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23화 (211/356)

< 낭만필드 - 323 >

성배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간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격은 완전히 그 힘을 잃었다.

안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인 문제를 보이며 동력이 떨어지던 맨유였는데, 격차가 두 골로 벌어진 뒤에는 얼마 남지 않았던 그 동력까지도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이미 두 골의 리드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은 쉴 줄을 모릅니다. 이제는 아예 반코트 경기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맨유의 반격이 약해졌음을 확인한 맨시티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더욱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이대로 적당히 버티면서 우승을 확정 지을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맨시티가 템포를 죽일 이유가 없죠. 여기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이고, 오늘 경기는 맨체스터 더비니까요.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면 우승이 확정되는데, 그런 김빠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화끈하게 몰아붙이다가 멋지게 우승하고 싶겠죠.”

해설자의 말처럼 맨체스터 시티는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를 그렇게 김빠지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승리로 우승을 확정 지을 기회였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고,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좀 더 올라가자! 자, 두 골로 만족할 거야? 응?”

콤파니의 목소리에 맞춰 맨시티 수비라인이 전진했다.

경기중 수비라인을 조율하는 역할은 원래 성배가 도맡아서 했지만, 이번 시즌부터 콤파니와 나눠서 맡고 있었다.

그리고 성배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몫까지 콤파니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센터백인 콤파니가 라인 조율에 더욱 유리한 포지션이었다.

“라인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이왕 올라갈 거면 확실하게 해!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성배는 콤파니의 조율에 따라 움직이면서 세세한 부분을 잡아주는 역할로 넘어가고 있었다.

센터백을 몸으로 달려들어 싸워주는 파이터형과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동료들을 활용하는 커맨더형으로 나눈다 치면 콤파니는 월드클래스 커맨더형 센터백이었다.

그런 콤파니와 지능적이고 노련한 성배는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 수비진, 최후방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면서 전진합니다. 위험해 보일 정도로 올라오는데, 맨유 선수들은 이상하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사실, 리더가 두 명이 되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서로의 호흡이 어지간히 완벽하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혼선이 나타나 즉각 대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성배가 콤파니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배와 콤파니는 워낙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췄고, 서로 상호보완관계였기 때문에 두 명의 리더가 순기능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관계였다.

“주, 전방으로 길게! 제코! 퍼디난드! 실바가 루즈볼을 잡아냅니다!”

라인을 한껏 끌어올린 상황에서 성배의 롱패스가 제코의 머리를 노렸다.

제코에게 거의 업히듯 뛰어오른 퍼디난드가 먼저 머리를 가져다 댔지만, 떨어진 볼의 소유권을 얻어낸 것은 맨시티의 실바였다.

“실바, 돌아서면서 중거리 슈팅!”

캐릭의 방해를 피하려고 바깥쪽으로 한 번 볼을 쳐 준 실바는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볼이 한 번 바운드되면서 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강력한 슈팅이 일직선으로 골대 구석을 향해 날아갔다.

“데 헤아, 선방! 아, 산체스! 산체스가 밀어 넣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세 번째 득점! 알렉시스 산체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산체스, 이번 시즌 리그 20호 골! 기어이 20골을 돌파합니다!”

실바의 슈팅은 굉장히 절묘한 코스로 강하게 날아갔지만, 데 헤아의 반사신경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공중볼 처리와 경험적인 부분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쉬운 모습을 보인 데 헤아였지만, 최소한 선방 능력만큼은 그 어떤 월드클래스 골키퍼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맨유에게 불운이 따르는 것인지, 데 헤아가 힘겹게 막아낸 볼은 쇄도하던 산체스의 앞에 떨어졌고, 산체스는 가볍게 머리를 갖다 대며 텅 빈 골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맨체스터 시티, 이번 시즌 105번째 득점! 아직 두 경기가 더 남은 상황인데 벌써 105호 골로 신기록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산체스까지 20골을 돌파하며 역대 최초로 한 팀에서 세 명의 선수가 20골을 돌파하는 기록까지 세웁니다!”

리그 득점 선두 세르히오 아게로가 30골, 3위 에딘 제코가 25골, 그리고 5위인 산체스가 20골을 기록, 무려 세 명의 공격수가 20골을 돌파했다.

지난 시즌 득점왕인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기록이 20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기록의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모든 선수가 득점력을 갖췄고, 실제로 득점 분포가 나름 고른 편인데, 신기하게도 득점 기록이 좋은 선수들도 많아요. 아게로, 제코, 산체스, 루카쿠 팀 내 득점순위 4위까지 기록을 합치면 무려 86골이죠.”

“거기서 6골을 기록한 주까지 더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한 골에서 두 골, 많아야 세 골을 기록했습니다. 골대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은 공격수들이 워낙 골을 잘 박아 주었기에 굳이 다른 선수들이 골을 노릴 필요가 없었나 봅니다.”

모든 공격수가 자신의 역할을 120% 이상 수행해주었기에 맨시티의 다른 선수들은 이들을 백업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실제로 실바는 무려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중이었고, 아게로, 산체스, 투레, 성배까지 네 명의 선수도 열 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축포가 터집니다. 리그 우승을 자축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자축 세리머니! 이미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들의 우승을 직접 자축하는 맨시티 선수들과 그런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주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서포터, ‘더 시티즌’.

이들 앞에서는 천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초라해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이 거의 9할 가까이 확실시된 상황입니다. 이제는 그냥 시간이 흐르는 것만 기다리면 됩니다.”

산체스의 세 번째 골 이후에도 투레가 한 골을 더 추가한 맨체스터 시티는 4-0으로 앞선 채 경기 종료 휘슬만을 기다렸다.

당연히 맨시티의 우승을 바라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여담으로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에서 만난 두 경기의 스코어 총합은 12:0, 맨체스터 시티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경기 끝났습니다! 2011/12시즌 바클레이즈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우승! 그 주인공은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경기 종료 휘슬과 동시에 미리 준비된 폭죽이 터졌고, 바닥으로 떨어져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를 뒤덮었다.

폭죽 종이들이 초록색의 그라운드를 하늘색으로 칠했고,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맨시티 선수단은 일제히 뛰쳐나오며 폭죽 종이가 채 칠하지 못한 부분을 메웠다.

“2년 연속 우승! 맨체스터 시티, 두 시즌 연속으로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네요! 이제는 그야말로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 되었어요! 맨체스터 시티 왕조의 주춧돌이 세워졌어요!”

마지막 경기까지 가서, 그것도 추가 시간까지 가서 터진 한 골로 한 골 차이의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은 1라운드부터 38라운드까지 내내 1위 자리를 유지하며 완벽한 우승을 차지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36라운드까지 무패 행진을 달리면서 차지한 우승이었다.

이 정도면 왕조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이번 시즌도 수고하셨습니다. 하하.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데, 첫 번째 수성은 성공적이네요.”

“너도 수고했어. 우리의 성공은 네 덕이 크다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지? 다음 시즌에도, 그리고 그다음 시즌에도 잘 부탁해.”

마지막 라운드가 아니었기에 잔디 관리 때문에라도 관객들의 난입은 허가되지 않았다.

하지만 쏟아져나온 맨시티 관계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들만으로도 만만치 않게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성배는 만치니 감독과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수고를 칭찬했다.

2011/12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 지으며 맨체스터 시티는 이번 시즌 첫 번째 결실을 수확했다.

***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으려는 리버풀과 트레블을 위한 두 번째 준비물을 가져가려는 맨체스터 시티의 대결, FA컵 결승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맨체스터 시티는 두 번째 결실을 수확하기 위해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이동했다.

시즌 전체 무패와 함께 무패 트레블을 노리는 맨체스터 시티는 사상 최악의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링컵에 이어 더블을 달성하려는 리버풀과 충돌했다.

“사실, 이번 시즌 경기력만 보면 리버풀은 맨체스터 시티의 상대가 아니죠. 이번 시즌은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악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팀 창단 120주년을 맞이해 프리미어리그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해도 모자랄 판에, 최악의 부진을 보여주고 있어요.”

36라운드까지 진행된 리그에서 리버풀의 득점은 43득점에 불과했다.

106득점을 기록한 맨체스터 시티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50골을 기록 중인 리오넬 메시와 45골을 기록 중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도 적은 득점으로 온갖 비아냥을 듣고 있었다.

“메시와 호날두의 가장 강력한 발롱도르 경쟁자가 버풀 리 선수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리버풀의 부진은 심각합니다. 반대로 맨체스터 시티는 유럽 축구 역사상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력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난 느낌입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맨체스터 시티의 FA컵 우승이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반응이 바로 그것이었다.

리버풀의 우승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보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천천히 접근해도 도저히 맨체스터 시티를 위협할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스피어링의 파울! 빼앗긴 볼을 다시 찾아오려다 파울을 범합니다!”

“경기 전에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뚜껑을 열어도 예상대로의 흐름이네요.”

중계진은 뛰어난 직업 정신으로 어떻게든 포장해가며 리버풀을 띄워줬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람들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만 증명되고 있었다.

“중원에서 전혀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스피어링과 헨더슨, 두 명의 젊은 미드필더는 라키티치와 투레의 상대가 아닙니다. 제라드가 아무리 분전해도 기본적인 스펙 차이가 있는 모습입니다.”

제이 스피어링과 조던 헨더슨.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유망주는 맨체스터 시티의 자랑인 중원 장악력에 대항하지 못했다.

스피어링은 기본적인 기량의 미숙함이 보였고, 헨더슨은 이적 후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 경기력이 널뛰고 있었다.

“중원의 주도권을 이 정도까지 내주면 측면에서라도 힘을 내야 하는데, 왼쪽의 벨라미나 오른쪽의 다우닝이나 사발레타, 주를 상대로 맥을 못 추고 있어요. 어떤 방법도 보이질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맨체스터 시티가 백업 선수들과 유망주로 치렀던 칼링컵 4강전에서는 1, 2차전 모두 무승부를 거두었고, 원정 다득점에서 앞선 리버풀이 맨체스터 시티를 꺾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칼링컵에서 주전을 모두 투입해놓고 한 경기도 잡지 못한 것에서 두 팀의 차이가 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 낭만필드 - 32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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