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39 >
“4강입니다! 4강!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롯한 벨기에의 축구 팬들은 주를 비롯한 우리 선수들에게 정말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경기 종료 후, 방송국 중계진은 성배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승장 빌모츠 감독과 골을 넣은 메르텐스에 이어 마지막 인터뷰 대상으로 성배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하, 뭘 감사까지 하십니까?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입니다. 팬들을 위해 저희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어 기쁩니다.”
암흑기에 빠져 유럽 예선에서도 4위, 5위에 머물던 게 엊그제만 같은데, 이제 벨기에는 유럽 전역의 수많은 국가 중에 4위를 확정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성공의 중심에 성배가 있었다.
“호날두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압도한 것은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처음부터 그를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나요?”
결승 골을 넣은 선수는 메르텐스였고, 포르투갈의 공격진을 봉쇄한 것은 성배를 포함한 벨기에 수비진과 미드필드진의 합작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결정적으로 벨기에에 승기를 끌고 온 선수가 성배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음. 크리스를 상대하면서 확신하는 선수가 없을 거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요즘 컨디션이 좀 많이 좋았거든요. 하하.”
경기 전, 성배는 빌모츠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나 동료 선수들 앞에서 호날두를 무조건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사실 무슨 확신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강팀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고, 승리 DNA가 있는 것도 아닌 젊은 팀에서 주장인 자신이라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포르투갈이 아닌 본인들에게 패배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호언장담했던 대로 호날두를 훌륭히 막아냈고, 다시 큰소리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글쎄요. 제가 포르투갈의 에이스를 봉쇄해서? 라고 말하면 재수 없다고들 하실까요?”
가벼운 농담으로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한 성배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농담이고, 역시 동료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이겠죠. 포르투갈이 호날두라는 거목을 보유한 것에 비해 약점도 많은 팀이지만, 그래도 강력한 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공격, 수비, 미드필드 할 것 없이 모든 선수가 잘해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한 명 빼먹었네요. 시몽 삐지지 마. 너도 잘했어.”
주장답게 승리의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성배가 호날두를 봉쇄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해주지 못했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성배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포르투갈 선수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 4강에 진출했는데, 더 높은 것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만약 오늘 경기에서 패배했다면 8강 진출도 훌륭한 성과라며 기뻐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4강은 8강과 또 달랐다.
한 경기만 더 이기면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결승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4강이었다.
물론, 기쁨은 8강 진출보다 4강 진출이 훨씬 크겠지만, 여기서 떨어지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 있었다.
“오늘 경기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우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합니다. 오랫동안 강호로 군림해왔던 포르투갈을 잡으면서 선수단의 사기 역시 하늘을 찌를 듯 올라왔습니다. 기대해주셔도 좋을 겁니다.”
벨기에에 부족했던 마지막 한 가지는 세계적인 강호들과 만났을 때, 그들에게 주눅 들지 않을 자신감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4강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까지 꺾으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젊은 팀답게 한 번 타오른 분위기는 무뎌지지 않고 거대한 화염이 되어 넘실거렸다.
“정말 믿음직합니다. 하지만 너무 부담은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둘은 물론이고 벨기에의 축구 팬들은 지금까지 대표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이제부터는 경기를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남은 경기에서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포르투갈을 꺾고 4강에 진출한 벨기에는 이제 정말로 유럽 정상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성배가 항상 말해왔지만, 모두 젊은 선수의 치기라고만 생각했던 상황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
[벨기에, 포르투갈 꺾고 32년 만에 유로컵 4강 진출!]
[벌써 4승째. 지난 유로컵 승리를 모두 더한 것과 동률.]
[꺾일 줄 모르는 벨기에의 기세. 이대로 결승까지?]
벨기에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유로 2012가 개막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벨기에 국민들의 생활에서 축구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유로 1980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때는 여덟 팀이 본선에 참가해 네 팀씩 두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를 치렀고, 조 1위 팀이 결승에, 2위 팀이 3, 4위전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과 B조에 속했던 벨기에는 1승 2무의 어정쩡한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했고, 서독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전체 성적은 고작 1승 2무 1패.
4위를 차지한 이탈리아의 1승 3무보다도 좋지 않은 성적이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 유로 1972에서 3위를 차지한 적도 있지만, 그때는 네 팀이 본선에 진출하던 시기였다.
실질적으로 이번 유로 2012 4강 진출이 벨기에의 최고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유로컵 승리 횟수였다.
1972년, 1980년, 1984년, 2000년에 열린 유로컵에 출전하며 이번 대회까지 5회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벨기에는 지난 네 번의 대회에서 모두 1승씩을 기록했고,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승수만으로도 이미 지난 모든 대회에서 거둔 승수를 더한 것과 같아진 상황이었다.
엔조 시포, 장-마리 파프, 미셸 프뢰돔, 얀 쾰레만스 등을 앞세워 전성기를 열었던 ‘붉은 악마’ 시절의 벨기에보다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대표팀을 바라보면서 벨기에 국민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한 기대감을 키웠다.
[‘무적함대’ 스페인, 프랑스에 2-0으로 승리하며 4강행.]
[‘세계 최강’ 스페인 vs ‘붉은 돌풍’ 벨기에, 대결 성사.]
[세계 최강의 여유와 젊은 악마의 패기. 어디가 강할까.]
하지만 벨기에의 4강 상대는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사실 유로컵 4강까지 올라온 이상, 유럽 최고의 팀들만 남은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절대로 쉬운 상대는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4강에서 맞붙게 되었고, 이제 이 대결에서 승리한 팀들은 유럽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룰 마지막 대결에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 세계 최강에도 약점은 있다.]
[AGAIN 2009.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여전히 강한 무적함대. 하지만 분명히 나타나는 하락세.]
벨기에의 준결승 상대인 스페인은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전성기에 접어들었던 스페인은 4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여기저기 불안요소가 산재해 있었다.
우선 스페인의 상징과도 같은 티키타카는 바르셀로나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어느 정도 파훼법이 나온 상황이었다.
또, 카를레스 푸욜의 은퇴와 카를로스 마르체나, 후안 카프데빌라의 노쇠화, 이로 인해 중앙으로 이동한 세르히오 라모스와 필연적으로 따라온 라이트백의 공격력 감소 등 수비진이 약해졌다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사상 A매치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한 다비드 비야의 부상과 잉여가 되어버린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진으로 필요할 때 골을 넣어줄 골게터가 사라진 것이었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생각보다 부진했던 스페인을 살려내며 순도 높은 결정적인 골로 우승을 이끈 비야의 부상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화려한 전성기를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 세계 최강 스페인과 엄청난 잠재력을 보유한 젊은 선수들을 앞세워 순식간에 치고 올라와 유럽 축구의 세대교체를 노리는 벨기에의 4강 경기는 미리 보는 타이틀 매치라는 느낌이었다.
***
“자, 이번에는 그럼 포르투갈전에서 아껴놓았던 도박 수를 한 번 써볼까?”
비록 스페인의 포스가 전성기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지금 벨기에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할지라도 평범하게 붙어서는 아무래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전에서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전술도 평범하지는 않으니까요.”
성배도 이번만큼은 찬성이었다.
스페인을 잡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포르투갈전에서 아끼신 겁니까? 잘됐네요. 포르투갈한테 그런 수를 던졌으면 좀 억울할 뻔했습니다. 하하. 안 그래도 이길 수 있었는데 그런 수로 이겼으면 우리가 포르투갈보다 위라고 인정해주지 않았겠죠?”
포르투갈에게 거둔 승리는 성배의 예상대로 벨기에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선물해주었다.
단 한 번만 통할 수 있는 도박 수가 완전히 배제된, 포르투갈과 벨기에의 정면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의 강팀들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박힌 것이었다.
이는 비단 이번 대회뿐 아니라 앞으로 벨기에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하지만 4강전에서는 그런 욕심을 잠깐 접자고. 어차피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허를 찌르는 뭔가가 필요해. 난 이번 4강전에서 그 뭔가를 시도할 생각이다.”
4강까지 올라왔고, 우승까지 노려보기 위해서는 전력은 기본이고 운까지 따라주어야 했다.
지난 유로 2004에서의 그리스처럼 천운이 따라주어야 우승이라는 영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주. 이번에도 도박 수는 너야. 스페인전에서 주는 드리스를 대신해 오른쪽 윙어로 나가게 될 거야. 그리고... 알바를 잡아.”
빌모츠 감독의 도박 수는 이번에도 역시 성배의 전진 배치였다.
“스페인의 측면 공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4-2-3-1이라고 우기지만, 실질적으로 따져보자면 4-3-2-1, 크리스마스 트리형 전술에 가깝지.”
경기 시작 전에 발표하는 포메이션은 4-2-3-1이지만, 실질적으로 스페인이 운영하는 전술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수비형 미드필더, 차비와 사비 알론소가 중앙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다비드 실바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4-3-2-1에 가까웠다.
그 덕에 측면 공격에서는 풀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 빈약한 측면 공격이 스페인의 약점이었다.
“어차피 라이트백 아르벨로아의 공격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토마스가 충분히 막아줄 수 있으니까 에당은 공격에 집중해. 결국, 스페인의 측면 공격은 알바만 막으면 끝이야. 주, 할 수 있지?”
“뭐, 수비라면 어느 위치에서든 자신 있습니다. 대신 공격에서는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소속팀 발렌시아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도약한 조르디 알바는 윙어로 시작해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아직 성장이 더 필요한 선수였고, 성배보다 한 수 아래였다.
< 낭만필드 - 33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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