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11화 (351/356)

< 낭만필드 - 311 >

“레알 마드리드도 이렇게 물러나진 않을 겁니다. 호날두를 앞세운 레알의 공격진도 만회 골을 위해 맨시티의 골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습니다.”

경기의 주도권은 분명 맨시티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과인, 벤제마, 외질에 호날두까지 포함된 이 공격진도 맥없이 물러나지는 않았다.

이들도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의 플레이로 흐름을 바꿔버릴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벤제마, 왼쪽의 호날두에게. 호날두, 사발레타를 앞에 두고 돌파 타이밍을 잽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중원을 완벽히 장악당한 것에 있었다.

팀의 허리가 끊겼으니 아무리 공격진이 환상적이라고 해도 한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분전하는 공격진은 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불리는지를 증명했다.

“사발레타, 오늘 굉장히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죠? 사발레타의 수비에 호날두가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네요. 이번 시즌 들어 맨체스터 시티에 좋은 소식이 정말 많은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발레타의 성장입니다.”

사발레타의 성장은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중 유일하게 성배의 큰 도움 없이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콤파니는 원래 성배가 없었다면 기회를 받는 시점과 성장하는 시점이 모두 1년 정도는 늦어졌을 선수였다.

성배가 강력하게 어필해준 덕분에 콤파니를 마뜩잖아했던 휴즈 시절부터 경험을 쌓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보아텡 역시 마찬가지로, 성배의 강력한 어필 덕분에 중앙 수비수로 나설 수 있게 되면서 훨씬 더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발레타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성장했다.

맨체스터 수비진의 안정화에 성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에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영향에 그쳤다.

“정말 성실하고 노력파인 선수죠. 근성이 뛰어나서 출혈이 있어도 붕대를 감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도 하고요. 합류 시기가 좋지 않아 한동안 백업으로 돌았는데, 백업으로 활약하는 기간에 본인의 원래 포지션인 라이트백은 물론이고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어요. 이제 드디어 빛을 보고 있는데, 괜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2011/12시즌, 마이카 리차즈의 포텐셜이 완전히 폭발하면서 리그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었다.

덕분에 살짝 묻혀 아직 리차즈의 백업 자리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축구 좀 안다는 사람들은 사발레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으면서도 불운한 두 선수가 라키티치와 사발레타라고. 저도 그 말에 일부 동의합니다.”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를 꼽을 때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백업으로 활약하는 두 선수를 두고 농담 삼아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팀이 맨체스터 시티이고, 다른 클럽에서 주는 것보다 많은 연봉을 받지만, 팀이 맨체스터 시티이기 때문에 주전으로 활약할 수 없어 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이런 선수들은 언젠가 빛을 볼 거예요. 백업이라고는 하지만, 더블 스쿼드이기 때문에 출전 기회가 적은 것도 아니고요. 아직 충분히 젊은 선수들이니까 곧 이들의 이름도 맨시티의 전면으로 올라서게 되겠죠.”

실제로 호날두는 사발레타의 수비에서 틈을 찾지 못해 다시 벤제마에게 볼을 돌려주었다.

이런 모습은 경기중 몇 번이나 보여졌다.

사발레타의 현재 기량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외질이 반대편으로 크게 넘겨주면서 다시 호날두에게 볼을 돌립니다.”

하지만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뭔가 해줘야 했다.

다시 한 번 볼을 이어받은 호날두는 사발레타를 앞에 놓고 이번에야말로 하나 만들어보려 눈을 부릅뜨고 틈을 노렸다.

“왼발로 바깥쪽, 아니, 플립 플랩! 중앙으로 올라갑니다!”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면서 개인기를 활용한 화려한 돌파 플레이의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수 한 명 정도는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순간적인 플립 플랩으로 사발레타의 중심을 무너뜨린 호날두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중앙으로 볼 투입! 이과인! 등을 지고 버팁니다!”

사발레타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아무리 호날두라 하더라도 맨시티의 모든 수비수를 혼자 상대할 순 없었다.

맨유 시절과는 달리 선수들을 휙휙 제쳐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굳이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과인은 적어도 피니싱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라 인정받는 선수였다.

“버텨냅니다! 밀리지 않고 버텨내는 이과인! 돌아서면서 슈팅!!”

원래 이과인은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지만, 지난 시즌 허리디스크 수술로 반년 가까이 결장, 그동안 몸을 불리면서 나쁘지 않은 피지컬을 갖게 되었다.

그 덕에 스피드가 다소 줄기는 했지만, 레알에는 볼을 공급해줄 선수가 많으므로 박스 안에서 버틸 수 있는 피지컬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아텡의 체킹을 버텨내고 돌아서면서 슈팅까지 이어가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보여주었다.

“조 하트! 선방! 멋진 선방으로 걷어냅니다! 거의 한 골을 막아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모든 선수가 성장해 월드클래스 문턱에 걸친 상황에서 조 하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항상 골키퍼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고, 최근까지도 폴 로빈슨, 크레이그 고든, 로버트 그린 등 많은 골키퍼를 시험했음에도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고든 뱅크스, 피터 쉴튼, 데이비드 시먼 등 레전드의 뒤를 이어줄 선수를 항상 찾아왔고, 2010년 월드컵 전후로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조 하트는 이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선수 중 가장 앞서있었다.

“역시 조 하트입니다! 멋진 선방으로 실점 위기에서 팀을 구해냅니다! 슈퍼 세이브!”

“절묘하게 펀칭으로 걷어냈네요. 이게 쉬워 보여도 절대 쉬운 게 아니거든요? 특히 저렇게 순간적인 상황에서 절묘한 위치로 파고드는 슈팅을 막아냈다는 건 반사 신경과 점프력에 공중에서 신체를 제어할 수 있는 밸런스까지 가지고 있어야 해요. 확실히 큰 신장과 긴 팔도 큰 장점이고요.”

성배와 동갑의 어린 나이에 196cm의 큰 신장과 긴 팔을 살린 제공권 장악 능력, 그리고 어린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펀칭 스킬이 하트의 장점이었다.

“하트도 정말 좋은 골키퍼인데,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은근히 저평가되고 있어요. 하지만 맨시티의 철벽 수비에는 하트의 지분도 분명 있거든요?”

콤파니는 이미 EPL을 넘어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발돋움했고, 보아텡은 가끔 놓치는 정신줄만 붙잡을 수 있으면 바로 월드클래스로 올라설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배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나마 가장 평가가 떨어지는 리차즈도 EPL 탑클래스에 잠재력은 월드클래스라 평가받는 선수였다.

하트도 좋은 평가를 받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기회 자체가 적으니 억울하게도 살짝 저평가되는 측면이 있었다.

“어쨌든 홈 경기에서 실점할 뻔한 상황이었는데, 하트가 정말 잘 막아주었네요. 맨시티 입장에서는 두 골을 넣은 거나 다름없는 멋진 선방이었어요.”

하트의 선방으로 실점 위기를 벗어난 맨체스터 시티는 한 골 차의 리드를 계속 지켜나갔다.

경기 분위기상 레알 마드리드에게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기에 산술적 수치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방이었다.

“중거리 슈팅! 투레! 투레의 멋진 중거리 슈팅!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히긴 했지만, 정말 위력적인 슈팅이었습니다.”

이과인의 결정적인 슈팅이 막힌 뒤, 맨체스터 시티는 조금 더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물론, 레알은 레알이었기에 심하게 밀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마지막 한 발자국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 한 발자국의 부족 때문에 레알의 플레이가 답답해졌고, 레알이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면서 맨시티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코너킥입니다. 그리고 맨시티의 코너킥은 유럽 최고의 위력을 자랑합니다.”

보아텡, 콤파니, 야야 투레, 제코 등 제공권 깡패들과 이들을 조율하는 커맨더, 코너키커 성배가 레알 마드리드의 코너 플래그 쪽으로 이동했다.

“레알 선수들, 긴장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의 제공권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공권이 좋은 수비수라고 하면 라모스와 페페, 그리고 케디라가 있었다.

하지만 라모스는 세트피스 공격력에 비해 183cm의 비교적 작은 신장 때문에 세트피스 수비력은 좀 아쉬운 편이었고, 케디라는 189cm의 큰 신장 덕분에 적당한 제공권 장악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 딱히 신장 이상의 장점은 없었다.

카시야스마저도 183cm 정도로 골키퍼 중 단신이었기에 맨시티 선수들과 정면에서 맞붙어 이겨낼 수 있는 선수는 페페가 유일했다.

“그래도 수비전술을 짜는 무리뉴의 능력만큼은 이미 증명되었거든요? 그 수비전술과 선수 개개인의 기량 덕분에 제공권의 절대치가 낮아도 세트피스 실점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제공권만 뛰어나고 수비력은 별로인 선수보다 제공권이 살짝 아쉬워도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결국 세트피스 수비도 잘하는 법이었다.

칸나바로나 푸욜이 이러한 케이스였다.

“주, 왼쪽에서 코너킥! 반대편으로 바로 흐릅니다!”

성배의 코너킥은 좋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은 맨시티의 선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도록 철저히 방해했다.

킥이 아무리 좋아도 받아주어야 하는 선수가 그 킥에 따라올 수 없다면, 결국 골을 넣을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사발레타 올라옵니다. 곧바로 크로스!”

반대편으로 흐른 볼을 먼저 따낸 사발레타가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세트피스 수비를 위해 자리 잡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이 볼을 따라가느라 순간적으로 흔들린 타이밍이었다.

‘아르벨로아 정도라면.’

볼이 반대편으로 흐르자마자 중앙으로 이동한 성배였다.

박스 안쪽에서 수적인 우세를 따내기 위해 이동한 것이었고, 사발레타의 크로스가 반대편으로 흐를 경우에 대비, 살짝 뒤쪽에 숨어 있었다.

만약 크로스가 길게 날아올 경우, 공중볼 경합을 펼칠 아르벨로아는 184cm, 성배와 1cm 차이였기에 충분히 경쟁해볼 만했다.

“크로스, 길게! 반대편!”

그리고 사발레타의 크로스가 반대편으로 길게 날아왔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순간적인 크로스여서 정확도가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배가 목표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득점 찬스가 났으니 어떻든 상관없었다.

‘좋았어.’

뒤로 빠져있었던 성배는 볼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바로 침투, 아르벨로아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성배가 달려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아르벨로아는 맥없이 성배에게 자신의 앞을 내주고 말았다.

“주, 떴습니다! 헤더!! 골! 골! 골! 주성배! 두 번째 골을 터뜨립니다! 흔치 않은 주의 헤더! 아르벨로아가 주를 놓쳤습니다! 절묘하게 파고든 주의 추가 골!”

흔치 않은 성배의 헤딩 득점.

사실 풀백이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제공권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신체 능력도 평범한 편이었기에 183cm의 크지 않은 신장과 평범한 점프력 등 제공권에 딱히 장점은 없었지만, 워낙 조용히 파고들었기에 아르벨로아와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아, 아르벨로아. 너무 안일했네요. 그리고 사실 원래 주의 포지션을 생각해보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아르벨로아가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수비하려 내려가지 않고 공격에 참여한 주의 결정이 참 과감했고, 이게 결정적이었네요.”

“제가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축구 중계를 오래 한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게 바로 주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이렇게 플레이하겠지, 하고 보면 또 허를 찌르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이 주가 비교적 부족한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무기이면서 팬들이 주를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것 같으면서도, 그런 생각에 마음을 놓으면 순간적으로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의외성.

과거의 경험은 성배를 이 자리까지 올려놓았고,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상위권에서의 경쟁을 통해 또 한 번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현재 나이 스물네 살, 슬슬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서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립해나가는 성배였다.

< 낭만필드 - 31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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