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34화 (222/356)

< 낭만필드 - 334 >

“경기 끝났습니다. 벨기에 대표팀,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개최국, 폴란드 대표팀을 상대로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성배의 선취 골이 터진 이후부터는 완벽한 벨기에의 페이스였다.

한 골을 내준 폴란드는 만회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벨기에의 수비진은 폴란드의 파상공세를 굳건히 버텨냈다.

“우리 벨기에가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경기였죠? 주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어려운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버텨주었어요. 그리고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역시 벨기에의 주장이자 에이스, 주성배 선수였습니다.”

라인을 끌어올린 폴란드는 더 이상 벨기에의 공격을 쉽게 몰아낼 수 없었다.

비록 아자르가 마지막까지 피스첵을 뚫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메르텐스와 루카쿠, 그리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펠라이니와 데푸르를 앞세운 벨기에의 공격은 폴란드를 충분히 괴롭혀주었다.

결국, 메르텐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한 루카쿠가 추가 골을 터뜨리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고! 어때? 해보니까 할 만하지?”

경기가 끝난 뒤, 성배는 동료 선수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분명 아쉬운 부분도 많았던 경기였지만,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승리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었다.

2-0의 완벽한 승리는 충분히 자축할 만한 결과였다.

“무슨 경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자기도 처음이면서. 꼭 이럴 때는 무슨 10년은 선배인 것처럼 말한다니까.”

뒤에서 성배의 목을 거칠게 팔로 감으며 면박을 주는 선수는 베르마엘렌이었다.

공격에서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자르의 부진에 한쪽 팔을 거들었지만, 수비에서 폴란드의 2선 에이스 블라시치코프스키를 완벽히 막아내며 딱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맞아, 맞아. 주는 가끔 보면 진짜 엄청 차이 나는 선배인 것 같다니까?”

“동감. 주가 우리보다 고작 두세 살 많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믿겠어? 완전 멘토 수준이지.”

성배보다 두 살이 많은 데다가 아약스에서 1년 반 동안 함께 활약하며 친분이 두터운 베르마엘렌이 한 마디를 꺼내자, 다른 선수들도 성배를 놀리기 시작했다.

놀리는 식으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이게 성배의 평소 이미지였다.

팀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말이 심하네. 조금 노련한 편이라는 건 알지만, 어디까지나 나이에 비해서라고.”

성배도 피식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실제로 1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건 맞았다.

그리고 그 10년 이상의 경험이 지금 벨기에 대표팀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다른 선수들을 이끄는 힘이었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지만, 그 말은 동의 못 해. 처음 봤을 때부터 넌 또래 같지 않았다고.”

성배의 절친이자 영혼의 콤비로 통하는 콤파니마저 참전하자, 성배는 전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동료들의 놀림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런 놀림들마저 벨기에가 승리했기에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 한 발자국은 제대로 떼었어. 마지막까지 제대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대회 첫 경기의 중요성은 석 달 열흘 동안 입이 마르도록 떠들어도 전부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중요한 첫 경기를, 그것도 개최국과의 경기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벨기에는 분명 제대로 된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

“로시츠키, 오른쪽으로! 이라첵의 슈팅! 아... 이게 들어갑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점을 허용하는 벨기에입니다.”

하지만 역시 메이저 대회는 쉽지 않았다.

폴란드전을 끝내고 4일 뒤, 체코와의 2차전을 갖게 된 벨기에는 경기 초반부터 위기를 맞이했다.

“아, 이제 겨우 전반전이 5분밖에 지나지 않은 초반인데요. 아쉽네요, 아쉬워요.”

세대교체 실패로 하락세에 접어든 체코지만, 그래도 분명 아직은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그라운드 위의 모차르트’, 그 유명한 파벨 네드베드의 은퇴 이후 체코 역사상 최연소 주장을 맡아 지금까지 체코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토마스 로시츠키를 중심으로 한 체코는 끈끈한 축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로시츠키의 발끝에서 골이 만들어졌습니다. 로시츠키는 어떻게든 잡아줬어야 하는데, 그게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A조에 속한 폴란드, 벨기에, 체코, 러시아의 공통점은 수비에 비해 공격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스타 선수가 부족한 네 팀은 스타 선수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팀의 조직력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팀들은 보통 수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체코 수비가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조직력을 앞세운 수비는 공격수의 개인 기량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요. 벨기에의 공격수들의 개인 기량이 체코 수비수들보다는 뛰어난 편이거든요.”

하지만 벨기에와 나머지 세 팀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체코와 러시아는 전성기를 한 번 맞았다가 하락세에 접어든 상황이었고, 그사이 떠올랐던 공격수들의 기량이 쇠퇴하며 조직력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는 객관적인 전력의 부족을 조직력으로 만회하는 느낌이었다.

“체코 선수들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패기와 힘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 젊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런 실수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벨기에는 위의 세 팀과는 달랐다.

벨기에는 이제 전성기를 향해 가는 중이었고, 젊은 선수들이 대거 등장해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공격수 유망주들이 조금 늦게 등장해 늦게 성장했을 뿐, 나머지 세 팀과 달리 기량과 잠재력이 충분한 공격수를 보유한 팀이었다.

“정신 차려! 경기 초반이라고 방심한 거야? 토마스! 이라첵이 놓칠 선수야? 네가 열 번 붙어도 열 번 다 막을 수 있는 선수라고 하지 않았어?”

이번 실점은 100퍼센트 벨기에 선수들의 방심 때문에 내준 것이었다.

로시츠키가 분명 대단한 선수지만, 이렇게 경기 시작 3분 만에 킬패스를 허용할 정도로 벨기에의 중원이 약하지 않았고, 이라첵도 좋은 선수긴 하지만, 그에게 쉽게 뒷공간을 내주기엔 베르마엘렌의 기량이 너무 뛰어났다.

“그렇게 방심하지 말고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정신 차려! 한 번 더 실수하면 아주 엉덩이를 차줄 테니까. 한 골 정도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니까 자책하지 말고. 그럴 힘으로 한 발이라도 더 뛰어.”

확실히 개막전이 너무 쉽긴 했다.

나름 고전하긴 했다지만, 경기력에 비해 골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경기 내내 벨기에가 경기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폭격, 따지자면 쉬운 승리였다.

‘겨우 한 경기 이겼다고 마음이 풀리다니. 물론, 경기 초반에 잠깐이었겠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는 그 잠깐이 치명적인데.’

실점은 언제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성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벨기에는 이제 막 시작하는 팀이었는데, 건방지게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잃었다는 게 못마땅했다.

일단 이번에 실수한 선수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베르마엘렌을 질책하면서 다른 선수들에게도 경각심을 심어주려 했다.

“자, 자! 여기까지! 이제 겨우 한 골이야! 한 골 정도는 언제든 넣을 수 있잖아? 자, 일단 한 골 넣고 가자!”

채찍을 휘둘렀으면 다음은 당근을 챙겨줄 차례였다.

실제로 성배는 이번 실점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방심했던 것이 못마땅할 뿐, 벨기에의 전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패배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굉장히 이른 시간에 선취 골을 기록한 체코,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 추가 골을 터뜨리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5분도 지나기 전에 선취 골을 기록한 체코는 기세가 좋은 시점에 승기를 굳히기 위해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나섰다.

비록 좋은 평가는 못 받았다지만, 짧았던 전성기에 리버풀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밀란 바로스를 원톱으로 에이스 로시츠키와 좌우 날개 필라르, 이라첵을 앞세워 끊임없이 벨기에를 몰아붙였다.

“그래도 벨기에 수비진이 정신을 차렸죠? 비록 전열이 정비되기 전에 로시츠키의 패스 한 방을 얻어맞으면서 선취 골을 실점했지만, 한 골을 얻어맞으면서 순식간에 정신을 바짝 차렸어요.”

하지만 벨기에 수비수들에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일찌감치 얻어맞은 한 방에 정신이 번쩍 든 수비수들은 체코의 파상공세를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야 벨기에 수비진다운 완벽한 수비력이 나타났다.

“이제 곧 벨기에가 반격할 타이밍이 나와요. 체코가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많이 적극적이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포지션이 좀 애매한데, 이렇게 나오다가 추가 골이 나오지 않으면 벨기에에게 역습 기회가 생기죠.”

체코도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일찌감치 선취 골을 기록한 기세를 몰아서 추가 골을 노렸지만, 벨기에가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벨기에가 체코의 공격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추가 골이 나오지 않아도 효과를 볼 수 있을 텐데,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보람이 없을 정도로 벨기에의 수비가 너무 굳건했다.

“플라실, 왼쪽으로 연결하는데, 아! 주의 중간 차단! 빠르게 뛰쳐나와 끊어내면서 전진!”

결국, 선취 골을 넣고 리드를 잡은 체코가 오히려 조급해하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선취 골 이후 평소처럼 뒤부터 굳건히 다지는 경기 운영을 선택했으면 흔들릴 일은 없었겠지만, 체코는 기세를 살리는 운영을 선택했고, 그게 발목을 잡았다.

‘나이스 포지셔닝!’

플라실의 조급한 패스를 끊어낸 성배는 바로 역습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침 메르텐스가 완벽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믿고 역습을 맡길 수 있는 완벽한 포지셔닝이었다.

“앞으로 길게 찔러주고, 메르텐스! 림베르스키의 태클 피하면서 가볍게 돌아섭니다!”

체코의 레프트백, 림베르스키가 뒤에서 발을 뻗었지만, 메르텐스는 가볍게 피해내면서 몸을 돌렸다.

상대 골문을 등진 상황에서 일단 골문을 마주 볼 수 있게 몸을 돌릴 수만 있다면 공격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앙 침투! 반대편으로! 아자르에게 이어집니다!”

몸을 돌린 메르텐스가 체코 수비진 사이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상대 수비수들을 끌어들인 메르텐스는 반대편에서 노마크 상태로 대기하던 아자르에게 볼을 넘겨주며 기회를 이어나갔다.

“아자르, 박스 안의 루카쿠! 곧바로 슈팅!!”

아자르가 볼을 잡은 순간, 중앙에 위치했던 루카쿠가 측면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아자르에게 붙은 수비수들은 루카쿠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고, 엄한 패스 코스를 차단하려 하다가 루카쿠에게로 향하는 아자르의 패스를 방해하지 못했다.

“체흐! 아! 체흐의 손을 맞고, 반대편 골 포스트 맞고 들어갑니다! 로멜루 루카쿠! 두 경기 연속 골입니다! 체흐도 쉽게 실점하지 않고 손을 가져다 댔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아자르에게 볼을 건네받은 루카쿠는 바로 몸을 돌리면서 터닝 슈팅을 시도했다.

힘으로 유명한 루카쿠가 온몸의 힘을 실어 때린 슈팅은 체흐의 손을 뚫고 체코의 골망을 흔들었다.

“좋은 타이밍에 나온 동점 골! 벨기에, 넣어줘야 할 때 넣어주네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 쯤에서 동점을 만들면 좋겠다, 하면 동점을 만들어요!”

역시 아직은 수비진이 먼저 경기를 조립해야 공격진이 활약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뛰어난 수비진을 보유한 벨기에였기에 공격진이 제 역할만 다 해주면 충분히 승리를 챙기는 게 가능했다.

“자, 이렇게 되면 오히려 벨기에 쪽으로 흐름이 넘어옵니다. 전반 3분 만에 선취 골을 허용했지만, 추가적인 실점을 잘 막아냈고,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동점을 만듭니다.”

추가 골을 노리던 체코는 동점을 허용하게 되면서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차분하게 수비하다가 공격으로 전환, 늦지 않게 동점 골을 만들어낸 벨기에는 이번 득점을 계기로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334 > 끝

ⓒ 미에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