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곧바로 김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12회
잘했어! 황금 돌대가리!!
개학 다음 날 반 배정이 이루어졌다.
2학년부터는 실력 편차에 따라 반이 정해졌지만, 1학년 반 배정은 랜덤이었다.
금석과 나는 같은 반으로 배정 됐다.
그리고 내가 서진에게 빙의 후 안면을 튼 두 여자도 함께.
“서진아!! 안녕!!”
정시아가 손을 번쩍 들고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다.
“어..안녕.”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으며, 내 옆에 앉아 있는 금석을 쳐다봤다.
“안녕! 이름이 뭐야?”
“....”
금석은 지금 상당히 풀이 죽어 있고, 삶에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기숙사나 다른 공간은 괜찮았지만 교실이나 수업에는 애완동물 출입이 금지였다.
막무가내로 뚜뚜를 데리고 나오려는 걸 떼 놨더니 줄 곧 저 상태였다.
금석을 대신해서 내가 대신 말했다.
“금석. 쫌 안 좋은 일이 있어.”
“아..그래? 여기 빈자리지?”
정시아가 내 앞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 필기시험 전교 1등이더라?”
“응.”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대화를 거는 정시아.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꾸를 하며 제일 앞자리를 쳐다봤다.
뒤통수도 차가워 보이는 한설휘가 보였다.
‘한 번씩 째려보는 것 같단 말이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앞에서 정시아가 떠드는 걸 듣고 있을 때, 교관 한 명이 들어왔다.
“설마..”
“설마..?!”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안녕, 애들아. 이 시간에 내가 들어왔다는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담임 교관이십니까!!”
남학생 한 명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응.”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교관.
교실이 한바탕 환호소리에 잠식 됐다.
대부분이 남학생들이 내는 소리였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교관이자 간호 교관인 신지수가 우리 반 담임 교관이었다.
‘좋은데?’
학생일 때 어떤 담임을 만나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가 있었다.
신지수 간호 교관은 충분히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해 줄 수 있는 교관이었다.
내 입장에서도 땡큐였다.
담임이 누가 되냐에 따라 도움 받을 수 있는 게 달랐다.
전투 교관이 담임이 된다면 전투 쪽으로 다른 반에 비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외국어 교관은 외국어에 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담임이 어떤 능력자냐에 따라 다른 반에 비해 혜택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는 건 일반 학교라도 마찬가지였다.
신지수 간호 교관은 치유 능력과 더불어 버프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외모는 덤이었다.
“서로 인사는 했어?”
신지수의 말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그럼 앞으로 1년 동안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져볼까?”
자기소개 시간이 시작 됐다.
+ + +
“금석.”
금석이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로 들어왔다.
나는 알고 있다.
왜 저렇게 짧게 했는지.
내 옆 자리로 돌아온 금석의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부끄러워하기는.’
그 다음 순서는 정시아였다.
“애들아 안녕!!”
상큼 발랄한 인사에 순식간에 아이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다음 순서는 한설휘였다.
“잘 지내..”
말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보던지 말던지. 흥.”
그 다음 차례는 내 차례였다.
앞에 서자 극명하게 남자와 여자의 반응이 나뉘었다.
호불호로 따진다면 남자들은 내게 불호를.
여자들은 내게 호를.
“어제 1등한 거 축하해.”
신지수가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의외로 필기시험도 1등 했더라?”
그녀의 말 대로였다.
내 이미지는 개차반에 머리가 텅텅 비어 있는 이미지였으니까.
그렇다고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부연 설명 할 생각은 없었다.
“아. 의외로라고 한 말은 취소.”
“괜찮습니다.”
말을 하며 앞을 쳐다봤다.
무수히 많은 눈빛 중 내게 크리티컬로 꽂히는 눈빛이 몇 사람 있었다.
그 중 가장 크리티컬은 바로 앞에 있는 한설휘였다.
어찌나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고 있는지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다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거야.”
한설휘에게서 눈을 떼며 입을 열었다.
내 말에 여럿이 오해를 했다.
“뭐야 선전포고야?”
“건들지 말라는 뜻 같은데?”
이런 식으로.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쓰레기. 성격파탄자. 미친놈.”
덤덤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읊었다.
그리고 세탁기를 가동했다.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를 꼭 나쁘게는 안 봐줬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거든.”
아무래도 나쁜 이미지를 꼬리표처럼 달고 가느니 차라리 이미지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러모로.
이른바 이미지 세탁.
내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한 건 한설휘였다.
입 밖으로 육성이 튀어 나올 정도였다.
“헐..”
세탁한다고 검은 옷이 하얀 옷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묻어 있는 오물이나 먼지는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끝으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났다.
+ + +
오전에는 간호 교관 신지수를 비롯해 여러 교관이 번갈아가며 앞으로 있을 교육 계획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점심시간.
“가자아!!”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운차게 소리를 지르는 금석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매점을 이용하던지 기숙사 가서 해결하던지, 아니면 식당에서 먹던지.
선택은 자유였지만 무료는 식당 한 군데였다.
집에 아직 고기가 많았지만 먹는 속도로 봐서는 금방 동 날게 분명했다.
그래서 하루에 최소 한 끼 이상은 금석과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야!! 같이 가!!
식당 위치도 모르면서 금석이 뛰어갔고, 나 역시 뒤따라 뛰었다.
그러자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나도 같이 가!!”
정시아였다.
+ + +
달그락. 달그락.
식판 긁는 소리가 났다.
뭔가 상당히 불만 있어 보이는 소리였다.
“세상에 고기만 10번 넘게 리필을 하는 놈이 어딨냐?”
내 핀잔에 금석이 더 신경질적으로 식판을 긁었다.
“주방 이모가 너 그 채소 다 먹으면 고기 더 준다고 했으니까, 고기 더 먹고 싶으면 채소도 먹어.”
내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당근을 집어드는 금석.
쉽게 입에 가져가질 못했다.
녀석의 당근 위에 내 식판에 있는 고기 한 점을 올렸다.
“먹어. 고기랑 먹으면 당근 맛 쫌 덜 날거야.”
입 안에 고기와 당근을 넣는 금석.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금석의 투정과 세상의 무지는 내게 훌륭한 포인트 자판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녀석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여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제 오늘 금석을 챙겨주며 쌓은 포인트만 50이 넘었다.
“나도!”
옆에 앉아있던 정시아가 밥이 올라간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너는 오전에 보니까 친구도 많이 사겼더만. 왜 우리랑 밥 먹냐?”
내 말에 혓바닥으로 내 식판에 있는 고기를 가리키는 정시아.
“꼭.꼭. 씹어 먹어라.”
나는 고개를 흔들며 고기를 정시아의 수저 위에 올렸다.
오물오물.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역시.’
훈수 포인트가 올랐다.
훈수 포인트가 굉장히 후하게 오른다는 걸 최근에 느끼고 있었다.
별 일 아닌 것도 말 어미에 훈수 비슷한 뉘앙스를 갖다 붙이면 훈수로 인정이 됐다.
“너희 둘은 언제부터 친구였어? 굉장히 친해 보이는데.”
밥을 다 삼킨 정시아가 물었다.
코를 막고 식판에 있는 채소를 한 번에 입에 털어 넣고 있는 금석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저께.”
“응?”
“이틀 전에 처음 만났어.”
“에이~ 그런데 사이가 이래?”
“그러게.”
정시아의 말대로 이틀 동안 알고 지낸 것 치고는 금석과 나는 상당히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가 금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금석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고 재단하거나 그러질 못하니까.
좋으면 오로지 직진.
단순히 밥을 챙겨줘서 좋은 사람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어제 일로 조금 더 금석이 나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김도진에게 부탁했다.
‘샛별 고아원’이 가지고 있는 빚을 모두 갚아 달라고.
그리고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달라고.
김도진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금석에게 알렸다.
그랬더니 녀석이 하는 말.
“우오오오!!! 그럼 고아원으로 돌아가도 되겠군!!”
그래서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너 나한테 빚 진거야. 그러니까 갚아. 내가 하는 말만 잘 들으면 돼.”
어제 일을 떠 올리자 친해졌다기 보다는 금석을 조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거나 그거나.’
“정시아 나한테 접근하는 이유가 뭐야?”
정시아는 금석과 반대되는 캐릭터였다.
상대방을 이용하기 위해 친해지려고 하는 캐릭터.
“또 말 섭섭하게 하네!”
정시아가 내 어깨를 툭 때렸다.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래.”
표정만 보면 진심인데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금석. 야. 너 괜찮냐?”
금석이 양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볼이 볼록했다.
야채를 차마 넘기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못 먹겠으면 뱉어.”
내 말에 몇 번 시도를 해보더니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나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는 내내 식당을 둘러봐도 아무데도 보이질 않았다.
‘광여제(光女帝). 어디 있는 거야?’
내가 헌터 학교에 온 결정적인 이유.
잠재력 100.
혹은 더 뛰어넘을 수도 있는 괴물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얼굴이나 보고 싶었더니.’
오늘은 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주 칠 날은 많으니.’
식판을 치우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으로 달려왔다.
“아주버님~~”
서시우의 민들레이자 그저께 금석을 기절 시킨 박수향이었다.
“소녀, 아주버님께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다소곳하게 치마를 잡고 살짝 앉는 박수향.
박수향이 여기 있다는 말은.
식당 입구를 바라보자 서시우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시우한테 전해줘.”
“넵! 뭐든지!!”
“밥 맛있게 먹었냐고.”
후다닥 서시우에게 뛰어갔다가 돌아오는 박수향.
목청을 한 번 가다듬고 최대한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네가 뭔 상관이야? 라고 하던데요?”
서시우답다.
아직까지 머릿속에 서시우 공략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 상태에서 괜히 들이대다가는 역효과가 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공략법이 떠오를 때까지 녀석이 바라는 대로 계속 거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고생하라고 전해줘.”
“넵! 잠시..”
“아니. 갔다가 올 필요 없어.”
“아..넵! 아주버님, 그럼 나중에 또 봬요. 헤헤.”
박수향이 떠나고, 정시아가 왔다.
“형제간의 우애가 아주 눈물 겹네?”
“근데 너는 즐거워 보인다?”
“드라마 보는 것 같아. 훈남 재벌가의 아들들이 나오는 그런?”
시덥잖은 소리를 주고받으며 금석을 기다렸다.
그런데 도통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왜 안 와?”
“화장실 갔다가 먼저 교실로 간 거 아니야?”
그럴 리가.
금석은 그럴 놈이 아니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화장실이 1층 복도에 있는 건가?”
“왜? 떵 마려?”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자 내 어깨를 탁탁 쳤다.
“장난이야, 장난.”
“금석 찾으러 가야해.”
“에이~ 뭘 다 큰 애를 찾으러 가. 여기가 뭐 미로도 아니고. 알아서 때 되면 교실로 오겠지.”
다른 애였으면 물론 먼저 갔겠거니 하고 생각하겠지만 금석은 아니다.
금석을 혼자 내버려두는 건 초원에 야생마 한 마리를 풀어놓는 것과 똑같았다.
“어디서 지랄 발광 하고 있을지도 몰라. 어제 못 봤어?”
내 말에 어제 신입생 환영회에서 금석이 한 행동을 떠 올린 정시아.
“아..”
짧은 탄식을 내 뱉었다.
이렇게까지 늦게 안 온다는 건 분명 어디서 사고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일단 1층으로 올라가, 화장실을 가보기로 했다.
없다.
“어디 간 거야?”
마치 집 나간 강아지를 찾는 심정으로 남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없어?”
“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시아가 여자 화장실로 다가갔다.
그녀를 만류했다.
“아무리 금석이 순수한 놈이라고 해도 여자 화장실에..”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소란스러워서.”
내 말을 끊는 정시아.
여자 화장실을 들여다보더니 내게 다급하게 손짓했다.
“야!! 빨랑 튀어와!! 황금돌대가리 찾았어!!”
그녀의 손짓만큼 다급하게 여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
상황이 묘했다.
세 명의 여학생과 대치를 하고 있는 금석.
그리고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여학생 한 명.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강아지.
‘대어를 물었구나.’
찾았다.
잠재력 100의 괴물.
광여제를.
[작품후기]
글이 초반이라 설명 하는 부분이 많아 여러 편을 연재 했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