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9화 (9/196)

9회

신입생 환영회

입학식 날이 밝았다.

딱히 거창하게 준비할 게 없었다.

필요한 건 전부 학교 측에서 제공 했으니까.

몸만 가도 무리는 아니었다.

‘왠지.. 조금 두근거리는데?’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입학식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뭔가 기분을 붕 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뭐하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금석과 뚜뚜가.

내 말에 금석이 콧김을 뿜어냈고, 뚜뚜가 내 곁으로 와 머리를 다리에 비볐다.

“아니 같이 갈 거면 옆에 와서 걷던지.”

“나는 내 갈 길을 갈 뿐이다!!”

“....”

그러니까.

내 말은 네 갈 갈이 왜 내 뒤를 따라오는 거냐고.

“너 혼자 입학식 가기 쫄리지?”

“쪼..쫄려?! 내가?!”

내 말에 말을 더듬으며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 금석.

“헛소리 하지마라!”

“부끄러워서 그렇지?”

“허..헛소리!!”

맞네. 맞아.

금석은 시골의 고아원에서 태어나 자란 케이스였고, 이번에 도시로 상경했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을 낯설어 하고,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캐릭터였다.

“잘 따라와.”

‘그런 놈이 어제는 잘도 상급생들 상대로 난리쳤네.’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 + +

입학식의 진행 절차는 총 세 가지였다.

필기시험. 실기시험. 그리고 입학식 행사.

시험이라고 해봤자 복잡하거나 난이도가 높진 않았다.

학교 측에서 입학하는 신입생들 대상으로 수준을 미리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학생도 있는 반면 대충 보는 학생도 있었다.

“으..으..”

제 3 필기 시험장.

시험지에 답을 부드럽게 적어나가고 있을 때, 앞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음 소리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앞에서 감독을 하고 있던 교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신입생. 어디 아픈가?”

“머..머리가..”

“두통?”

“머..머리가..”

“많이 아픈가? 약이라도..”

“머리가 너무 아파!!”

금석.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옆에서 허리를 숙여 금석의 상태를 관찰하려던 교관의 턱을 머리로 박아버렸다.

“....”

교관은 기절 했고, 금방 새 교관이 들어왔다.

그리고 금석은.

필기시험에서 0점 처리 되고, 시험장에서 퇴출 됐다.

+ + +

실기 시험은 간단한 체력장처럼 진행 됐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100m 달리기와 같은 기본적인 피지컬 테스트부터,

능력 사용자는 간단한 능력 테스트까지.

“사람 진짜 많네.”

실내 체육관 같은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은 전부 이곳에 모인 것 같았다.

긴장 하고 있는 표정.

설렘이 가득한 표정.

거만함이 묻어나오는 표정.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입생들이 시야에 왔다 갔다 거렸다.

“야 금..”

옆을 보며 금석을 부르려고 했다.

근데 없다.

멍멍!!

남겨진 뚜뚜가 내 바짓가랑이를 물며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으라차차!!! 부셔주마!!”

“....”

뚜뚜가 끌고 가려는 데는 가지 않아도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주인 잘못 만나서 네가 고생이네, 뚜뚜야.”

뚜뚜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아, 쓰다듬으며 가장 가까운 코스로 걸어갔다.

“봉에 가슴이 닿아야 인정이다.”

앞에 앉아 있는 교관이 기계처럼 말했다.

나는 옆에 뚜뚜를 내려놓으며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

주변에서 뜨겁게 느껴지는 시선.

실기 시험장에 들어서며 느끼고는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단 걸.

근데 그 시선이 한층 더 뜨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돌리자 많은 신입생들이 황급히 눈을 내리깔거나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과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었다.

집안. 외모. 그리고 헌터 학교의 랭킹 1등인 서시우의 친형.

마지막으로 그 모든 걸 마이너스로 바꾸는 이미지까지.

‘안주거리 되기 딱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독 뜨겁다 못해 탈 것처럼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한설휘.’

내가 쳐다보자 고개를 새침하게 홱 돌렸다.

“기권 하겠습니다.”

교관에게 말을 하며 얌전하게 앉아 있는 뚜뚜를 다시 끌어안았다.

기권해도 임시 성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각 종목을 돌아다니며 말했다.

“기권.”

사람들이 여기 있는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자니,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 실기 꼴등인 게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곳에 나 보다 스텟이 낮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 +

신입생 행사는 재학생.

그러니까 2학년도 참석한 대강당에서 열렸다.

3학년은 대학교 4학년처럼 실습을 대거 나갔고, 남은 인원은 몇 명 없었다.

“침 닦아.”

금석과 나란히 신입생 대열에 줄을 서고 있을 때, 금석이 2학년 쪽을 쳐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마찬가지로 2학년들 중 어제 우리와 마찰을 빚었던 녀석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학년들의 포커싱이 나와 금석 쪽에 맞춰져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이 2학년 사이에 퍼진 모양이었다.

“어휴.”

실기 시험에서 남들은 쉬엄쉬엄하는데 혼자 풀 파워로 달리기에, 쫌 지친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힘이 남아 도는지 당장이라도 2학년들에게 뛰어갈 기세의 금석.

“네가 안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유명 인사니까, 침 좀 닦아. 쫌.”

나는 그렇다 치고.

금석 역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학년들과의 마찰.

전대미문의 필기시험 퇴출.

전대미문의 실기시험 기물 파손.

여러모로 우리는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었다.

신입생 행사는 간단한 교관들의 소개로 시작 됐다.

“나는 전투 교관, 박태산이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

“안녕, 애들아. 나는 역사 선생님 정아영이야!”

조금 더 큰 박수 소리.

“음..나는..”

남학생들의 미친듯한 환호 소리와 함께 미친듯한 박수 소리.

육덕 글래머에 얼굴은 귀여운 베이비 페이스.

그리고 수줍은 미소까지.

학교에서 남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간호 교관이 단상 위에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간호 교관, 신지수.’

나도 참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외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치유 능력이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뽑힐 정도로 뛰어났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한 눈에 그렇게 느끼기 거의 불가능 했다.

하지만 신지수는 가능하게 했다.

신지수의 소개가 끝나고 다른 교관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하지만 신지수의 여파인지 학생들의 리액션이 많이 시들시들 했다.

그렇게 교관의 소개가 전부 끝이 나고.

교장이 등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장의 훈화 말씀.

“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영 인사를 준비했으니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인 줄 알았으나 바로 본론.

‘역시 마음에 드는 할아버지란 말이지.’

교장은 화끈하고 단도직입적인 성격이었다.

호탕한 쾌남 같다고나 할까?

2학년들이 우르르 대강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1학년들은 단체로 어리둥절해하며 웅성웅성거렸다.

“도망치는군!! 음하하핫!!”

금석만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건은 하나다. 살아남는 것. 최후의 1인이 된 신입생에게는 아주 큰 혜택을 주도록 하겠다.”

2학년이 모두 빠져나간 걸 확인 한 교장이 다시금 마이크 앞에 섰다.

그의 말이 끝나자 1학년들의 손에 투박하게 깎인 나무 검이 생겨났다.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성능과 촉감.

모든 게 실존하는 것과 똑같았다.

“몇 가지 룰을 알려주겠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첫째. 동급생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공격 시, 바로 탈락이니 유념할 수 있도록.”

옆에서 금석이 나무 검으로 내 팔뚝을 툭툭 건드려보다가 흠칫 했다.

“둘째. 포기해도 된다.”

교장이 말을 하며 좌중을 슥 둘러봤다.

몇몇 학생이 손을 들려다가 도로 손을 내렸다.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교장 옆으로 전투 교관인 박태산에 다가가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환영 인사는 파랑 슬라임의 공격을 막거나 처치하면 된다.”

그제야 많은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에이. 난 또.”

“괜히 겁먹었네.”

“내 말이.”

신입생 환영회는 올해 신설이 됐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환영회는 신입생들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환영회의 내용이 공개가 되자 다들 안도 했다.

파랑 슬라임.

슬라임 중에서 전투력이 가장 낮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몸에 한 번 달라붙으면 간지럼을 태웠고, 웃음을 유발했다.

그게 파랑 슬라임의 유일한 기술이자 공격이었다.

“근데 왜 목검을 주는 거야?”

“목검으로는 슬라임 못 잡잖아.”

당연하지.

파랑 슬라임을 처치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게 클리어 조건이니까.

앞에서 들리는 대화를 들으며 옆에 있는 금석을 쳐다봤다.

“파랑..슬라임?”

역시 예상대로 금석은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다.

“존나게 패.”

“오오오!!!”

맞춤 조언을 해줬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조언과 훈수는 한 끗 차이였다.

조언도 훈수 범위에 포함이 되는 모양.

“셋째. 목검을 떨어뜨리면 패배로 간주하고 실격처리 하겠다. 넷째로, 능력은 일체 사용을 금한다. 이상이다. 질문 있나?”

“큰 혜택이 뭐에요?”

어떤 학생의 질문에 교장이 근엄하게 한 마디 했다.

“비밀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한 가지. 1등을 못하면 3년 내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은 분명하지. 하핫!!”

잠깐 1등 혜택이 그 정도인가 생각해봤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건투를 빈다. 병아리들.”

짝!

박수를 한 번 친 교장.

그에 맞춰 강당 곳곳에서 파랑 슬라임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프로그램이었다.

2학년이 전부 빠져나감에 따라 강당을 상당히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1학년들이 무리를 짓거나 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젤리?!”

달려 나가려는 금석의 어깨를 잡았다.

“이거 놔라!! 젤리 먹으러 가야 한다!”

아침밥으로 10인분은 족히 먹은 주제에 또 먹을 거 타령이네.

“가만히 있어.”

나는 품에서 향수병 하나를 꺼내서 금석의 몸에 뿌렸다.

“윽..이상한 냄새난다.”

“가만히 있으라고.”

“으읍..”

금석이 뚜뚜를 닮은 것인지 뚜뚜가 금석을 닮은 것인지.

개 코가 따로 없었다.

내가 금석에게 뿌린 건 어제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보라 장미의 가시로 만든 액체.’

포인트가 적어서 극소량 밖에 구하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 다음은 우리 뚜뚜.”

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본능적으로 뚜뚜가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 뚜뚜. 저녁에 굶고 싶어?”

멍..멍..

꼬리를 축 내리며 내 앞으로 걸어오는 뚜뚜.

‘영리하단 말이지.’

뚜뚜의 몸에서 액체를 몇 번 뿌렸다.

크릉. 크릉.

재채기를 하는 뚜뚜.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일어났다.

“먹는 거 아니니까, 먹진 말고. 자, 가서 놀아.”

“젤리 아님?”

“응. 아님.”

“유감이군.”

금석이 의욕을 떨구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금석을 따라가는 뚜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짓으로 금석을 따라가라고 시늉했다.

“나도 뿌려야지.”

나는 남은 액체를 몸과 목검에 전부 뿌렸다.

슬라임은 물리 공격에 면역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식물 몬스터 종인 보라 장미의 가시에는 면역이 없었다.

오히려 카운터라고나 할까?

워낙 보라 장미의 가시가 뾰족하고 까끌까끌한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슬라임은 본능적으로 보라 장미 개체류를 보면 접근하지 않았다.

내 쪽으로 몇 마리의 파랑 슬라임이 다가왔다.

목석을 한 번 휘두르자 슬라임들이 단체로 물러서며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보라 장미의 가시로 만든 액체는 나를 잠시나마 보라 장미로 둔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럼 금석에게는 왜 뿌렸냐고?

“일루타!! 이루타!! 홈~런!!”

나한테만 슬라임이 안 오면 이상하니까, 이목을 금석에게 집중 시키려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금석 주변으로 모이고 있었다.

금석이 슬라임을 모두 날려버리고 있어서, 녀석의 주변만 청정(?) 지역으로 변하고 있었다.

교장과 교관들의 시선도 금석 쪽으로 쏠려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관전을 하려고 했다.

“안녕?”

누군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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