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15 >
“경기 끝났습니다! 1-1! 맨체스터 시티, 1, 2차전 총합 5-1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4강에 진출합니다!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하는 맨시티!”
결국, 기적은 없었다.
맨시티에게 선취 골을 허용하면서 여섯 골이 필요해진 레알 마드리드는 4강 진출을 포기해버렸다.
전반전이 1-0으로 끝난 뒤, 핵심 선수들을 교체한 무리뉴 감독은 느슨한 지공 전술을 택해 체력을 아꼈다.
지루한 경기가 이어진 끝에 호날두의 만회 골이 터지며 1-1로 마무리되었고, 맨시티는 4강에 진출했다.
“2년 연속 4강 진출로 자신들의 저력을 증명해냈어요.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거든요? 2년 연속으로 4강에 올랐다는 건 이미 그 전력이 유럽 정상급에서 안정화되었다는 거죠.”
이제 그 누구도 맨체스터 시티의 전력을 저평가하지 못했다.
두 시즌 연속으로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한 팀을 무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4강 진출도 4강 진출이지만, 오늘도 무승부를 거두면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무려 이번 시즌에 치른 49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달리며 지난 시즌 막판부터 이어진 연속 무패 기록을 55경기로 늘렸습니다. 대단한 기록이지 않습니까?”
“유럽 리그 연속 무패 기록은 AC 밀란이 가지고 있는데요, 1990/91시즌부터 1991/92시즌에 걸쳐 58경기 40승 18무승부를 기록했거든요? 맨시티는 55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는 동안 44승 11무승부를 기록하고 있어요. 세 경기만 더 패배하지 않으면 AC 밀란보다 더 뛰어난 승률로 유럽 기록을 경신하는 거죠.”
한 시즌 전체를 무패로 마무리할 수 있느냐와 함께 연속 무패 기록 경신 여부도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럽 축구 역사에 남을 기록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크리스... 여기서 우리 인연은 좀 끝내자.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지 않냐.’
후반 막판, 호날두와 성배는 나란히 교체되었다.
이미 승패가 기울었음을 느낀 양 팀 모두 핵심 선수들을 빼주면서 휴식을 준 것이었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긴 했지만, 리그 경기를 위한 체력 안배에 성공하면서 두 팀 다 소소한 이득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하고 내 승리로 끝내자고. 그게 힘들면 두 시즌만 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유와 한 조에 속했던 아약스 시절 이후, 벌써 여섯 시즌 째 매 시즌 두 번 이상의 맞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같은 EPL에 속했던 시절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아약스에서 뛰던 첫 시즌과 호날두라 레알로 이적한 최근 두 시즌까지 매번 만나고 있는 것은 좀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이제 부담은 없지만.’
호날두만 만나면 작아져 천적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성배지만, 토트넘 시절 마지막에는 일대일 승부에서 승리했고, 맨시티 이적 후에는 팀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호날두가 레알로 이적한 이후,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두 번 만나 두 번 모두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는 호날두가 넣은 골은 고작 두 골이었고, 성배가 넣은 골은 결과를 뒤집은 해트트릭을 포함해 다섯 골이었다.
‘레알이 챔스 우승하는 게 2013/14시즌이었던가.’
에이스들이 대부분 8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었기에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었다.
이미 지금도 유럽 최강을 노릴 정도의 전력이지만, 몇 시즌 더 지나 모든 선수가 전성기에 들어선 이후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팀의 주장인 성배도 설렐 정도였다.
‘우리는 그때 다시 보자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 어떤 클럽과 붙어도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역사상 최강의 클럽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 일원으로, 일원을 넘어 팀의 중심인 주장으로 역사에 남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일 것이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스페인에서 돌아온 맨체스터 시티의 다음 상대는 아스날이었다.
파브레가스의 이탈로 타격이 있기는 했지만, 어찌어찌 나스리가 잔류하면서 그나마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스리를 달래며 경기에 출전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맨유에게 2-8의 대패를 당해버렸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스날과 벵거 감독은 분노의 영입을 단행했다.
“정말이지 벵거 감독의 안목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클럽들과 달리 그렇게 큰돈을 들인 것도 아닌데, 영입한 선수들 대부분이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축구 천재라 불리는 백진영을 비롯해 독일 국가대표 센터백 페어 메르테자커, 브라질 출신의 페네르바체 주전 레프트 윙백 안드레 산토스, 에버튼의 핵심 중앙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에 첼시에서 요시 베나윤까지 임대로 영입한 것이었다.
“정말 딱 벵거 감독다운 이적시장이었고, 벵거 감독다운 멋진 영입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선수를 영입하면서도 이적료 수입과 지출이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영입한 선수들의 활약상은 두세 배의 이적료가 든 선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그리고 영입한 이 모든 선수들은 이적료 이상의 활약으로 아스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돈만 있었다면 절대 이적하지 않았을 EPL 정상급 미드필더 아르테타와 독일 최고의 센터백 메르테자커는 당연히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산토스는 뭔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활약해주었다.
베나윤은 경기의 흐름을 바꿔줄 크랙이라고 평가받았던 리버풀 시절보다는 기량이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넣어주면서 아스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AS 모나코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던 백진영이 생각보다 너무 부진하긴 하지만, 다른 영입생들의 활약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아요.”
다만, 한국팬들 입장에서는 큰 기대를 받으며 아스날로 이적한 백진영의 부진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적 과정에서 LOSC 릴과 잡음이 생겨 비난을 받으면서도 선택한 길인데, 결과까지 좋지 않으니 한국 내에서도 비판 의견이 주류로 올라오고 있었다.
‘백진영은... 없네. 벤치 멤버로도 안 나왔군.’
성배는 백진영과 친분이 전혀 없었다.
2011년 1월에 펼쳐진 아시안컵에서 박인진, 윤기표는 나란히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두 사람의 업적을 기념하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대회를 관람했던 성배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과 안면을 텄지만, 두 선수의 은퇴 이후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평가되는 백진영은 정작 그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역시 버크만의 눈이 정확하긴 해. 나야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버크만은 이런저런 정보들로 예상한 것뿐인데 정확히 맞췄어.’
김승용, 임채영과 계약하면서 백진영과의 계약을 검토한 버크만은 빅리그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없다며 백지로 돌렸다.
만약 백진영이 알랭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다면 아약스가 아닌 릴을 선택하거나 백진영이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중하위권 클럽을 선택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겠지만, 이미 일어날 수 없는 일일 뿐이었다.
‘어, 저거?’
리그 1위 맨체스터 시티와 리그 3위 아스날의 대결.
그 대결에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는 백진영을 떠올리던 성배는 뭔가 심상치 않은 장면을 목격했다.
나스리의 측면 크로스를 하트가 펀칭으로 막아냈는데, 그것이 아르테타의 앞으로 흘러간 것이었다.
“아르테타, 중거리 슈팅!! 골! 골입니다! 미켈 아르테타! 후반 42분에 선취 골을 터뜨립니다! 멋진 중거리 슈팅!”
이대로 무승부로 끝나나 싶던 시점에서 아르테타의 중거리 슈팅이 맨시티 골망에 꽂혀버렸다.
그것도 정규 시간 종료까지 3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터져버린 골이었다.
“맨시티, 이대로 무패 행진이 끝나나요? 고작 한 골 때문에? 55경기를 이어온 무패 행진이 유럽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위험해졌어요!”
추가 시간까지 포함해도 5분.
그 안에 만회 골을 터뜨리지 못하면 맨체스터 시티의 무패 행진은 끝나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상황이 더러워졌는데.’
사실 지금쯤 한 번 패배한다고 해도 우승 경쟁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물론, 맨유와의 차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한두 번의 패배를 감수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그렇게 될 경우 무패 행진이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다 올라가! 전부 다 올라가! 어떻게든 한 골 넣어!”
만치니는 사이드라인을 넘어 거의 그라운드에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심판진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지시를 전하기 위해 버티며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올라가! 어차피 골 득실은 하나도 안 중요해! 0-1이나 0-2나 아무 차이 없다고!”
성배도 동료들을 재촉해 위로 올려보냈다.
5분이라는 시간은 길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지만, 한 골을 넣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맨체스터 시티 정도의 공격력으로 올인해서 달려든다면 5분이 아니라 1분이어도 충분했다.
“맨시티의 킥오프! 아게로, 뒤쪽으로! 수비라인으로 볼을 돌립니다! 덮어놓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공격수들에게 보아텡의 롱패스!”
킥오프 직후 뒤로 볼을 돌린 공격수들은 바로 달려나갔다.
어차피 시간은 없고, 다양한 공격수단을 갖춘 맨시티라고 하더라도 이럴 때 선택할 방법은 최전방 타겟형 스트라이커에게 밀어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역시 루카쿠! 루카쿠가 받아줍니다! 뒤쪽에서 투레!”
맨체스터 시티가 대놓고 전진하는 것과 반대로 아스날은 대놓고 뒤로 물러나 모든 선수가 수비에 몰두했다.
어차피 막아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었기에 텐백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투레, 라키티치에게! 아, 파울 선언됩니다! 알렉스 송, 라키티치를 거칠게 밀어내며 파울을 범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프리킥!”
“아, 이건 아니죠! 맨체스터 시티의 세트피스는 유럽 최고 수준이거든요? 세트피스는 수비가 아무리 많아도 공격하는 쪽에서 충분히 골을 노려볼 수 있는데요! 최대한 파울은 피었어야 하는데, 수비가 너무 거칠었어요!”
볼을 걷어내는 것에 집중하느라 플레이가 거칠어진 송의 실수였다.
물론, 세트피스로 골을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기회를 최대한 주지 않으면서 막아내야 했다.
“빨리 내놔! 뭐하자는 거야!”
프리킥을 준비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볼보이 역할을 하는 아스날 유스 선수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 볼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재촉한 성배는 그나마 빠르게 볼을 받아들고 프리킥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빨리 뛰어! 시간 없어!”
196cm의 장신, 조 하트까지도 골문을 버리고 공격에 참여했다.
신장이 아무리 커도 다른 필드 플레이어보다 세트피스 공격력은 좀 약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신장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위력은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조 하트까지도 올라왔습니다. 주, 주심에게 빨리 경기를 속행하라며 재촉합니다.”
순식간에 준비를 마친 성배는 주심을 재촉했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웠다.
< 낭만필드 - 31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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