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하신지요 ㅠ_ㅠ13회
광여제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자면. 황금 돌대가리가 오해를 한 거네. 그치?”
정시아의 말에 여학생들이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석만 정시아의 말에 불복하는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상황은 간단했다.
세 명의 여학생이 한 명의 여학생을 괴롭혔고, 지나가던 금석이 발견.
한 명의 여학생을 도와주려고 여자 화장실에 난입.
그리고 나와 정시아가 등장.
“옷에 뭐가 묻어서 털어주고 있던 거야.”
“그럼 그럼.”
“안 그래, 세리나?”
세리나라고 불린 한 명의 여학생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분명..분명..”
“석아.”
금석이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서진. 내가 봤다. 똑똑히 봤다.”
안다.
금석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거짓말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애초에 금석에게는 거짓말 기능이 탑재 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더 물고 늘어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세리나라고 불린 여학생을 쳐다봤다.
또래 여학생에 비해 작은 몸집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
“서진아, 일단 나가는 게 어때?”
정시아가 고개로 뒤를 가리켰다.
우리 때문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여학생들이 못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안 나가려는 금석을 데리고 여자 화장실을 나섰다.
“이..이..”
옆에서 금석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시아.”
“응? 얘 몸에서 열나. 개 신기해.”
금석 옆에서 팔뚝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던 정시아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날 쳐다봤다.
“걔 좀 도와주고 와. 티 안 나게.”
“누구?”
“동그란 안경. 너도 눈치 챘잖아. 여자 애들 말, 거짓말인 거.”
“흐음..”
사람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했다.
눈치. 상대방의 표정 읽기. 뭐 그런 류의.
핵 인싸인 정시아가 방금 그 상황에서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었다.
“내가 왜?”
의문을 표할 줄 알았다.
“도와주고 오면 좋은 거 알려줄게.”
“좋은 거?”
“응.”
정시아의 눈이 반짝반짝 거렸다.
“예를 들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쪽 말고.”
정시아가 김이 팍 새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레볼루션 관련해서 알려 줄 거라고 기대한 모양이었다.
“너 지금 되게 답답하잖아. 성장이 갑자기 막혀서.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네가 그걸 어떻..”
말을 하다가 내 능력에 대해 상기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눈알을 굴렸다.
“좋아. 갔다 올게.”
“먼저 교실에 가 있는다.”
나는 여자 화장실로 되돌아가는 정시아에게 말을 하며, 금석을 데리고 교실로 향했다.
+ + +
“와.. 진짜 식겁했네. 방금 그 새끼들 뭐야?”
“근데 두 번째로 들어온 애, 존나 잘생기지 않았어?”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신입생 중에 저런 페이스가 있었나?”
“알 게 뭐야. 야, 세리나.”
여자 화장실.
세 명의 여학생이 세리나의 어깨를 밀치며 구석으로 몰았다.
“아까 하던 말, 마저 해야지.”
“으..응.”
“내 치마 어떻게 할 거야? 너 때문에 다 젖었는데.”
“일부러 그런 게..”
“하.. 이 년 말하는 거 봐라. 그러면.”
귀에 피어싱을 하고 있는 여학생이 세리나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툭 때렸다
“이렇게 때려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면 괜찮네? 그런 말이지?”
“아..아야..”
“아파? 내 치마도 아프다는데. 어떻게 책임 질 거야?”
피어싱을 하고 있는 여학생의 자신의 치마를 살짝 들어 펄럭였다.
젖은 부분은 끝단에 조금밖에 없었다.
“아~ 이런 띨빵한 게 우리랑 같은 반이라니. 다른 반 애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뭐라고 생각할까?”
“뭐라고 생각하기는. 저런 띨빵한 년이랑 같은 반이라니~ 아~ 너무 불쌍하.. 응?”
“안녕?”
정시아가 손을 들었다.
“뭐야. 들어오는 거 못 봤는데?”
“너는 봤어?”
“나도 못 봤는데?”
정시아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까 왔던 애잖아. 왜 또 왔어?”
“여자 화장실 들어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 한가~ 내가 남자도 아니고.”
정시아가 말을 하며 눈을 내리깔고 있는 세리나를 쳐다봤다.
“얘. 똥그리 안경.”
“..나?”
“그래, 너. 간호 교관님이 찾던데?”
“응..?”
“지금 바로 간호실로 가 봐. 빨리 오래. 급한 일이라고.”
정시아의 말에 세리나가 여학생들 틈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세리나의 앞을 막아서는 여학생들.
“비..비켜줘.”
“지랄 하지마. 너는 내 치마 물어내기 전까지 아무데도 못가.”
남자들 있을 때는 전혀 아닌 척을 하더니.
정시아가 혀를 차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
“메두사(Medusa).”
정시아의 손이 뱀을 엮은 것처럼 변했다.
“똥그리 안경. 얼른 가 봐. ”
“아..”
정시아의 말에 여학생들 틈에서 빠져나가려고 다시 시도하는 세리나.
이번에는 전과 달리 여학생들이 막아서질 않았다.
세리나가 화장실에서 빠져 나가고.
“모..몸이 안 움직여.”
“나도..”
여학생들이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그 마저도 힘든 듯 발음이 많이 뭉게졌다.
손을 내리는 정시아.
그녀의 손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러자 경직 됐던 여학생들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너 미쳤어? 교관 허락 외에 학교 내에서 능력 사용 금지인거 몰라?”
“뭐하는 년이야!!”
“아, 존나 짜증나네 진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연사로 말을 쏟아내는 여학생들.
정시아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받았다.
“알지. 능력 사용 금지인거. 그리고 다행인 줄 알아. 내가 누군지 몰라서 니들이 오줌 안 지리고 있는 거니까.”
“뭐래?”
“교관들한테 다 말 할 거야. 능력 사용 한 거.”
“야..야 잠시만. 나 쟤 어디서 본 것 같아.”
화장실 입구로 걸어가 문을 닫는 정시아.
“사신 길드.. 사신 길드의 정시아 아니야?”
뒤를 돌아 윙크를 하는 정시아.
“빙고~ 자, 여기서 문제. 내가 너희들을 지금 어떻게 할까~요?”
“뭐..뭔 상관이야. 너 한번만 더 능력 사용하기만 해 봐. 진짜 교관..”
사악.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피어싱 하고 있는 여학생의 목을 쥐어진 정시아.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볼래?”
“컥..컥..”
“너희들은 교관한테 말 못해. 왜냐고?”
“....”
“....”
정시아가 사악하게 웃었다.
“독충(毒蟲)을 먹일 거거든. 하하핫!!”
독충.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터트려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벌레였다.
정시아는 품에서 검은 알 세 개를 꺼냈다.
“죽고 싶으면 말 하던지.”
여학생들의 입에 억지로 검은 알 세 개를 한 알씩 쑤셔 넣었다.
‘내 초코 볼..’
아껴 먹으려고 했던 건데.
정시아는 입맛을 다시며 여학생들을 쳐다봤다.
진짜 독충을 먹은 것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게 사람을 잘 보고 나댔어야지.’
정시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실을 나섰다.
+ + +
오전수업과 마찬가지로 오후수업도 학교 내 견학으로 간단히 끝이 났다.
워낙 학교 부지가 넓어 한 바퀴를 도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니까, 다들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도록 해. 알겠지, 애들아?”
담임 교관이자, 간호 교관인 신지수의 말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알아차린 학생은 많지 않았다.
신지수의 말을 번역하면 이랬다.
‘내일부터 지옥 시작이니까, 오늘만이라도 푹 쉬어 두도록 해. 안 그러면 죽어.’
“알려줘. 알려줘. 알려줘어!”
정시아가 옆으로 다가와 칭얼댔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계속 저랬다.
“뚜뚜. 뚜뚜를 보러 가야한다.”
금석이 기숙사로 달려가려고 했다.
“정시아. 석이랑 같이 기숙사에 가 있어. 나 어디 좀 들렀다가 갈게.”
“어디?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응, 안 돼.
“근데 너 사는 기숙사에 여자가 가도 돼?”
입학식 날 교장에게 내가 물어본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교장에게 여자와 같이 살아도 되냐고 물었고, 그 때 교장은 분명 이렇게 대답 했었다.
‘같이 사는 건 안 되지만 왕래는 가능하다.’
애매모호 했지만 통금 시간 전에 집에서 내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을 것 같은데. 쫌 그러면 주말에..”
“먼저 가 있을게!”
“....”
정시아가 금석의 팔짱을 끼고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다.
금석이 팔짱을 빼내려고 해도 정시아의 근력 스텟이 더 높아서 그런지 좀처럼 빼내질 못하고 있었다.
“이거 놔라!!”
금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 + +
지혜 스텟을 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초적이며 스텟이 낮을 때 효과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독서였다.
하루에 한 권씩 꾸준히 독서를 한다고 치면 한 달만 독서를 해도 등급 하나가 올랐다.
점점 등급이 오를수록 요구하는 독서량이 많아지긴 했지만 C등급까지는 독서가 꽤 유용했다.
내 지혜 스텟은 EEE 등급.
독서 조금만 하면 체감이 될 정도로 쑥쑥 오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금석도 독서를 시켜야지.’
금석의 현재 능력치는 단순히 피지컬로만 봤을 때는 최상위권이었지만, 뇌지컬 쪽으로 봤을 때는 최하위권이었다.
금석의 능력에는 따로 지혜 스텟이 필요치는 않았다.
‘그래도 기본 상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나는 도서관에 들어섰다.
도서관은 사서가 마법 수레를 타고 다닐 정도로 넓었다.
나는 우선 금석을 위한 책 몇 권을 골랐다.
‘몬스터 기초상식’
‘헌터 기초상식’
‘현대인이 알아야 할 기초상식’
다음은 내가 읽을 책을 고를 차례였다.
나는 제목 보다는 두께를 보고 책 세 권을 골랐다.
백과사전보다 두 배 가량 두꺼운 책 들이었다.
‘시험 삼아 한 권 읽어 볼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곳곳에 독서를 할 수 있게 마련 된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띄엄띄엄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직 학기 초라 그런지 빈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어라?’
자리 선정을 하던 중 다소곳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장 그녀가 있는 자리로 가, 바로 앞에 앉았다.
집중하고 있는지 책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손으로 그녀가 손을 올리고 있는 책상을 두드렸다.
동그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나를 보는 세리나.
“안녕?”
내 인사에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어..안녕..”
표정을 보니 낮에 잠깐 봤던 걸 기억 못하는 얼굴이었다.
짧은 인사 후 곧바로 시선을 내려 책을 쳐다보는 세리나.
세리나가 독서광인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애용한다는 사실 역시.
하지만 세리나는 이 시기에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캐릭터였고, 나 역시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 세리나의 행동반경을 잘 몰랐다.
근데 학기 초부터 도서관을 애용하는 모양이었다.
‘희소식이네.’
일석이조였다.
나는 턱을 괴고 조용히 세리나가 독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세리나의 손은 가녀렸고, 애기 손처럼 작았다.
책 너머로 보이는 얼굴 역시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동그란 안경이 킬 포인트였다.
마치 옛 만화 닥터 슬럼프의 아리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였다.
‘신도 참 너무하시지.’
세리나는 참으로 불운한 캐릭터였다.
남들은 축복이라고 부르는 능력을 가졌으나, 본인 스스로는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멸을 하며 무너지는 캐릭터였다.
잠재력 수치 100.
생전 전투력은..
‘0.’
세리나는 올해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면 본격적으로 각성을 시작했다.
각성의 시작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연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쥐어준들 뭐하겠는가.
내 역할은 전생처럼 그녀의 무기가 본인에게 향하지 않기로 하는 것.
딱 그 정도만 하기로 정했다.
“뭐..나한테 할 말.. 있어?”
세리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책을 펼쳤다.
‘아.. 속독 안경을 안 들고 왔네.’
깜빡했다.
나는 책을 도로 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문장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내 말에 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보던 책이 마지막 장이 펼쳐져 있었다.
세리나가 읽고 있는 건 동화책이었다.
“맞지?”
내 말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세리나.
“내 이름은 서진이야.”
그 말을 끝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뭔가.. 집이 개판이 돼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