리부도 죽이신 건..”

채린의 시선이 내가 끌고 나온 코뿔소와 원숭이에게로 향했다.

“아니죠?”

“네. 잠깐 기절만 시켜놨어요.”

하리부는 ‘곰 왕국’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녀석이었다.

녀석이 없으면 이곳의 질서가 파괴되고 곰들이 출입 금지 구역을 넘어 민간 지역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리부는 이곳에서 절대자이자 관리자였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하리부에게 한 가지 딱지를 붙였다.

‘보호 몬스터’

보호 동물과 같은 개념이었다.

하리부가 죽으면 어쩔 수 없이 곰 왕국의 곰들을 모두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건 많은 이들의 저항을 받는 일이었다.

덩치가 일반 곰에 비해 크기는 했지만 이곳의 곰들은 몬스터라 부르기에는 동물에 가까웠으니까.

동물 학살.

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잔인한 소리인가.

“하리부를.. 기절..이요?”

채린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네.”

내 대답에 정시아가 옆을 가리켰다.

“언니 저기 봐.”

전신이 잔인하게 터져 죽어 있는 코뿔소와 원숭이.

특히 머리가 박 터지듯이 터져 있었다.

“아..”

수긍을 하며 나를 보는 채린.

‘내가 그런 게 아닌데.’

“일단 우리 밖으로 나가서 얘기 할까요?”

채린의 말에 우리는 곰 왕국을 벗어났다.

+ + +

노포동의 어느 한적한 카페.

세 사람의 눈알이 또르르 굴러다녔다.

또르르.

데구르르.

“시아. 너부터 말해. 네가 거기 왜 있던 거야?”

“미행했어.”

두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왜?”

“그러게. 내가 왜 미행 했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왜 내가, 네가 날 미행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나는 말을 하며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네.”

“시아, 너 똑바로 말 안 해? 언니가 십자가 인장..”

“레볼루션.”

“응?”

“십자가 인장 걔들 단체 이름이 레볼루션인 것 같던데?”

“네가 그걸 어떻게..”

“들었어. 그리고 막 대장. 대장 이러던데. 대장이라는 사람이 따로 있나봐.”

정시아.

동굴에서 나랑 같이 레볼루션 피라미들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너..언니가 걔네들 혹시라도 마주치면 도망가라고 했어 안 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아니. 나한테는 그게 중요..”

“언니.”

“자꾸 말 끊을래?”

“궁금하지 않아? 서진이 어떻게 그 놈들이 거기 있는 걸 알았고, 혼자 치러 갔는지? 아. 혼자 치러 가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겠다. 숨기고 있는 능력이 워낙 많으시니까.”

어디서부터 오해의 실타래가 시작 된 건지는 정시아가 하는 말은 모두 헛다리였다.

레볼루션 피라미들이 동굴에 숨어있던 거?

몰랐다.

당연히 몰랐으니까 혼자 치러 갈 생각도 없었고.

숨기고 있는 능력?

있긴 하지만 많진 않다.

‘네 능력 딱 두 개 있어. 망할 년아.’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추리에 성공한 탐정처럼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정시아를 잠깐 쳐다봤다.

얄밉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

웅담 하나 얻으러 간 게 무슨 큰일이라고.

‘어휴.’

나는 속으로 한 숨을 내쉬며 혹시나 해서 준비한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이 시나리오는 실화를 내 시점으로 약간 각색한 대본이었다.

그 전에 두 사람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두 사람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날 쳐다봤다.

“저와 존재맹세를 할 수 있습니까?”

‘존재맹세’는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효력이 뛰어난 계약서 중 하나였다.

계약의 내용을 어길시 능력이나 스텟이 말도 안 되게 디버프가 걸렸다.

디버프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드에서 헌터 계약을 맺을 시 자주 사용하는 계약서였다.

효력만큼이나 존재맹세를 한다는 뜻은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뜻했다.

“저와 한 배를 타실 거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진실에 대해 빙산의 일각이긴 하지만 조금은 말해 주기로 했다.

내 말에 예스를 말할 시.

만약 여기서 예스를 말한다면 그들을 보는 내 시각 또한 달라질 게 분명했다.

나는 현재까지 채린과 정시아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이긴 하나, 완전히 내 편. 내 사람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라도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내게 그들의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가 아직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의도로..

“콜.”

“....”

정시아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 그럼 존재맹세 계약서 좀 가지러..”

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만큼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해 본 말이거든요.”

이 사람들.

뭐지?

“근데 두 분 다 절 믿으세요? 뭘 보고?”

갑자기 궁금했다.

망설임 없이 내 말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얼굴.”

“저도. 아 그러니까 잘생긴 거 말고 뭐랄까.. 서진씨의 눈을 보고 있으면 믿음이 간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감. 느낌. 촉. 그런 거군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가급적이면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얘기를 시작했다.

+ + +

내 얘기는 한 편의 소설을 읊는 것 같이 잔잔하게 우리의 공간을 채웠다.

내 얘기가 전부 끝이 났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스티를 마시며 그들이 생각 정리 할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그들에게 한 얘기는 꽤나 충격적인 얘기였다.

레볼루션이라는 집단의 정체.

그리고 내가 그들을 쫓는 이유.

내가 왜 여태까지 망나니로 살아왔는지.

‘마지막은 msg가 많이 첨가되긴 했지만.’

내가 두 사람에게 한 얘기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서진이 어릴 적 아버지의 서재에서 놀았다. 라는 대목부터 시작했다.

그 때 서진은 우연히 ‘실험 파일’을 발견하게 됐다.

실험 파일은 여러 가지 실험에 대해 기록해 놓은 말 그대로의 실험 파일이었다.

헌데, 이 실험이 ‘인체 실험’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비밀리에 정부 차원에서 시행 됐던 인체 실험의 보고서가 바로 어린 서진이 발견한 ‘실험 파일’이었다.

‘뻥이다.’

서진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들어간 적도 실험 파일을 발견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서재에 실험 파일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보고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비능력자를 능력 사용자로 바꿀 수 있는가.

혹은 능력 사용자에게 다른 능력 사용자의 능력을 심을 수 있는가.

성공 사례도 있었고, 실패 사례도 있었다.

두 가지 사례를 비교하면 실패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게 비인간적인 실험이 몇 년간 자행 됐다.

하지만 이 실험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몇 몇 이들로 인해 실험이 중단 됐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실험체가 탈출했다.

탈출한 실험체들이 만든 집단이 바로 레볼루션이었다.

레볼루션의 목적은 하나였다.

‘복수.’

복수가 팽창해, 현재는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그들의 무기가 완성 되면 세계는 멸망합니다.”

한 번 멸망하는 걸 봐서 그런지 담담했다.

내가 그들을 쫒고, 막으려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포장했다.

‘사명. 혹은 신의 계시.’

어릴 때 내가 우연히 인체 실험 보고서를 발견했을 때, 그 때 예언 능력이 개화 했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내 말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

또 하나.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아들 된 입장에서 수습을 하고 싶다. 라고 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자 그들은 넘칠 정도로 수긍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망나니로 살아온 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재벌가의 장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레볼루션의 뒷조사를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망나니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에서 내 놓은 자식은 밖에서도 그렇게 신경을 안 쓰거든요.”

진짜 여기까지 말하는 내내 포장지를 여러 겹 싸느라 애먹었다.

애먹은 만큼 내가 싼 포장지는 꽤 그럴싸했다.

‘지옥 가기 싫어요. 흑흑.’

사실 내용물은 이게 전부지만.

아이스티를 다 마시고 남은 얼음을 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을 했다.

“너무 저희 아버지나 다른 실험에 참여 했던 사람들을 책망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기에는 그랬어야만 하는 그들의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인체 실험을 하던 시기는 세계적으로 능력자의 암흑기였다.

100명을 출산하면 10명 정도가 능력자에 불과했다.

10명의 능력자도 그 능력이 다른 세대에 비해 떨어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빌런이나 재앙, 재해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세계적으로 위험 지수가 너무나도 높아졌다.

그래서 인체 실험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암암리에 실행했다.

성공 사례는 거의 한국이 유일했지만.

“너무..”

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힘들었죠.. 그동안..”

날 포근하게 끌어안는 채린.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급기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힘들었을까.. 전혀 몰랐어요. 아버지 세대에서 그런 일을 했으리라고는..”

채린에 이어 가만히 자리에 앉아 날 보고 있는 정시아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바보..나는 그것도 모르고..”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저기, 여러분들. 막 그렇게 힘들지는..”

“서진씨.. 이제 그런 말 안 해도 되요. 제가.. 아니 사신 길드가 앞으로 서진씨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줄게요.”

“..저 그러면 채린씨.”

“네.”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안겨 있는 채린의 등을 토닥이다가 살짝 뒤로 밀며 말했다.

“오늘 ‘곰 왕국’에서 죽은 녀석들 사신 길드에서 했다고 해줄 수 있어요?”

레볼루션 피라미들은 지명수배범들이었다.

그래서 잡았다고 발표를 해야 하는데, 내가 잡았다고 하기에는 아직 헌터 학교 재학생이기도 하고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간 거라 명분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럼요, 그럼. 서진씨. 저만 믿어요.”

완전한 아군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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