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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3화 (3/196)

3회

넌 참 감동이었어

한설휘를 간단히 수치로 평가하자면 잠재력 점수 95점이었다.

나는 각 캐릭터를 잠재력 점수로 평가하는 걸 좋아했다.

95점에서 100점 사이는 S랭크.

90점에서 94점까지는 A랭크.

80점에서 89점까지는 B랭크.

70점에서 79점까지는 C랭크.

60점에서 68점까지는 D랭크.

50점에서 59점까지는 E랭크.

50점 밑으로는 F랭크.

즉 한설휘는 잠재력 수치로 보면 S랭크 초입에 해당하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생전 능력치로 보면 92점에서 93점을 왔다 갔다 했다.

그녀가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서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서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설휘를 쫓아다니며 어린 애처럼 괴롭혔다.

즉, 한설휘가 트레이닝하는 시간을 방해했다.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생애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그러했다.

한설휘는 현재와 미래에 꼭 필요한 전력임이 분명했지만 그녀는 내버려둬도 혼자서 쑥쑥 클 인재였다.

서진이라는 방해꾼이 없다면 조금 더 성장을 빠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너..어디 아파?”

한설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저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설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문으로 걸어갔다.

+ + +

서진이 떠나고 홀로 남은 한설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찻잔을 감싼 채, 굳어 있었다.

“정혼을.. 어떻게 네가.. 알겠다고 대답을 할 수가 있어..”

고개를 들어 서진이 나간 문을 쳐다보는 한설휘.

“나쁜 새끼..”

손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

“개새끼..”

툭!

찻잔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각났다.

조각이 그녀의 손을 스쳤고, 가느다랗게 선혈이 흘러내렸다.

“감히 네가.. 내게 밀당을 해? 서진. 네가? 후..후훗!!”

실소를 하기 시작하는 한설휘.

그 때 문이 열리며 이실장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아가씨. 혹시 도련님이랑 무슨 일이..아가씨!! 손에 피납니다!!”

황급히 한설휘 옆으로 달려간 이실장이 품에서 응급처치 용품을 꺼내더니 한설휘의 손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아..네..뭐. 근데 아저씨는 그런 걸 품에 가지고 다니세요?”

한설휘가 턱 끝으로 이실장이 꺼낸 약품을 가리켰다.

“아.. 이거요? 도련님이 덤벙대서 자잘하게 다치시는 일이 많아서요. 하하!”

“덤벙대긴요. 지가 먼저 싸움 걸어서 얻어터지는 게 덤벙대는 건 아니잖아요.”

“하하. 그렇긴 하죠. 다 됐습니다.”

“아저씨.”

“말씀하세요.”

“서진.. 진짜 갔어요?”

“네..?”

한설휘의 말에 이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기 다 끝났다고 차에 먼저 가셨습니다. 저는 아가씨께 간다는 말씀 드리러 온거구요.”

“그..그래요?”

“네. 저희 도련님이 혹시 무슨..”

“아니에요, 그런 거. 근데 아저씨. 서진이 오늘 어디 아파요?”

“음.. 딱히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오늘?”

“음..”

“소리도 안 지르고. 욕도 안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황식당에 오고부터는 조금 얌전해지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쵸?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평소에 안 먹던 게장을 먹더라니까요, 글쎄?”

“게장을요? 에이~ 도련님이 갑각류를 얼마나 싫어하시는데.”

한설휘가 손을 들어 끔찍하게 파여진 게딱지를 가리켰다.

“저것들 다 서진이가 먹은 거예요.”

“헐..”

본래 장식품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깔끔한 모습의 게딱지들.

“일단.. 도련님이 기다리시니까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저씨.”

그렇게 이실장이 떠나고.

“혹시 다른 여자 생겼나?!”

홀로 남은 한설휘는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한참을 자리에 남아 있었다.

+ + +

‘흠..’

나는 지금 이실장과 함께 본가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서진은 홀로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중이라 본가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실장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이 집에 잠깐 들어오라고 했고, 알겠다고 했다.

그래도 명색에 서진으로 살아가는데 부모 얼굴 정도는 실제로 봐야하지 않나 싶었다.

‘운 좋게 서진의 동생도 만나면 좋고.’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고 있을 때, 이실장이 말을 걸어왔다.

“도련님.”

“예.”

“혹시 어디 편찮으십니까?”

“갑자기요?”

나는 옆을 쳐다봤다.

이실장이 운전을 하다가 슬쩍 내 쪽을 쳐다봤다.

“갑자기 존댓말 쓰시는 거도 그렇고, 갑자기 조수석에 앉으시는 것도 그렇고..”

“....”

이실장이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단 번에 알아차렸다.

서진이 여태까지 살아온 캐릭터와는 상반되게 행동하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서진처럼 행동 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반말이라도 할까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실장이 눈가를 가볍게 훔치며 말했다.

“감동했습니다.”

‘감동? 뭔 감동?’

“점점 도련님이 어른이 되어 가시는 모습이..크흡..”

‘어래?’

이실장의 눈가가 촉촉하다 못해 홍수가 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태는 벌어지질 않았다.

코를 맛깔나게 들이킨 이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노력하는 도련님의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뭔가 대단히 오해가 있어 보였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기분 좋은 오해였고, 앞으로 그 오해의 진실이 밝혀질 일은 없었으니까.

“다 왔습니다.”

창밖을 보며 도시의 경치를 보며 현실 감각을 돋우고 있을 때, 이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거대한 궁전인 줄 알았다.

그야말로 대저택.

누가 봐도 엄청난 부자가 살 것만 같은 으리으리한 외관.

“와..”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덤덤하게 말 하는 이실장.

“도련님?”

“네..으..응?”

“안 내리십니까?”

“아..응.”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발을 내딛었다.

+ + +

‘완전 궁전이 따로 없구만.’

모니터로 봤을 때는 단순하게 ‘집 존나게 크네’라고 생각 했었다.

근데 실제로 마주하자 상상 이상이었다.

숨바꼭질을 한다면 미아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넓고 길었다.

“설휘는 잘 만나고 왔니?”

“..네.”

나는 지금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보다, 더 고급스러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서진의 어머니가 앉아서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었다.

“어머머. 그래, 어떻게 잘 만나고 왔니?”

“..예?”

“만나서 뭐했냐구.”

“밥 먹었는데요?”

“그리고?”

“그리..고?”

“아니다. 흠.. 너는 꼭 그런 부분은 아빠를 닮아가지고. 어휴.”

어머니의 조잘거림을 듣고 있을 때 아버지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다’라는 명함을 얼굴에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굴에 국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은데 서진의 아버지는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었다.

엄격. 근엄. 진지.

“시우는?”

그리고 퉁명스럽게 내 뱉은 말까지.

잠시만.

시우라고?

“시우도 옵니까?”

내 말에 아버지가 눈을 번뜩이며 나를 쳐다봤다.

“왜? 또 부모가 보는 앞에서 욕이라도 하려고?”

“....”

그런 전적이 있긴 했다.

그리고 전적이 꽤 많고 화려하긴 했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서진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진의 동생이 온다고?’

아주 나이스한 상황이었다.

서진의 동생 서시우와 안면을 틀 기회였다.

그리고 기왕이면 빠르게 녀석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서진과 서시우.

둘 사이는 피가 섞인 형제였다.

하지만 사이가 안 좋다.

그것도 매우.

남도 아니고 원수와 비슷한 사이였다.

모두 서진이 초래한 결과긴 했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관계를 원만하게 되돌려 놓을 생각이었다.

서시우는 잠재력 점수 97점이었다.

하지만 90점에서 한계에 부딪혀, 끄끝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캐릭터였다.

녀석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낼 수만 있다면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게 분명했다.

‘문제는 사이를 어떻게 회복 하냐는 건데.’

곯디 곯은 형제애를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서진 보다 조금 작은 키에 서진과 비슷하게 잘생긴 청년이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옆을 보자 서시우가 차고 있는 상현달 모양의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일찍 왔구나.”

아버지가 나를 대할 때와는 달리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시우를 반겼다.

“예. 아버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시우.

“수련은 차질 없이 잘 되고 있고?”

“예.”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알겠습니다.”

“녀석. 못 본 새, 많이 의젓해졌구나. 네 형이랑은 다르게.”

내 쪽을 힐끔 곁눈질로 쳐다보는 아버지.

나는 눈을 깜빡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망나니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진 역시 마찬가지다.

계기가 있었고, 그 후에는 지금과 같은 환경이 서진을 더더욱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저언~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차 좀 내오지.”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호호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정부가 있었지만, 가족들만 있는 자리에는 외부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그게 어머니의 철칙이었다.

어머니가 차를 가져오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대화의 주제는 서시우였다.

나를 왜 부른 건지, 그냥 비교 대상이 필요해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차 더 줄까?”

가끔 어머니의 속삭임이 아니었다면 나조차 투명인간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라. 이 아비가 다 구해주도록 하마. 2학년은 실습도 나간다고 들었다. 아이템 뭐, 필요한 거 없느냐?”

“아직은 괜찮습니다.”

“흐음..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혹여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아버지.”

아주 자상한 아버지 납셨다.

“명심하거라. 네가 우리 가문의 미래라는 것을.”

“예.”

흡족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

“자, 그럼. 들어 가보도록 해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헌터 학교에 입학 수속 밟아 놨다. 더 이상 집안에 먹칠하고 돌아다니는 꼴은 못 본다. 싫어도 가거라. 못 가겠으면 지금 말 하거라. 호적에서 파 버릴 테니까.”

‘이런 이유가 있었네.’

모니터를 볼 때 서진이 너무 뜬금없이 헌터 학교에 입학한다고 생각 했었다.

누구보다 헌터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바로 서진인데.

‘아무리 서진이라도 호적에서 판다는 말에는 반항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네.‘

“크흠.”

내가 대답이 없자 헛기침을 하고 걸어가는 아버지.

“어머니. 가보겠습니다.”

“왜~ 조금 더 있다가지, 아들.”

“아직 훈련할 게 남았거든요. 조만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시우.

아버지는 곁눈질로 한 번씩 쳐다보기라도 했지, 이 녀석은 갈 때까지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 그럼 저도.”

내 손을 탁 잡는 어머니.

눈에 가지 말라는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안 된다.

시우에게 할 말이 있다.

“하하. 어머니.”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슬쩍 밀치며 시우를 따라 갔다.

+ + +

본가의 정원은 축구 경기를 해도 될 정도로 넓었다.

해가 진 상태였지만, 곳곳에 설치 된 조명과 조각물과 연못으로 인해 야간축제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디 간 거야?”

분명히 정문으로 나가는 걸 봤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새 정원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간 건 아닐 텐데.

정원을 둘러보며 서시우를 찾고 있을 때, 뒤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교에서.”

시우였다.

“아는 척 하지마.”

싸늘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나를 기다린 모양인데.

나 역시 할 말이 있었다.

나를 지나쳐 대문으로 걸어가는 시우에게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동생아~”

내 말에 시우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나는 씨익 웃었다.

조금 더 거창하거나 조금 더 둘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괜히 했다가 사이를 더 틀어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뭐.. 더 틀어질 사이도 없지만.’

“자 그럼 이제.”

‘서진이 혼자 사는 집으로 가 볼까나.‘

이실장이 어디 있으....

“깜짝이야.”

내 바로 뒤에서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을 줄이야.

“감동입니다!!”

참 눈물이 많은 아저씨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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