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화 (8/196)

8회

포인트 상점

“이건 도련님이 부탁하신 속독 안경입니다.”

이실장이 내게 안경 케이스를 내밀었다.

“고마워, 이실장.”

내 말에 몸을 한 번 부르르 떠는 이실장.

서진에게 빙의 후, 꽤 여러 번 이실장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지만 매 번 적응 못하는 얼굴과 제스처를 취했다.

서진에게서 안 듣던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계속 듣다보면 적응 하겠지.’

“도련님. 근데.. 전체적인 스타일이..”

이 것 역시 계속 보다보면 적응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잘 어울리십니다.”

안경 케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이실장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쳐다봤다.

줄 거 다 줬으면 이제 가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하지만 신발을 벗으려는 행동을 취했고, 나는 단호하게 제지했다.

“이실장.”“..예?”

“안 바빠?”

“바쁘긴 한데.. 내일 도련님이 입학하시면 기숙학교에 들어가실 테고. 오늘 둘이서 오랜만에 한 잔 어떠십니까?”

한 쪽 신발을 벗었다.

이실장의 말대로 그래도 상관없긴 했지만 오늘은 안 된다.

“근데..”

코를 킁킁거리는 이실장.

“어디서 되게 맛있는 냄새 나지 않습니까?”

“어..그게..”

나는 이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약하게 문 쪽으로 밀며 말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주웠거든.”

“강아지요?”

“응. 배고파 보여서 음식 좀 시켰어.”

“아..근데 꼭 냄새가 사람 먹는 음식 냄새 같은..”

“요새 멍멍이들이 얼마나 식성이 까다로운데. 이실장.”

“예.”

“외출 자주 나올 테니까 오늘은 그만 가.”

“....”

내 말에 섭섭한 티를 곧바로 얼굴에 드러내는 이실장.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

인사를 하며 억지로 문 밖으로 밀었다.

“도련님.”

“....”

문이 닫히기 전 은근슬쩍 발을 집어넣는 이실장.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질척거리는 스타일이네.’

문을 반 쯤 열고 이실장을 쳐다봤다.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왜?”

“그게.. 내일 입학하게 되면 아무래도 기숙학교에서 생활 하시고.. 밥도 나오고.. 필요한 생활 용품이나 기타 등등.. 음... 그러니까.”

서론이 길다.

이럴 때는 꼭 뒤에가 명치를 찌르는 말이 튀어나오던데.

“본론은?”

“회장님께서 도련님의 카드를 오늘부로 해지하라고..”

“..전부?”

“예.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그렇군.”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도련님의 카드 해지를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할 말 다 끝났어?”

“그렇긴 한데.. 괜찮으십니까?”

아니. 전혀 안 괜찮다.

서진의 가장 큰 메리트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돈인데.

‘시발..’

이건 큰 변수였다.

빙의 후 일주일동안 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로드맵을 그렸고, 로드 맵을 주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카드 정지도 아니고 해지라는 말에 바로 단념했다.

‘단단히 서진에게 미운 털을 박았나보네.’

아버지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헌터 학교로 가는 건 일종의 ‘유배’였다.

“뭐, 어쩌겠어.”

이미지 세탁 하면 카드 다시 만들어주겠지.

그래도 대~~ 창조 그룹의 장남인데 말이지.

“도련님. 혹시나 학..”

또 말이 길어지려하네.

“넥타이 삐뚤어졌어.”

“..네.”

이실장이 넥타이를 고쳐 매는 걸 보며 문을 닫았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훈수 포인트 100점을 적립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이 개방 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 개방 시동어는 ‘포인트 상점 오픈’입니다.]

포인트 상점이 개방 됐다.

하지만 지금 열어보자니 기분도 조금 꿀꿀하고, 무엇보다 집 안 풀어놓은 강아지들이 걱정 됐다.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우걱우걱.

멍멍.

“....”

이실장 말처럼 음식을 시키긴 했다.

‘출장 뷔페긴 하지만.’

분명 이실장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음식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런데 잠깐 갔다 온 사이 음식들이 아주 초토화 돼 있었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 했나.”

내 혼잣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금석과 녀석이 데리고 다니는 강아지.

녀석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다쳤고, 아무도 녀석들을 챙겨 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박수향 때문에 기절한 금석과 녀석의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버리고 가자니 잠깐 한 편이 된 동지애가 뭐라고, 날 자극했다.

근데 이 놈, 새끼가 일어나자마자 냉장고를 털더니 급기야 나를 먹으려고(?) 했다.

“그래도 먹을 때는 조용하네.”

많이들 먹어라.

이런 호화스러움도 오늘이 끝이니까.

나도 대충 바닥에 앉아 최후의 만찬에 숟가락을 얹었다.

+ + +

“뚜뚜는 그렇다 치고.”

먹다 지친 금석의 강아지가 배를 뒤집고 잠들었다.

“이 새끼는 왜..”

뚜뚜의 주인 금석 역시 거의 모든 음식을 흡입하고 뚜뚜와 마찬가지로 배를 까고 잠들었다.

아주 짐승이 따로 없는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뚜가 뭐냐, 뚜뚜가.”

외견만 보면 앙증맞은 것이 뚜뚜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하지만 뚜뚜라는 이름을 지어준 인물이 금석이라는 점에서 전혀 안 어울렸다.

뚜뚜에게 다가가서 쪼그려 앉았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퍽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잠결에도 내 손길이 느껴지는지 머리를 꼼지락 거렸다.

금석은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고통의 희열’이라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고통의 희열’과 단짝인 능력이 하나 있었다.

‘자기 치유’

금석이 아무리 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

바로 자기 재생 능력이 엄청났다.

마치 엑스맨의 울버린처럼.

“근데.”

뚜뚜는 아니었다.

하지만 뚜뚜 역시 금석처럼 대련실에 봤던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었다.

대련실에서 뚜뚜를 처음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자 눈가에 고양이가 할퀸 것처럼 세 줄기 상처가 나 있었다.

검은 털.

눈가의 상처.

거기다가 금석이 가진 능력에 영향 받는 것까지.

“이렇게 귀여운 멍멍이가 미래에는 대괴수라니. 참..”

나는 옆에 널브러져 있는 금석을 쳐다봤다.

미래에 금석은 레볼루션 간부에게 죽는다.

그게 뚜뚜가 대괴수가 되는 계기였다.

‘저 녀석을 살리면..’

“오라오라!! 다 내게 오라!!”

뭔 꿈을 꾸는지 금석이 잠꼬대를 했다.

그러자 뚜뚜가 눈을 살며시 뜨며 내 손을 몇 번 핥았다.

그리고는 쌩하니 금석의 머리맡으로 아장아장 걸어가 누웠다.

그 모습을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쳐다봤다.

마치 실시간 애완동물 너튜브를 보는 것처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인트 상점이라..’

나는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모니터 세상에서 서진은 ‘훈수 두기’ 능력이 없었다.

그 말은 내가 서진에게 빙의하며 생긴 능력이라는 소리인데.

천장을 올려다봤다.

소녀가 내게 준 선물일까?

아니면 모래주머니일까?

그것도 아니면 뭔가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를 심어주기 위한 단순한 장치일까?

허탈해 하는 모습을 보려고?

‘뭐, 열어보면 알겠지.’

“포인트 상점 오픈.”

말이 끝나고 눈을 한 번 깜빡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긴..?”

주변 공간이 바뀌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하얀 순백의 공간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할 공간에 내가 침투한 것처럼,

아주 미개하고도 미천한 생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텟. 아이템. 정보. 그리고..”

그 공간에 문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문에는 제각기 글씨가 써져 있었다.

세 개의 문이 생겨났고, 마지막 문이 생겨났다.

“능력.”

총 네 개의 문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아주 간단명료했다.

‘내게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선물일까?

나는 네 개의 문 중 지금 당장 시급한 스텟이 적혀 있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새로운 공간과 연결이 된 것처럼 작은 방이 보였다.

안으로 발을 내딛자 문이 자동문처럼 닫혔다.

별 특색 없는 서재 같은 방이었다.

아니, 실제로 서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등불.

그리고 주변 책장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책들.

근데 책의 제목들이 하나 같이 이상했다.

-AA급 근력 스텟 10 상승-

책을 빼내들자 표지 바로 밑에 가격이 적혀 있었다.

“..장난해?”

훈수 포인트 1000점 필요라니.

나는 A급 서적 말고도 다른 등급 서적을 살폈다.

S급에서 F급까지.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양아치는 아니네.”

S급과 A급을 제외하면 나머지 등급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E~EEE급 서적.

수시로 독서를 한 결과 F였던 지혜 스텟이 EEE급으로 레벨 업 했다.

그래서 내 스텟은 통일성 있게 전부 E급이었다.

“1스텟에 훈수 포인트 3이라..”

내가 현재 100포인트가 있으니 모두 소진하면 33포인트를 올릴 수가 있었다.

현재 가장 D급에 근접한 스텟이 하나 있었다.

민첩 스텟.

본래 E(50)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런닝을 한 결과 E(70)으로 스텟이 상승했다.

훈수 포인트를 모두 때려 박으면 DDD로 레벨 업 할 수 있었다.

“음..”

곧바로 지르려다가 참았다.

아직 못 본 방이 세 군데나 남지 않았나.

나는 미련을 남기고 스텟 방을 나섰다.

다시 마주한 하얀 공간.

이 공간을 앞으로는 하얀 방으로 부르기로 했다.

하얀 방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다음 방인 아이템 방으로 직진했다.

+ + +

방 네 개를 싹 돌았다.

그 결과 없는 자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훈수 포인트는 이곳에서 현금이나 다름없었고, 이 곳은 마치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각 방에 대한 감상평을 간단하게 하자면 이랬다.

1. 스텟 방.

-포인트만 많다면 손 안대고 코 풀기 가능.

-스텟이 잘 오르는 D~F 구간이 아니라 잘 오르지 않는 C등급부터 이용하는 게 바람직해 보임.

-단, 다른 방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느낌.

2. 아이템 방.

-싸구려 롱 소드가 50 포인트나 함. 미친놈들인가?

-성능 좋거나 스킬이 붙어 있는 아이템은 진짜 말이 안 되게 비쌈.

-단, 포인트만 있다면 어떤 아이템이든 구할 수 있음.

-강화도 가능.

3. 정보 방.

-컴퓨터 달랑 한 대 있음.

-근데 검색어만 입력하면 어떤 정보든 나옴.

-포인트에 따라 정보의 질 차이가 클 것이라 추측.

-정보의 가치에 따라 잡아 먹는 포인트 다름.

4. 능력 방.

-이 방이 제일 미친 듯.

-왜냐고?

-존.나.비.쌈.

여기까지가 내 짧은 감상평이었다.

정보 방 같은 경우 우선 검색어를 입력하면 요구하는 포인트가 표시 됐다.

시험 삼아 이렇게 쳐봤다.

-레볼루션 간부들의 약점.

그랬더니 요구하는 포인트가 무려,

‘3만 포인트.’

3만 포인트를 지불해도 자세하게 안 나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 5만 포인트는 지불해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임팩트가 있던 건 아무래도 능력 방이었다.

스킬을 모니터 세상에서는 ‘능력’이라고 칭했다.

능력을 터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스스로 개화해서 깨닫거나.

아니면 피나는 노력으로 얻거나.

선천적인 방법과 후천적인 방법.

하지만 능력 방은 두 가지 방법을 제외하고 제 3의 방법이 가능했다.

‘구매.’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포인트만 있다면 어떤 스킬이든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 보다 값이 두 배는 비싼 느낌이었다.

“어떡한담~”

분명 이건 저승의 소녀가 내게 준 선물이 분명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값이 비쌌고, 현재 내게 남은 포인트는 80포인트였다.

20포인트는 정보 방의 정보를 알아보느라 사용했다.

없는 살림일수록 사람은 효율적이고 알뜰하게 소비하기를 희망한다.

지금의 나 역시 그랬다.

없는 살림에서 어떻게 해서든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역시, 이게 최선인가.”

나는 아이템 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템을 구매하고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구매한 아이템은 내일 유용하게 쓸 생각이었다.

‘신입생 신고식.’

올해 신설 된 ‘이순신 헌터 학교’의 행사.

나는 그곳에서 살아 남을 생각이었다.

[작품후기]

선작과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를 글 쓰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습니다.

뭐.. 그렇다구요. 헤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