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30화 (218/356)

< 낭만필드 - 330 >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해요! 엄청난 성공입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성배는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잉글랜드 방송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배를 인터뷰하는 사람은 이번에도 첼시였다.

그리고 성배 못지않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거의 울먹이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하하, 많은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기분이 아주 죽여줍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성배라도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제한되었다.

죽여준다, 끝내준다, 미칠 것 같다.

이런 단어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 시즌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패로 트레블을 달성했죠. 역사상 이런 기록을 달성한 건 맨체스터 시티가 유일한데, 이러한 위업을 이룬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으로서 한 마디만 해주세요.”

원래부터 열렬한 시티즌인 데다가 성배의 연인이기도 한 첼시는 가까스로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덕분인지 성배는 어찌어찌 알아듣고 있었지만, TV로 지켜보는 팬들은 도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주장으로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역시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료들뿐 아니라 한 시즌 내내 훌륭하게 팀을 이끌어준 로베르토, 아, 그러니까 만치니 감독님, 코치진과 팀 닥터 요한을 비롯한 스태프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만수르 구단주까지. 모든 팀 관계자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팬들은 첼시의 말을 간단히 알아듣고 유창하게 대답하는 성배를 더욱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첼시가 열렬한 시티즌인 것은 이미 유명했기에 다른 의심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울먹이는 첼시와 그 앞에 듬직하게 서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배의 모습은 마치 스포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당연히 우리의 멋진 서포터, 더 시티즌 여러분께도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이 안 계셨다면 아무 우리도 이런 성적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팬들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팬에 대한 감사를 이야기하면서 성배는 첼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원래 첼시에 대한 마음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억누르고 있던 성배였지만,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한 지금, 그 앞에서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첼시를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이 녹아내린 것이었다.

“왜 자꾸 울어. 좋은 날인데.”

그리고 첼시를 살포시 품에 안았다.

굳이 공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말하지 않았을 뿐,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던 두 사람이었다.

서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앞에서 울고 있는 첼시를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

***

[맨체스터 시티, 클럽 최초 챔피언스리그 우승 달성!]

[빅 이어, 맨체스터 시티의 품에 안기다.]

[‘이변은 없었다.’, EPL 우승팀, 빅 이어까지 품에 안다.]

EPL 우승팀과 6위팀이 만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결국 우승팀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클럽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트레블을 신나게 즐겼고, 첼시 팬들은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에 좌절했다.

그리고 또 한 팀의 서포터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바로 토트넘의 서포터들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첼시를 잡아준 덕분에 벼르고 벼르던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한 토트넘의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 서포터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주면서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63경기 51승 12무.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트레블 완성!]

[2011/12시즌 승률 90%. 그리고 무패. 맨시티의 시즌.]

[세계 모든 구기 종목 역사상 최고 승률 달성한 맨시티.]

무패 트레블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록이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포함해 이번 시즌 맨시티가 치른 경기는 총 63경기.

여기서 51승 12무 무패를 기록한 맨시티는 무승부를 0.5승 0.5패로 계산할 경우 57승 6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올렸다.

승률로 계산하면 90.476%, 반올림하면 90%였다.

경기 수가 적은 미식축구가 통상적으로 승률 비교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기 종목 역사상 최고 승률을 기록했던 1995/96시즌의 NBA, 시카고 불스보다도 높은 승률이었다.

시카고 불스의 승률은 72승 10패, 88%였다.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는 건, 야구, 축구, 농구 등 모든 구기종목을 포함해 가장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맨시티의 캡틴 주성배, 미녀 칼럼니스트 첼시와 열애!]

[시티의 주장과 시티즌의 열애. 맨시티가 이어준 사랑.]

[주와 첼시의 로맨스, 목격담 속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결정된 이후 가졌던 인터뷰에서 첼시를 품에 안은 성배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완벽한 선수이자 리더였고, 유쾌한 독설가이긴 했지만,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성배의 로맨틱한 면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일면을 발견한 팬들, 특히 여성팬들은 새삼 다시 한 번 반했고,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굳이 성배가 공개하지 않아 숨겨주었을 뿐, 성배와 첼시의 데이트 장면을 자주 목격하고 사진까지 찍었던 시티즌들은 사실이 밝혀진 뒤에야 사진과 목격담을 공개했다.

공개하지 말아달라던 성배의 부탁만으로 지금까지 비밀이 지켜졌다는 것에서 성배를 향한 맨시티 팬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12시즌 EPL 최고의 별은 세르히오 아게로.]

[올해의 감독 만치니, 선수는 아게로. 맨시티의 시즌.]

[감독, 선수, 득점, 도움까지. 베스트 일레븐에 여섯 명.]

2011/1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냥 맨체스터 시티였다.

31골을 터뜨리며 30골의 로빈 반 페르시를 따돌리고 득점왕을 차지한 세르히오 아게로는 지난 시즌 성배에 이어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트로피를 맨시티로 가져왔다.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존 어시스트 신기록이었던 티에리 앙리의 20개를 한 개 차이로 경신한 다비드 실바 역시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

PFA 선정 올해의 감독상은 당연히 맨시티의 무패 우승을 이끈 만치니에게 돌아갔다.

만치니가 아니면 받을 사람이 없었다.

PFA 선정 2011/1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베스트 Ⅺ

GK

조 하트 (맨체스터 시티)

DF

주성배 (맨체스터 시티), 뱅상 콤파니 (맨체스터 시티),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뉴캐슬 유나이티드), 카일 워커 (토트넘 핫스퍼)

MF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야야 투레 (맨체스터 시티), 사미르 나스리 (아스날), 가레스 베일 (토트넘 핫스퍼)

FW

세르히오 아게로 (맨체스터 시티), 로빈 반 페르시 (아스날)

이번 시즌의 EPL이 맨체스터 시티로 정리된다는 것은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발표한 이번 시즌 베스트 Ⅺ만 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무려 열한 명 중 여섯 명으로, 절반이 넘는 포지션에 선정된 것이었다.

그나마 보아텡은 중위권으로 평가되던 뉴캐슬의 돌풍을 이끌며 5위까지 끌어올린 주장 콜로치니에게 활약상이 아닌 의미에서 밀렸고, 사발레타와 리차즈는 워커보다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출전 기회를 나눠 가졌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못했다.

알렉시스 산체스 역시 시즌 내내 윙어로 활약했음에도, 그를 공격수로 분류한 협회의 결정 때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것 다 제외하고 활약상으로만 따졌으면 맨시티 선수 아홉 명이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그럴 수 없었던 축구협회의 의중 때문에 손해를 본 결과가 여섯 명의 베스트 Ⅺ이었다.

이번 시즌은 그야말로 맨시티로 시작해 맨시티로 끝난 시즌이었다.

[2011/12시즌 종료. 하지만 축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폴란드/우크라이나로 간다. 유로컵 카운트 다운.]

[스페인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막을 팀은 어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2011/12시즌은 마무리되었지만, 올해만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작 2주 뒤, 유럽 축구의 축제이자 월드컵과 함께 세계 축구팬들의 축제인 유로 2012가 개막되기 때문이었다.

겨우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의 유니폼을 잠시 벗고 이제 국가대표팀을 응원할 시간이었다.

***

“엄마가 잘은 모르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더라. 한 번 잘해봐. 너도 아직 젊어서 결혼은 너무 이르지만, 그렇다고 너무 벽을 쌓지도 말고.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알지?”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끝내고 잉글랜드로 돌아와 우승 기념 퍼레이드, 우승 기념 인터뷰, 촬영 등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며칠이 후딱 지나갔고, 이제는 유로 2012 참가를 위해 벨기에 국가대표팀 소집에 응할 시간이었다.

“아이고, 알았어요, 어머니. 한 번 예쁘게 만나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사람인 건 저도 잘 아니까.”

직접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성배와 첼시의 애정행각을 지켜본 장석과 혜진은 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내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 커서 짝을 옆에 두고 있는 아들이 대견해 함께 있는 내내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어머니’,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이른 시일 내로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요.”

첼시는 유빈이를 사로잡았던 것처럼 부모님의 마음 역시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살갑게 대하는 태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성배를 좋아한다는 것이 보였던 게 결정적이었다.

아들의 짝이 아들을 그렇게 좋아해 주는데 흡족하지 않을 부모는 없었다.

“그래요. 우리 꼭 다시 봐요. 그때까지 성배 잘 좀 부탁해요. 알았죠? 첼시만 믿어요.”

혜진은 마지막으로 첼시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이제는 이별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눈물만 흐르지 않을 뿐 걱정스러운 마음은 여전했다.

“와, 엄마. 나도 있는데! 왜 첼시만 붙잡고 얘기해?”

“에휴. 저걸 또 두고 간다, 성배야. 미안해. 또 부탁할게.”

“걱정하지 마세요. 힘들지만, 제가 어떻게든 잘 데리고 있을게요.”

딸 역할과 함께 놀림감 역할까지 맡아주었던 유빈이는 첼시의 등장으로 딸 역할을 빼앗긴 채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볼을 부풀린 채 불만을 표시한 유빈이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나도 갈게. 늦겠다.”

장석과 혜진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 뒤, 그때까지 손을 흔들던 성배 역시 캐리어를 손에 들었다.

루카쿠와 콤파니는 국가대표팀 합류 전 잠깐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리 떠났고, 이젠 성배도 우크라이나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그래. 늦겠어. 컨디션 관리 잘해. 꼭 우승하고.”

“무슨. 첼시도 곧 올 거잖아.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에서 보자고.”

첼시 역시 리포터로 이번 유로 2012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비록 잉글랜드는 조별리그를 우크라이나에서, 벨기에는 폴란드에서 치러 만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성배 역시 잉글랜드에서의 인기가 워낙 높았기에 원정중계를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유빈이도 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 잘 봐.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시험 끝나면 신나게 또 놀고. 알았지?”

“알았어. 오빠도 잘하고 와. 직접 가진 못해도 응원할게. 첼시가 내 몫까지 응원해줄 거야.”

“못 오긴 무슨. 결승가면 이번처럼 또 강제로 부를 거야.”

장난스레 씩씩거리는 유빈이와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첼시를 뒤로 하고 성배는 출국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유로 2012.

커리어 최초의 메이저 대회를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뗀 것이었다.

< 낭만필드 - 33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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