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13화 (353/356)

< 낭만필드 - 313 >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4-0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승리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4-0의 대승.

바르셀로나에게 승리할 때도 그랬지만, 유럽 최고의 팀들을 압도하는 맨시티의 모습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프리미어리그 강팀들이야 매일 보던 팀들이니 이제 감동이 덜해졌지만, 타 리그 강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감동은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다.

“대승은 언제나 기분 좋습니다. 하지만 대승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 승리 그 자체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 오늘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이제 맨체스터 시티는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오히려 원정 경기라면 레알 마드리드가 부담스러워했지, 맨체스터 시티가 부담스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선수들의 자신감도 넘쳤고, 팬들 역시 어떤 팀과 경기하든 맨시티의 승리를 기대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기세가 나쁘지 않은데도 승리를 확신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워낙 역대급이라서 그렇지, 레알 마드리드도 분위기가 좋았다.

오랜만에 바르셀로나를 밀어내고 승점 6점의 작지 않은 차이로 리그 1위를 달렸고, 팀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맨체스터 시티에게 0-4 패배를 당한 것이었다.

“음... 일단 어느 팀이랑 경기하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우리가 그 팀한테 지겠어?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못 이길 게 뭐 있어? 하는 거죠. 상대의 상황이 어떻든, 우리가 할 것만 잘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이라면 이런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맨시티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정상적으로 시즌을 치르는 최상위 리그 클럽이라면 확신하진 못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전을 훌륭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사실상 4강 진출이 유력해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데, 기쁘시죠?”

지난 시즌 8강 매치업의 승자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최소한 지난 시즌까지는 맨체스터 시티의 승리가 이변이라고 평가받았었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도 자존심이 좀 상해있었고, 이번 시즌 맞대결이 발표되었을 때, 리벤지를 하겠다며 이를 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지만.

“하하, 너무 당연한 건 물어보시는데요? 상대가 레알이 아니었다고 해도 4-0 승리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4-0과 레알이 한 번에 포함되었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어 보인 성배가 말을 이었다.

“레알이 우리에게 리벤지를 하겠다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미안하네요. 우리도 나름 리벤지할 게 있었나 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팀 선수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우리가 피해를 준 건 잘 기억 못 하고 당한 것만 기억하거든요. 그리고 당한 건 두 배로 돌려주는데, 지난 시즌 8강 1차전 패배를 두 배로 돌려주는 데 성공해서 기쁩니다.”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하고도 성배에게 해트트릭을 얻어맞으면서 라운드 총합 3-2로 탈락한 레알 마드리드가 리벤지를 벼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하도 그쪽으로 이슈가 되다 보니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농담으로 우리도 리벤지할 것을 찾아보자고 말했고, 그렇게 찾은 게 1차전 패배였다.

“어머? 이 발언을 레알 마드리드 관계자들이 들으면 굉장히 분할 것 같은데요? 2차전에 이를 갈고 나올 레알이 부담스럽지 않으신가요?”

레알 입장에서는 지난 시즌 8강에서의 패배와 이번 시즌 1차전의 0-4 패배만으로도 손이 부들부들 떨릴 텐데, 이런 식으로 농락까지 당해버리면서 복수는커녕 복수의 이유만 늘어난 상황이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 심리전입니다, 심리전. 반대로 이야기하면 심리전의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가 부담스럽다는 거죠. 하하. 그래도 1차전 결과가 워낙 좋고, 우리의 분위기도 워낙 좋아서 4강에 진출할 자신은 있습니다.”

천하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할지라도 네 골의 차이를 한 경기로 만회하기란 쉽지 않았다.

리그 강등권 클럽과 붙어도 네 골 이상 차이를 벌리며 승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상대가 맨체스터 시티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말씀하신 대로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정말 좋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기세가 이어질까요?”

오늘 경기의 Man Of the Match로 선정된 성배와 인터뷰하던 첼시는 환한 미소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성배 역시 부드러운 눈빛으로 첼시를 바라보며 질문에 답했다.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느냐... 제 생각에 최소한 다음 시즌까지는 이어지지 않을까요? 하하. 어쩌면 제가 은퇴할 때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쉽게 끊기진 않을 겁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개막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에 그 정도 기세를 보여주는 팀은 종종 있는 편이었기에, 전문가와 팬 모두 극찬을 하면서도 그 이상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전반기를 넘어 후반기, 후반기도 끝을 보이는 4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3월의 마지막 경기.

2011/12시즌 종료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여전히 이번 시즌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고마워. 일 잘 마무리하고 들어가서 쉬어.”

인터뷰가 끝난 뒤, 성배와 첼시는 잠깐 손을 잡았다가 놓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토닥여주었다.

굳이 드러내놓고 만날 필요는 없었기에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딱히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보다 인기가 없나?’

모니터해보면 인터뷰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은데도 연애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이제는 자신이 스타가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사실은 성배의 평소 모습이 달달한 연애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아 의문을 제기하는 팬이 있어도 다른 팬들에게 구박받으며 묻힐 뿐이었다.

***

“맨체스터 시티, 지난 시즌에는 이 정도 시점에서 경기력이 무뎌지기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위엄 넘치는 더블 스쿼드와 함께 잘 버텨주고 있는 모습이죠?”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 1차전 경기에서 3일 뒤, 그리고 2차전 경기 3일 전.

맨체스터 시티는 선덜랜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리그 31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선덜랜드도 현재까지 리그 8위 자리를 지키면서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맨체스터 시티가 아무리 더블 스쿼드를 돌려도 원정 경기를 반복하느라 체력이 떨어졌을 텐데, 선덜랜드를 상대로 주도권은 잡고 갑니다.”

확실히 더블 스쿼드가 아니었으면 체력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었다.

칼링컵도 4강까지 진출하고 FA컵 역시 4강전을 치러야 하고, 챔피언스리그 또한 8강까지 진출한 상황.

아직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더블 스쿼드 덕분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무패 행진을 달리고는 있지만, 2위 맨유와 승점 차이는 5점에 불과하거든요? 주도권을 잡는 것도 좋지만, 한 골이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경기의 주도권은 잡고 있다지만,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마무리가 살짝 무딘 느낌이었다.

세바스티안 라르손에게 한 골을 허용했고, 아게로가 한 골을 만회하며 1-1.

아직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라키티치, 왼쪽으로! 주, 빠르게 올라와 돌파 시도! 크로스! 바슬리, 태클로 걷어냅니다! 맨체스터 시티, 코너킥을 얻어냅니다.”

맨유에서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당시 1부 리그 소속이던 로얄 앤트워프로 임대되었던 필 바슬리.

무려 다섯 클럽으로 임대되는 지긋지긋한 임대 생활을 청산하고 선덜랜드로 이적해 뛰고 있었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처음 바슬리를 만났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상황이었다.

“주와 실바의 호흡이 정말 좋네요. 바슬리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유망주 출신이지만, 오늘은 최악의 하루가 되고 있어요.”

이미 두 선수의 격차는 굉장히 벌어져 있었다.

성배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든 바슬리에게 성배와 실바의 호흡은 악몽이었고, 마찬가지로 산체스와 사발레타에게 탈탈 털리는 콜백과 함께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코너킥이라. 여기서 한 골 넣었으면 좋겠는데.’

세트피스의 위력이 워낙 좋은 클럽이었기 때문에 선덜랜드 선수들도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콤파니와 레스콧, 루카쿠 등 맨시티의 장신 선수들이 일제히 박스 안에 자리 잡았다.

‘시몽. 좀 봐달라고.’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 골키퍼, 크레이그 고든을 밀어내고 선덜랜드의 주전 골키퍼 장갑을 낀 시몽 미뇰레.

성배와 콤파니, 루카쿠의 대표팀 동료였지만, 지금 그런 배려를 해줄 여유는 없었다.

“주, 코너킥! 슈웃! 골!!! 로멜루! 루카쿠!! 앞선에서 잘라 들어가는 루카쿠를 완전히 놓쳤습니다! 루카쿠, 리그 11호 골! 맨체스터 시티에게 리드를 안겨줍니다!”

코너킥을 시도한 성배와 득점을 기록한 루카쿠, 루카쿠가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수비수들을 붙잡은 콤파니와 볼을 향해 몸을 날린 미뇰레.

벨기에 선수가 무려 네 명이나 모습을 보인 플레이였다.

“아, 완전히 허를 찔렀어요. 맨체스터 시티의 높이가 워낙 위력적이다 보니 선덜랜드의 수비수들은 높게 오는 코너킥만 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주의 코너킥은 낮고 짧게 왔어요. 미리 합의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루카쿠가 정확히 그 의도대로 움직여주었고, 뒷발로 방향만 바꿔서 골을 만들었네요.”

맨체스터 시티의 세트피스 공격력은 유럽 최고라 평가받았고, 상대하는 클럽들은 세트피스 수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맨시티 선수들은 제공권만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고,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 상대 수비의 허를 찔렀다.

“NO.3 공격수로 주전 출전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벌써 리그 11호 골을 터뜨렸습니다. 루카쿠, 아직 10대 선수인데 이런 활약을 보여주니 어떤 선수로 성장할지 벌써 기대가 큽니다.”

두 자릿수의 리그 득점.

출전 기회가 제한되고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힘든 백업 공격수에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카쿠는 맨시티의 더블 스쿼드 덕분에 컵대회 중심으로 꽤 많은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컵대회 성적을 더해 시즌 18골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11호 골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중요한 골들을 많이 넣어줬거든요? 맨체스터 시티의 무패 행진이 끊길 위기가 되면 루카쿠가 꼭 골을 넣어요. 그래서 백업 공격수임에도 인기가 정말 많아졌어요.”

더블 스쿼드 때문에 주전 선수들이 거의 출전하지 않은 칼링컵이나 FA컵 초반 라운드, 프리미어리그의 몇몇 경기에서 루카쿠는 무패 행진이 끝날 위기가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골을 넣어주었다.

비록 개인 기록은 아게로나 제코에 비해 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시즌 후반을 캐리한 지난 시즌의 깜짝 스타가 제코였다면 이번 시즌의 깜짝 스타는 루카쿠였다.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움직임이었어. 많이 컸는데?”

“하하, 주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성배는 루카쿠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루카쿠가 성장할수록 벨기에의 유로 2012 전망도 밝아지기 때문에 루카쿠의 성장은 성배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 낭만필드 - 31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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