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화 (프롤로그) (1/196)

1회

프롤로그

훈수 두는 건 무척이나 고달프고 에너지 소비가 막대한 노동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어떤 수가 최선의 수인지 고도의 두뇌 회전을..

“야. 똑바로 안 서?”

“....”

나는 주춤거리며 몸을 뻣뻣하게 세웠다.

“너 때문에 졌잖아. 어떻게 책임 질 거야?”

밤톨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가 으름장을 놓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의 뒤로 비슷한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여럿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때문에 황금 카드 잃었잖아!!”

“미..미안.”

나는 사죄의 의미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내 나이 12살 때, 훈수의 위험성을 알아버렸다.

+ + +

나는 훈수 두는 걸 좋아한다.

“아니지. 아~ 답답하네 진짜.”

“그렇게 말고 이렇게 하라니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한 발 뒤, 관전자의 입장에서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으니까.

딱 그 정도의 입장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야. 너 일로 와봐.”

고등학생 때 반 친구들끼리 싸움이 붙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는 신나게 훈수를 두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 말이 어수선함에 묻힐 거라는 착각을 했다.

싸움의 승자가 씩씩거리며 나를 불렀다.

“나..나?”

“그래, 너 이 새끼야. 뭐? 나 같았으면 목을 옆으로 45도 각도로 틀어서 라이트 훅을 어쩌구 저쩌구? 빨랑 안 튀어나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교실의 뒤로 걸어갔다.

“해 봐.”

“..응?”

“해 보라고. 네가 말한 대로.”

당연히 될 리가 있나.

그 날 뒤지게 얻어맞고 나는 결심했다.

나의 훈수는 봉인하기로.

+ + +

비공식적 데이터로 따지면 내 훈수의 타율은 8할이 넘는다고 자부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게 분명하다.

“병신.”

그렇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다.

20대 중반까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불법 토토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 + +

훈수를 잘 두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게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훈수의 대상. 혹은 경기의 룰을 알고 있어야 했다.

이 정도만 알면 훈수의 기본 정도는 둘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에헤이~”

같은.

두 번째로는 룰 이상의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를 훈수 둔다고 치면 팀의 컬러나,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와 컨디션.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그들의 정곡을 찌를 수 있는 훈수를 둘 수 있게 된다.

“한 달이나 징계로 경기를 안 뛰었으면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열심히 뛰겠다!! 마누라랑 해외여행은 잘만 가더만!! 한 달 내내 섹스만 존나게 했냐!!”

와 같은.

실제로 축구 경기장에서 이 소리를 했다가 선수가 관객석으로 뛰어오려고 했다.

마지막 세 번째.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살면서 몸으로 뼈저리고 처절하게 경험하고 느낀 훈수의 비기라고나 할까?

‘치고 빠지기.’

아무 경기나 아무 장소 아무 대상에게 지나가는 말로 툭툭 던지는 건 하수다.

시의 적절한 타이밍.

또 다른 말로는 눈치.

앞서 말한 훈수의 삼박자로 나는 불법 토토에서 능력이 만개하기에 이르렀다.

+ + +

“하아암..”

나는 기지개를 켜며 모니터 두 대를 번갈아 쳐다봤다.

오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고, 방금 승자와 패자가 결정됐다.

“운이 안 좋았군.”

나는 모니터를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예상대로라면 또또넘이 이겨야 했지만 졌다.

시나리오에 없던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전 스트라이커의 갑작스러운 부상.

그리고 주전 윙백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퇴장.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내 시나리오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결과적으로 또또넘에 1억 배팅했던 나는 1억을 날렸다.

“편의점이나 갈까나.”

그래도 괜찮았다.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이 꽤 많이 남아 있었고, 다음에 한탕 하면 된다.

나는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 + +

“비가 많이 오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찝찝하기만 한 날씨.

나는 편의점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눈은 핸드폰에 고정한 채.

‘UFC 경기도 한 번 노려볼까나.’

UFC경기의 배당률을 살피며 좁은 골목을 빠져나갈 때 귓가로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큰 소리가 울렸다.

빠앙-!

옆을 쳐다봤다.

도로가 아니었음에도 투우사의 붉은 천을 향해 달리는 소처럼, 트럭 한 대가 내 쪽으로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트럭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두 세 걸음만 뒤로 빠지면 살 수 있었다.

근데 몸이 그 순간 공포로 인해 굳어버렸다.

경직상태.

“여기서 그렇게 속도를 높이면..”

뒤 늦게 트럭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내 몸은 지상에 붙어 있질 않았다.

“안되지..씨..발..”

그게 내 마지막 훈수였다.

아니, 이건 훈수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렇게 훈수충으로 살아오던 내 삶이 막을 내렸다. 고 생각했다.

+ + +

“그러니까 CCTV 관리를 하라는 건가요?”

“모니터링 요원.”

“CCTV 관리나 그거나..”

“모니터링 요원.”

“....”

나는 단호한 상관을 보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사실 내 앞에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이 녀석이 내 상관인지 뭔지 모른다.

그냥 이곳까지 인솔하고 이것저것을 설명해주길래 마음대로 상관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죽었다.

트럭에 치여.

그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상관 놈이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와서 내 업무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물었다.

“저 죽은 거 아닌 가요?”

무시했다.

“저 여긴 어디죠?”

이 또한 무시했다.

상관 놈은 계속 지 할 말만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 또한 체념을 하고 맞장구를 치고 있기는 한데.

수 십.

아니, 수 백 대로 보이는 모니터를 매일 관찰하며 관찰일지를 작성하라니.

“선생님. 조금 더 설명을..”

“관찰일지는 저기 있다. 다 작성하면 걷으러 오겠다.”

저 자세를 취해봤지만 상관 놈은 목석같은 단단한 심지를 가진 놈이었다.

두께가 두 뼘은 돼 보이는 관찰일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할 말을 전부 다 했는지 상관 놈이 이곳에서 나가려고 했다.

“저..저기요!!”

내 다급한 외침에 그래도 목석의 뿌리는 조금 촉촉하기는 한 모양인지 고개를 아주 살짝 젖히는 상관 놈.

“저 안하면 어떻게 되죠?”

훈수충으로 살아온 내 그간의 인생으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상관 놈은 개인적인 질문을 하면 눈도 깜빡 안한다.

하지만 녀석이 말한 ‘업무’에 관련 된 얘기를 하면 반응을 한다.

그렇다는 건 최대한 업무적인 얘기로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답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

“....”

내 유추는 끝났다.

+ + +

“아니지, 아니지!!”

모니터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조금 시간이 흐르면..

“흐흐. 그렇지.”

바보처럼 웃었다.

그러다가 몇 초 지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격분했다.

“너는 그런 타입의 캐릭터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 해!!”

언 뜻 보면 미친놈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더 미친놈 같기도 한 남자.

나다.

내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못해 지루했다.

수백 대의 모니터를 보며 관찰일지를 작성하는 것.

이게 전부다.

처음에는 건성건성 했다.

모니터로 보이는 세상은 내가 살아오던 현실과 닮아 있었지만 특이점이 많았다.

마치 게임. 혹은 소설과 닮아 있었다.

배경은 내가 살아오던 2000년대 세상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상태창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고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화려한 스킬을 사용했다.

죽어서 그런지 배도 고프지 않고, 졸리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모니터를 관찰하는 것 뿐.

그래서인지 점점 건성이던 태도가 모니터 속 세상에 몰입을 하면 할수록 과열되기 시작했다.

관찰일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날씨 맑음. 한국에 거대 게이트가 열림. 한국 헌터들이 나서서 제압함. 끝.]

하지만 태도가 변하자 관찰일지 역시 세세하고 여러 가지 오지랖과 훈수를 적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레볼루션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의 헌터들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봄. 하지만 심각성을 모르고 계속 남 탓만 함. 이러다가 세계 망하겠음. 레볼루션 대항마로..]

그렇게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모니터 속 세상의 시간이.

그동안 내가 작성한 관찰일지만 1000권이 넘어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살아왔던 생에 대해 많이 무뎌지고 기억을 떠 올리려고 하면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

오히려 내가 살아온 삶보다 모니터 속의 세상을 보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내게 삶은 이제 모니터 속의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모니터 속의 세상이 빌런들에게 멸망해버렸다.

“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백 개의 모니터를 불안한 시선으로 훑었다.

어딜 봐도 황폐했고, 어딜 봐도 초토화 돼 있었다.

끝났다.

게임 오버.

“후우우....”

깊은 탄식을 내 뱉으며 관찰 일지를 집어 들었다.

의욕이 팍 사라진 느낌이다.

빌런들에 의해 모니터 속 세상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더 이상 내가 바라는 전개는 이어지질 않을 게 분명했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관찰 일지에 파묻으며 마지막 교전에 대해 끄적이고 있을 때 모니터실의 문이 열렸다.

나는 문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10분이면 돼요.”

관찰 일지를 다 작성할 때 쯤 되면 상관이 귀신같이 들이닥친다.

오늘도 어떻게 알았는지 들이닥쳤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빨리 왔다.

보통이라면 내가 펜을 놓으면 1분 안에 들이닥치는데.

‘아무렴.’

10분 빨리 오든 10분 늦게 오든 뭔 상관이 있으리.

모니터 속 세상이 멸망해버렸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순간 멈칫했다.

펜과 눈동자는 여전히 관찰 일지를 보고 있었지만 다른 감각이 모두 밖을 향했다.

옆에서 느껴지는 차갑지만 따뜻한 기묘한 입김.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사무적이고도 오크의 그것처럼 딱딱한 말투가 아닌 상냥한 말투.

본능적으로 내 옆에 있는 존재가 상관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고개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안녕?”

“아..안녕하세요.”

귀여운 소녀가 방긋 웃으며 손을 들며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소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생동감!!’

이곳에 온 후로 나는 온통 모니터 속의 인물들과 교감하거나 로봇 같은 상관을 종종 대면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내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싱글싱글 웃는 소녀의 모습은 내 기분과 많은 부분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았다.

“이거 말고. 관찰 일지.”

“아..넵.”

서둘러 소녀의 손을 놓으며 그녀에게 관찰 일지를 내밀었다.

‘뭔 손이 이렇게 차가워?’

양손을 비비며 소녀를 쳐다봤다.

손이 냉동고에 100년은 묵힌 것처럼 잡는 순간 동상 걸릴 뻔 했다.

‘오오?!’

식욕, 성욕, 수면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움을 느끼다니.

‘혹시 나 살아있는..’

“죽었어.”

“....”

소녀가 관찰 일지를 보며 말했다.

‘뭐..뭐지. 내 속 마음이 들리는..’

“들려.”

아메바처럼 생각을 멈추는 스킬을 터득했다.

눈을 깜빡이며 무념무상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을 때, 소녀가 관찰 일지를 덮으며 나를 쳐다봤다.

“재밌단 말이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자, 이제 대답해 봐.”

나는 계속 눈을 깜빡였다.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습니다. 나는 눈을 두 번 깜빡였습니다. 이런 생각 말고. 내가 아까 물어본 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답. 그걸 해 보라고.”

“뭐..를요?”

“네 관찰 일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뭔지 알아?”

“....”

“나였으면.”

소녀가 싱긋 웃으며 관찰 일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였으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 나였으면 저렇게 안 했을 텐데.”

말을 하다가 관찰 일지를 넘기더니 맨 끝장을 펼쳤다.

“자, 봐. 마지막 문장에도 ‘나였으면 세상이 멸망하도록 안 뒀을 텐데.’라고 했지?”

그러네.

소녀의 말 대로였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어쩌긴~ 내 물음에 대답 해야지.”

“그러니까 뭘 그렇게 생각..”

“생각보다 멍청하네.”

소녀가 고개를 흔들며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냉기가 손목을 통해 온 몸 곳곳에 침투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라면 저 세상을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계속해서 내 손목을 움켜잡고 대답을 강요했다.

“정말? 정말?”

입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옴짝달싹 안했다.

정신이 혼미하다 못해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소녀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놓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좋아!

손을 놓는 게 너무 늦었다.

내 몸이 스르르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네가 정말 저 세상을 구한다면 너에게 아주 크으으은!! 보상을 내릴게. 하지만!! 실패한다면..”

‘뭐라는 거야.’

나는 소녀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정신이 미친 듯이 또렷해지며 눈과 귀가 확장됐다.

그런 내게 소녀가 고개를 들이밀며 귀에 속삭였다.

“지옥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암전 되듯 시야가 검게 변했다.

지옥행인지 천국행인지 모를 열차가 출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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