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42 >
“경기가 스페인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부스케츠, 알바에게 패스합니다. 알바, 평소보다 많이 올라와서 플레이를 가져갑니다.”
스페인은 벨기에의 단단한 수비에 고전하며 굉장히 고전하고 있었다.
중원에서의 패스 플레이는 나름대로 평소와 큰 차이 없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역시 마무리였다.
아무리 예술적인 패스워크를 보여줘도 마무리 없이는 묘기 축구와 다를 바 없었다. 즉, 실속이 없었다.
“주, 하프라인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으로 알바를 괴롭혀줍니다.”
“오늘 주가 상당히 많이 뛰어주고 있네요. 기본적으로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되는 만큼 활동량 역시 당연히 많은 선수지만, 윙어로 출전해서도 쉴 새 없이 뛰어주는 모습이 색다르죠?”
현대 축구에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포지션은 풀백이었다.
수비수가 왜 그렇게 활동량이 많은지, 보면 가끔 오버래핑해 올라갈 때 말고는 걷거나 서서 수비하는 것 같은데 왜 1위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풀백은 한 번 올라가면 끝에서 끝까지, 그것도 전속력으로 주파해야 했고, 수비가 끝나면 수비 라인의 움직임을 따라 하프라인 근처까지는 무조건 올라가 주어야 했다.
수비가담이 좋은 스트라이커들이 중앙 미드필더와 비슷한 거리를 뛰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풀백이 전진 배치되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무서운 거예요. 주도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첼시의 버트란드를 지켜보며 느꼈겠죠. 전진 배치된 풀백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풀백이 공격력까지 갖추었다면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마치 지금의 주처럼 말이죠.”
활동량으로 유명한 풀백들과 비교하면 성배의 활동량이 엄청나게 많은 아니지만, 그래도 풀백 중에서도 최상위권 정도는 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윙어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풀백인 알바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적극적인 압박이었고, 경험마저 많지 않은 알바의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위축되었다.
“알바, 차비에게 연결합니다.”
알바는 성배를 상대로 전반 30분이 다 지날 때까지 단 한 번의 돌파도 시도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공격이 무뎌진 이유 중 하나였다.
‘자, 슬슬 확인 좀 해볼까.’
오늘 벨기에가 들고나온 전술의 기본적인 틀은 측면 공격의 핵심인 알바의 봉쇄와 스페인의 핵심인 2선 미드필더들의 봉쇄, 두 가지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다른 팀들이 시도했던 방법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고, 이제부터 다른 점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주, 곧바로 차비에게 달려듭니다! 거친 수비, 아! 차비, 밀려 넘어집니다!”
알바를 거칠게 압박하던 성배는 곧바로 차비에게 달라붙어 반칙에 가까운 거친 압박을 시도했다.
결국, 상체 싸움 끝에 차비가 밀려 넘어졌는데, 판정이 엄격한 심판이라면 충분히 파울을 선언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호오, 이 정도로는 안 분다는 거지?’
벨기에가 꺼내 든 또 하나의 히든 카드였다.
벨기에에서 선발 출전한 선수들은 루카쿠, 펠라이니, 데푸르, 시몬스, 반 바이텐, 콤파니, 베르마엘렌, 알데르베이럴트 등 거의 모든 선수가 한 힘 하는 선수들이었다.
티키타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짧은 패스를 중요시한 덕분에 대체적으로 테크닉에 비해 피지컬과 힘은 떨어지는 선수들로 구성된 스페인 선수들을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주, 반대편으로 길게 열어줍니다. 아자르, 천천히 전진하면서 기회를 엿봅니다.”
“벨기에의 다른 선수들은 따라 올라가지 않고 우리 진영에서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정비하는 모습이죠? 일단 지금까지는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아요.”
다만, 초반부터 거친 플레이로 일관할 경우 경고와 퇴장에 대한 리스크로 경기 후반에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이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
노련하다 못해 얄미운 플레이를 즐기는 성배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시몬스만 거칠게 움직여주고 있었다.
두 선수는 자유자재로 플레이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주심의 성향을 파악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두 선수의 플레이와 주심의 판정에 집중하면서 나름의 마지노선을 설정하는 중이었다.
‘이제 슬슬 선이 보이는데...’
아슬아슬한 선에서 파울을 불리지 않기도 하고, 파울이 선언되어 프리킥을 내주기도 하면서 성배와 시몬스는 점점 각을 좁혀나가고 있었다.
그런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슬슬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무는 가이드라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어찌나 영리한지, 두 선수 모두 경고 한 장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시작하자.’
‘오케이. 전달 확실히 받았습니다, 마크.’
아자르의 돌파가 아르벨로아에게 막히며 벨기에의 스로인이 선언되었다.
잠시 경기가 멈춘 사이, 성배와 빌모츠의 시선이 마주쳤고, 빌모츠는 성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스페인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편히 누워 쉬도록 해줄 차례였다.
“자자, 이제부터 시작하자!”
“좋아! 오래 참았다고!”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네. 자, 이제 가보자!”
다음 전술로 넘어간다는 성배의 신호가 벨기에 선수들에게 전해졌다.
터프한 플레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펠라이니와 데푸르가 쌓인 답답함을 털어내며 소리쳤다.
반 바이텐과 콤파니, 알데르베이럴트와 베르마엘렌 역시 씨익 웃으며 스페인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스페인 선수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불안하다는 생각에 표정이 굳어졌다.
“알론소의 패스가 실바에게 이어집니다. 실바, 줄 곳을 찾다가 반대편으로 길게! 이니에스타가 잡았습니다.”
뭔가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없었기에 스페인은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위화감의 정체가 곧 드러났다.
“알데르베이럴트, 거칠게 밀고 나옵니다! 쓰러지는 이니에스타! 파울 선언되지 않습니다!”
성배와 시몬스가 간을 본 결과, 오늘 주심은 파울에 관대했다.
사실, 메이저 대회 준결승 정도 되면 그렇지 않았던 심판들의 파울 콜도 관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흥분해서 거칠어지는 양 팀 선수들을 통제하다가 서너 명을 퇴장시키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선수들, 파울이 선언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터프한 플레이를 구사하기 시작하네요. 훌륭한 선택이에요. 스페인이 세계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팀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우위에 있는 피지컬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벨기에의 거친 플레이에 스페인은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피지컬의 차이가 현저했다.
기량에서 앞서긴 했지만,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벨기에 선수들의 압박을 버티면서 농락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양상이 되면 아무래도 선이 굵은 축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선이 굵은 축구로 붙으면 스페인에게 밀릴 이유가 없어요. 스페인의 가장 큰 무기가 봉인되는 거거든요?”
휘슬을 아끼는 주심의 성향을 파악한 벨기에는 본격적으로 스페인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서로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이 되면 스페인이 자랑하는 유기적이고 완성도 높은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은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는 피지컬에서, 스페인은 개인 기량과 전술적 완성도 면에서 앞섰다.
“벨기에가 위에서 내려다보던 스페인을 같은 높이로 끌어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벨기에가 준비해온 전술이 완벽히 먹혀들었다.
반 층 정도 위에서 벨기에를 내려다보았던 스페인은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벨기에의 반격에 당해 같은 층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경기 전의 모든 예상이 의미 없어진 상황, 이제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팀의 기세와 집중력이 되었다.
“베르마엘렌의 태클! 실바, 넘어지면서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스페인의 프리킥 찬스.”
벨기에가 거친 플레이로 일관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규칙은 있었다.
바로 직접 슈팅이 가능한 거리에서는 최대한 프리킥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움직이는 반 바이텐과 콤파니, 시몬스는 최대한 프리킥을 내주지 않으려 했고, 측면이나 골대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움직이는 베르마엘렌, 알데르베이럴트, 펠라이니, 데푸르는 프리킥을 내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거친 플레이를 이어갔다.
“어차피 측면에서는 프리킥을 내줘봤자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벨기에는 알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스페인의 제공권은 잘 쳐줘도 평균 이하거든요? 유럽 최고 수준의 제공권을 자랑하는 벨기에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죠.”
스페인이 측면에서 프리킥으로 공격한다고 해봤자 가장 위력적인 공격 방법인 크로스는 벨기에에게 통하지 않았다.
2선으로 빼주면서 중거리 슈팅을 노리는 것은 가끔 허를 찌를 때나 위협적인 것이지, 대비만 하면 막는 게 어렵지 않았다.
“스페인도 지금쯤이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느꼈겠죠! 하지만 지금 벨기에의 전술은 스포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을 거예요. 빌모츠 감독인지 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참 잘 썼네요.”
프리킥을 내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거칠게 달려들면서도 주심이 경고를 꺼내 들지 않을 그 선은 절묘하게 넘지 않았다.
스페인 선수들은 계속되는 벨기에의 거친 압박에 짜증도 내보고 주심에게 항의도 해보았지만, 오늘의 주심은 관대할 뿐,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이 정한 선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고, 그 선은 성배와 시몬스의 활약 속에 모두 파악된 상태였다.
“실바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라모스와 피케가 올라오긴 했지만, 라모스, 피케, 네그레도 세 선수로 벨기에의 거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에서 공중볼 경합에 참여할 만한 선수는 위의 세 선수가 전부였다.
하지만 벨기에에는 제공권이 뛰어난 선수만 따져도 콤파니, 반 바이텐, 알데르베이럴트, 베르마엘렌, 펠라이니가 있었고, 185cm가 넘는 장신 선수로는 루카쿠와 시몬스가 더 있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실바의 프리킥! 콤파니가 가볍게 바깥으로 걷어냅니다. 차비가 잡아주고, 뒤로 넘깁니다.”
예상대로 제공권 경쟁에서 승리한 쪽은 벨기에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전담 키커는 성배였지만, 성배가 그라운드 위에 없을 때 왼발 프리킥을 맡아주는 선수는 실바였다.
실바의 프리킥 궤도는 스페인 선수들보다 콤파니가 더 잘 알았다.
지난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수도 없이 받아보았던 프리킥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자신이 공격하는 쪽이 아니라 수비하는 쪽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벨기에의 미드필더들이 빠르게 밀고 올라옵니다! 알론소, 급하게 전방으로 투입하지만, 시몬스의 중간 커트! 오른쪽으로 길게 넘겨줍니다! 주!”
애초에 벨기에 선수들은 볼이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튕겨 나갈 것이라 확신했다.
덕분에 콤파니의 헤딩 클리어 직후 바로 밀고 올라갈 수 있었다.
한발 빠른 벨기에 미드필더진의 압박은 통했고, 탈압박 능력이 떨어지는 알론소에게서 실수를 이끌어냈다.
“주, 빠르게 올라갑니다! 빠릅니다!”
그리고 벨기에는 역습 찬스를 맞이했다.
< 낭만필드 - 3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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