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둘러 기숙사로 향했다.14회
모의 대련
“저리가라!!”
“왜에!! 나도 한 번만 만져보자아!!”
기숙사에 도착하니 뚜뚜를 안고 있는 금석과 정시아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뚜뚜~~”
크르르.
정시아의 부름에 뚜뚜가 이를 드러내며 적개심을 표출했다.
‘개랑 뱀은 상성이 쫌 안 맞긴 하지.’
나는 그들을 단련실로 데리고 갔다.
+ + +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어. 근데..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정시아가 한 쪽 눈을 뜨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속독 안경을 쓰고 독서를 하던 중이었다.
“아닌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아까도 말했잖아. 네 자유라고.”
속독 안경을 벗으며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속독 안경을 쓴다고 해서 책 한 권을 촤르르 넘기며 독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대략 한 권에 30분 정도가 소요 됐다.
내가 고른 책은 일반 책보다 배는 두꺼웠으니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또한 눈과 머리가 빠르게 지쳤다.
“으..으..”
무릎 위에 뚜뚜를 올리고 책을 보던 금석.
“쫌 쉬다 하자.”
내 말에 곧바로 책을 풀파워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
금석이 단련신을 뛰어 다녔다.
뚜뚜가 뒤를 따랐다.
고통스럽겠지.
괴롭겠지.
평생 독서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하지만 금석에게 독서는 꼭 필요했다.
“30페이지 볼 때까지 저녁 안 먹을 거야~”
“우오오!!”
내 말에 금석이 샌드백을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시아를 쳐다봤다.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었다.
정시아의 현재 상황을 기사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어떤 무기든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상태였다.
검, 창, 활.
하지만 한 단계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무기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무기만을 갈고 닦아야 했다.
정시아는 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뱀에도 종류가 무척이나 많았다.
정시아는 앞으로 자신이 능력을 사용 했을 시 형상화 되는 뱀을 선택해야 했다.
정시아가 뱀 관련 능력을 사용해서 뱀이 나타났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뱀은 줄무늬 뱀일까, 독사일까, 방울뱀일까.
정시아는 현재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순간 떠오르는 뱀을 형상화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한 가지 뱀을 정하고 형상화 할 수 있다면 정체 된 그녀의 실력이 전진한 게 분명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한 가지 걱정은 정시아가 지금 보다 강해지면 몰래 레볼루션을 전생보다 더 건드리고 다니지 않을까하는 것.
어제 강당에서 그랬다가는 사신 길드원들이 죽는다고 으름장은 놓았는데.
‘바보는 아니니까. 알아서 하겠지.“
“금석!! 다시 시작하자!”
내 말에 발작을 일으키며, 엉금엉금 기어왔다.
“오늘은 첫 날이니까 20페이지까지 보는 걸로. 콜?”
“우오오!!”
금석을 조련하는데 점점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 + +
첫 수업 시간이 시작 됐다.
전투 교관이 질문을 던졌다.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D급 스텟과 A급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그 사람은 D급 능력에 A급 스텟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싸운다고 가정하면 누가 이길까?”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답했다.
“전자요!! A급 이상 능력은 스텟을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후자입니다!! 아무리 능력 A급이라고 해도 스텟이 안 따라주면 제 성능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투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맞는 얘기다. 또 다른 의견 있나?”
“근데 교관님! 그렇게 스텟과 능력 차이가 심하게 날 수도 있는 건가요?”
“가능하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세계 랭커 중 몇 몇은 능력과 스텟 편차가 꽤 큰 편이지.”
“진짜요?!”
“누가요, 교관님?”
“세계 랭킹 3위, 젤다를 알고 있나?”
“예!!”
“당연하죠!!”
“대마법사 젤다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모르는 사람이 있지.
나는 옆에서 졸고 있는 금석의 옆구리를 툭 쳤다.
“으음.”
눈을 비비는 금석.
“그래. 젤다는 너희도 알다시피 세계에서 유일하게 4원소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대 마법사다. 그의 능력은 S급을 넘어선다고 평가 되고 있지. 하지만 젤다의 스텟은 단순한 추측이기는 하나, 지혜 스텟을 제외 한다면 전부 C급 이하일 게 분명하다. 즉 젤다의 종합 스텟은 B 랭크란 소리지.”
전투 교관의 말에 여러 학생이 반발하고 나섰다.
“에이~ 교관님. 마법사인데 솔직히 지혜 말고 다른 스텟은 필요 없잖아요.”
“맞아. 누가 젤다 스텟 랭크를 B로 봐요?”
전투 교관이 교탁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너희들의 말 대로면 능력에 필요한 스텟만 죽어라 올리면 된다. 이런 뜻인가?”
“어..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다른 스텟 보다는 그 편이..”
짝.
전투 교관이 박수를 한 번 치며,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너희들의 말과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밸런스와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밸런스가 한 쪽으로 치우친다면 다른 한 쪽이 고스란히 약점이 되는 법이지. 그래서.”
전투 교관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임시긴 하지만 실기 시험의 결과를 토대로 각자 취약한 스텟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려고 한다. 10분 뒤, 훈련장으로 모두 집합 할 수 있도록.”
전투 교관은 꼭 개처럼 굴릴거라는 말을 길게 늘려서 하는 버릇이 있었다.
꾸벅꾸벅.
나는 다시 졸고 있는 금석을 깨웠다.
“가자. 뛰어 놀게 해준대.”
내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금석.
‘강아지 산책가자고 할 때랑 반응이 똑같은데?’
우리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줄이야.’
나는 홀로 외딴 섬에 고립된 것처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전투 교관을 쳐다봤다.
입학 첫 날에 실시 한 실기 테스트에서 나는 전부 기권했다.
그게 현재 나를 고독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투 교관은 실기 시험을 토대로 조를 나눴다.
그러자 5개 조로 나뉘었다.
지혜 스텟이 다른 스텟에 비해 낮은 1조.
근력 스텟이 낮은 2조.
체력 스텟이 낮은 3조.
민첩 스텟이 낮은 4조.
마지막으로 스텟 밸런스가 골고루 잡혀 있는 5조.
그렇게 한 명, 한 명 호명을 하다가 마지막에 나 혼자 남았다.
“서진.”
전투 교관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전교생 중 유일하게 실기 시험 기록이 없군. 기권 했다고 나와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몸이 안 좋았습니다.”
“그런 친구가 잘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1등을 했군.”
“....”
비꼬는 거 같은데 딱히 할 말도 없고.
나는 잠자코 있었다.
“스텟의 수치를 물어보는 건 실례긴 하지만, 본인의 스텟 중 가장 낮은 스텟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 정 내키지 않으면 말 안 해도 된다.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 물어본 것뿐이니.”
전투 교관의 말 대로였다.
이 세계에서는 스텟은 친한 친구라도 오픈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스텟은 신체의 중요 부위만큼이나 비밀스러웠다.
즉, 이 세계에서 스텟을 물어본다는 건.
‘너 거시기 크기 몇 cm야?’
‘가슴은 몇 컵?’
라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았다.
조심스러움을 따지면 그 정도라는 얘기였다.
어쨌든.
나는 순순히 대답하려고 했다.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다른 스텟에 비해 낮은 스텟 정도야.
“지..”
입을 떼려고 할 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교관님! 즉석해서 테스트 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햇반도 아니고.
내가 오뚜기 3분 요리도 아니고.
나는 전투 교관을 쳐다봤다.
표정이 꽤나 긍정적이었다.
“나쁘진 않군. 서진. 앞으로 나오도록.”
‘아..’
속으로 탄식을 내 뱉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5분 동안 본 교관과 대련하는 걸로 하지. 이의 있나?”
“....”
이의를 제기해도 딱히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았다.
“좋다. 나는 한 팔만 사용하겠다. 대신 너는 교관을 부모의 원수라고 생각하고 덤비도록 해라. 능력이 있다면 능력을 사용해도 좋다. 최선을 다해서 덤비도록.”
전투 교관, 박태산.
국내에서 알아주는 탱커 능력자였다.
탱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냐면 입은 데미지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능력과 스텟을 알 수가 있었다.
즉, 내가 주먹으로 박태산 교관을 한 대 때리면 박태산 교관은 그 즉시 내 근력 스텟을 추측 할 수 있었다.
나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며 학생들을 흘깃 쳐다봤다.
많은 아이들이 내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비웃음을 장전하고 있는 모습.
한설휘와 눈이 마주쳤다.
“흥!”
요즘 맨날 저런다.
조만간에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보던가 해야지.
“화이팅!!”
“화..화이팅!”
정시아가 주변에 있는 애들을 독려하며 응원을 부추기고 있었다.
“죽여 버려!!”
금석의 말에 훈련장 분위기가 순간 냉각 됐다.
“교관님.”
내 말에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는 박태산 교관.
“제가 만약 한 번이라도 교관님을 다운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후..후하하하!!”
박태산 교관이 박장대소했다.
“역시 한 핏줄이라는 건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너 말고도 한 명 더 있었지.”
안 들어도 벌써 알 것 같았다.
“좋다. 만약 내가 한 번이라도 다운이 된다면..”
“나중에 제 부탁 하나면 들어주세요.”
나는 박태산 교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좋다.”
그의 대답에 나는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아직 내 스텟은 쓰레기였다.
이런 스텟으로 박태산을 다운 시킨다?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게는 미래 지식이 있지 않은가.
“덤벼라.”
박태산 교관이 손을 까딱거렸다.
그 중 박태산 교관에 대한 지식도 당연히 있었다.
박태산은 중반부에 꽤 비중 있는 캐릭터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처음에 끝내야 한다.’
나는 박태산 교관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건 대련이기는 하나, 박태산 교관은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양 손을 모두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태도만 봐도 딱 답이 나왔다.
“왼 손 사용하실 건가요, 오른 손 사용하실 건가요?”
면전 앞에 서서 물었다.
내 물음에 한 발 뒤로 빼며 대답하는 박태산 교관.
“왼 손을 사용하겠다. 아무리 모의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긴장감을 갖는 게 좋을 거야. 누가 대련하는데 앞에 와서 그런 걸 물어보나?”
그렇지.
그건 인정한다.
근데 나도 말해주고 싶었다.
박태산 교관에게.
‘님도 긴장하는 게 좋을 듯?’
이라고.
방금 확인 했다.
박태산 교관은 나에 대한 공격 의사가 전무했다.
최소 내가 위협적인 공격을 하기 전까지는 주머니에서 손도 안 뺄 것 같았다.
또 하나.
오른쪽 어깨가 왼쪽 어깨에 비해 상당히 두꺼웠다.
‘아직 치료 중인가 보군.’
아마도 붕대를 감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상대방에 대한 데이터 수집은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내 몸이 얼마나 움직여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스텟이 쓰레기이기는 하나, 서진은 기본적인 전투 센스가 쓰레기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서진은 극후반 캐리형 캐릭터였다.
하지만 전투 센스가 쓰레기면 아무리 극후반이 되도 쓰레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진의 피지컬은 꽤 괜찮았다.
‘아니.’
꽤 괜찮은 게 아니라 노력만 한다면 싸움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서진이 어느 정도의 피지컬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노력이라는 걸 이 새끼가 한 걸 본 적이 있어야지.’
뭐, 지금 실험해 보면 되겠지.
지상을 박차며 박태산 교관에게 도약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나는 주먹을 말아 쥐며, 박태산 교관의 왼 쪽 어깨에 뻗었다.
여전히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얼굴 표정 역시 평온했다.
‘역시, 그냥 맞을 생각이네.’
나는 그의 의도대로 왼 쪽 어깨를 있는 힘껏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와.. 무슨 돌덩이인가.’
분명히 능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 텐데 마치 돌을 치고 있는 것 마냥 딱딱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박태산 교관의 왼 어깨와 가슴을 두드렸다.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태산 교관.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양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돌을 맨 주먹으로 계속 쳤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끝인가?”
박태산 교관의 말에 나는 씨익 웃었다.
“아뇨. 이제 본 게임인데요.”
박태산 교관은 맞은 데미지를 수치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더불어 상대의 공격 패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박태산 교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박태산 교관은 나에 대한 전투 데이터가 없었다.
하지만 금방 전투 데이터를 심어줬다.
‘서진은 왼쪽을 집중 공략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치려고 달려 들었다.
슬슬 지겨웠는지 호주머니에서 왼 손을 꺼내는 박태산 교관.
그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 주먹을 뻗는 추진력을 이용해서 몸을 순식간에 틀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내 몸과 박태산 교관의 몸이 등을 지게 됐고, 나는 곧바로 팔꿈치로 박태산 교관의 오른쪽 어깨를 찍으려고 했다.
처음부터 목표는 박태산 교관의 오른쪽 어깨였다.
오른쪽 어깨는 성치 않았고, 다른 곳에 비해 물렁살이 분명했다.
퍽!
하지만 박태산 교관이 나 보다 조금 더 빨랐다.
나는 박태산 교관에게 맞고 멀리 날아갔다.
“....”
하지만 괜찮았다.
공격 성공은 못했지만.
“교..쿨럭. 교관님. 지금 오른 손 사용하신 거 같은데요.”
나는 박태산 교관에게 맞은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 손만 사용하기로 했는데 박태산 교관은 지금 오른 손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