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훈수 두기 성공!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레볼루션에서 피라미라고 볼 수 있는 놈이라는 점이었다.
‘카멜레온.’
녀석의 별명이자, 코드 네임이었다.
그리고 사용하는 스킬도 카멜레온과 흡사했다.
최면. 그리고 보호색에서 진화 된 스킬인 모습 복제까지.
이것 말고는 딱히 위협적인 스킬이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충분히 위협이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생각해라. 생각해.’
눈을 계속 내리깔고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카멜레온이 왜 번잇문에 나타났는지.
카멜레온은 여러 길드의 간부들을 죽이고 다니다가 덜미가 잡혀 죽는 빌런이었다.
그런 녀석이 왜 번잇문에 다급하게 들어왔을까?
‘아!!’
기억났다.
이 시기에 번잇문에서 재벌가의 자제들이 대량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는 미제 사건이었지만,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카멜레온이었다.
왜 기억해내질 못했을까.
이 시기에 이런 큰 사건이 있었는데.
‘가만.’
분명 여럿이 죽는다.
근데 서진은 살아남았다.
그렇다는 말은 나는 안 죽는다는 말..
푸슉.
앞에서 뭔가가 찔리는 소리가 났다.
살짝 고개를 드니, 가장자리에 있던 일행 한 명이 카멜레온의 혓바닥에 미간이 관통당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하나 같이 눈이 풀려 있었다.
나는 다행히 카멜레온을 보자마자 눈을 깔아 시선을 피한 덕분에 최면에 아직까지는 걸리지 않고 있었다.
카멜레온은 눈을 통해 최면술을 사용했고, 눈만 직접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최면술을 회피할 수 있었다.
혓바닥을 빼내고 구멍 뚫린 미간에 입을 가져다대는 카멜레온.
녀석이 모습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뇌를 먹어야 했다.
카멜레온이 무슨 꿍꿍이로 일행으로 모습 복제 하려는지는 몰랐지만, 이 상황을 타개 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전에 서진이 무사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뚜뚜뚜뚜!!
둥둥둥둥!!
여전히 클럽은 미친 듯이 시끄러웠다.
카멜레온은 우리가 있는 테이블과 간혹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 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최면을 걸진 않았다.
‘왜?’
필요치 않으니까?
아니다.
카멜레온은 약삭빠르고 영악한 놈이었다.
절대로 은밀한 장소나 보는 눈이 많으면 지금처럼 대놓고 모습 복제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시간이 없어서.’
쫓기듯이 클럽에 들어온 거를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았다.
클럽 입구로 들어서는 여성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사신 길드의 수장. 채린.’
사신 길드는 한설휘의 할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태양 길드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길드였다.
채린의 잠재력 수치는 89.
현 시대 실력은 그에 근접한 88.
B랭크 최상위권의 실력자였다.
하지만 대형 길드의 수장으로 있기에는 다소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일처리 능력과 사람을 부리는 능력.
이런 저런 요소를 모두 포함하면 그녀의 종합적인 수치는 95를 넘어선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한 가지.
친동생을 죽인 카멜레온을 직접 잡아 죽이기 위해서.
채린의 친동생은 사신 길드의 간부였고, 카멜레온이 죽인 인물 중에 채린의 친동생이 포함 돼 있었다.
채린은 이곳에서 카멜레온을 놓친다.
그게 본래 시나리오였다.
“평소처럼 행동 해.”
모습 복제를 한 카멜레온이 넝마가 된 시체를 소파 뒤로 감추며 말했다.
녀석의 말에 일행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의심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2층으로 올라와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앞에 놓인 잔을 들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채린은 이성적이며 치밀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극도로 감성적으로 굴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러했다.
친동생이 죽었고, 채린은 눈이 뒤집힌 상태.
그래서 조금 걱정 됐다.
평소 그녀 성격이라면 클럽을 이 잡듯이 뒤지며 꼼꼼히 살피겠지만, 지금 상태라면 혹시나 대충 보고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클럽의 음악이 잔잔해졌다.
그리고 카멜레온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이, 너.”
처음에는 모른 척 했다.
근데 카멜레온은 끈기가 대단한 녀석이었다.
“거기 빠박이. 너 말이야, 너.”
하는 수 없이 녀석의 끈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눈은 녀석을 쳐다보지 않았다.
“눈까리 들어.”
그렇게 말해도 쳐다볼 생각이 없었다.
최면에 걸리면 바로 게임 오버 될 수도 있었다.
‘빨리..빨리..’
속으로 채린이 빨리 2층으로 올라오길 기도하며 괜스레 눈 비비는 척을 했다.
이런 내 행동에 내가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 카멜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긴장감이 온 몸을 지배하며 털이 쭈뼛쭈뼛 섰다.
“빠박이. 너 허튼 짓 하기만 해라.”
다시 자리에 앉는 카멜레온.
다행히 채린이 2층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채린이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우리가 있는 테이블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거기 서. 거기 서라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애타게 불렀다.
내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슬쩍 우리가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는 채린.
테이블에 있는 술과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너희 미성년자..”
라고 말을 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바닥에 피가 조금 고여 있긴 했어도, 클럽 조명과 향수 냄새, 알코올 냄새로 인해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나는 지금 채린이라는 동아줄을 잡아야했다.
무조건.
잡지 않으면 카멜레온이 내 뇌를 아주 맛있게 먹겠지.
그리고 나는?
지옥 보다 더한..
콰앙!!
테이블을 거세게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채린이 내 쪽을 쳐다봤다.
“그 말이 사실이야?!!”
과장된 목소리로 과장되게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자연스레 채린의 눈길이 내 손을 향했다.
“네가!!”
나는 눈짓으로 채린에게 말했다.
‘옆으로 와. 빨리.’
처음에는 ‘미친놈인가?’라는 표정을 짓던 그녀.
내 얼굴에서 다급함을 읽었는지 주춤거리며 우리가 있는 테이블 옆으로 걸어왔다.
“네가!!”
그녀가 옆에 왔을 때 나는 카멜레온에게 들고 있던 술잔을 들이 부으며 녀석을 쳐다봤다.
의도치 않는 내 행동에 눈을 감는 카멜레온.
그 찰나의 타이밍.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네가!! 채리나를 죽인 카멜레온이라고오?!”
정적.
그리고 다시 정적.
먼저 상황을 인식한 건 채린이었다.
“너.. 지금 뭐라고..”
그 다음 인식한 건 카멜레온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카멜레온 새끼, 침착한 척 하기는.’
모습 복제를 하다 보니 연기가 아주 일품이다.
하지만 녀석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카멜레온의 인중을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탁탁.
메모장을 열어서 급하게 몇 마디를 치고 핸드폰을 채린에게 던졌다.
내가 쓴 메모를 읽은 채린이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괜찮다.
채린의 반응속도와 반사 신경이라면.
나는 쉼 호흡을 하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이라고 중얼거리는 카멜레온을 향해 말했다.
“칼흐 마 할.”
입을 벌리는 카멜레온.
다시 한 번 더.
“칼흐. 마. 할.”
그러자 자신의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카멜레온.
“그..그만..크..크윽..”
‘병신.’
내가 하는 말은 아무런 효력도 없다.
레볼루션의 간부들이면 모를까.
하지만 얼마나 당했으면 말만 들어도 고통을 느끼는 카멜레온.
급기야 이성을 잃고 내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혓바닥은 빠르게 내게 날아왔다.
눈으로 보이는 속도긴 했다.
하지만 현재 내 상태로는 반응할 속도가 아니었다.
서걱.
“휴..”
눈앞에서 카멜레온의 혓바닥이 잘려나갔다.
채린이 손에 투명한 실이 감겨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불확실한 표정으로 카멜레온에게 다가갔다.
내 쪽을 한 번 쳐다보는 채린.
‘너를 어떻게 믿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게 현재 내가 채린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크아아악!!!”
울부짖는 카멜레온.
그런 녀석의 복부를 주먹으로 거침없이 때리기 시작하는 채린.
‘진짜 큰 일 나는 줄 알았네.’
다행히 게임 오버였다.
+ + +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었다.
-혓바닥 날아옴. 구해주셈.
-저 새끼 배 존나게 치면 본래 모습으로 변함.
-그럼 알게 될 거임.
-날 믿으셈.
1번을 수행하면 그 다음 순서 역시 할 것이라 생각했다.
직감.
아리송할 때면 채린은 늘 직감에 의존했으니까.
다행히 직감의 편은 내 편이었고, 난 살아남았다.
+ + +
“진짜 인생 망할 뻔 했네.”
카멜레온이 모습 복제를 한 직후 일 때, 먹은 뇌를 게워내게 하면 모습 복제가 풀린다.
본 모습으로 변하는 것까지 확인 한 나는 클럽에서 빠져나왔다.
‘뒷수습은 채린과 살아남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알아서 하겠지.‘
“음..”
앞에 차들이 달리고, 내 호주머니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지갑을 집에 두고 왔고, 핸드폰을 클럽에 두고 왔다.
“다시 클럽에 드가는 건 거부감이 든단 말이지.”
클럽은 점점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있었고, 지금쯤은 절정을 찍고 있을 텐데.
최면에서 풀린 서진의 일행들의 호들갑.
채린의 분노.
그리고 이 사태를 직관하는 일반인들의 비명.
삼박자로 지금 클럽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앞에서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
“타요. 혼잔 것 같은데.”
“....”
채린이었다.
한창 카멜레온을 패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부담스러우면 잠깐 얘기나 해요.”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나는 냉큼 그녀가 내리기 전 먼저 조수석에 올라탔다.
집까지 편하게 갈 방법이 생겼는데 거절 할 이유야 없지.
“자요.”
열었던 문을 닫으며 내게 핸드폰을 내미는 채린.
“SOS. 잘 봤어요.”
“아..옙.”
“집이 어디 쪽이에요?”
“자세히는 기억이.. 아니 음.. 해운대구 쪽 이었던 것.. 아니 이요.”
“..해운대구 쪽으로 일단 갈게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고, 채린은 오히려 할 말이 많은 탓에.
슬쩍슬쩍 옆을 보면 표정에 다채로운 감정이 순간순간 왔다갔다했다.
슬픔. 분노. 안도.
신호에 걸렸고, 드디어 입을 여는 채린.
“우선 고마워요.”
“....”
“덕분에 동생의 복수를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몇 초의 버퍼링.
“창조 그룹의 장남. 서진..씨. 맞죠?”
“..네.”
“제가 누군지는..”
“알고 있어요.”
“음..그럼 통성명은 됐고. 설명해요.”
“뭐를..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는 채린.
달빛에 그녀의 드러난 목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아요?”
알지.
그래서 설명하기가 쫌 그렇단 말이지.
채린이 궁금한 건 세 가지일 게 분명했다.
카멜레온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카멜레온에게 죽은 사실.
마지막으로 녀석이 녀석의 모습 복제가 풀리는 사실까지.
채린은 독촉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여하에 따라 조금은 호의적인 태도가 확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내가 내놓은 대답은 이거였다.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과거도요.”
능력이긴 능력이지.
암 그렇고말고.
내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는 채린.
“제가 알기로 서진씨는 무능력자라고 알고 있는데.. 예언가 능력이 있다고요?”
“뭐..그런 셈이죠.”
“말 똑바로 해요. 그런 셈이라니요?”
“있습니다.”
“....”
내 얘기는 뜬 구름 잡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 세계관에는 예언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몇 몇 있었으니.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이 쪽으로 밀어붙여 채린의 의구심을 완전히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내일 채리나의 장례식이 있죠?”
“그..그걸 어떻게.. 길드 사람밖에 모르는..”
“일주일 뒤에는 원래 길드 단합 대회를 할 생각이었고. 그리고..”
점점 채린의 표정이 서진교의 신도처럼 변해갔고, 나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채린씨 왼쪽 가슴 바로 아랫부분에 점 있죠? 별 모양으로.”
“....”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근데.. 이건 예언과는 다른 부분인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그녀를 속이기에 성공한 것 같다.
근데.. 아까 들린 메시지는 도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차를 타고 가던 도중 메시지가 울렸었다.
[훈수 두기에 성공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훈수 포인트 100 달성시 포인트 상점이 개방 됩니다.]
‘음..’
일단 채린을 좀 더 속이는데 열을 올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