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네가 여기 왜 있어?
“그럼 편히 쉬십시오. 도.련.님.”
“어..어 그래.”
마지막 도련님에 정을 듬뿍 담아 말한 이실장이 바보처럼 웃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죽는 줄 알았다.
귀찮아서.
어찌나 대견하다, 멋있다.
역시 도련님은 큰 그릇이다.
라는 말을 해대던지.
“히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감탄사를 내 뱉었다.
대저택을 보고 와서 그런지 다소 협소해 보이기는 했지만 혼자 살기에는 아주 럭셔리의 끝이나 다름없었다.
공간이나 구조.
그리고 구조물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딱히, 뭐 없네.”
그런데 휑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이 장식이라고 착각할 만큼 휑한 집이었다.
나는 대충 소파에 있는 술병을 치우며 누웠다.
“흐으음~”
그간 내가 봐오고 작성했던 관찰일지가 일종의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큰 사건부터 작은 사건까지.
중요 인물부터 덜 중요한 인물까지.
마지막에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모든 게 귀결됐다.
서진.
이 놈이다.
이놈이 제일 중요하다.
미래를 바꿀 숙주는 결국 내가 빙의한 서진이었고,
앞으로 내가 행하고 만날 인물들은 결국 서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헌터 학교는 내게 있어 꽤나 좋은 선택지였다.
‘망나니 같은 이미지를 세탁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헌터 학교는 장차 크게 발전할 유망주들이 도사리고 있는 보물창고가 아닌가.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인물이 몇 명 있었다.
잠재력 수치 90 이상의 인물들이.
“일주일 후라고 했나.”
이실장에게 듣기로 입학 시기는 다음주였다.
“여유 있네.”
‘일주일 동안 로드맵이나 작성해야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라고나 할까.
“그건 그렇고.”
문득 궁금해졌다.
서진.
이놈의 스펙이.
다시 말해 상태 창이.
이 세계는 태어난 즉시 상태 창을 가지고 태어난다.
즉, 누구나 상태 창을 열고 자신의 스텟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든 헌터든 누구나.
그래서 상태 창은 이 세계에서 특별한 장치가 아니었다.
의식주처럼 아주 당연한 장치라고나 할까.
“상태 창.”
내 간단한 말에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상태 창이 나타났다.
-이름: 서진.
나이: 17세.
체력: EEE(20)
근력: EE(5)
지혜: F(30)
민첩: E(50)
“와.. 스텟 개 쓰레기네 진짜.”
스텟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태어나는 순간 FFF 스텟으로 시작을 하게 된다.
알파벳 랭크 옆에 (?) 숫자를 100까지 달성하면 레벨 업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FFF(99)가 FFF(100)이 된다고 치자.
그러면 FFF(100)이 된 순간 다음 단계.
FF(0)이 된다.
즉 99가 다음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마지노선이며, 알파벳이 하나 일 때가 그 단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서진의 스텟은 D가 하나도 없다.
가장 높은 스텟도 그나마 민첩. 솔로 E.
지혜 스텟은 무려 F다.
더블 F가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나는 감탄했다.
“어떻게.”
그리고 절망했다.
“살아왔으면.”
그리고..
“미친놈이네 이거!!”
흥분했다.
“D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잖아!! D솔로는 아니더라도 트리플 D라 던지!!”
일반인 중에서도 트리플 D.
그러니까 DDD 스텟을 가진 사람도 꽤 흔했다.
근데 서진은 하나도 없다.
이건 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서진.
바로 나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나를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할 생각이었는데.
김이 새다 못해 의욕이 팍 떨어졌다.
“확실히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재밌겠어.”
천장을 보며 저승에서 나를 보고 있을 소녀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나는 이 세계에 대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빙의한 대상이 서진이 아니라 초반에 강력하거나 이미 성장이 끝난 기성의 캐릭터에 빙의를 했다면 손 쉽게 미래를 멸망시키는 주범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진에 빙의한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분명히 크으으으으은 보상이라고 했지? 딱 기다려.”
그렇다고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포기했다가는 지옥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 되게 거추장거리네.”
소파에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몸에 치장하고 있는 장신구가 자기주장을 펼치는 바람에 결국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귀걸이에 피어싱에.”
주섬주섬 귀를 만지작거리며 장신구를 해제했다.
“반지에 팔찌에 목걸이에. 얼씨구? 발찌까지 하고 있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장신구 해체쇼(?)를 했다.
몸에 치장하고 있던 장신구를 모두 몸에서 떼어내자 앞에 수북하게 장신구가 쌓였다.
그 만큼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아 이제야 쫌 살 것 같네. 아, 잠시만.”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혀를 찼다.
“90년대 양아치 머리 하고는.”
노란 탈색 머리에 귀와 목을 덮고 있는 장발머리였다.
머리 위 선반을 뒤적뒤적 거리자 미용 가위와 바리깡이 나왔다.
“역시 있을 줄 알았어.”
서진은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캐릭터였다.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서 겉모습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슥슥.
서걱. 서걱.
머리카락 자르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미용 관련 자격증이 없었다.
하지만 군대 있을 때 이발병을 한 경험이 있었다.
‘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훈수 두다가 얼떨결에 하게 됐지만, 내 이발 스킬은 꽤 고급 스킬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이등병과 일병 머리는 다소 바리깡으로 거침없이 밀어재껴도 됐지만 상병부터는 난이도가 거침없이 상승한다.
짧은 머리에 다양한 스타일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특히 휴가철이 되면 난이도는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머리도 군인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1mm의 오차도 그들 눈에는 보였다.
그것이 바로 군인이라는 종족이었고, 나는 바로 그 위대한 종족들의 머리를 책임지던 이발병이었다.
주무기는 바리깡.
가위는 그저 거들 뿐.
그렇게 머리를 다 자르고 대충 행구고 거울 앞에 섰다.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염색한 부분을 모두 잘라냈다.
그러자 상병 정도의 머리가 됐고, 거기서 조금 다듬자 일병 정도의 머리가 됐다.
손으로 머리를 스윽 문댔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던가.
머리를 이렇게 짧게 밀어놔도 얼굴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오히려 이전 머리보다 얼굴이 더 부각 돼, 더 잘생겨보였다.
‘두상도 예쁘고.’
만족했다.
그러자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머리를 감느라 웃통을 벗고 있어서 맨 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멸치군.”
전생의 나도 멸치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멸치면 안 된다.
멸치라는 뜻은 전체적인 스텟.
그 중 근력 스텟이 현저히 낮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문신은 없네?”
이제는 내 몸이었지만, 처음 보는 몸뚱어리였기 때문에 이왕 옷 벗은 겸 구석구석 살폈다.
본래 이런 캐릭터는 쎈 척 하느라 온 몸에 문신으로 도배하던데.
다행히 서진은 문신이 없다.
한참을 몸 구경에 빠져있을 때, 밖에서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띵~띵~
옷을 입으려다가 입 벌린 호랑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도로 내려놓았다.
‘좀 더 무난한 옷은 없나.’
전화기를 집으며 옷장이 있을 법한 곳으로 걸어갔다.
‘김도진?’
발신자를 확인하니 찍혀 있는 이름.
생소하다 못해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기억의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일단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무엇보다 주변 소리가 전쟁터에 있는지 소음이 굉장했다.
-언제 와!!
“뭘?”
-아, 이 새끼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너희 집 앞으로 차 한 대 보냈으니까 타고 와!! 안 오면 알지!!
나는 귀가 먹지 않았는데 자꾸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주변 소음 때문에 안 들릴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참기로 했다.
“무슨 말..”
뚜. 뚜. 뚜.
“....”
끊겼다.
아니 끊었다.
‘김도진?’
뭐하는 새끼야?
핸드폰을 들어 갓톡 어플을 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상당히 많았다.
다 최근에 온 메시지들이었다.
주로 여자들에게 온 메시지였고, 내용은 ‘뭐해?’로 일맥상통했다.
쭉 내리다가 ‘김도진’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10명이 있는 단체 갓톡 방이었다.
“와~”
다 처음 보는 이름들뿐이었다.
하지만 나누는 대화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대화였다.
-어제 그 년 존나 맛있었는데 진짜.
-가슴 큼?
-ㅇㅇ. C컵은 될 듯.
-번호 뭐임?
-왜 시발ㅋㅋㅋㅋㅋ 이 년은 안됨. 내가 다음에 또 먹을거임.
-아~ 이 치졸한 새끼.
동영상도 올라와 있었다.
‘서진은 한 마디도 안했네.’
아무리 올려도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 씩 ‘왜?’같은 말을 제외하면.
“부잣집 아들들인 건 알겠고.”
대화에 가끔 ‘아빠가’ ‘엄마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어지는 말을 보면 돈이 많은 집안인 게 확실했다.
처음부터 그럴거라 예상했다.
서진이 있는 갓톡 방이었으니까.
-이번주 금요일 저녁 8시에 번잇문에서 모이는 거 알지?
라는 대목을 발견했다.
오늘 날짜를 확인해보니 금요일이었고, 시간은 8시 20분이었다.
나는 번잇문을 알고 있었다.
관찰 일지에 적은 기억이 있었다.
번잇문은 클럽이었다.
돈 많은 애들이 주로 가는 클럽이자, 일반인밖에 출입하지 못하는 클럽이었다.
헌터 출입 제한이 걸려있는 클럽.
서진의 단골 클럽이었다.
“가 볼까나.”
똑똑.
마침 김도진이 보낸 기사가 도착했는지 현관문을 두드렸다.
+ + +
번잇문을 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서진과 함께 모임을 가지는 녀석들은 부잣집 아들들이었다.
즉, 그들이 병신들이라도 손절 할 필요가 없단 뜻이었다.
언젠가 녀석들이 아니라 녀석들이 지니고 있는 집안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 한 번 봐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렇게 출발을 했고, 번잇문에 도착했을 때 급격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둥! 둥! 두둥!
뚜뚜뚜뚜뚜뚜!!!
‘개..시끄럽네?’
클럽을 처음 와 봤다.
그냥 쫌 소란스럽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었다.
먹먹한 귀를 틀어막으며 주변을 살피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디?
겟톡을 날리자 바로 단톡방에 답장이 날아왔다.
-서진!!! 이 새끼 드디어 왔구나!!
-어디긴. 우리 지정석이지.
지정석 좋지.
근데 내가 그 지정석을 몰라서 말이야.
-어디더라? 지정석이?
내 물음에 여러 가지 반응이 날아왔지만 대답을 해주는 놈이 있긴 했다.
-2층 바로 옆에 있잖아.
내게 전화를 했던 김도진이었다.
나는 위쪽을 쳐다봤다.
허리쯤 오는 반투명 난간으로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춤추고 있는 남정네들이 보였다.
“저 녀석들인가 보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억지로 비집고 갈 생각으로 몸을 들이밀었는데 이게 웬걸?
홍해가 갈라지듯이 사람들이 내가 가는 길목에서 비켜서기 시작했다.
내게 손을 흔드는 여자들.
손에 입을 맞춰 뽀뽀를 날리는 여자들.
반쯤 드러난 가슴을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는 여자들.
반대로 남자들의 반응은 여자들과 아주 상반된 반응이었다.
고개를 숙이거나, 외면하거나.
아니면 노려보거나.
노려보는 남자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곧바로 눈을 내리 깔았다.
‘흐음.’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서진은 이곳의 왕이나 다름없는 놈이었으니까.
“야 서진 왔.. 어?”
“얌마.. 너..”
“뭐냐?”
2층에 올라서자마자 일행들이 나를 반겼다.
그런데 반김이 조금 이상했다.
다들 하나 같이 못 볼 걸 본 마냥 눈을 크게 뜨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가.. 옷은 또.. 악세사리도 안했네?”
“다른 사람 같다, 야.”
“진짜. 와 이미지 변신 대성공이네.”
“반삭이 이렇게 멋있는 머리였어?”
“포스 장난 아닌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앉을 자리를 물색했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중간에 앉아 있던 녀석이 슬며시 옆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직감적으로 저기가 내 자리구나라고 느꼈다.
실제로 내가 중간에 앉자 다른 애들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차였냐?”
옆에 앉아 있던 포마드 헤어스타일의 남자가 내 옆구리를 살짝 치면서 물었다.
‘김도진.’
겟톡 프로필 사진에서 봤다.
“뭐가?”
“얼래? 반응 보소. 진짜 차였냐?”
김도진이 내 옆으로 바짝 붙으며 내 귀에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봤자 나 말고는 들을 수가 없었다.
클럽 음악 소리 때문에.
“오늘 한설휘 만나러 간 거 아니었어?”
맞다.
근데 이 녀석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내가 알기로 한설휘와 서진이 정혼한 사실은 당사자들과 양 집안의 어른들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소문 쫙 퍼졌어.”
“....”
“너랑 한설휘랑 오늘 같이 밥 먹었다며?”
정혼한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응.”
대충 대꾸를 하며 시선을 1층으로 내렸다.
그러자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질 않았다.
시끄러운 음악에 사람들이 뭐가 즐거워 저리도 신나게 춤을 출까.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군.’
적당히 앉아 있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주변을 다급하게 살피다가 내가 있는 2층으로 뛰어왔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우리가 있는 쪽을 쳐다보는 누군가.
씨익하고 웃었다.
“어?”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저 새끼가 여기 왜 있어?’
미래를 멸망시킨 빌런 조합, 레볼루션.
지금 우리 앞에 등장한 녀석은 바로 레볼루션 일당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