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0화 (10/196)

10회

신입생 환영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여럿 있으면, 목표에 따라 개개인과의 관계 설정이 상이하게 달라진다.

목표를 취함에 있어 다수가 만족할 수 있다면 협력의 자세를.

목표를 취함에 있어 소수가 만족할 수 있다면 경쟁의 자세를.

집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길드가 있었고,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협력 적인 관계.

즉, 공생의 관계를 취하고 있으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른 길드를 부모의 원수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먹이는 정해져 있는데 노리는 입은 많으니까.

그러다 보니 능력 있는 헌터를 영입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능력이 막 개화하기 시작한 유망주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오늘 입학한 신입생 중에는 각 길드가 발굴해서 키우고 있는 유망주가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내 앞에서 손을 들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채린이 수장으로 있는 사신 길드의 유망주이자, 다른 길드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슈퍼 루키.

‘정시아. 얘가 왜 아는 척을 하지?’

잠재력 점수 92점이자, 현재 성장은 아마도 86점까지 돼 있는 상태.

학생 신분에서 전투력 수치가 86점이라는 건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무척이나 높은 수치였다.

아니다.

순수하게 현재 전투력만 놓고 봤을 때, 학교에서 정시아랑 싸워서 이길만 한 인물은 당장 서시우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당장 현재는 정시아의 실력이 그러했다.

“서진 맞지?”

정시아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친구 할래?”

“....”

너무 뜬금없다.

친해지면 나야 좋긴 하지만, 정시아는 내 미래 계획에 없던 인물이었다.

잠재력 점수나 성장력이나 초반에 알고 지내면 무척이나 도움 되는 인물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와 친해지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시아는 생긴 것도 예쁘장하게 생겼고 성격도 핵 인싸였다.

하지만 교묘하게 일정 수준 이상 친해졌다 싶으면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했다.

살다보면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친한 것 같으면서도 안 친한 것 같기도 한데, 그러자니 친한 것 같은.

애매~~~한 관계.

“그래.”

나는 대답을 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정시아는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적을 안 만드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그냥 옆에 보여서 인사하러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은 안 물어봐?”

“이름 뭔데?”

모른 척 물어봤다.

“정시아.”

해맑게 웃는 정시아의 얼굴을 보며, 나 역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깐 두뇌 회전을 해보니 역시 정시아와 가깝게 지내는 건 어려워 보였다.

나는 내 말을 신뢰하고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근데 정시아는..’

아니다.

정시아가 설정해 놓은 일정 이상 대한 경계선을 무너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또 자신도 없다.

괜한 사람한테 기대하느니 다른 사람한테 투자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머릿속의 플랜에 잠깐 정시아가 들어왔다가 빠르게 나갔다.

나는 현재 내 머릿속에 1순위로 자리 잡은 녀석을 쳐다봤다.

“금석 학생!! 경고 입니다!!”

미친놈이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슬라임을 날리더니 지금은 슬라임으로 은근슬쩍 주변 사람을 맞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교관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일부러 그런 게..”

뚜뚜가 슬라임 한 마리를 물고 금석에게 토스 했다.

각목으로 야구 배트 휘두르듯이 휘두르는 금석.

“아니다!!”

슬라임이 소리 지른 교관 앞으로 날아갔다.

‘쫌 덜 떨어지긴 해도..’

성심은 착하고 믿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금석의 주변으로 대피하던 학생들이 다시금 금석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쭉 강당을 둘러보니 이미 반 정도가 넘게 탈락을 한 상태였다.

또 남은 인원의 반 정도는 파랑 슬라임이 몸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나도 슬슬 움직이면서 의심을 안 받게 모션을..

“....”

정시아가 아직 안가고 내 옆에서 금석을 보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너 쟤랑 친구지?”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정시아를 쳐다봤다.

허리를 옆으로 숙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정시아.

우리 학교는 따로 교복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시아가 입고 있는 옷은 몸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에 가슴이 살짝 파인 검은 티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안 보려고 해도 보였다.

정시아의 가슴골이.

정시아는 탄력 있는 몸매에 가슴도 꽤 큰 편이었다.

그래서 남자랑 친해질 때 종종 쓰는 수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번지수가 틀렸다.

“가슴 크네.”

“....”

내 말에 눈을 깜빡이며 자세를 바로 하는 정시아.

내게 가슴골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니터로 이 세상을 볼 때 여자의 나체는 지겹도록 봤다.

섹스 하는 것도 국적 가리지 않고 다 봤다.

안 보려고 해도 보이는 걸 어떻게 하는가.

보는 게 내 일이었는데.

정시아의 양 볼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한 번도 나처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을 테지.

“너 변태야?”

“아니.”

“근데 왜..”

“그만 가 줬으면 해서.”

“....”

나는 데면데면 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정시아는 아니었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야 했고, 친해질 때까지 노력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딱 선을 긋기로 했다.

어차피 미래 목록에 없던 인물.

아쉬울 것도 없다.

“표정 보니까 진심이네?”

“어.”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입가에 미소를 짓는 정시아.

가식인지 아닌지 모를 미소.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원래 성격이 그렇게 단호해?”

“아니.”

“그럼 나한테는 왜 단호하게 굴어? 나랑 친구 한다며.”

“그랬지.”

“그랬지? 너 말 되게 재밌게 한다?”

“더 재밌게 말 할 수도 있어.”

“해 봐.”

이 여자가 도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네.

“나는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친구를 하는 편이야.”

“나는 아니라는 소리야? 아니. 애초에 처음 보고 그걸 어떻게 판단해?”

나는 가능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고.

“느낌.”

“....”

내 대답에 정시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그래. 느낌. 그럼 처음에는 왜 친구하자고 했을 때 알겠다고 한 건데?”

“그 때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고.”

“너..또라이야, 뭐야? 어디 아파?”

단순하게 선만 그으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척을 지게 생겼다.

“진짜.. 소문대로 싸가지 개 없고. 언니 말만 아니었어도, 아오.”

정시아가 분개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수습을 할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뚜뚜가 짖는 소리가 났다.

멍멍!

“왜 그래, 뚜뚜?”

쪼그려 앉아서 뚜뚜가 쳐다보는 곳을 쳐다봤다.

금석이 온 몸에 파랑 슬라임이 달라붙어 있었다.

“떨어..크하하핫!!! 지라고!! 캬핫!! 으하하하!!”

파랑 슬라임 공격에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금석.

그런데도 목검은 손에서 안 놓치고 있었다.

‘슬슬 효과가 떨어질 때도 됐지.’

주위를 둘러보자 살아남은 인원은 금석.

그리고 나와 정시아.

를 제외하면..

“없네?”

나는 바짓가랑이를 잡아 끄는 뚜뚜를 품에 안았다.

“네 주인은 글렀어. 그래도 죽진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끼잉..

뚜뚜가 구슬프게 울었다.

슬슬 내 쪽으로도 파랑 슬라임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정시아.”

“왜. 뭐. 왜 부르는데?”

살랑살랑 눈웃음을 짓던 표정은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다.

“기권 해줘.”

정시아는 따로 나처럼 약물(?)을 바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신 길드는 독을 다루기로 유명한 길드였고, 정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시아의 몸 안에서 은은하게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저 향기가 슬라임을 밀어내고 있는 듯 했다.

모니터로 봤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최후의 1인이 되는 건 조연 중 한 명이었다.

헌데 금석이 난리친 것 때문에 뭔가 차질이 생긴 모양이었다.

정시아는 모니터 세상에서는 한설휘에게 말을 걸다가 일부러 슬라임에게 물렸다.

상대적인 약자로 포장하기 위해서.

근데 지금은 정시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풉..뭐?”

비웃는 정시아.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는 하나, 1등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고급 정보 하나 알려줄게.”

내 말에 코웃음을 치는 정시아.

파랑 슬라임들이 이제 5m안으로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네가 내게 왜 접근 했는지. 잠깐 생각 해 봤거든.”

정시아는 아까 분명히 언니라고 했다.

그 때 딱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사신 길드의 수장.

‘채린.’

그녀가 나에 대해 뭐라고 언질을 한 모양.

“채린이 나랑 친해지라고 한 거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내 말이 사실인 모양인지 정시아의 눈썹이 꿈틀댔다.

“자, 어떻게 할래. 아니다. 먼저 말해줄게. 네가 듣고 기권할지 말지 정해.”

이편이 더 빨랐다.

슬라임이 이제 3m까지 조여 왔다.

“네가 굳이 헌터 학교에 입학 한 이유.”

“....”

“십자가 인장에 대해 자유롭게 조사하기 위해서.”

정시아의 낯빛이 눈에 띄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채린한테 말하면 분명 조사 못하게 할 테고. 그러니까 학교에서..”

“입 닥쳐.”

정시아가 내 멱살을 잡았다.

이런 반응 예상 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친 언니처럼 따르던 채리나의 제대로 된 복수가 하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채리나는 카멜레온에게 죽은 채린의 친동생이었다.

그리고 정시아는 채리나의 친동생처럼 그녀를 따랐다.

정시아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그녀를 기권하게 하기 위함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괜히 레볼루션을 자극하고 다니지 말았으면 해서였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내가 할 말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다짜고짜 고급 정보랍시고 말하면 ‘개소리’로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너..너..”

정시아의 턱 근육부터 입술이 덜덜 떨렸다.

“고급 정보 줄게. 잘 들어. 네가 지금 조사하고 있는 그 녀석한테서 손 떼.”

“너 뭐하는 새..”

“안 그러면 너 때문에 너희 길드 사람들이 많이 죽을 거야.”

“....”

눈을 감고 크게 쉼 호흡을 하는 정시아.

눈을 뜨자 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침착을 넘어 냉정한 눈을 하고 있었다.

평정심 찾는 게 굉장히 빨랐다.

“개소리 하지마. 네가 어떻게 나에 대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못해.”

“채린이 나랑 친해지라고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이유든..”

나는 발에 치이는 파랑 슬라임을 걷어차며 정시아의 말을 끊었다.

“예언 능력이 있어. 나한테.”

“....”

채린에 이어 정시아까지.

어차피 채린에게 한 거짓말과 동일한 거짓말이었고, 설사 들키더라도 그들은 내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를 테니 괜찮았다.

내 말이 적잖게 충격이었는지 정시아가 입을 어버버거렸다.

‘버퍼링 걸릴 시간 없는데.’

파랑 슬라임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아직 간지럽히기에는 잔향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뚜뚜가 앙칼지게 울어서 일수도 있고.

“기권 할 생각 없는 모양이네. 그럼 한 가지만 당부하자.”

정시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내 쪽으로 옮겨왔다.

“내가 예언 능력 있다는 거 채린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했으면 해. 만약 누군가한테 발설하면..”

일부러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나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지 채린한테 다 말할 거야. 그 사람과 나 꽤 신뢰하는 사이거든. 그리고 내가 아까 한 말 사실이니까 판단은 네 알아서 해.”

슬라임 하나가 뚜뚜 머리에 올라탔다.

왼손으로 슬라임을 걷어내며 목검을 그대로 바닥에 던지려고 했다.

아쉽게도 최후의 1인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앞으로의 계획에 크게 차질이 생기는 정도는 아니었다.

“기..권.”

“..응?”

“기권!”

나 보다 정시아가 더 빨랐다.

목검을 바닥에 버리며 만세 동작을 취하는 정시아.

그녀의 기권과 함께 바닥에 수북하던 목검들과 슬라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말해.”

“네 몸에서 보라 장미의 가시 냄새가 나던데. 오늘 있을 일을 미리 본거야? 그래서 준비 한 거고?”

역시 독 계열이 식물에서 많이 채집 되다 보니 식물 냄새에 민감한 모양이었다.

“응. 그런데?”

“그렇구나. 사과할게. 오해했어. 네가 집안 빽으로 미리 정보를 알고 준비한 건 줄 알았어. 미안해.”

“....”

“채린 언니가 너랑 친해지라고 한 것도 사실이야. 근데 별로 내키지 않아서 그런 척만 하려고 했어. 이것도 미안해.”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사과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오싹해지는 것일까.

“네가 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뢰와 믿음. 나도 정말 정말. 저엉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친구하자. 이건 진심이야.”

정시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귀에는 내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머. 친구끼리 어려운 일 있으면 돕고 그러는 게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

나는 뚜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뚜뚜에게 물었다.

“뚜뚜야. 네 생각은 어때?”

멍멍!

혓바닥으로 내 손을 핥았다.

“아니.. 그걸 강아지한테..”

정시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할 때 단상 위에서 교장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모두들 고생했다. 자, 그럼 최후의 1인이 된 서진 학생이 신입생을 대표해서 한 마디 하도록 하지. 밖에 있는 2학년들은 안으로 들어 오거라!”

그의 말과 함께 2학년들이 강당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진 학생은 앞으로 나오도록.”

나는 정시아의 손을 잡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금석이 슬라임에게 당한 후유증인지 씩씩거리고 있길래 뚜뚜를 건넸다.

그 때 누군가 질문 했다.

“교장 선생님!! 그래서 큰 혜택이 뭔가요!!”

“기숙사의 끝판왕!! 최상위 랭커만 사용 할 수 있는 단독주택!!”

“오오오!!”

“오오옷!!”

“거기다 하나 더! 이건 서진 학생이 직접 기숙사 가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에이~ 알려주세요!!”

“치사해!!”

단상 위에 올라갔다.

“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었다.

“단독주택이면 꽤 넓을 텐데. 친구랑 같이 사용해도 됩니까?”

내 말에 교장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도?”

내 말에 강당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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