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35화 (223/356)

< 낭만필드 - 335 >

“벨기에 대표팀, 지난 경기에서 체코에게 2-1 역전승을 거두며 2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승리한다면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루카쿠의 동점 골에 이어 후반 20분에 데푸르가 중거리 슈팅으로 역전 골을 기록한 벨기에는 체코를 상대로 2-1의 역전승을 거두며 2승째를 수확했다.

경기 극초반에 예상치 못한 실점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만들어가며 역전승을 거둔 것이었다.

“자,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면 우리 벨기에가 2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지키고 있고, 1승 1무의 러시아가 2위, 1무 1패의 폴란드가 3위, 2패의 체코가 최하위에 자리 잡았죠. 체코가 최하위에 있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만, 사실 A조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러려니 할 만큼 팀 간 격차가 작았죠.”

러시아에게 충격의 1-4 패배를 당했던 체코는 벨기에에게도 역전패를 당하며 2전 전패를 기록했다.

폴란드와 러시아는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고, 개최국 폴란드는 두 경기에서 승점 1점에 그치며 홈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중요한 건 체코가 최하위라는 게 아닙니다. 벨기에의 8강 진출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두 경기에서 승점 6점을 따낸 벨기에는 마지막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 조 2위를 확보한 상황이에요. 10년 만에 출전한 유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유로 1980 이후 32년 만에 8강 무대를 밟게 되었어요.”

2승으로 1위를 달리는 벨기에와 1승 1무로 2위에 올라있는 러시아가 마지막 3차전에서 맞붙었다.

반대편에서 경기를 가지는 폴란드와 체코는 각각 승점 1점과 0점을 획득한 상황이었기에, 누가 이기든 최대 승점 4점에 불과했고, 이미 6점을 따낸 벨기에는 가볍게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자,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위와 2위는 그 차이가 꽤 큽니다.”

“예. 확실히 그래요. A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조라고 평가받아서 그런 것인지, 8강에서 만나게 될 B조는 죽음의 조가 만들어졌거든요? 사실, 죽음의 조에서 누굴 만나도 쉬운 상대는 없겠지만, 그래도 1위는 피하고 싶죠. 독일인데요.”

A조 1위는 B조 2위를, A조 2위는 B조 1위를 만나 8강전을 치르는 시스템이었기에 1위를 차지해야 그나마 수월하게 8강을 치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B조 1, 2위 팀이 모두 4강에 진출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A조가 가장 전력이 약한 조라고 꼽히는 반면, B조는 유로 2012 죽음의 조라 꼽혔기 때문이었다.

메이저 3연패를 노리는 스페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독일이 바로 B조에 속해 있었다.

“아, 꼭 이겨야 할 텐데. 다른 친구들이 잘 해주겠지?”

1위를 노려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8강 진출을 확정한 벨기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몇몇 선수에게 휴식을 주었다.

일찌감치 8강을 확정한 메리트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마지막 경기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로는 미뇰레, 반 바이텐, 아자르, 시몬스, 루카쿠와 성배가 있었다.

“왜 그렇게 초조해 하는 거야? 2위로 올라가면 좀 어때.”

“2위로 올라가는 게 어떻냐니, 그걸 몰라서 물어? 2위로 올라가면 독일이랑 붙어야 하잖아. 포르투갈이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독일보다는 훨씬 낫지.”

34세의 반 바이텐에게 이번 유로 2012는 사실상 마지막 유로컵이었다.

몸 관리를 잘하면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어떻게 뛸 수 있겠지만, 워낙 경쟁자가 많으니 그것도 쉽지 않아보였다.

사실상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될 확률이 높았고,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차피 포르투갈이랑 만나도 4강에서 스페인이랑 만나야 하잖아. 차라리 힘들게 독일이랑 붙은 다음에 4강을 쉽게 치르는 게 낫지. 4강에서 힘 다 빼면 결승에서 힘들어지잖아.”

“뭐? 4강? 결승? 너 이번에 우승한다는 거 그냥 해본 말 아니었어?”

성배의 말에 반 바이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8강 진출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4강 진출은 희망사항에 가까운 반 바이텐에게 성배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갔다.

“그냥 해본 말이었지만, 가지 못할 것도 없지. 지금 하는 거 봐봐. 우리도 충분히 강하다고. 어차피 토너먼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잖아?”

주전 선수 중 절반이 넘는 여섯 명이 빠졌음에도 벨기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신 출전한 쿠르투아, 베르통헨, 알데르베이럴트, 뎀벨레, 미랄라스, 벤테케는 자신들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듯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건 그렇지만... 상대적이라는 게 문제지. 독일이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나 어지간한 팀들은 다 우리보다 강하다고.”

“독일, 스페인은 몰라도 포르투갈은 인정할 수 없겠는데?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자세히 뜯어봐. 우리가 더 강해. 포르투갈도 이제 끝물이라고.”

성배는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어느 정도 운만 따라준다면 벨기에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강호들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2전 2패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세대 교체 시기가 너무 늦어버린 이탈리아나 콩가루 집안이 되어버린 프랑스, 호날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스페인하고 독일을 제외하면 잉글랜드 정도가 강팀일까? 나머지는 전부 다 우리랑 큰 차이 없어.”

네임밸류와 예선 성적에 비해 항상 본 대회 성적이 형편없는 잉글랜드였기에, 조별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성배는 독일이나 스페인, 둘 중 한 팀만 잡을 수 있다면 충분히 결승까지 진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어차피 결승 전에 두 팀 중 한 팀을 만나야 한다면 8강에서 독일과 만나는 쪽이 나았다.

“이게 그릇이 다른 건지, 아니면 그냥 네 간이 비정상적으로 큰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감은 좀 생기네.”

자신감 넘치는 성배의 말에 반 바이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냥 웃어 보였다.

성배와 인연이 닿은 지도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볼 때마다 자신을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감이 좀 생겨? 다니엘, 다니엘의 역할이 중요해. 어쨌든 우리 팀의 정신적 지주잖아?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나랑 같이 자신 있게 이야기해 달라고. 지금 우리 팀은 자신감만 있으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으니까.”

개최국 폴란드와의 쉽지 않은 경기에서 2-0의 완승을 거두고, 체코와의 2차전에서는 전반 3분 만에 선취 골을 허용하고도 2-1의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벨기에 젊은 선수단의 사기가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 팀의 무서움은 분위기를 탔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는 것이었고, 성배나 반 바이텐 같은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들이 방향만 잘 설정해주고 산소만 공급해준다면 엄청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지.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너한테 힘을 실어주겠다고.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니까. 너만 믿고 한 번 따라가 볼 테니까 좋은 곳으로만 데려다줘.”

반 바이텐과 성배가 이번 대회 전망과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 벨기에의 선취 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루카쿠를 대신해 출전한 크리스티안 벤테케였다.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포텐셜이 폭발하기 시작한 벤테케는 측면에서 메르텐스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연결,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렸다.

“참, 뛰어난 친구들이 많이 나왔어. 나도 한 5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80년대 후반부터 쏟아져 나온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어느새 성장해 벨기에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었다.

78년생으로 이미 은퇴가 눈앞에 다가온 반 바이텐은 그 전성기를 함께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착잡해하는 모습이었다.

“다니엘,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다니엘이 없었으면 우리도 없었으니까. 지난 암흑기를 누구 덕분에 버텼는데.”

하지만 반 바이텐과 시몬스로 대표되는 벨기에 암흑기의 에이스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수행해주었다.

이 두 선수가 중심을 딱 잡아주지 못했다면, 아무리 좋은 선수가 나와도 암흑기를 벗어나기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몰라. 아직 나도 현역이니까. 너희랑 함께할 시간이 길지는 않겠지만, 크게 사고 한 번 칠 시간은 충분하다고. 까짓것, 우승해버리지 뭐. 우리라고 못할 거 있어?”

“그렇지, 바로 그거야. 아주 좋은 모습이야, 다니엘.”

벨기에 축구 역사상 메이저 대회 우승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올림픽을 메이저 대회로 인정해준다면 올림픽 금메달 한 개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1920년, 아주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었다.

만약 벨기에가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머쥘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벨기에 전체의 국경일이 될 것이었다.

***

주전 선수 여섯 명이 빠졌어도 벨기에는 약하지 않았다.

미뇰레, 반 바이텐과 성배를 대신해 투입된 쿠르투아, 베르통헨, 알데르베이럴트는 중견급 국가의 선수였다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뎀벨레나 미랄라스, 벤테케는 아직 잠재력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주전이 빠진 벨기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1-0의 승리를 거두었고, 조별리그를 3전 전승으로 마무리,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A조 8강 진출팀 : 벨기에 (3승), 러시아 (1승 1무 1패)

B조 8강 진출팀 : 독일 (3승), 포르투갈 (2승 1패)

C조 8강 진출팀 : 스페인 (2승 1무), 이탈리아 (1승 2무)

D조 8강 진출팀 : 잉글랜드 (2승 1무), 프랑스 (1승 1무 1패)

조별리그를 3승으로 통과한 팀은 벨기에와 B조의 독일이 유이했다.

스페인마저도 이탈리아와 무승부에 그치면서 2승 1무에 그쳤고, 잉글랜드 역시 프랑스와 무승부를 거두면서 2승 1무를 기록했다.

비록 그 상대가 폴란드, 체코, 러시아로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지만, 유이한 조별리그 전승 팀이라는 사실은 전문가와 팬들이 벨기에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하기에 충분했다.

UEFA Euro 2012 Knock-Out Phase

Quater-finals

Match A : 벨기에 vs 포르투갈

Match B : 스페인 vs 프랑스

Match C : 독일 vs 러시아

Match D : 잉글랜드 vs 이탈리아

이로써 유로 2012 8강 대진표가 완성되었고, 동시에 토너먼트 일정 역시 시작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3전 전패 탈락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올라올 만한 팀이 올라왔다는 평가였다.

네덜란드를 밀어내고 8강에 진출한 팀이 포르투갈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두 팀 중 하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살얼음판에서 펼쳐지는 진정한 진검승부였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잔인한 토너먼트 일정에서 과연 어느 팀이 다른 쟁쟁한 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지, 전 유럽,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이 폴란드/우크라이나에 집중되었다.

< 낭만필드 - 33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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