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36화 (224/356)

< 낭만필드 - 336 >

“주, 의논할 게 있는데 시간 좀 있어?”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그 다음 날, 빌모츠 감독은 성배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포르투갈전을 대비해서 코치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는데, 결론이 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네 이야기도 좀 들어보려고.”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벨기에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사실, 포르투갈이 강팀이라 불리고는 있지만, 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따져보면 포르투갈은 다른 우승권의 강팀들과 비교해 손색이 있었고, 유럽의 A급 강호를 판별하는 판독기로 활용되는 팀이었다.

포르투갈을 넘어선다면, 그것도 이견의 여지 없이 넘어선다면, 벨기에 역시 유럽 A급 강팀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뭡니까? 그 내용이.”

“포르투갈은 아무래도 호날두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팀이잖아. 그래서 오른쪽 측면을 수비적으로 운용하는 게 어떨까, 하는 거지.”

호날두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는 말은, 호날두가 막혔을 경우 포르투갈의 경기력이 현저히 약해진다는 말과 같았다.

나니가 있긴 하지만, 나니 한 명으로는 포르투갈 정도의 강팀을 이끌어나갈 수 없었다.

“오른쪽을 수비적으로 운용한다, 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본론은 뭡니까?”

“일단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지금 에당이 부진하잖아? 그러니까 에당을 빼고, 드리스를 왼쪽으로 돌린 다음에 무사를 오른쪽 윙어로 기용하는 방법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주, 네가 오른쪽 윙어로 나가서 토비와 함께 호날두를 막아주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야.”

A급 판독기, 포르투갈이지만, 아직 벨기에는 그런 포르투갈보다 아래에 있었다.

빌모츠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그런 포르투갈을 잡아내기 위해 깜짝 전략을 준비하는 듯했다.

“글쎄요. 그렇게 되면 호날두는 확실히 막아내겠지만, 그걸로 될까요?”

둘 중 어느 방법이든 호날두는 확실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회의적이었다.

“호날두를 막는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분위기가 좀 좋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공격력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한쪽 측면 공격을 사실상 포기한 채로 포르투갈의 수비를 뚫을 수 있을까요? 포르투갈의 코엔트랑은 수비가 약하고, 페레이라는 늙었지만, 그래도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인데 말이죠.”

벨기에의 공격력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완벽하진 않았다.

아자르와 메르텐스라면 코엔트랑, 페레이라를 상대로 밀리지 않겠지만, 이미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한 시즌을 치른 뎀벨레는 아무리 공격수 출신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이나 스페인이라면 몰라도, 포르투갈 정도는 정면으로 붙어서 해볼 만합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중원이면 중원. 우리가 어디서 부족합니까?”

단순 스쿼드만 따져도 벨기에는 포르투갈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공격력이 강한 게 아니었다.

호날두가 강한 것이었다.

나니와 포스티가가 주로 나서는 오른쪽 측면과 중앙 공격력은 벨기에의 수비를 뚫어내기 역부족이었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주앙 무티뉴, 하울 메이렐레스, 미구엘 벨로수가 버티는 중원은 펠라이니, 데푸르, 시몬스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고, 파비우 코엔트랑, 브루노 알베스, 페페, 파울로 페레이라의 수비진은 아자르, 메르텐스, 루카쿠가 해볼 만한 상대였다.

그리고 이는 조별리그 경기를 통해 증명되었다.

실제로 유럽 축구 도박사들 역시 포르투갈을 탑독이라 평가하긴 했지만, 그 차이를 굉장히 미세하게 잡았다.

실질적으로 탑독과 언더독의 의미가 없는 백중세라고 봐도 무방했다.

“호날두가 그렇게 걱정되십니까? 왜요? 챔피언스리그 8강전 안 보셨습니까?”

성배는 빌모츠에게 호날두를 혼자서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며 챔피언스리그 8강전의 예를 들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한 성배는 두 시즌 연속으로 호날두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유럽 축구의 에이스들을 자주 상대하면서 에이스의 진정한 무서움을 느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도박 수를 강제한다는 겁니다.”

지금이야 성배도 세계 최강의 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안더레흐트와 아약스, 토트넘을 거치며 상대 에이스에게 무너진 경험이 많았고, 그 경험들은 고스란히 남아 성배의 자산이 되었다.

“보통 그 도박 수는 에이스를 수비한다는 목적은 달성하지만, 경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하죠. 무사나 저를 윙어로 쓰겠다는 그 전술은 도박 수입니다. 스페인이나 독일을 만날 때까지는 아껴두세요.”

포르투갈 정도의 팀을 상대로 도박 수를 꺼내 든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포르투갈을 넘어 4강, 결승을 바라보는 성배의 입장에서 너무 일찍 도박 수를 던진다는 게 못마땅했다.

“흐음.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그렇네. 좋아, 코치들이랑 한 번 상의해보지. 호날두를 혼자서 막을 수 있다는 건 확실한 거지?”

“당연합니다. 제가 언제 자존심 세우는 거 보셨습니까? 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성배가 무언가를 확신에 차서 말하면,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성배의 자신감에는 마력이 있었다.

빌모츠 감독 역시 성배와의 대화가 끝나자, 차오르는 자신감을 느꼈고, 코치들을 설득하러 자리를 떠났다.

“호날두는 이제 쉽잖아? 그렇지?”

빌모츠 감독은 성배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호날두라. 이제는 저한테 안 되죠. 챔피언스리그 8강 안 봤나? 봤으면 그런 이야기 못 할 텐데.”

성배 역시 빌모츠를 마주 보며 웃었다.

빌모츠 감독은 성배와의 대화 이후 코치들과 의논했고, 정석적인 전술, 벨기에의 베스트 포메이션을 내세워 상대하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만 막으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호날두는 주한테 안 되고. 이미 경기 끝났습니다. 하하.”

빌모츠와 성배의 대화, 이어진 베르마엘렌의 한 마디에 벨기에 라커룸의 딱딱했던 분위기가 풀리며 여유가 감돌았다.

포르투갈은 확실히 호날두만 무서운 팀이었다.

그런 호날두를 철저히 막아줄 성배가 있는데, 벨기에가 긴장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네 역할도 중요해, 인마. 나니랑은 많이 붙어봤을 거고,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는 잘 알지?”

“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주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EPL 탑급 수비수입니다. 나니 정도는 가볍게... 는 무리지만, 그래도 막을 수 있죠.”

지난 2010/11시즌을 통해 EPL 어시스트왕도 차지하며 정상급 윙어로 인정받았던 나니지만, 이번 시즌에는 이상하게 푸대접을 받았다.

물론, 경기에는 꾸준히 출전했지만, 뭔가 대접이 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 비하면 기량에서도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엘더 포스티가 따위로는 다니엘이랑 뱅상을 뚫을 수 없을 거고, 다음은 중원인데. 주! 메이렐레스가 어떤 선수라고?”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전부 소화할 수 있는 친구지만, 공격형 미드필더가 제일 잘 어울리죠. 다만, 포르투갈에서는 팀 전술상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데, 활동량은 좋지만, 아무래도 장악력이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니라서 패스만 조심하면 될 겁니다.”

하울 메이렐레스는 분명 뛰어난 선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피지컬과 체력이 약한 이 선수가 이번 시즌 노예로 혹사당했다는 것이었다.

조별리그를 통해 보여준 메이렐레스의 모습은 분명 좋을 때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고, 이는 벨기에의 중원 장악이 보다 쉬워질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티미, 마루앙, 스티븐. 메이렐레스가 이런 상황이라는데, 무티뉴랑 벨로수한테 밀리진 않겠지?”

주앙 무티뉴와 미구엘 벨로수는 1986년생의 젊은 선수로, 빅클럽의 관심을 받고 있었지만, 이는 벨기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대로. 형ㄴ, 아니, 감독님. 우릴 어떻게 보는 겁니까? 메이렐레스가 정상 컨디션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기죠.”

비록 기량만 따지면 악셀 비첼이나 무사 뎀벨레에게 앞선다고 할 수 없지만, 시몬스는 존재만으로 벨기에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런 시몬스와 유럽이 주목하는, 무티뉴, 벨로수보다 한 살이 더 어린 미드필더 유망주 펠레아니, 데푸르가 함께라면 포르투갈의 중원을 상대로 충분히 해볼 만했다.

“공격수들은... 뭐 알아서 해라. 너희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보다 너희 맘대로 움직일 때 더 잘하니까. 다만, 에당은 조금 더 자신 있게, 창조적으로 움직이고 드리스는 끊임없이 수비진을 흔들어주고. 로멜루는 항상 하던 것처럼 중앙, 좌, 우,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주고.”

아자르의 부진이 길어지는 게 좀 불안했지만, 그래도 아자르는 아자르였다.

벨기에가 낳은 천재이자 유럽이 주목하는 최고의 유망주.

아자르가 언젠가 그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며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 이제 시작할 시간이다. 가서 3년 전의 좌절을 거하게 복수해주자고. 이번에는 우리가 포르투갈에게 좌절을 안겨줄 차례니까. 받았으면 돌려줘야지, 그게 사람 사는 인생 아니겠냐.”

2010 남아공 월드컵 진출권을 놓고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을 때, 포르투갈은 벨기에를 꺾고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그 덕분에 메이저 대회 복귀가 2년 늦어진 벨기에 선수단은 포르투갈에게 언젠가 복수해주겠다며 칼날을 갈아왔다.

이제 그 기회가 왔고, 벨기에 선수단의 분위기와 기세는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

“이야, 또 너야? 진짜 지겹다, 지겨워.”

포르투갈의 주장은 호날두였고, 벨기에의 주장은 성배였다.

경기 직전, 선공과 후공을 결정하고 각자 자신의 대표팀을 상징하는 페넌트를 교환하기 위해 하프라인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 안 지겨운 줄 아나. 나도 지겨워, 크리스.”

서로가 지긋지긋한 성배와 호날두는 소속팀을 떠나 국가대표팀에 합류해서도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결은 클럽팀에서의 대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 두 선수의 대결이 오늘 경기의 승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플레이오프였던가? 그때 우리가 이겼었지? 내가 부상으로 빠졌었는데도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있으니 역시 우리가 이기겠네.”

상큼한 미소와 함께 자기 발로 직접 비행기에 올라탄 호날두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희 팀 선수들은 지난 3년간 제자리였지? 내 동료들은 그동안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고. 한 번 기대해도 좋아. 아, 그리고 우리가 너희 이기면 유럽 최강팀 반열에 올라가는 거 아닌가? 그것도 마음에 드네.”

성배 역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벨기에 선수들의 잠재력은 이미 포르투갈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다.

< 낭만필드 - 33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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