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12화 (352/356)

< 낭만필드 - 312 >

“호날두, 돌파 시도! 사발레타가 그 앞을 막아섭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마지막 한 발자국을 더 내딛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호날두의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노려보기도 했고, 이과인, 벤제마 두 선수의 득점 본능에 의지해보기도 했다.

외질의 창의적인 패스와 라모스, 페페의 세트피스 공격력도 당연히 활용해보았다.

“사발레타, 태클! 볼 흐르고 코엔트랑의 크로스! 보아텡이 먼저 클리어합니다! 맨시티 수비진,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쉽게 혀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그 한 발자국을 맨체스터 시티가 허락할 리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진을 보유한 클럽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답게 슈팅 직전의 상황까지는 멋지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골은 슈팅이 이뤄지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았다.

“사힌, 오른쪽으로! 외질, 패스 코스를 살핍니다.”

왼쪽에서 호날두가 가지고 있던 볼이 반대편의 외질에게 이어지면서 맨시티 수비진 역시 간격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하지만 빠르게 라인을 다시 조립했다.

‘미안. 좀 아플 수도.’

몸싸움이 약한 외질은 당연히 성배가 붙기 전에 돌파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성배가 그렇게 쉽게 돌파를 허용할 리 없었다.

‘내가 너한테나 이러지, 또 누구한테 이러겠냐.’

외질과의 몸싸움에서 승리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 있게 달려들었다.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수비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수비 방식이었다.

그 정도로 외질과의 몸싸움을 자신 있어한다는 뜻이었다.

“어깨 먼저 집어넣고! 외질, 밀려 넘어지면서 어필해보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경기 속행!”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그 선수와 동일인이었기에 창의적인 패스를 통해 동료들에게 좋은 기회를 창출해주고는 있었다.

하지만 원래 강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무기력한 게 외질의 아이덴티티였고, 그 약점과 동시에 플레이 스타일상의 약점을 한껏 파고드는 성배의 영악한, 어찌 보면 야비한 수비에 고전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가 패스한 볼이 라키티치에게 이어집니다. 라키티치, 바로 전방으로 길게 넘겨주고! 제코가 머리로! 산체스, 아! 케디라의 파울! 맨체스터 시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아무리 원정 경기라지만 레알 마드리드도 두 골 차이는 꽤 부담스러웠다.

지난 시즌 8강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1차전 0-2 패배 이후 2차전을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떠올리면 0-2 스코어가 부담스러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 골을 넣기 위해서 라인을 끌어올렸는데, 골은커녕 뒷공간만 계속 노출하고 있어요. 거세게 몰아붙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절대 가벼운 게 아닌데, 맨체스터 시티가 침착하게 잘 대응해주네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만만치 않은 것 이상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가 강력했다.

모든 공격을 막으려 하지 않고 페널티 박스 근처, 위험 지역에서의 슈팅만 내주지 않는 수비를 했기 때문에 더욱 더 편하게 수비해낼 수 있었다.

모두 2-0으로 여유롭게 앞선 덕분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1차전 홈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똑같이 8강에서 만났지만, 1차전에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고, 스코어는 반대로 맨시티의 2-0 리드입니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맨체스터 시티는 슬슬 경기를 정리하는 분위기로 가는 듯하면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끌어들인 뒤 순간적으로 나가는 역습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보아텡과 라키티치, 성배가 그라운드 위에 있고 레알 마드리드는 라인을 끌어올린 상황.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단 한 번의 역습으로 골을 넣을 좋은 기회였기에 역습만큼은 여전히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양 팀 공격의 효율 차이가 심하죠? 레알 마드리드가 뭔가 바쁘게 하는 것 같긴 한데, 정작 재미를 보는 건 맨체스터 시티네요.”

경기 초반부터 보였던 한 발자국의 차이는 결국 경기 종반에 들어서자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차이로 벌어졌다.

양 팀의 경기력에 차이가 분명 있긴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도 스코어는 2-0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냈습니다. 만약 여기서 주의 프리킥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치명타가 될 겁니다.”

산체스가 얻어낸 프리킥은 확실히 위치가 좋았다.

성배의 프리킥이라면 충분히 득점을 기대해볼 수 있는 위치였다.

“주, 왼발 프리킥! 카시야스, 막지 못했습니다! 주성배! 절묘한 프리킥으로 한 골을 더 추가합니다! 멀티 골! 맨체스터 시티, 3-0까지 앞서나갑니다!”

그리고 성배의 왼발 프리킥은 카시야스가 뻗은 손을 무시하며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이자, 이번 시즌 9호 골이었다.

“시즌 막판을 향해 가면서 주의 프리킥이 불을 뿜고 있어요. 후반기 들어서만 벌써 6호 골을 터뜨립니다. 후반기가 되고 아게로, 제코의 득점이 잠깐 뜸해지니까 귀신같이 프리킥으로 득점을 적립해주네요.”

시즌 후반기 들어서 성배의 득점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게로와 제코의 득점력은 여전히 뛰어났지만, 중반까지의 비정상적인 페이스에서 그나마 사람다운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워준 건 성배의 득점력이었다.

“근데 이게 말이 됩니까? 양 팀이 경기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는데, 어느새 세 골 차이로 벌어졌습니다. 분명 레알 마드리드도 약간 밀리긴 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력을 비교했을 때, 그렇게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점수는 그게 아닙니다.”

결국, 최상위권 클럽 간의 대결에서는 그 미묘한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위기나 흐름으로 그 차이를 극복하고 주도권을 빼앗아오지 못하면, 그래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흐름을 찾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오늘 경기가 보여주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잘했다고 해야죠, 뭐. 레알 마드리드가 딱히 못 한 건 없으니까요. 일단 에티하드 스타디움이니까 안 그래도 시작부터 내준 기세를 레알이 찾아오기도 힘들었고, 맨체스터 시티도 흐름을 내주지 않고 잘 끌고 왔어요.”

비록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수용할 수 있는 관중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나 다른 빅클럽들의 홈구장보다 현저히 적었지만, 서포터들의 응원 열기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가 단 한 순간도 레알 마드리드에게 흐름을 넘겨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3-0이라고는 해도 결국 한 골이 세 번 들어간 것이잖아요? 한 골을 넣을 수 있으면, 몇 골을 넣든 이상하지 않죠. 전체적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맨체스터 시티에 비해 운이 특히 나빴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운이 아니라 경기력이라 봐야죠.”

맨체스터 시티의 홈팬들은 레알 마드리드가 무너지는 모습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유럽 축구는 물론이고 세계 축구를 상징하는 클럽 중 하나였기에 그런 레알이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에서 처참히 무너진다는 것은 결코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 아무리 원정 경기라고 해도 이젠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뒤가 없는 듯한 모습입니다.”

2-0도 부담스러운 스코어였는데, 3-0은 말하면 입만 아팠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일이 잘 안 풀려 한 골을 더 실점하더라도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라고 해도 지금의 맨시티가 세 골을 허용할 것 같진 않거든요? 만약 맨시티가 한 골이라도 넣게 되면 레알은 다섯 골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 골이라도 만회해야 해요. 이러다 만약 한 골을 더 실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죠. 2차전을 포기하고 리그에 집중하는 수밖에요.”

1차전 0-4 패배면 아무리 레알 마드리드라고 할지라도 2차전에 올인하기 부담스러운 스코어였다.

리그 순위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고,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선수들의 체력 배분 문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벤제마, 끊임없이 중앙 돌파 시도합니다. 외질, 벤제마, 다시 이과인! 볼 끊깁니다! 콤파니, 패스 커트! 맨시티의 역습 찬스! 라키티치가 몰고 올라갑니다!”

반대로 맨체스터 시티는 수비를 굳히고 공격을 자제해 체력을 안배하면서도 역습 찬스가 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레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지금처럼 역습 찬스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건 레알도 알고 있지만, 만회 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라키티치, 투레에게! 투레가 다시 라키티치에게 줬고, 라키티치는 왼쪽으로 빼줍니다! 주, 빠르게 전진하면서 역습 템포를 살립니다!”

역습 찬스를 얻어낸 맨체스터 시티는 언제나처럼 눈 깜짝할 사이 공격 모드로 전환했다.

반대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빠르게 수비로 전환, 맨시티의 역습에 반응하려 했지만, 맨시티의 반응이 조금 더 빠른 느낌이었다.

‘역습하면 역시 타겟 스트라이커지.’

2선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화려한 플레이도 맨시티 역습의 핵심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코의 높이도 만만치 않게 큰 역할을 해주었다.

성배는 최전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 통하지.’

어떻게든 역습 속도를 늦추기 위해 사힌이 달려와 거칠게 몸을 날렸지만, 이런 막무가내 태클로는 볼을 빼앗긴커녕 파울로 끊을 수도 없었다.

“부드럽게 빠져나갑니다! 간단한 드리블 테크닉으로 부드럽게 피하고 전방으로 롱패스!”

볼을 왼발과 오른발로 옮겨가며 컨트롤한 성배는 볼과 함께 회전하면서 사힌의 태클을 피해냈다.

사힌의 태클을 피해냄과 동시에 최전방 스트라이커들이 위치 선정을 마치면서 성배의 패스도 출발했다.

“제코, 뒷걸음질 치면서 가슴으로 떨궈주고!”

제코의 머리를 노리고 깨끗하게 날아간 패스였지만, 제코는 가슴으로 볼을 떨궈주었다.

라모스와의 경합에서 앞을 빼앗은 상황이라 굳이 힘들게 헤딩 경합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2선에서 파고드는 아게로가 편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게로에게! 슈팅!! 아니고, 다시 슈팅!”

제코가 라모스와 함께 물러난 덕분에 2선에서 파고든 아게로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제코가 가슴으로 떨궈준 볼은 원바운드로 아게로에게 이어졌고, 아게로는 오른발로 한 번 트래핑한 뒤, 발리 슈팅을 시도할 것처럼 속임수를 시도했다.

오른발 인사이드를 활용해 왼발로 볼을 옮겨 수비수와 골키퍼를 흔들었고, 그 뒤에야 강한 왼발 슈팅을 날렸다.

“골! 골입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멋진 득점! 그야말로 저격수입니다! 순간적인 페인트 모션으로 카시야스의 중심을 무너뜨린 뒤 정교한 슈팅! 스코어는 4-0까지 벌어집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맨체스터 시티의 잔펀치와 잽, 스트레이트, 훅 등에 이미 정신 줄을 놓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리고 아게로의 슈팅은 마지막 결정타가 되어 레알 마드리드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모 복싱 만화의 뎀프시 롤이라던가, 스매쉬, 화이트 팽과 같은 느낌의 한 방을 적중시킨 것이었다.

“아, 이건 끝났어요. 레알 마드리드, 너무 어려워졌네요. 당장 오늘 경기뿐만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8강전 자체가 너무 힘들어졌어요. 이 상태로는 아무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간다고 해도 마땅한 대책이 안 서거든요?”

아직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경기가 끝나지 않아도 레알 마드리드가 힘들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리뉴 감독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시즌 전체를 보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감독으로서 챔피언스리그를 포기하고 리그에 집중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포기하는 게 옳았기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무리뉴 감독을 영입한 것은 빅 이어를 들어 올리기 위해서였는데, 이거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감독들의 무덤이자 독이 든 성배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

아무리 무리뉴라고 하더라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겨주지 못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낭만필드 - 312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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