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화 (18/196)

잘해쬬?18회

곰 왕 '하리부'

“그새 많이 의젓해지신 거 같습니다.”

주말의 아침이 밝았고, 나는 이실장을 불렀다.

목적지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고, 이실장은 5분 대기조처럼 달려왔다.

이실장이 나를 흐뭇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가 보면 군대라도 갔다 온 줄 알겠네.’

“회장님께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도련님이 필기시험에서 만점 받으신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

말을 안 했는데 마치 그렇게 말을 한 것처럼 단정지어 말한다고?

나는 고개를 돌려 이실장을 쳐다봤다.

“저번 주에 회장님 댁에 잠시 들렸는데, 사모님이 그러셨습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 얘기에 크흠..이라고 하셨다고.”

“크흠..이 왜?”

“원래 도련님 얘기만 나오면 바로 귀를 막아버리시는 분이잖습..아, 죄송합니다.”

난 또 어머니한테 대놓고 칭찬한 줄 알았네.

“아버지가 내 학교생활 감시하라고 누구한테 시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에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학교에서 저희 회사와 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

몰랐다.

‘뭐..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창밖을 쳐다봤다.

“도련님. 근데 노포동은 왜 가십니까? 거기 출입금지 지역도 많고 우범지대라 위험한데.”

“뭐..그냥. 궁금해서.”

“경호원이라도 데리고 가시는 게..”

“괜찮아. 잠깐 있다가 갈 거니까.”

“제가 주차하고 바로 따라붙겠습니다.”

“괜찮아. 택시비만 주고 돌아가. 오늘 쉬는 날이잖아.”

“아닙니다. 도련님을 혼자..”

“괜찮다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우리는 조용하게 노포동으로 향할 수 있었다.

+ + +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응.”

이실장이 떠났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노포동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출입금지 구역과 민간인이 사는 거주 지역.

내가 볼 일이 있는 건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이실장에게 출입금지 구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해서 그런지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멀리하자 빨간색 줄로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는 게 보였다.

‘민간인 출입 금지.’ 라는 팻말도 중간 중간 설치 돼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출입금지 구역이 곳곳에 존재했다.

몬스터가 출몰한다던지. 아니면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가 자주 열리는 스팟이라던지.

혹은 던전이 있다 던지.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 된 이유는 위의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위험 구역이란 소리.

위험 구역에는 S~D까지 등급이 있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곳은 C등급이었다.

C~D등급은 다른 등급에 비해 위험 난이도가 낮아 경비나 관리가 허술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민간인은 절대 출입하지 않았다.

나는 바리게이트를 따라 쭉 둘러보다가 수풀이 가장 우거진 곳 앞에 섰다.

무릎에서 초록 물결이 찰랑찰랑 거렸다.

“가볼까나.”

나는 바리게이트를 위로 들어 올리며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 + +

“이 시바아아알!!”

‘뱀의 움직임’을 시전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달린 거리를 km로 환산하면 20km는 족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튼튼한 나무!!”

나는 주변에 보이는 나무 중 가장 건실해 보이는 나무로 뛰어갔다.

그리고 미친 듯이 올라갔다.

“허억..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며 나무 밑에서 노려보고 있는 반달곰을 쳐다봤다.

몇 초가 지나자 다른 곰들이 하나 둘씩 내가 있는 나무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크오오!!

고오오!!

단체로 포효하기 시작했다.

‘곰 왕국.’

헌터들이 이곳을 칭하는 정식 명칭이었다.

이곳의 곰들은 숫자도 숫자인데 일반 곰보다 덩치가 죄다 1.5배에서 2배가량 컸다.

어떤 놈은 3배 큰 놈도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곰들은 ‘동물’이 아니라 ‘몬스터’로 분류 됐다.

그런 놈들이 단체로 내가 올라 탄 나무를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네, 곰 새끼들.”

저 놈들이 부러뜨린 나무만 해도 10그루가 넘어갔다.

내가 있는 나무도 곧 쓰러질 것 같으니 11그루 째였다.

“아..”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난 누구. 여긴 어디.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왔다 갔다 거렸다.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내 계획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곰들이 겨울잠을 자는 시즌이었고, 숲에 활보 하는 곰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필..’

말 그대로 하필이었다.

이곳에는 동굴이 몇 개가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내 목적지였는데, 쭉 돌아보니 외관 상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그 중 가장 동굴 입구가 넓고 가장 위용이 넘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발을 디딘 곳은 한국으로 치면 서울특별시 같은 곳이었다.

곰이 단체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곳이었고, 나는 곧바로 후진 기어를 넣었다.

하지만 잠귀 밝은 놈이 나를 발견하고 딱 한 번.

의문 부호를 발사했다.

그오??

라고. 그랬더니 다른 곰들이 단체로 알람이라도 울린 것 마냥 깨어나더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됐다.

현자타임 이후에는 자책했다.

‘너무 섣불렀다.’

최악. 그리고 최악의 최악 상황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나무가 흔들 흔들거렸다.

내 좌뇌와 우뇌도 흔들 흔들거렸다.

내 멘탈도 흔들 흔들거렸다.

내 거시기도..는 아니고.

아무튼.

나는 품에서 폭죽을 꺼냈다.

궁여지책으로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남은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죽음 이후가 두렵지.

이제 폭죽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탈출하느라 난사 했더니 딱 두 개 남았다.

그나마 쫌 큰 폭죽이라는 점이 위안이라고나 할까.

나는 성냥으로 폭죽에 불을 붙이고 10m 정도 뒤로 던졌다.

너무 멀리 던지면 곰들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치지지직.

거리던 폭죽이 피융! 피융! 하며 터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폭죽을 쳐다보는 곰들.

“어서 가라. 어서.”

나는 슬금슬금 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3분의 1쯤 남겨 뒀을 때, 폭죽으로 향하던 곰 한 마리가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기 시작했다.

저 징조는..

그오오오!!!

거친 포효와 함께 다시 내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몇 번 낚시를 당하더니 점점 적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에서 폴짝 뛰어 내렸다.

“좆까라!!!!!!!!!!!”

나는 다시금 ‘뱀의 움직임’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점점 속도가 평상시 속도와 비슷해졌다.

내 지혜 스텟이 낮은 탓에 마나가 고갈이 된 모양이었다.

크오오오!!

점점 곰들에게 따라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해서 주변 지형지물을 탐색했다.

‘동굴. 동굴이다!’

다른 동굴에 비해 입구가 현저히 작은 동굴이었다.

딱 곰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나는 동굴로 뛰어갔다.

그리고 입구에서 5m 정도 들어가다가 멈추고 뒤를 돌았다.

“일대일로 붙자 이 쉐키들아!!”

흥분해서 그런지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났다.

마음 같아서는 동굴 안으로 쭉 도망가고 싶었지만, 또 이전 동굴처럼 곰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면 그 때는 진짜 진퇴양난 정도가 아니었다.

죽음 확정. 이랄까?

솔직히 일 대 일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다만, 이게 최선이 수라는 건 확실했다.

“뭐야?”

떨어지면 죽는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심경으로 동굴 입구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안 들어와?”

곰들이 밖에서 서성거리기만 할 뿐 내가 있는 동굴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뭐지?’

나는 슬금슬금 입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오오오!!

그오!!

“....”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틀며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쏘옥.

고개를 동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시 외면하고 서성거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깨달았다.

‘이 곳은 안전지대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저 녀석들은 이곳에 출입 못하는 게 분명했다.

결계. 혹은 환영.

혹은 다른 무언가.

‘설마..?’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이곳에 내가 찾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 왕(王). 하리부.’

이곳이 하리부의 영역이라 곰들이 접근을 못하는 게 아닐까?

단정 짓기는 힘들었지만 하나의 가설 치고는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안에 들어가 볼까나.”

보통 영화에서 이런 대사 치면 죽던데.

나는 슬금슬금 안으로 전진 했다.

어차피 나가려고 해도 밖에서 서성거리는 곰들이 ‘다음에 봐!’라고 하고 흩어지지 않는 이상 탈출도 불가능했다.

입구에서 흘러들어오는 빛 때문에 입구 언저리까지는 시야에 에로 사항이 전혀 없었다.

근데 점점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급격히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코너를 하나 딱 돌았을 때, 시야가 완전히 암전 됐다.

순간 갈등했다.

‘돌아갈까?’

하지만 계속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옆에 벽을 의지하며 걸었다.

그러다 시야가 아주 미세하게 밝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전진했다.

시야와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아주 조금 더 전진했다.

정확히는 아니었지만 소리의 정체가 사람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아주 조금 더.

사람들의 목소리의 윤곽이 잡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시발 진짜. 그냥 나가서 확 다 조져버리자.”

“지랄 좀 그만해. 대장이 당분간 숨어 지내라고 했잖아.”

“아니, 말이 대장이지 너 대장 얼굴 본 적 있어?”

“..닥쳐.”

“맨날 대장 대장. 그냥 레볼루션이고 나발이고 탈퇴하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살자. 이게 뭐냐?”

“치타. 쫌 조용히 쫌 해. 대장이 알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탈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우리한테 복종의 인장 찍혀 있잖아. 못 봤어? 코뿔소가 어떻게 됐는지?”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 카멜레온이라도 있으면 심심하진 않았을 텐데. 그 새끼는 왜 병신처럼 나대다가 죽어가지고.”

다시 침묵.

“여기 근데 안전한 거 맞아? 자꾸 어디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냐?”

“안전해. 너도 봤잖아. 여기 곰들 못 들어오는 거.”

“그렇긴 한데.. 안되겠다. 내가 나가서 보초라도 설게.”

“야, 가만히 앉아 있어.”

“..너 아까부터 말 되게 예쁘게 한다?”

“앉으라고 했다.”

“이 씹 새끼가!!”

우당탕탕.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나는 그 틈을 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레볼루션 피라미들이었다.

모니터로 볼 때 녀석들은 도대체 어디 숨었다가 나타나는지 궁금했었는데.

이곳이 녀석들의 아지트인 모양이었다.

똥을 밟을까봐 뒷걸음질을 쳤더니 더 큰 똥을 밟을 뻔 했다.

개똥이 아니라 이건 코끼리 똥 수준이었다.

곰들과 싸울 것이냐 레볼루션 피라미들과 싸울 것이냐.

당연히 지능이 딸리는 곰들이 백 배 천 배는 나았다.

죽은 듯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때,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아..십 새끼. 무식한 게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

누군가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빠른 속도로 근접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치타였다.

“밖이었으면 내 몸에 손도 못 댈 새끼가. 아~ 나가서 인간 새끼 몇 마리 죽이고 올까. 존나 짜증나는데.”

손에 횃불을 들고 앞으로 걷던 치타.

“응?”

나를 발견했다.

나 역시 치타를 발견했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오른 손을 천천히 들었다.

“하..이?”

내 인사에 치타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헌..터?”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치타.

치타는 눈치가 엄청 빠르고 생존 욕구가 엄청난 놈이었다.

나는 다시 한 발을 다가갔다.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치타.

이런 내 액션에 치타의 눈빛이 점점 불안에 떨리기 시작했다.

‘저 놈은 헌터다!’

다행히 나의 임기응변이 먹히고 있는 듯 했다.

“헌터가 무슨 볼 일로.. 왔을까나~?”

“그러게~ 무슨 볼 일 일까나~”

나는 대시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냅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하는 치타.

나 역시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뛰는 반대 방향으로.

‘조..좆 될 뻔!!’

“크아악!!”

‘..응?’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이건 분명 치타의 비명 소리였다.

누군가 치타의 목에 단검을 쑤셔 박고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얼핏 봐도 여자였다.

몸의 굴곡으로 봐서는 굉장히 몸매가 글래머러스한 여자였다.

할 일을 다 끝냈는지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얼굴 또한 일품이었다.

몸매에 어울리는 섹시미가 뚝뚝 묻어나오는 얼굴이었다.

치타의 피가 튄 것인지 얼굴에 피 몇 방울이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이 고자도 살릴 정도로 매혹적으로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화룡정점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혀로 핥는 모습은 감히 이렇게 표현 할 수 있었다.

“정시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