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14화 (354/356)

< 낭만필드 - 314 >

“역시 무리뉴 감독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경기는 좀 편해지겠지만, 자존심은 분명 상할 겁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맨체스터 시티는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도착했다.

홈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4-0으로 대승을 거두었기에 원정 경기의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이용해야죠. 자존심보다는 4강 진출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무리뉴의 자존심이 상한 이유는 간단했다.

맨체스터 시티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 백업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기 때문이었다.

1차전에서의 4-0 승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백업 선수들을 출전시켜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솔직히 네 골을 넣는 것만큼이나 네 골을 먹는 것도 어렵지. 너무 방심하지만 않으면 4강 진출이 어렵지는 않겠어.’

경기를 준비하면서 성배는 만치니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2차전의 컨셉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4-0 승리 덕분에 3실점까지는 허용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백업 선수들로 선발 명단을 작성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무패가 아니었으면 시즌 진행이 더 쉬웠을 텐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무패 행진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 내내 대회 성격을 막론하고 모든 공식전 무패 행진을 달리는 맨시티였기에 4강도 4강이지만, 무패 기록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장 편한 방법은 2차전에서 패배하더라도 백업 선수들을 출전시켜 4강 출전권만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패 기록이 발목을 잡았고, 주전 선수들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수비수들이야 체력 문제가 크진 않으니까.’

그래서 낸 절충안이 수비수들은 주전으로, 공격수들은 백업으로 투입하는 것이었다.

이번 경기의 목표는 패배하지 않는 것이었지,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비를 강화했고, 주전 수비수들만 있으면 충분히 패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맨시티가 힘을 좀 뺀 스쿼드를 들고 나왔다 하더라도 절대로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아니, 쉬운 상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강한 상대입니다.”

더블 스쿼드를 활용하고도 무패 행진을 이어온 만큼, 아무리 주전 선수들에게 대거 휴식을 주었다고는 해도 레알 마드리드가 쉽게 상대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인정하듯 맨시티의 백업 선수들은 어느 클럽에서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전술에서부터 지지만 않겠다는 뜻이 물씬 풍기고 있어요. 레알 마드리드가 대량 득점을 기록하는 건 아마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오늘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은 양쪽 윙어 두 명을 활용한 4-3-2-1이었다.

주전 골키퍼 하트와 성배, 콤파니, 보아텡, 사발레타의 주전 포백라인을 모두 가동한 수비진이 뒤를 지켰다.

그리고 지난 시즌 리그 최소 실점 기록에 큰 몫 했던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다시 가동되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중앙 미드필더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야야 투레가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진용입니다. 데 용, 배리, 라키티치라면 강력한 중원 장악력과 수비력을 보유한 선수들이지 않습니까? 라키티치 덕분에 공격 전개도 그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을 겁니다.”

수비력만큼은 맨체스터 시티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니헬 데 용과 가레스 배리, 그리고 부지런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싱을 보유한 이반 라키티치가 중원을 구성했다.

오른쪽 윙어 자리에는 제임스 밀너가 출전,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수비형 윙어의 진가를 보여줄 것이었다.

“라키티치와 밀너의 지원을 받아서 공격적인 역할을 맡아줄 선수로는 실바와 루카쿠가 출전했습니다. 수비에 집중한 스쿼드지만, 실바와 루카쿠라면 충분히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실바의 백업은 아담 존슨이었는데, 체력적인 약점이 있고 그로 인해 수비 가담 능력이 부족한 선수였기에 오늘 맨시티의 컨셉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와 플레이 메이커의 필요성으로 인해 공격진에서 유일하게 선발 출전한 실바였다.

“원톱으로 루카쿠가 출전했죠? 맨체스터 시티가 확실히 루카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네요. 4-0으로 앞서고 있는, 비교적 부담이 적은 경기이기 때문에 루카쿠에게 큰 경기 경험을 쌓아주려 하는 모습이죠?”

중요한 경기, 큰 경기에는 거의 아게로와 제코가 활용되었기 때문에 루카쿠의 큰 경기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영입될 때부터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유망주로 인정받던 선수였고, 이번 시즌에도 그 잠재력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맨체스터 시티도 신경 써서 루카쿠를 키우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8강이라는 큰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인기 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기할 기회, 그것도 이렇게 부담 없는 상황에서 경기할 기회는 흔하지 않았고, 루카쿠에게 경험을 쌓아주기 딱 좋은 기회였다.

“제공권과 활동량이 모두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루카쿠라면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골을 넣어줄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백업 선수들을 많이 투입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기에 평소보다 힘든 경기가 될 것이었다.

부담이 없어야 할 경기지만, 4강 진출과 관계없이 패배하면 안 된다는 조건 때문에 맨시티 선수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레알 마드리드, 역시 시작부터 강하게 몰아칩니다. 라인을 바짝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섭니다.”

최소 네 골, 한 골이라도 내주면 여섯 골이 필요한 레알 마드리드였기에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알론소, 디 마리아에게. 디 마리아, 천천히 움직입니다.”

“디 마리아가 살아나야 레알 마드리드가 4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어요.”

전반기에만 2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디 마리아는 장기 부상으로 한동안 출전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복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아직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다.

“부상 전까지만 하더라도 레알 마드리드의 2선 에이스는 디 마리아였거든요? 오늘 대량 득점이 필요한 레알은 디 마리아의 활약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거예요.”

텐백까지는 아니지만, 맨시티는 사실상 4-3-2-1보다는 4-4-1-1에 가까운 포메이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밀너가 중앙으로 자주 들어와, 다른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중원 장악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미드필더들이 워낙 많다 보니 측면에서의 협력 수비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냥 포기하고 측면이나 뚫어.’

중원에서 데 용이 지원 나와주었고, 성배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두 선수는 디 마리아의 중앙 돌파를 막고 있었다.

“디 마리아, 어떻게든 중앙으로 이동하려 하는 것 같은데 주가 절대 중앙 돌파는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른쪽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지만, 디 마리아는 오른발 활용에 서툰 편이었다.

오른발 사용이 서툰 오른쪽 윙어다 보니 기복이 굉장히 심해 한 경기 내에서도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나뉘기도 했다.

“주가 디 마리아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확실히 준비해온 것 같네요. 돌파와 패싱 모두 뛰어난 선수고, 킬패스를 통한 어시스트 능력도 좋은 선수지만, 크로스는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거든요? 그 부분을 제대로 파고들었어요.”

성배와 데 용이 나란히 서서 중앙 돌파를 방해하고 있으니 디 마리아가 최고의 컨디션이어도 쉽게 뚫어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디 마리아의 폼이 완전히 올라온 상황도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측면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측면 돌파 선택! 디 마리아, 오른쪽으로 파고들지만, 주가 끝까지 따라갑니다. 디 마리아, 우물쭈물, 강하게 압박하는 주성배! 백패스가 끊깁니다! 데 용, 디 마리아의 백패스를 끊어내고 라키티치에게 연결합니다.”

사실, 크로스를 허용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수비하는 중이었다.

디 마리아의 오른발 크로스가 부정확한 것도 있고, 콤파니와 보아텡이 이과인과 호날두를 상대로 제공권에서 앞설 거란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무섭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있는 걸 줄 필요는 없겠지.’

당연히 크로스를 쉽게 내주진 않았다.

중앙 미드필더들의 백업이 탄탄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는 상황이 자주 나왔고, 디 마리아는 크로스를 시도하기조차 어려웠다.

“디 마리아, 정말 안 풀리네요. 장기인 왼발이 완전히 막혔고, 크로스조차 쉽지 않아요. 확실히 활동량이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 세 명에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 윙어까지 있으니 레알의 공격이 영 안 풀리네요.”

오른쪽의 디 마리아만큼은 아니지만, 레알의 에이스인 왼쪽의 호날두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중앙 미드필더 네 명이나 마찬가지인 맨시티 중원은 레알의 중원을 압살하는 것도 모자라 번갈아 측면으로 빠지며 측면 공격까지도 막아 세웠다.

“벌써 전반전도 20분이 지난 상황입니다. 지금 레알은 흘러가는 시간 1분 1초가 아깝지 않습니까?”

“선취 골이라도 빨리 나와줘야 하는데요, 지금 상황을 보면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흘러가는 시간 1초도 아까운 레알 마드리드였는데, 어느새 1,500초가 넘는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러는 동안 위협적인 장면도 한 번밖에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점점 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케디라, 오른쪽의 아르벨로아에게! 데 용, 태클!”

조급해진 레알 마드리드는 공격력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아르벨로아까지 전진 배치해 골을 노렸다.

하지만 아르벨로아는 공격력이 좋지 않은 선수였다.

볼을 받는 과정에서 데 용과 성배 사이에 낀 아르벨로아는 마음이 급해 트래핑이 길게 튀어버렸고, 데 용의 태클은 흐르는 볼을 놓치지 않았다.

‘로멜루.’

데 용의 태클에 볼이 흐른 그 순간, 성배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팀의 타겟맨, 그러니까 루카쿠의 위치를 확인했다.

“주, 논스톱으로 전방 투입! 루카쿠에게!”

볼이 흐르자마자 달려든 성배는 디 마리아나 아르벨로아보다 한 발 먼저 볼에 도착했다.

그리고 논스톱으로 바로 왼발 롱패스를 시도했고, 최전방의 루카쿠에게 날아갔다.

“루카쿠! 페페! 루카쿠! 헤더로 흘려주고 오른쪽에서 밀너 올라갑니다!”

페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루카쿠는 오른쪽으로 흘려주었다.

그리고 오른쪽 측면에서 빠르게 올라오던 밀너가 볼을 받아 돌파를 이어나갔다.

“밀너, 중앙으로 볼 투입! 루카쿠 넘어지고, 실바!!”

공격력이 부족한 아르벨로아도 올라갔는데, 윙어 출신 코엔트랑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측면도 텅 비어있었고, 밀너가 편하게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었다.

중앙으로 침투하던 루카쿠는 라모스, 사힌과의 몸싸움 끝에 넘어졌고, 주심에게 격렬히 항의하려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루카쿠에게 수비가 집중되는 사이, 왼쪽에서 파고든 실바에게 볼이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골! 골입니다! 골! 골! 다비드 실바! 사실상 쐐기 골입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먼저 골을 넣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취 골로 레알 마드리드의 4강 진출을 위해서는 6골이 필요해졌다.

맨체스터 시티의 4강 진출 확률이 9할을 돌파했다.

< 낭만필드 - 314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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